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적 삶을 기획하라!

[실전 고전읽기] 53.헬렌 니어링,스코트 니어링 「조화로운 삶」
삶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자연재해가 닥칠 수도 있고 예상치 못한 경제위기가 올 수도 있다.

따라서 지금의 삶이 언제라도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런 까닭에 지금의 삶과는 다른 대안적 삶을 기획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조화로운 삶」에서 헬렌 니어링과 스코트 니어링은 바로 현대인들에게 지금과는 다른 대안적 삶을 생각해 보게 한다.

헬렌 니어링과 스코트 니어링은 대공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던 1932년에 뉴욕의 대도시에서 버몬트 시골로 이사를 했다.

그곳에서 자신들만의 원칙과 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을 철저히 지키며 시골 생활에 적응해간다.

그러면서 도시생활에서 얻지 못했던 자족감과 풍족함을 얻는다.

어쩌면 그들은 현실도피자나 도시생활의 실패자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현대문명의 비판자며 동시에 현대문명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조금 길지만 건국대 2006년 수시2학기 예시문제에서 기출된 「조화로운 삶」의 지문을 보면서 이러한 부분을 확인해보자.


우리는 모든 일들에서 원칙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애썼다.

우리가 처음에 십 년 계획을 세우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우리 삶의 중심 원칙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하나,우리가 먹고사는 데 필요한 것을 절반쯤은 자급자족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이윤 추구의 경제에서 할 수 있는 한은 벗어나기를 희망한다.

대공황은 몇 백만이 넘는 가장들을 위기에 몰아넣었다.사실 이것은 시장에서 생필품을 사다 쓰는 사람들을 늘 위협하고 있는 문제였다.

일당이나 월급을 받는 직장인들은 스스로의 일을 갖고 있지 못하다.

자기들과 상관없이 경제 정책이 결정되고,정책을 수행하는 사람을 자기 손으로 뽑지도 못한다.다시 말해 이때의 수많은 실업자들은 자기 잘못으로 일자리를 잃은 것이 아니었다.


어쨌든 모든 생필품과 살림살이들을 돈 주고 사야만 하는 경제 구조 속에서 그이들은 직장을 잃은 것이다.

수입은 끊겼지만 먹고 입고 자는 문제를 해결하다 보니 모아놓은 돈은 바닥났고,결국 그이들은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이렇듯 이윤을 추구하는 경제 구조 속에서 계속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 다가올 그 두려운 일들을 받아들이거나,아니면 실현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내야만 했다.

우리가 생각해 낸 대안은 절반쯤은 자급자족하는 생활이었다.

둘,우리는 돈을 벌 생각이 없다.또한 남이 주는 월급을 받거나 무언가를 팔아 이윤을 남기기를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바람은 필요한 것들을 될 수 있는 대로 손수 생산하는 것이고,그럼으로써 먹고사는 일을 해결하는 것이 일차 목적이다.

한 해를 살기에 충분할 만큼 노동을 하고 양식을 모았다면 그 다음 수확기까지 돈 버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돈을 번다’거나 ‘부자가 된다’는 생각은 사람들에게 매우 그릇된 경제관을 심어 주었다.

우리가 경제 활동을 하는 목적은 돈을 벌려는 것이 아니라 먹고살기 위한 것이다.

돈을 먹고 살 수는 없으며,돈을 입을 수도 없고,돈을 덮고 잘 수도 없다.

돈은 어디까지나 교환 수단일 뿐이다.식의주(食衣住)에 필요한 물건을 얻는 매개체이다.중요한 것은 우리가 먹고 마시고 입는 것들이지 그것과 맞바꿀 수 있는 돈이 아니다.

우리는 반드시 필요한 현금에 맞추어 돈을 벌려고 했다.

필요한 것이 마련되었다고 판단되면,그 해의 남은 시간 동안에는 더 이상 농사를 짓지도 않았고 돈을 더 벌지도 않았다.

한 마디로, 먹고사는 것만 해결하고자 했으며,이렇게 일단 기본 생활 수단이 마련되면 다른 일들에 관심을 돌려 열중했다.

우리가 관심을 가진 것은 사회 활동,그리고 독서와 글쓰기와 작곡 같은 취미 생활이었다.

셋,우리는 모든 일에 들어가는 비용을 우리가 가진 돈만으로 치를 것이다.

은행에서는 절대로 돈을 빌리지 않을 것이다.땅이나 집을 담보로 넣어 융자를 얻은 뒤 이자를 갚느라 허덕이는 일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경제 구조에서도 돈을 빌려주는 사람들은 배를 두드리며 편히 산다.

개인이든 은행 같은 기관이든,돈을 빌려주고 담보를 잡으며,이자와 경매 처분으로 얻는 수익금으로 살을 찌운다.

돈을 빌려주는 사람들은 무엇을 생산하는 일에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으면서 안락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길 수 있다.

한편 돈을 빌려다 쓰는 생산자들은 이자를 꼬박꼬박 내야하며,그렇게 하지 못하면 자기의 모든 재산을 잃는다.

대공황 때 몇 천 명에 이르는 농부들과 가장들이 자기들이 가진 모든 것을 잃었다.

우리는 어느 순간이나,어느 날이나,어느 달이나,어느 해나 잘 쓰고 잘 보냈다.

우리가 할 일을 했고,그 일을 즐겼다. 충분한 자유시간을 가졌으며,그 시간을 누리고 즐겼다.

먹고살기 위한 노동을 할 때는 비지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결코 죽기 살기로 일하지는 않았다.그리고 더 많이 일했다고 기뻐하지도 않았다.

사람에게 노동은 뜻 있는 행위이며,마음에서 우러나서 하는 일이고,무엇을 건설하는 것이고,따라서 매우 기쁨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요일이 되면 평소와는 달리 먹고살기 위한 아무 노동도 하지 않고 아무 계획도 없이 하루를 보냈다.

일요일 아침에는 대개 음악을 감상했다.그리고 저녁에는 종종 함께 모여 토론을 벌였다.

누군가 소리내어 책을 읽기도 했는데 그러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나무 열매를 쪼개거나 콩 껍질을 벗겼으며,바느질이나 뜨개질 같은 자질구레한 자기 일을 하기도 했다.



이들은 자급자족을 통해 이윤추구의 환경을 벗어나려고 노력했고 돈에 얽매이지 않았으며 더욱이 땅이나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는 절대 돈을 빌리지 않았다.

그리고 결코 죽기 살기로 일하지 않았다.

이들은 현대인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다.

현대인들은 이윤추구와 경쟁 관계에 있는 것을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낀다.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투자목적으로 땅이나 집을 담보로 잡힌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죽기 살기로 일한다.

그 과정에서 현대인들은 쳇바퀴 돌아가는 삶을 살아간다.

그 중에서도 특히 도시인들은 이 쳇바퀴를 가장 열심히 달리는 사람일 것이다.

물론 현대적 도시생활을 그리워하는 시골사람도 있고 반대로 도시생활에 찌들어 귀농을 꿈꾸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삶을 선택하든 대안적 삶의 가능성을 항상 생각해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인의 삶은 문명이 주는 흥분,분주함,매혹,편의 시설,기호품 등에 얽혀 대안적 삶을 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지금 살아가는 이 삶이 내 삶의 유일한 양식인 것처럼 생각하게 만든다.

건국대에서 이 문제를 학생들에게 풀게 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즉 현대사회에서 자기도 모르게 사회,경제적 패러다임에 매몰되어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진정한 가치를 상실하고 있음을 학생들이 파악하고 있는지 없는지 묻고 싶은 것이다.

이것을 정확히 밝혀주어야 논제에서 요구한 헬렌 니어링과 스코트 니어링의 삶의 방식이 오늘날 우리에게 대안이 될 수 있는지 따져 볼 수 있을 것이다.

논제에 정확히 답하기 위해서 학생들은 오늘날 우리의 사회경제적 상황을 꼼꼼하게 분석해서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문제를 헬렌 니어링과 스코트 니어링의 삶의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 없는 지 논의 해주는 것이 핵심이다.

결과적으로 현대 사회에서도 헬렌 니어링과 스콧 니어링과 같은 선택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도시를 떠나서 시골로 대안적 삶을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도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삶이 오늘날 현대인에게도 궁극적인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도시의 사람들이 실천할 수 있는 조화로운 삶(living the Good life)의 방법이 제시되어야 한다.

학생들이 비판적 사고력만 가지고 있다면 어떤 고전이 나오더라도 자신감 있게 문제를 풀 수 있다.

결국 「조화로운 삶」이 고전으로 의미 있는 이유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마크 트웨인은 “문명이란 사실 불필요한 생활필수품을 끝없이 늘려가는 것”라고 말했다.

그다지 필요 없는 물건을 너도나도 소비하는 과정에서 현대인은 소비의 마법에 빠져 자기를 상실한다.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오히려 빈곤한 삶을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무엇이 진정한 풍요로움인지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조화로운 삶」은 큰 의미를 가진다고 하겠다.

김법성 S·논술 선임연구원 greennamou@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