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언어와 사고를 감시·말살하는 디스토피아
[실전 고전읽기] 49. 조지 오웰,「1984년」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복음은 당당하게 선언한다.

거무스름한 혼돈을 깨치고 세상의 분별은 말과 함께 이루어졌다.

그 비의(秘意)를 둘러싼 분분한 해석은 일단 차치하고,요한복음의 유려한 첫 문장은 언어의 위력을 장엄하게 알린다.

신이 창조한 인간이든 인간이 만든 신이든 간에,복음의 첫 구절이 '언어'로 시작한다는 사실은 언어가 미치는 막강한 영향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언어의 가공스러운 힘을 묘사한 작품을 들자면 조지 오웰의 「1984년」이 단연코 첫 손에 꼽힌다.

스탈린 체제의 소련 사회를 예리한 펜으로 희화화한 우화소설 「동물농장」으로 부동의 입지를 굳힌 정치소설가 조지 오웰-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은 지병 악화로 고생하면서 1948년 이 소설을 탈고하였다.

디스토피아 문학의 태두(泰斗)이자 걸작으로 평가받는 이 작품의 제목은 소설 완성 연도의 숫자 둘이 뒤집어 붙여졌다.

그래서 「1984년」은 어느 특정 연도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 있을지도 모르는 추상적 미래를 상징한다.

저자가 나날이 사그라지는 목숨을 붙들어가며 병상에서 집필한 「1984년」은 저자의 개인적 절망과 사회에 관한 불안이 땅거미처럼 어둑어둑하게 내려앉아 책을 읽노라면 목을 누르는 듯한 답답함을 느낀다.

작품의 무대인 오세아니아는 '전쟁은 평화,자유는 예속,무지는 힘'이라는 모순된 슬로건이 사회를 지배하는 일당 독재의 전체주의 국가로서,전역에 설치된 텔레스크린이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철저히 감시한다.

텔레스크린은 절대 끌 수 없는 모니터 장치로 사람들을 감시할 뿐만 아니라 개인에게 당의 명령을 일일이 하달하고 그 명령에 즉시 따르지 않으면 곧바로 경고를 보낸다.

완벽히 세뇌된 사람들은 감정 · 사고 · 행위 모두를 당에서 지시하는 대로 복종하며 살아간다.

이곳에서 개인의 주체적 이성과 자유로운 감정은 박멸되어야 할 대상,흔적 없이 제거해야 하는 얼룩일 뿐이다.

그리고 당국은 언어의 지배를 통해 사고의 숨통을 더욱 더 철두철미하게 졸라 들어간다.

기록은 끊임없이 날조되며,불필요한 언어들은 점차 소거되어 증발한다.

언어를 지배하는 당의 의지와 명령에 따라 세상 모든 것은 끊임없이 부정되고 날조되기에 오세아니아에서 '존재'의 의미는 극히 기만적이다.

당이 그때 그때 원하는 바에 따라 진리는 만들어지고 변형된다.

이러한 삼엄한 통제 가운데 소설의 주인공 윈스턴 스미드는 용기를 내어 비밀 일기장을 몰래 구입하고 1984년 4월4일 텔레스크린의 사각지대에서 조심스럽게 펜을 든다.

체제에 반발하기 시작한 인물이 가장 먼저 시도한 행위가 '자신의 언어'로 생각을 직조하려는 것임은 큰 상징성을 지닌다.

그러나 막상 일기장을 펼치자 윈스턴은 자신을 표현할 수 없음을 깨닫고 당황해한다.

일기장을 마주하고 윈스턴이 느끼는 한없는 무력감은 언어의 불능이 사고의 마비,존재의 무기력임을 뜻한다.

그간 당국의 통제 아래 생활하던 윈스턴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낯설고도 괴로운 변신 과정이다.

그러나 윈스턴은 점점 더 자신의 언어를 토하며 일기를 써내려 가고,막연하기만 하던 그의 불만과 의문 역시 차츰 구체화된다.

하지만 윈스턴의 반발은 당국의 체포로 끝난다.

고문과 세뇌를 통해 '새로운 인간'이 된 윈스턴은 자신을 포기하고 체제에 순응한다.

「1984년」에 묘사된 불길한 디스토피아는 지금까지 다양한 문학과 영화작품을 그 음험한 자식으로 낳았는데,수많은 문필가와 영화제작자들이 이 작품에 바치는 찬탄과 존경은 부단한 오마주(homage)의 숨결을 통해 여전히 재생되고 있다.

그리고 「1984년」전체를 통틀어 가장 공포스러운 대목은,신어(新語)사전 편찬을 담당하는 사임과 주인공의 대화 부분이다.

언어 자체를 소거해 버림으로써 불필요한 인식과 관념들을 뿌리뽑고 세상을 재창조한다는 오세아니아 당국의 의기양양한 정책은 절망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인지 현재까지 출제된 논술 제시문도 한결같이 이 부분에서 발췌,인용되었다.

☞ 기출 제시문 1 (중앙대 2000학년도 정시 논술고사)

"사전은 어떻게 돼가나?" 윈스턴이 소리를 높여 말했다.

"그럭저럭. 난 형용사를 맡았는데 무척 재미있어." 사임이 말했다.

그는 신어(新語) 이야기가 나오자 얼굴이 즉시 밝아졌다.

그는 스튜 접시를 밀어놓더니 섬세하게 생긴 손으로 한 쪽은 빵 덩이를,다른 쪽은 치즈를 들고 소리가 잘 들리도록 몸을 식탁 쪽으로 기울이고 말했다.

"제11판이 결정판이지.

지금 이 신어를 마지막으로 손대고 있는데 그러면 다른 말을 쓰지 않아도 돼.

이 일이 다 끝나면 자네 같은 사람들은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지.

자네는 우리의 주된 업무가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내는 거라고 생각하겠지.

천만에! 우리 말을,하루 수십,수백 마디 어휘를 없애고 있다네.

뼈만 남도록 잘라내는 셈이지.

말을 없앤다는 건 멋있는 일이야.

물론 버려야 할 말은 동사와 형용사에 많지만 명사도 수백 어(語)는 되지.

없애는 건 동의어뿐 아니지. 반대어도 있어.

도대체 단어란 게 단순히 다른 말의 반대어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한 낱말에는 그 자체 내에 반대어를 포함하고 있네.

예를 들어 '좋다(good)'라는 말을 생각해 보게.

'좋다'라는 말이 있으면 구태여 '나쁘다(bad)'는 말이 필요하겠나?

'안 좋다(ungood)'로 충분하지.

아니 오히려 그게 다른 말보다 더 정확한 반대어라 할 수 있지.

'좋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을 때 '훌륭하다(excellent)'느니 '멋있다(splendid)'느니 하는 따위의 말들이 필요할까?

'더 좋다(plusgood)'라는 말이면 충분하고 그걸 더욱 강조하고 싶으면 '더욱 더 좋다(doubleplusgood)'로 하면 되지.

물론 이런 형태의 단어를 이미 쓰고는 있지만 신어 사전 최종판에서는 이 말 한마디만 남을 걸세.

결국 좋다는 것과 나쁘다는 것에 대한 모든 개념은 다만 여섯 개의 낱말로,실제로는 단 하나의 말로 표현되는 거지.

멋있지 않나. 윈스턴?

물론 이건 애초에 대형(大兄)의 아이디어야.

신어의 목적이 사고의 폭을 줄이는 것이란 걸 알고 있나?

결국 우리는 '사상죄(思想罪)'도 문자 그대로 불가능하게 만들 거야.

왜냐하면 그걸 표현할 말이 없어질 테니까.

필요한 개념은 단 한마디 말로 표현되며 그 말은 정확히 정의되어 다른 곁뜻은 없어져 버리고 말지.

제11판에서 우리는 벌써 그 정도로 해놓았어.

그러나 그 과정은 자네나 내가 죽고 난 뒤에도 계속될 거야.

한 해 한 해 어휘는 줄어들고 그럴수록 의식의 한계도 좁아지겠지.

물론 지금에도 사상죄에 대한 이유나 구실이 있을 수 없지.

그것은 단순히 자기훈련이나 현실통제를 못하기 때문이야.

그러나 결국 그나마도 필요없게 돼. 혁명은 언어가 완성될 때 완성돼. (…중략…)

모든 사상적 분위기도 변할 걸세.

실상,우리가 지금 이해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란 없어져 버릴 걸세.

정통주의는 생각하는 것,생각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야. 무의식 바로 그거야."

☞ 기출 제시문 2 (고려대 2002학년도 수시2 논술고사)

It's a beautiful thing,the destruction of words.

Of course the great wastage is in the verbs and adjectives,but there are hundreds of nouns that can be got rid of as well.

It isn't only the synonyms: there are also the antonyms.

After all,what justification is there for a word which is simply the opposite of some other word?

A word contains its opposite in itself.

Take 'good,' for instance.

If you have a word like 'good,' what need is there for a word like 'bad'?

'Ungood' will do just as well--better,because it's an exact opposite,which the other is not.

Or again,if you want a stronger version of 'good',what sense is there in having a whole string of vague useless words like 'excellent' and 'splendid' and all the rest of them?

'Plus-good' covers the meaning,or 'double-plus-good' if you want something stronger still. ( …ellipsis… )

Don't you see that the whole aim of Newspeak is to narrow the range of thought?

In the end we shall make thought-crime literally impossible,because there will be no words in which to express it.

Every concept that can ever be needed will be expressed by exactly one word,with its meaning rigidly defined and all its subsidiary meanings rubbed out and forgotten.

Already,in the Eleventh Edition,we're not far from that point.

But the process will still be continuing long after you and I are dead.

Every year fewer and fewer words,and the range of consciousness always a little smaller.

Even now,of course,there's no reason or excuse for committing thought-crime.

It's merely a question of self-discipline, reality-control.

But in the end there won't be any need even for that.

The Revolution will be complete when the language is perfect.

홍보람 S · 논술 선임연구원 nikehbr@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