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할지라도 행동하는 인간이 역사를 이끌어간다?

[실전 고전읽기] 42. 세르반테스「돈 키호테」
당신은 어느 유형에 속하는가?

햄릿 형,아니면 돈 키호테 형?

러시아의 문호 투르게네프(Turgenev)는 인간을 둘로 구분하여 '햄릿'과 '돈 키호테'라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인간상을 제시하였다.

물론,세상에 얼마나 하고 많은 무수한 인간 유형이 있겠냐만은 이를테면 단순명쾌하게 나누어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고민하는 우유부단한 햄릿과,현실 감각은 없지만 자신의 이상을 향해 무모하게 돌진하는 돈 키호테는 각각 사변과 활동,양 극단의 상징이다.

시대를 공유하다가 비슷한 시기에 사망한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는 모든 면에서 대조적인 두 인물을 문학사의 전범(典範)으로 창조해낸 셈이다.

투르게네프의 분류를 따라 과연 본인은 햄릿과 같은 사색형 인간에 속하는지,아니면 돈 키호테와 같은 행동형 인간인지 살펴보는 일도 재미있거니와,햄릿과 돈 키호테를 각자의 소설에 주인공만 바꿔 넣고는 이야기 전개를 상상하는 일도 무척 흥미롭다.

만약 돈 키호테가 햄릿의 상황에 있었다면 아버지의 유령이 등장해 억울한 죽음을 알리기도 전에 평소 미심쩍은 숙부 클로디어스에게 설교를 하며 칼을 내질렀을 것이고,햄릿이 라 만차에서 기사소설에 탐닉하고 있었다면 '편력을 떠나느냐 마느냐,그것이 문제로다'를 고민하면서 모험은 시작하지도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회의에 빠진 갑갑한 햄릿이든 용맹이 무모의 수준으로 치닫는 돈 키호테이든 각 유형 모두 일장일단이 있으나,투르게네프는 "햄릿을 사랑하기는 힘들지만,돈 키호테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행동형 인간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었다.

투르게네프가 생각하기에는 햄릿형의 인간은 뛰어난 지각력과 깊은 통찰력을 지니지만,실천력 결여로 인해 세상과 민중에 기여하는 바가 없다.

반면 미쳤다고도 할 수 있는 돈 키호테 형 인간은 하나의 목표만을 추구하며,그 목표 이외의 것은 알려고 하지 않는다.

때로는 그들이 추구하고 있는 목표가 실재하지 않는 경우조차 있다.

하지만 투르게네프는 이러한 유형의 인물들이야말로 역사 발전에 기여하고 사회를 이끌어간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투르게네프처럼 돈 키호테의 발랄함과 행동력을 아낀 사람이 많았던지 돈 키호테(Don Quixote)의 이름을 딴 '키호티즘(quixotism)'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그렇다면 이토록 각별한 돈 키호테는 어떻게 이 세상에 등장하였는지 한번 살펴보자.

돈 키호테의 정식 제목은 중세소설의 특징인 긴 표제가 영향을 미쳐서인지 좀 길다.

1605년 발표된 돈 키호테 첫 편의 정식표제는 '재기(才氣) 발랄한 향사(鄕士) 돈 키호테 데 라 만차: El Ingenioso Hidalgo Don Quixote de la Mancha'이다.

돈키호테를 창조해낸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 Saavedra · 1547~1616)는 뛰어난 독창성과 자유분방한 상상력,기발한 재치와 날카로운 풍자로 스페인의 최고 문학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나 그 자신 또한 돈 키호테의 편력에 비견될 만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

마드리드 인근의 소도시에서 가난한 외과의사의 일곱 자녀 중 넷째로 태어난 세르반테스는 어린 시절 가족을 따라 각지를 전전하느라 정규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다.

1570년 나폴리에서 스페인 군대에 입대한 그는 이듬해 레판토 해전에서 왼팔이 불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용을 떨쳐 외팔이 용사로 이름을 날렸으나 1575년 귀국하던 중 해적에게 납치되어 알제리로 끌려가 5년 동안 노예 생활을 했다.

이후 신부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풀려난 세르반테스는 귀향 후 본격적인 문필가 생활을 시작하였지만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계속되는 생활고와 함께 누명을 쓰고 수 차례 투옥되는 시련을 겪던 그는 1605년 총 52장으로 구성된 '돈 키호테'의 첫 편을 출간하였다.

돈 키호테는 출간과 동시에 선풍적 인기를 끌었는데 그 인기가 얼마나 대단하였던지 나중에는 돈키호테의 위작(僞作)까지 출판되었다.

세르반테스는 시중에 위작이 나타난 것을 보고 서둘러 돈키호테의 속편 작업을 끝내 1615년 총 74장으로 이루어진 돈 키호테 속편을 출판하고 곧 세상을 떴다.

세르반테스는 평탄치 않은 인생을 살았지만 '돈 키호테'로 말미암아 스페인 사람들이 사랑하는 국민작가가 되어 여러 축제에서도 그를 기념하고 있다.

'돈 키호테'는 '진정으로 인간을 그린 최초의 소설'이라는 격찬을 받는데,이는 방대한 분량의 소설을 이끌어가는 고유한 개성의 등장인물들 때문이다.

독특한 성격을 지닌 인물을 창조해낸 문학적 성과로 '돈 키호테'는 근대문학의 효시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또한 운문 중심 문학에서 산문 중심으로 전환하는 근대소설의 출발점이 되기도 하였다.

'돈 키호테'는 누구나 익히 아는 내용이지만 그래도 등장인물과 줄거리의 대강을 짚어보자.

소설은 우리의 사랑스러운 주인공에 대한 소개로 첫 장을 시작한다.

라 만차의 어느 마을에 사는 오십 줄의 노신사 알론소는 밤낮 기사도 이야기에 몰두해 있다가 정신이 이상해져서 스스로를 기사도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착각한다.

광기인지 몽상인지 이름하기 곤란한 상태에 빠진 그는 자신을 돈 키호테라고 명명하고 불의와 싸워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로시난테라는 이름을 붙인 비루먹은 말을 타고 방랑의 길에 오른다.

돈 키호테는 섬의 총독 자리를 약속하여 원정 길로 꾀어낸 산초 판사를 시종으로 거느리고,구원의 여인 둘시네아 델 토보소에게 순수한 연모와 충정을 다짐하면서 편력을 길을 떠난다.

하지만 돈 키호테는 가는 곳마다 그의 기사도 정신과 저돌적 태도로 인해 온갖 황당무계한 모험을 겪으며 현실세계와 좌충우돌한다.

자기가 보는(더욱 엄밀하게 말하자면,자기에게만 보이는) 환상의 세계를 좇아 현실을 휘젓고 다니는 돈 키호테는 너무나 순수하고 인간미 넘쳐 오히려 딱하고 안쓰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아무리 가혹한 실패를 겪어도 그의 용기와 고귀한 뜻은 조금도 꺾이지 않는다.

돈 키호테는 자신의 과오를 적당히 합리화해 잊어버리고 항상 새로운 모험에 도전하는 낙천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항상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며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와해시키는 돈 키호테는 정말이지 '사랑스럽게 미쳤다'고 표현하는 외에는 적당한 말이 없다.

저자 세르반테스는 '돈 키호테'의 창작 서문에서 집필 이유를 유행하는 기사도 소설을 비꼬기 위함이라고 하였으나,우리에게 현실과 문학을 막론하고 스페인을 대표하는 두 기사를 꼽으라 한다면 엘 시드와 돈 키호테의 두 이름이 단연 앞설 것이다.

☞ 기출 제시문 (한국외대 2009학년도 수시 논술 제시문)

니콜라스씨가 처음으로 집어준 책은 '아마디스 데 가울라' 4권이었다.

신부(神父)가 말했다.

"이것은 이상하네요. 이 책이 스페인에서 출판된 최초의 기사소설이고,다른 책은 모두 이 책에서 연유했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런 악독한 이단을 최초로 언급한 책인 만큼 조금의 용서도 베풀 필요 없이 화형을 시켜야 할 것입니다."

이발사도 한마디 했다.

"아닙니다. 제가 듣기로는 이 책이 이런 유의 책들 중에서는 가장 잘 쓴 책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그 공적이 다른 어떤 책보다 월등한 만큼 용서해 줘야 합니다."

"옳은 지적입니다. 그럼 이 책은 당분간 살려주도록 합시다. 그 옆의 책을 보여주시죠."

"이건 '아마디스 데 가울라'의 적자(嫡子),'에스플란디스의 공훈'입니다."

"진실로 아비의 덕이 아들을 도울 수는 없는 법입니다. 가정부 아주머니,그 책을 받으시오. 창문을 열어 그것을 마당으로 내던지세요. 그것을 우리가 불쏘시개로 삼도록 하죠."

가정부는 기쁘게 그 말을 따랐다.

그 훌륭한 에스플란디스는 마당으로 던져져 무시무시한 불더미에 들어갈 차례를 기다리게 되었다.

신부가 이발사에게 재촉했다.

"자,계속 진행합시다."

"그 다음은 '그리스의 아마디스'라 말하는 책인데,제가 보기엔 이쪽에 있는 모든 책들이 아마디스 계통입니다."

"그럼 모두 마당으로 내던지세요. 핀티키네스트라 여왕,다리넬 목자,목가(牧歌),그 작가의 이해할 수 없는 글,이러한 것을 태워 없애며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면,차라리 날 낳아 준 아버지가 편력기사의 형상을 하고 다닌다고 하고 태워버리고 싶을 것입니다."

"저도 똑같은 생각입니다."

조카딸이 덧붙였다.

"저도 동의해요."

가정부도 덩달아서 부추겼다.

"그럼 그 책들을 가지고 마당으로 갑시다."

그들이 가정부에게 안겨준 책이 너무 많아 계단을 내려가기 힘들어지자,그녀는 책을 창문으로 내던졌다.

홍보람 S · 논술 선임연구원 nikehbr@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