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달러 발행 남발로 가치 급락…기축통화 지위 흔들
[Global Issue] 弱달러 시대, 달러화는 죽었다?
일본의 경제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 최신호(10월 12일자) 표지는 음산하기 짝이 없는 묘지 그림이 차지했다.

묘지엔 달러화 표시 '$'가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엔 '달러의 최종장'이라는 글씨가 큼지막하게 박혀 있었다.

달러화가 지금처럼 기축통화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심이 세계 곳곳에서 고개를 들고 있다.

달러 가치가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인도의 국제통화기금(IMF) 보유금 매입 소식이 국제 금 시세를 사상 최고치로 끌어올린 일은 대표적인 예다.

IMF는 인도중앙은행(RBI)에 지난달 200t의 금을 매각했다고 2일 발표했다.

금액으론 67억달러어치에 달한다.

인도는 이번 금 매입으로 보유 금을 796.8t으로 늘리며 미국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중국 등에 이은 세계 9위의 금 보유국이 됐다.

외환보유액에서 금이 차지한 비중도 6%로 뛰었다.

이 소식이 전해진 다음날 뉴욕상품거래소(NYMEX)에서 12월 인도물 금값은 온스당 30.9달러(2.9%) 오른 1084.9달러에 마감했다.

지난달 13일(1064.2달러) 이후 최고가다.

시장에선 인도가 달러화 가치 하락을 우려,보유외환 다변화 차원에서 금을 사들인 것 아니냐는 분석이 주류였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인도의 금 매입은 아시아 국가들이 달러를 버리고 금을 사고 있다는 새로운 추세를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프라납 무케르지 인도 재무장관은 이날 뉴델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금 구매가 달러 선호도 저하나 금 선호도 상승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며 진화에 나섰다.

인도중앙은행도 "금 구매는 중앙은행 외환관리의 일환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인터넷 검색엔진 구글에선 검색어로 '달러 붕괴(dollar collapse)'와 '금 매입(buy gold)'이 입력된 건수가 최근 금융위기 발생 이전보다 각각 두 배 이상 늘었다.

인터넷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08년 1월 현재 두 검색어의 구글 검색 쿼리(질의 횟수)를 100으로 놓고 검색 횟수를 지수화했을 때 '달러 붕괴'는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한 지난해 10월 330까지 치솟다가 올 봄 예전 수준으로 돌아갔지만 최근 약달러 우려에 다시 검색 횟수가 한때 300을 넘는 등 크게 늘어났다.

현재는 20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금 매입' 검색 건수도 리먼 파산 이후 진정되는 모습을 보이다 9월부터 빠르게 증가해 지난해 1월의 두 배인 200선을 보이고 있다.

달러가 전 세계 무역과 금융의 기본 화폐, 기축통화의 자리에 오른 지는 올해로 56년에 불과하다.

인류가 무역을 시작한 이래 기본적인 교환수단은 금, 은 등 귀금속이었다.

화폐는 언제나 귀금속 그 자체였거나 아니면 '귀금속과 언제든지 바꿀 수 있는' 증서였다.

한낱 헝겊조각이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건 역사상 이례적인 일이다.

그런데 이 짧은 기간 동안 달러는 언제나 골칫거리였다.

미국 정부가 끓임없이 달러화를 찍어냈기 때문이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달러화의 기축통화 지위를 인정한 브레턴우즈 체제가 출범한 이후 기축통화로서 달러 지위를 위협하는 사태는 미국의 재정적자와 무역적자 누적이라는 구조적인 원인이 공통적으로 있었다.

지금도 달러화 가치에 대한 의심이 커지는 건 미국의 달러화 증발 때문이다.

지난 수년간 지나치게 달러가 풀린 게 금융위기의 근본 원인이란 지적이 많은 데다 지난해 금융위기가 발생한 이후 미국 정부는 금융사 회생을 위해 지금까지 1조달러를 쏟아부은 데 이어 경기부양을 위해 7800억달러를 직접 투입하는 결정을 내렸다.

오죽하면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 의장의 별명이 헬리콥터에서 달러화를 뿌린다는 의미의 '헬리콥터 벤'이 되었을 정도다.

지난 G20회의에서 기축통화 논의가 나온 건 지난 수년간 지나치게 달러가 풀린 게 금융위기의 근본원인이란 지적이 많은 데다 더이상 미국이 달러화 남발을 감당해 낼 수 없을 거라는 불안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경제학자들은 달러화가 기축 통화로서 지위를 조만간 상실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 단지 기우에 불과할 뿐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최근 달러화 가치 하락은 위기의 결과가 아니라 지난 3월 정점에 달했던 글로벌 대공황에 대한 공포가 가셨기 때문이란 게 그들의 첫 번째 근거다.

달러화 가치는 지난해 7월부터 올 3월까지 20% 가까이 올랐다.

그리고 그 이후엔 오른 것 이상으로 떨어졌다.

금가격을 인플레이션 위험을 반영하는 지표로 보기엔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

금가격이 최고조에 달했던 1980년 1월은 바로 인플레이션이 꺾이기 바로 직전이었다.

달러를 대체할 기축통화가 당분간 나타나지 않을 거라는 점도 중요하다.

중국이 저우샤오촨 인민은행장이 지난 3월 "특정 국가의 통화가 기축통화 역할을 하면 그 국가의 국내 통화 정책상의 필요와 다른 나라의 요구가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고 공개 발언을 하는 등 달러화를 공격하고 있지만 말이다.

기축통화가 되기 위해서는 해당 통화가 언제나 무역이나 금융 거래에 쓰일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유동성이 존재해야 한다.

발행국을 포함해 세계 어디서나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또 다양한 금융 상품이 존재해 자금을 안정적으로 저장할 수 있어야 한다.

중국 위안화는 아직도 외환거래가 자유화 되지 않고 있다.

달러를 비롯한 다양한 통화에 가중치를 부여해 만든 복수통화바스켓을 기준으로 환율을 중앙은행이 조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직도 관치 위주인 중국 금융시스템도 문제다.

금융자유화가 되어있지 않고 금융산업의 발달도 미국, 유럽, 일본에 비해 뒤처진 실정에서 달러의 경쟁자가 되려면 아직도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만 한다.

전문가들은 약 30년은 족히 걸릴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유로화도 마찬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유로존 국가들은 높은 재정 적자와 부채에 허덕이고 있다.

또 금융 시장이 발달되어 있긴 하지만 미국 수준만큼은 아니다.

따라서 유로가 국제 결제 통화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커지겠지만 달러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은 되지 못한다.

최근의 달러화 약세는 미국의 정책적인 의도와 부합한다.

재정적자와 무역적자의 쌍둥이 적자를 해결하고, 심각한 불황에서 탈출하기 위해 미국이 수출을 크게 늘리고 싶어한다는 데 많은 전문가들은 동의하고 있다.

프레드 버그서텐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장은 포린어페어스 11월호에서 가계와 기업 모두 이전의 막대한 부채를 줄이고 있는 미국이 채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수출 지향적 회복이라고 지적했다.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인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와 중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의 무역 수지 흑자가 결합된 전세계적인 무역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해서도 달러화 약세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문제는 남는다.

달러 약세가 장기적으로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위협할 뿐더러, 국제적인 불안정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외 국가들이 보유하고 있는 달러화의 4분의 3은 모두 1990년대 후반 이후 축적된 것이었다.

외환위기를 경험한 아시아 국가들이 경쟁적으로 외환 보유액 확대에 매진한 데다 미국의 저축률 하락과 소비 붐이 무역적자를 확대해 달러 유출을 야기해서다.

최근 약달러를 피해 아시아 국가로 유입되고 있는 자금은 이들 국가에 또 다른 거품을 일으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달러화 가치에 불안해하는 막대한 자금으로 각국의 환율도 요동치고 있다.

결국 장기적인 국제 무역, 금융 질서의 안정을 위해서는 달러화 문제를 해결해야하는 셈이다.

조귀동 한국경제신문 기자 claymo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