미디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위한 성전(聖典)

⊙ "매체는 메시지"

[실전 고전읽기] 54. 마셜 맥루언「미디어의 이해」
당신은 지금 한 친구에게 사과를 하려고 한다.

어떤 방법이 가장 좋을지 생각해보자. 휴대폰 문자 보내기,전화하기,직접 만나 얼굴 보고 말하기,이메일 쓰기,펜을 들고 편지 쓰기,아무 말 없이 꽃 한 다발 건네주는 것도 멋져 보이고 근사한 춤사위를 한 번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가능한 방법을 죄다 늘어놓자면 얇은 책 한 권은 족히 나오겠다.

중요한 것은 제각각 매체를 통한 방법에 따라 그 효과는 매우 다르고 함의하는 바도 차이난다는 점이다.

마치 똑같은 말도 어떤 공간에서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다르듯 말이다.

PC,MP3 플레이어 등 온갖 기계 장치가 넘치는 세상에 사는 우리들이 쉽게 공감할 만한 상황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명료하게 설명해주는 문장이 하나 있다.

커뮤니케이션 이론가 맥루언이 자신의 사상을 응축하여 말했던 "매체(미디어)는 메시지"이다.

일종의 경구와도 같은 문장으로 그의 주저 <미디어의 이해>를 비롯, 그의 사상 전반을 대표하는 말이기도 하다.

널리 알려진 일종의 경구와도 같은 문장이지만 그만큼 쉽게 이해되는 문장은 아니다.

매체는 콘텐츠를 담는 그릇과도 같은 것이고 메시지는 그릇에 담긴 내용물 즉 콘텐츠가 보유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건전한 상식에 들어맞는다.

콘텐츠가 메시지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매체가 메시지라는 주장은 어떤 의미로 이해될 수 있을까.

영화를 볼 때 내용이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맥루언에게 중요한 것은 영화 그 자체가 인간과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이다.

또한 영화가 갖는 매체적 속성이 무엇인가에 따라 발생하는 변화와 그 변화로 인해 인간과 사회에 발생하는 영향력을 따져봐야 하는 것이다.

즉 맥루언이 말하는 '메시지'는 곧 매체가 인간과 사회에 끼친 영향이다.

감상자에게 영화의 내용이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영화 그 자체가 존재함'에 주의를 기울이자는 것이다.

그 관심의 대상이란 영화가 존재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인간의 심리적 영향은 무엇인가,영화가 사회에 끼친 영향력은 무엇인가 등의 문제이다.

맥루언은 <미디어의 이해>에서 매체가 단순한 정보전달의 수단을 넘어서 인간의 인식 패턴과 의사소통의 구조,나아가 사회 구조 전반의 성격을 결정짓는 것으로 파악한다.

⊙ 매체는 인간의 확장

메시지는 곧 매체가 인간과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라면 맥루언이 말하는 매체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보자.

매체 개념을 파악하면 맥루언 사상의 절반은 이미 파악한 셈이 될 수 있다.

'매체' 혹은 '미디어'라는 말로 가장 쉽게 떠오르는 것들은 아마도 TV 신문 등 언론매체,휴대폰 등의 통신 매체가 어렵지 않게 생각날 수 있다.

이러한 좁은 개념의 매체로는 맥루언이 말하고자하는 바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맥루언의 <미디어의 이해>를 구성하는 핵심 개념인 '매체(미디어)'는 곧 우리가 쉽게 말하는 좁은 의미의 언론 매체가 아닌 인간사에 탄생하고 존재하는 모든 인공물과 기술(technology)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말,글,라디오,TV 등 커뮤니케이션 매체뿐만 아니라 옷,신발,집,군대,도로,비행기,안경,학교 등이 모두 매체에 속한다.

이렇게 따지면 매체 아닌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도대체 이런 것들이 어떻게 미디어가 될 수 있는 것일까.

<미디어의 이해> 부제는 '인간의 확장'이다. 부제가 암시하듯 맥루언은 미디어가 곧 이러한 인공물 기술이 인간 심신의 '확장'이라고 말한다.

맥루언이 제시한 사례를 보면 '책은 시각의 확장'이고,'라디오는 청각의 확장'이다. 또한,TV는 시각 청각 촉각을 동시에 확장시켜 준다.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보자.

우리는 시 ·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대상과 소통하기위해서는 무엇인가 매개가 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매개가 되는 것 즉 미디어를 통해 인간의 확장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동을 위해서는 최소한 걸어갈 수 있는 길이 필요하고 자동차와 도로,기차와 철도가 있다면 더욱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

어떻게 이동하든 시공간을 넘나들며 대상과의 경험이 이루어지고 삶이 생성되게 된다.

⊙ 전자매체에 의한 지구촌 도래

도로가 생기고 자동차가 움직이고 철도와 기차가 세상을 이어 놓는다.

이때 중요한 것은 자동차를 누가 타고,열차에 어떤 물건을 실어 나르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맥루언에 따르면 어떤 매체가 존재하며 발생하는 인간 삶 전반의 변화를 문제 삼아야 제대로 된 매체의 문제를 탐구하는 것이 된다.

TV가 인간사회에 등장하여 생겨난 인지 방식의 변화,사회상의 변화 등을 보아야 한다.

맥루언이 말하는 '지구촌' 역시 미디어의 변동에 의해 사회 변동이 발생하며 탄생하게 된다.

맥루언은 전자 미디어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점을 인지한다.

이에 따라 이제 인간은 전자파,전자 미디어의 도움으로 최대한의 심신의 모든 감각 확장을 경험할 수 있고 전(全)지구가 연결되고 소통하는 경험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맥루언은 이러한 상황을 "인간사에 있어서 동시적 '장(腸)'을 재창조하여 인류라는 가족이 오늘날 '지구촌' 아래 존재하게 되었다"고 파악한다.

시공간의 장벽과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지구촌은 맥루언의 표현을 따르면 "전자기술의 발견과 전자매체의 등장으로 우리는 옛날 부족들의 북소리가 미칠 수 있는 작은 공간만큼이나 온 세계가 응축된 오직 하나뿐인 공간"이다.

☞ 논술 기출 제시문 읽기

<미디어의 이해>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여러 경구와 같은 문장,은유로 점철되어 있고 책 구성도 순서대로 읽어나가는 선형적 구성을 벗어나 여기저기 펴놓고 읽을 수 있는 비선형적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난해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1965년 처음 출간된 이 책은 출간 이후 곧바로 대학가를 중심으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며 서점에 등장한 지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성전의 반열에 올랐다.

당시 '뉴욕 헤럴드 트리뷴'지는 마셜 맥루언을 '뉴턴,다윈,프로이트,아인슈타인 이후 가장 중요한 사상가'로 지목하기도 했다.

이후 한동안 잊혔다가 1990년대부터 맥루언 사상을 다시 읽자는 유행이 번지며 '맥루언 르네상스'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그 영향력이 커졌다.

맥루언 동시대보다는 오히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지금 자신이 처한 위치를 한 번쯤 자각하게 만들어 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대입 논술 제시문으로 미디어 관련 논제, 인간과 기술 관련 논제 등에서 출제되었고,서강대 2003 정시,동국대 2007 정시 논술 등에서 맥루언의 미디어의 이해 제시문을 볼 수 있다.

다음은 동국대학교 2007학년도 정시 논술 제시문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앞서 설명한 인간의 확장과 관련된 내용이다.

따라서 라디오의 영향은 시각에 미치고,사진의 영향은 청각에 미친다. (중략)

어떤 새로운 테크놀로지도 그것의 완성도,즉 인간 정신에 끼치는 영향의 정도는 그 테크놀로지에 대한 수요(需要) 여부에 달려 있다.

자동차가 나타나기 전에는 아무도 자동차를 원하지 않았으며,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직접 보기 전에는 아무도 텔레비전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 자체의 수요를 만들어내는 테크놀로지의 힘은 테크놀로지가 우리의 신체나 감각의 확장인 것과 깊은 관계가 있다.

제시문을 한 편 더 읽어보자.

서강대 2002학년도 정시 기출 문제 제시문 중 일부를 발췌한 것으로 전자 매체 시대의 도래,기술 발달로 인한 자동화 세계가 실현되며 인간 사회에 벌어질 변화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1965년에 출간된 책임에도 최근 상황을 기술한 듯 21세기 현재의 모습이 잘 나타나있다.

미래의 노동은 자동화 시대의 '생활 배우기'를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것은 전기 테크놀로지에서 흔히 나타나는 패턴이다.

이것은 문화와 테크놀로지,예술과 상업,일과 여가라는 낡은 이분법을 없애 버린다. … (중략) …

자동제어 기구의 전기 시대는 갑자기 사람들을,앞선 기계 시대의 기계적,전문가적 노예 상태로부터 해방시킨다.

기계와 자동차가 말을 해방시켜서 오락의 세계 속으로 던져 넣은 것처럼,자동화가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그 해방에 대한 대가로,내부의 자원을 이용해 스스로 고용을 창출해 내고 풍부한 상상력으로 사회에 참여해야 하는 부담을 갑자기 안게 되었다. … (중략) …

전기적 에너지는 작업이 이루어지는 장소나 작업의 종류와는 무관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작업에서의 탈중심화와 다양성이라는 패턴을 형성한다.

예를 들면,이것은 난롯불과 전깃불의 차이에서 분명히 나타나는 논리이다. 따스함과 빛을 찾아 난롯가나 촛불 주위로 모여든 사람들은 전깃불을 지급 받는 사람만큼 생각이나 과제를 자유롭게 추구하지는 못한다.

이처럼,자동화 속에 숨어 있는 사회적,교육적 패턴은 자기 고용(self-employment)과 예술적 자율성의 패턴이다.

자동화가 세계적 규모의 획일화를 가져온다고 놀라 당황하는 것은,이제는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기계적 규격화와 전문화의 미련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박성진 S · 논술 선임연구원 mok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