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무죄가 오늘은 유죄?

민사는 유죄, 형사는 무죄?

명백한 기물파괴 소란도 무죄?

[Cover Story] 들쑥날쑥 법원 판결,국민들이 어떻게 믿나
#2009년 1월,국회에서는 여당이 미디어특별법,사이버모욕죄법 등 쟁점법안 처리를 추진하자 민주당 민주노동당 등 야당은 국회의사당을 점거하고 본회의장 출입문에서 농성을 벌였다.

1월5일 국회 경위들이 본회의장 출입문에 부착된 현수막을 뜯어내자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는 경위들과 몸싸움을 벌이고 항의하기 위해 국회 박계동 사무총장실을 방문했다.

강 대표는 사무총장실 테이블 위로 올라가 발을 구르며 소란을 피웠다.

이 사진이 보도되면서 '공중부양' 사건이란 이름이 붙었다.

검찰은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강 대표를 기소했다.

그러나 법원은 2010년 1월18일 강 대표에게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내렸다.

#2009년 6월과 7월,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시국선언을 했다.

자율형 사립고 설립과 미디어법 등 추진 중단을 요구하고 한반도 대운하에 반대하는 등 국정 전반을 비판했다.

교육과학부는 7월30일 전국 시 · 도 부교육감 회의에서 시국선언을 주도한 교사 89명 중 정진후 전교조 위원장(수원제일중 교사)을 교사직에서 파면하고 시국선언을 주도한 간부 21명을 해임,67명을 정직 처분해 달라고 각 시 · 도교육청에 요청했었다.

검찰은 교원노조법 3조가 금지하고 있는 정치활동을 함으로써 국가공무원법 66조(집단행동의 금지)를 위반한 혐의로 노병섭 전교조 전북지부장을 기소했다.

전주지방법원은 2010년 1월19일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 날인 20일 부산지법은 시국선언 관련 집회에 참가한 혐의(지방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기소된 전국민주공무원노동조합 김모 부산지역 본부장에 대해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2008년 4월 MBC PD수첩은 '긴급취재! 미국산 쇠고기,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를 방영했다.

이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가 시작됐고 전국으로 확산됐다.

농수산식품부는 PD수첩 제작진은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고 MBC를 상대로 정정 및 반론보도를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냈다.

2009년 3월에는 정운천 전 농수산식품부 장관 및 민동석 외교통상부 단장이 제작진을 정식으로 검찰에 고소했다.

6월에 나온 민사소송 결과는 농림수산식품부의 일부 승소 판결이었다.

MBC는 정정보도를 했다.

그러나 법원은 2010년 1월20일 정 전 장관과 민 단장의 명예를 훼손하고 쇠고기 수입업체들의 업무를 방해한 혐의에 대해서는 1심에서 무죄판결을 내렸다.

최근 법원 판결이 이상하다.

강기갑 대표처럼 국회 사무총장실에서 소란을 피웠다면 그에 맞는 처벌을 받는 게 당연한 것 같은데 몸싸움,기물파손에도 불구하고 무죄가 내려진다.

시국선언 판결에서는 똑같이 시국선언에 참가한 공무원인데 유 · 무죄로 엇갈린 판결이 내려진다.

PD수첩 판결도 마찬가지다.

민사소송 1,2심에서 허위보도로 판결했는데 형사소송에서는 허위보도가 아니라서 무죄라고 한다.

⊙ 잇단 정치적 판결,국민들은 뭘 믿나

정치 · 사회적으로 관심이 큰 사건에 대해 재판부마다 판사마다 결론이 다른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비슷한 사안인 데도 어제는 무죄,오늘은 유죄로 판결이 엇갈리고 있어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법원은 독립적인 재판을 하는 하급심 판사들이 엇갈린 판결을 내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그래서 3심제라는 견제장치를 두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재판부와 판사마다 다른 유 · 무죄 판단과 양형 적용이 계속될 경우 재판 당사자인 국민은 결국 재판을 신뢰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하급 법원의 신뢰도가 떨어지면 앞으로 누구든 최종심인 대법원 판결까지 받아보겠다고 나서는 악순환이 생길 수도 있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요즘 일부 단독판사들이 돌출적인 판결을 내리는 것은 법원 수뇌부가 합리적인 틀 안에서 국민을 수긍할 수 있는 판결을 내리도록 젊은 판사들을 유도하는 분위기가 흐트러진 탓이 크다"고 말했다.

사법부 내의 종적,횡적 소통이 약화되면서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 판결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단독판사 제도 자체의 결함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단독판사는 재판장인 부장판사와 배석판사들로 구성되는 합의부와 달리 판사 1명이 재판을 담당한다.

형사소송의 경우 피고인의 혐의가 단기 1년 이상의 징역 · 금고형에 해당하는 사건은 합의부에서 맡고 그 나머지가 단독판사에게 배당된다.

형사 단독에는 판사 경력 5~6년차부터 14년차까지의 소장 판사가 배치된다.

법원장도 재판에 관여할 수 없어 폭넓은 자율성이 보장된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경력법관제를 도입하자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검사 또는 변호사로 10년 이상 경력을 쌓은 법조인을 법관으로 임용하고 형사단독 판사에 대해선 15년 이상 등으로 경력 요건을 더욱 강화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 양형기준도 오락가락

양형기준도 오락가락이다.

법원은 지난해 '조두순 사건'을 계기로 살인 등 8대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표 권고기준을 마련,재판에 적용했다.

올해는 사기와 절도,사문서 및 공문서 위조,마약,약취 · 유인,식품 · 보건,공무집행방해범죄 등 최근 급증하거나 국민들의 생활 주변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마련할 계획이다.

하지만 문제는 일부 판사들이 양형기준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양형기준이 현실과 동떨어진다면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부산지법 동부지원 형사합의1부(부장판사 이현종)는 지난달 29일 특수강간 혐의로 기소된 장모군 사건 선고 공판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사회봉사 80시간,성폭력 치료강의 수강 40시간을 선고했다.

친구와 함께 가출 청소년을 성폭행한 이 사건의 양형기준상 권고형량은 징역 5~8년이었지만 최저 형량에도 훨씬 못 미치는 선고였다.

재판부는 "장군이 19세에 불과해 향후 교화 가능성이 기대되고 피해자를 위해 상당한 금액의 공탁금을 예치한 점 등을 고려해 판결했다"고 밝혔다.

반면 제주지법 형사합의2부(부장판사 박재현)는 지난해 9월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강모씨 사건 선고 공판에서 권고형량의 상한인 징역 4년4개월을 훨씬 상회하는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강씨는 자신이 일하는 가게 주인이 종업원들에게 함부로 대한다는 이유로 주인을 심하게 폭행한 뒤 흉기로 찔렀다.

재판부는 "한 사람의 생명은 전 지구보다 무겁고 귀중하고 엄숙하다"며 "강씨의 범행 수단이 잔혹해 양형기준상 권고형량 범위 내에서 형을 정하는 것은 일반인의 건전한 법감정에도 반한다"고 밝혔다.

부산지법 형사합의6부(부장판사 최철환)는 취업을 하라고 훈계하는 외삼촌을 살해하고 사체를 훼손한 혐의(살인 등)로 기소된 김모씨 사건 선고 공판에서 양형기준 상한인 징역 13년을 상회하는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양형기준이 엄격하게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은 강제성이 없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양형기준법을 제정해 양형기준을 강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재형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