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과태료 물려서라도 시민들 참여 이끌어내야”

반 “정부 노력없이 손쉽게 문제 풀려는 탁상행정”

자기 집 앞이나 점포주변의 눈을 치우지 않는 사람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게 과연 타당한가.

소방방재청은 돌아오는 겨울부터 건축물의 소유자와 점유자 또는 관리자가 관리 중인 건축물 주변보도,이면도로 및 보행자 전용도로에 대한 제설 · 제빙 작업을 하지 않을 경우 최대 100만원의 과태료를 물리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자연재해대책법과 지자체 조례에 따라 건축물 관리자는 인접보도 등에 대해 제설 · 제빙 작업을 하도록 되어 있지만 처벌규정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법에 벌칙조항을 넣고 이에 근거해 조례에 과태료 등을 부과하겠다는 게 소방방재청의 논리다.

6년 전 자연재해대책법 개정안을 마련할 때 국민의 부담을 고려해 제외했던 처벌 규정을 우리도 이제는 도입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이런 방침에 대해 한 쪽에서는 "서울시를 비롯한 몇몇 지방자치단체들이 내 집 · 점포 앞 눈 치우기 조례를 제정해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있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이제는 억지로라도 시민들이 눈 치우기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며 반기고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쪽에서는 "자기 집 앞은 스스로 쓰는 게 전통이고 미덕"이라며 "안하는 걸 하도록 이끄는 게 중요하지 모든 걸 과태료 부과로 해결하려는 것은 옳지 않다"며 반발하고 있다.

'탁상행정의 전형'이라는 얘기다.

이처럼 논란이 불거지자 소방방재청은 "법 개정은 시민과 전문가 의견수렴,공청회 등을 거쳐 국민적 공감대 속에서 추진할 계획이며 지자체 조례 또한 지역민 의견 수렴과 지방의회의 심의를 거쳐 제정되기 때문에 시민 입장이 충분히 반영될 것"이라고 한발짝 물러섰다.

'내 집 앞 눈 치우기'조례 위반자에 대한 과태료 부과 논란을 분석해 본다.

⊙ 찬성 측, "과태료 부과 통해 억지로라도 시민참여 이끌어내야"

내 집 앞 눈을 치우지 않은 사람에 대한 과태료 부과에 찬성하는 쪽에서는 "현재 서울시를 비롯한 몇몇 지방자치단체들이 관련 조례를 제정해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있지만 처벌조항이 없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조례 위반자에 대한 처벌이 능사는 아니지만 이제는 제재를 통해 억지로라도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외국에서도 눈 치우기 조례 위반자에 대해 미국 뉴욕주와 미시간주는 각각 100달러와 500달러,영국은 2000파운드(360만원),중국도 1000위안(16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하철역 구내나 버스터미널 같은 곳을 금연 구역으로 정해 놓고 위반하면 범칙금을 내도록 법이 바뀐 다음 이곳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내 집과 점포,건물 앞 눈 치우기도 그런 단계를 밟아 나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시민 의식은 어느 한순간 갑자기 끌어올려지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 반대 측, "자기반성 없이 과태료부터 부과하는 건 행정 편의주의"

이에 대해 반대하는 쪽에서는 눈을 치우지 않은 사람에게 최대 1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겠다는 발상은 탁상행정의 전형이라고 지적한다.

중앙 · 지방정부가 이번 폭설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음에도 자기반성은 하지 않고 국민들에게 다짜고짜 과태료를 물려 눈을 치우겠다는 발상은 행정 편의주의라고 꼬집는다.

전 지구적인 기습 폭설이 빈발하는 상황에서 민간의 참여는 필수적이긴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자발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민의식 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정부의 과태료 부과 방안 발표 뒤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기는가''다세대주택에 살기도 서러운데 아파트로 이사 가라는 것이냐''직장에 안 가고 눈 치우라는 얘기냐'는 등 국민의 원성이 터져나오고 있다고 한다.

우선 국민들을 대상으로 내집 앞 눈치우기 캠페인부터 실시하고 폭설피해 예방대책을 강구하는 데 온 힘을 다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과태료 부과보다는 국민의식을 변화시키는 일이 급선무라는 것이다.

⊙ 벌칙조항 마련 앞서 우선 캠페인 통해 국민의식부터 일깨워야

이번 폭설로 과연 정부가 과태료 부과대책을 내놔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연초 전국을 강타한 눈은 100년 만의 폭설이라 할 정도로 특수한 경우였으며 그 핵심적 피해 또한 교통대란과 물류차질 등이었다.

폭설이 내릴 당시 구청이나 동사무소 등에서 주민들이 제설작업에 나서도록 적극 독려하거나 호소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정부가 자기반성은 하지 않고 국민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려고 한다는 원성이 터져나오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정부 당국은 벌칙 조항을 언급하기에 앞서 우선 캠페인을 벌이는 등 국민의식을 일깨워야 할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벌금을 매긴다고 우리가 굳이 이를 따라가야 할 이유도 없다.

눈치우기는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의식 문제이며 상식의 범주로 봐야 하는 까닭이다.

국민들로 하여금 눈 치우기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방편으로 100만원의 과태료를 매기겠다는 것은 아무래도 수긍이 안 간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용어풀이

자연재해대책법

태풍과 홍수 등 자연현상으로 인한 재난으로부터 국토를 보존하고 국민의 생명 · 신체 및 재산과 주요 기간시설을 보호하기 위해 자연재해의 예방 · 복구 그 밖의 대책에 관해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 법. 제 27조는 '건축물의 소유자 점유자 또는 관리자로서 건축물의 관리책임이 있는 자는 관리하고 있는 건축물 주변의 보도,이면도로 및 보행자 전용도로에 대한 제설 · 제빙 작업을 해야 한다'며 구체적 제설 · 제빙 책임범위 등은 지자체 조례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내 집 앞 눈 쓸기 조례

서울의 경우 지난 2006년부터 시행해 오고 있으며 건축물의 주인과 관리자 등은 보도와 이면도로에 쌓인 눈을 눈이 그친 지 4시간 안에 치우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위반한 사람에 대한 강제조항(처벌규정)이 없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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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1월 7일자 보도기사


정부가 폭설이 쏟아진 지 3일 만에 내놓은 제설 개선 대책을 둘러싸고 적정성 논란이 일고 있다.

소방방재청이 돌아오는 겨울부터는 자신의 집 앞이나 점포 주변에 쌓인 눈을 치우지 않으면 최대 100만원의 과태료를 물리겠다는 방침을 밝히자 이에 찬성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탁상행정의 전형'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박연수 소방방재청장은 지난 7일 제설대책 개선과 관련한 브리핑에서 자연재해대책법에 건축물 관리자에게 주변도로 제설과 제빙 책임을 부여하고 있으나 행정상 처벌 규정이 없어 자발적인 제설작업이 소홀해 처벌 조항을 도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영국 300만원,미국 미시간주 60만원 등 외국 사례를 소개하면서 5년 전에 자연재해대책법 개정안 마련 때 도입을 유보했던 처벌 조항을 이제는 도입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소방방재청의 이 같은 방침은 폭설 이후 제설과 교통소통 등에 비난여론이 거세게 일자 단시일 내 즉흥적으로 마련한 정책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한 네티즌은 "폭설피해 대책이라는 것이 고작 이런 것이냐. 길 미끄러운 것도 국민 책임이냐"고 따졌고,또 다른 네티즌은 "눈을 치우면 인센티브를 주는 쪽으로 해야지,안 치우면 벌금 때린다고 압박하는 것은 발상이 잘못됐다"고 목청을 높였다.

여론조사 기관인 리얼미터가 지난 6일 서울시의 '내 집 앞 눈치우기 조례'에 처벌 규정을 도입하는 문제에 관해 전국 남녀 1천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에서도 응답자의 67.4%가 반대 의견을 나타낸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