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사민정 대타협… 복수노조·전임자 문제 진통끝에 극적 타협

올해 노동계는 변화의 한복판에 있었다.

노사관계의 갈등과 대립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 갈등의 진폭은 예년에 비해 크게 둔화된 한해였다.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노사가 손을 잡고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 국제사회의 주목을 이끌어내는가 하면, 13년간 해법을 찾지 못했던 노동계 현안에 대해 해법을 찾아내기도 했다.

임태희 노동부 장관이 최근 ‘2010년을 노사관계 선진화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도 노사간의 해결 갈등 해결 의지와 방식이 과거와 달리진 데 주목한 것이다.

올해 달라졌던 노동계의 모습을 살펴보자.

⊙ 한 해를 달군 노동이슈들


올 한햇동안 노동계는 어느때보다 시끄러웠다.

지난해 본격화된 경제위기로 수많은 기업들이 구조조정에 나서고 공기업을 중심으로 초임 삭감이 확산되면서 노사갈등의 불씨가 됐다.

거기에다 7월 비정규직 관련법의 시행을 앞두고 노동계와 정부, 재계가 각각 다른 목소리를 내며 충돌 양상을 빚었다.

갈등은 하반기에 접어들면서도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복수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의 시행 문제를 두고 노동계는 총파업 가능성을 경고하며 대립각을 세웠고 재계는 정부에 여과없이 불만을 표출했다.

지난해부터 노사정위원회가 복수노조,전임자 문제에 대한 논의를 거듭한 끝에 지난 7월 중재안인 공익위원안을 내놨지만 노사 모두 수용을 거부했다.

여기에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방안에 대해 노동계의 반발이 이어졌고,반대로 공무원노조의 민주노총 가입과 정치세력화에 대해서는 정부가 강경대응에 나서기도 했다.

이처럼 올 한해 노사정은 사안별로 갈등과 충돌을 거듭하며 연말을 맞이하게 됐다.

하지만 올해 노동계에는 반목과 대립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노동계와 재계,정부가 위기를 맞아 머리를 맞대 해법을 모색하고 타협점을 찾아내면서 의미있는 결과물을 여럿 내놓았다.

노동계의 변화도 돋보였던 한해였다.

과거 양대 노총 중심의 노동계는 분화 양상을 보이며 달라진 근로자들의 인식과 기호를 대변하기 위해 애썼다.

⊙ 세계를 놀라게 한 노사민정 대타협

올 한해 노사정이 보여준 최대 성과는 지난 2월 23일 채택된 노사민정 대타협 합의다.

사측은 해고를 자제하고 노측은 ‘임금 동결·반납 또는 절감’을 통해 일자리 나누기에 적극 동참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노사가 양보를 통해 극적인 타협안을 이끌어냈다.

주요 노동현안에 대해 노사가 먼저 회의체를 제안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낸 최초의 사례다.

합의문에는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 노동계는 기업의 경영여건에 따라 임금동결ㆍ반납 또는 절감을 실천하고 경영계는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를 자제해 기존의 고용수준이 유지되도록 한다”고 명기하고 있다.

이어 “각 사업장 현실에 맞게 교대제 개편,근로시간 단축,임금피크제 도입 확대,(순환) 휴직ㆍ휴업 및 무급 안식월(년) 제도 도입,인력재배치, 교육훈련(휴가),재택근무 등 다양한 방안을 통해 일자리 나누기를 적극 실천한다”고 밝히고 있다.

또 “기업은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경우에도 일방적 감원보다는 희망퇴직을 최대한 활용하고 노사민정은 채권금융기관들이 노사의 고통분담과 일자리 나누기 노력을 최대한 존중하기를 촉구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노사가 이같은 합의안을 이끌어내기까지는 상당한 진통을 겪어야 했다.

첫 만남에서 합의가 이뤄지기까지 20일 동안 8차례 실무협의와 2차례의 부대표급 회의,1차례 공개토론회,1박2일 합숙 워크숍,2차례의 대표자 회의가 열렸고 막판에는 노동계가 전원 퇴장하는 사태가 불거지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정해진 기간내에 합의를 이끌어내며 전세계에 주목을 받았다.

지난 9월 미국 피츠버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내년 회의의 한국 개최가 결정된 데도 노사민정 대타협을 통한 한국 노사관계의 달라진 위상이 크게 작용했다.

⊙ 복수노조, 전임자 문제 극적 타협

노사는 특히 하반기 최대 노동현안인 복수노조, 전임자 문제를 다루면서도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줬다.

현행 ‘노동조합 및 노사관계조정법’에는 2010년1월부터 복수노조를 허용하고,노조 업무만을 하는 전임자에 대한 사측의 임금 지급을 금지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복수노조가 허용될 경우 노조와 사측의 교섭에 혼란이 올 수 있으므로 노동부 장관에게 교섭창구 단일화 방안을 마련토록 하고 있다.

하지만 법 시행을 앞두고 노사정간 갈등이 불거졌다.

노동계는 복수노조 허용을 찬성하면서도 교섭창구 단일화 방안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나타냈고, 전임자 임금지급 문제는 노사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영계는 복수노조 허용은 반대하고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시행은 찬성한다는 의견을 냈다.

노동부는 두 안건 모두 법에 명시한데로 내년초부터 시행하겠다는 방침을 굽히지 않았다.

한국노총은 10월 29일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노동부, 노사정위원회, 그리고 재계 대표인 경총, 대한상의 등이 참석하는 6자 대표자 회의를 제안해 한달여간 협상이 진행됐지만 결국 이 마저도 입장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결렬됐다.

이후 노동계는 한국노총, 민주노총의 동반 총파업을 경고하면서 사태는 최악으로 치닫는듯 했다.

하지만 12월초 한국노총, 경총, 노동부가 극비리에 다시 협상을 재개했고 결국 지난 4일 산고끝에 합의안을 마련하게 됐다.

복수노조, 전임자 관련 문제는 현재 정치권과 노동계, 재계의 다양한 목소리가 얽히면서 여전히 해결에 난맥을 보이고 있지만 노사정 대표가 만나 큰 줄기에서 해답을 찾았다는 점에서 노사관계의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 변화하는 노동계

올해 노사관계는 경제위기를 맞아 여러가지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그 양상은 파업 기록에서도 나타난다.

올들어 노동계 파업은 12월 16일 현재까지 118곳으로 지난해 107곳보다 10.3% 증가했다.

하지만 파업기간을 나타내는 근로손실 일수는 61만7186일로 지난해의 80만2953일에 비해 23.1%가 줄었다.

쟁의에 나선 노조는 늘었지만 예년에 비해 빠르게 마무리된 것이다.

기업별로 노사화합 선언을 한 사업장도 크게 늘었다.

올해초 LIG넥스원이 노사화합 선언에 나선 것을 시작으로 12월까지 SK그룹, 한화그룹 등 100여곳의 사업장이 노사화합 선언문에 서명했다.

지난 10월에는 지난 90년대 노동 투쟁의 상징으로 각인됐던 현대중공업 골리앗 크레인 위에서 노사화합 선언이 이뤄져 주목받기도 했다.

고경봉 한국경제신문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