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구성원간의 신뢰가 경제 발전을 이끈다”
번영하는 국가는 왜 창창히 뻗어나가고,못 사는 국가들은 도대체 왜 제대로 살지 못하는가?
비록 같은 지구에 발을 디디고 있다 하더라도 어느 국가에 속해 살아가느냐에 따라 세상살이 모양새가 현격하게 다른 만큼 이 질문은 누구나 한번쯤 품어보는 의문이다.
가족의 식수를 마련하려고 하루에도 수십㎞를 걸어 흙탕물을 퍼오는 사람들도 있지만,손가락만 까딱하면 깨끗한 수자원을 문자 그대로 '물 쓰듯이' 펑펑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지역에서는 식량이 없어 주민의 거의 모두가 아사(餓死) 지경에 다다르지만 다른 곳에서는 오히려 비만 인구가 지나쳐 비만세라도 신설하자는 고민을 한다.
'국가마다의 번영 정도가 왜 이처럼 천양지차인가.'
그 의문을 풀기 위해서 여러 사람이 각자의 이론을 한보따리씩 풀어놓는데,특히 그 중에서 현재 많은 학자가 지지하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라는 해명(解明)은 무척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은 한 사회가 가지고 있는 사회 그 자체의 경쟁력이다.
애덤 스미스를 위시한 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은 각 개인이 사적 합리성을 최대한 추구하는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손의 조정에 의해서 사회가 발전한다고 상정하였다.
그래서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개인이 사적 합리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제도가 잘 구비되고,각 행위주체들이 합리적 판단에 따라 자유로이 행동하면 충분하다고 설명하였다.
하지만 사회적 자본의 차이를 논하는 사람들은 사회적 자본이 부족하다면 합리적 개인의 활동만으로는 사회의 번영을 구가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한 사회가 발전하려면 물론 사회 제도가 잘 정비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단순히 제도만 잘 갖추었다고 해서 사회가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현재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이 민주주의 정치체제와 자본주의 경제제도를 표방하는 엇비슷한 국가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는데 국가적 현실은 저마다 제각각이다.
여기에 관해 사회과학자들은 사회적 자본의 차이를 주목하라고 말한다.
이들이 설명하는 사회는 개개인의 단순한 총합이 아니라,그보다 더 큰 의미가 있는 실질적 무엇이다.
설령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들이 동일하고 사회의 제도가 같다고 할지라도,사회적 자본,즉 다시 옮기자면 한 사회가 갖춘 미덕에 따라서 번영의 정도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법과 제도는 정치 안정과 경제 발전을 위한 필요조건이기는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민주주의 발전과 경제적 번영을 위해서는 제도가 뒷받침하는 개인적 차원의 합리성도 필요하지만 사회적 자본 역시 중요한 요소다.
그러므로 아무리 국가 간에 제도적 유사성이 있다 하더라도 사회적 자본의 수준에 따라서 정치경제적 현실은 다양하게 발현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적 자본을 사회발전의 주요 변수로 간주한 학자로는 로버트 푸트남(Robert Putnam)과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가 대표적인데,푸트남은 민주주의 확립과 정치적 효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사회자본의 형성이 중요하다는 주장하였고,오늘 함께 살펴볼 명저 '트러스트(Trust)'의 저자 후쿠야마는 한 국가가 갖추고 있는 사회적 자본이 그 나라의 경제적 번영을 결정한다고 단언하였다.
후쿠야마는 1995년 발간한 그의 대표작 '트러스트(TRUST:The Social Virtues and the Creation of Prosperity)'를 통해,"경제적 현실을 검토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은 한 국가의 복지와 경쟁력은 하나의 지배적인 문화적 특성,즉 한 사회가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신뢰의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책의 부제가 말하는 그대로 사회적 덕목(social virtues)이 그 사회의 경제적 번영을 창출한다는 설명이다.
높은 대중적 인기를 자랑하는 사상가로 손꼽히는 후쿠야마는 1992년 출간된 '역사의 종언과 최후의 인간: 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에서,민주주의 제도의 역사적 승리를 선포하여 세간의 이목을 끈 바가 있는데,민주주의가 전 세계로 확산되더라도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국가간의 괴리를 설명하기 위해 이후 '트러스트'의 집필을 통해 제도 이상으로 중요한 사회적 자본의 가치를 설파하였다.
후쿠야마는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개인이 반드시 경제적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오히려 기존의 도덕공동체의 미덕으로 효과적으로 함께 일할 수 있었던 개인들의 집단이 이를 이룰 수 있었다"고 정리하면서 여러 사회자본 중에서도 특히 사회 구성원간의 신뢰를 경제 발전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라고 보았다.
후쿠야마는 '트러스트' 안에서 그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전개하고 있다.
"사회적 자본은 한 사회,또는 그 특정 부분에 신뢰가 정착되었을 때 생긴다.
사회적 자본은 그것이 통상 종교나 전통,역사적 관습 등 문화적 기제를 통해 창조되고 전수된다는 점에서 다른 형태의 인적 자본과는 차이가 있다.
계약과 이기심이 결속의 중요한 원천이 될 수는 있지만,조직은 윤리적 가치를 공유하는 공동체에 기초할 때 가장 효율적으로 된다.
이러한 공동체는 사전에 합의된 도덕률이 그 집단의 구성원에게 상호 신뢰의 기초를 마련해 주기 때문에 더 이상의 계약과 구성원의 관계에 대한 법적인 규제가 필요하지 않다.
이와 같은 도덕 공동체를 구성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자본은 다른 형태의 인적 자본의 경우처럼 투자에 대한 합리적인 결정을 통해서 획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자본을 획득하려면 공동체의 도덕 규범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고,같은 맥락에서 충성심 · 정직 · 책임감 따위의 덕목을 획득하는 것이 필요하다.
더욱이 집단이 먼저 공동규범 전체를 수용하여야만 그 구성원 사이에 신뢰가 일반화된다.
달리 말하자면 사회적 자본은 개인 각자가 자기 나름대로 행동해서는 획득될 수 없다.
사회적 자본은 개인적 덕목이 아니라 사회적 덕목에 기초하고 있다."
즉,타인을 믿을 수 있는 상호호혜적인 사회가 형성되어야 경제적 번영을 일굴 수 있다는 요지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를 믿는 고신뢰 문화의 사회이면 경제적으로 번영하고,구성원들이 상대를 불신하는 저신뢰 문화의 사회는 경제적 번영이 힘들다는 것이 후쿠야마가 '트러스트'를 통해서 전달하고자 한 내용이다.
후쿠야마는 국가의 사회적 신뢰도 차이에 주목하여 '신뢰'라는 사회의 문화가 경제적 번영에 미치는 영향력을 여러 사례를 통해 분석하였다.
특히 그가 '트러스트'에서 강조하는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신뢰는 혈연 등의 개인적 연고(緣故)를 초월하여 사회적 범위에서 통용될 수 있는 '공적인 신뢰'임에 주목하여야 한다.
사적인 연고를 뛰어넘는 공적인 신뢰가 형성되어 있을 때 사람들은 타인을 신뢰하면서 활발한 경제행위를 할 수 있고,이를 통해 경제 발전에 유리한 여건을 확보할 수 있다.
사적인 연대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폐쇄적 배타주의는 그 외의 무관한 다른 사람들과는 신뢰관계를 형성하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후쿠야마는 사회적 차원의 신뢰가 형성된 독일 미국 일본과 같은 고신뢰 문화의 국가에서는 연고주의가 약하고 공적인 신뢰가 높은 반면 이탈리아 인도 중국 한국과 같은 저신뢰 문화권에서는 가족이나 지인과는 잘 지내지만 오히려 공적인 신뢰도는 낮다는 예증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신뢰를 근간으로 한 자발적 사회성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살린다는 후쿠야마의 시선은 참신하면서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물론 사회과학의 이론은 언제나 눈 앞에 펼쳐진 광막한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하나의 이론을 잣대로 세상을 모두 재단할 수는 없다.
또한 신뢰 유무에 따른 일도양단의 논리로 사회의 경제적 번영을 설명하는 후쿠야마의 주장이 과연 사회과학적 엄밀함과 진정성을 갖추었는가 하는 비판도 있다.
게다가 '트러스트'의 논지와 상반되는 현실의 예도 자주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비판은 더욱 힘을 얻고 있다.
후쿠야마가 혈연적 폐쇄주의에 갇힌 '저신뢰 사회'라고 지적한 중국은 오히려 그 '가족주의'가 경제 발전에 긍정적 작용을 하였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로 높은 인기를 누리는 후쿠야마를 그저 학술 흥행사라고 공격하는 사람들도 많다.
사실 동아시아의 비약적 경제성장을 풀이하는 이론으로서 각광받던 '유교 자본주의'가 1997년 발발한 금융위기 이후 추풍낙엽의 신세가 되어 은근슬쩍 자취를 감추고 만 선례를 떠올린다면 문화적 요소로 사회경제적 현실을 재단하는 명쾌하고 손쉬운 설명이 항상 정답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유념하여야 한다.
하지만 고전 경제학에서 간과하고 있었던 사회적 자본의 가치를 조명한 '트러스트'의 의의는 후쿠야마의 지지자이건 비판자이건 인정해야 할 것이다.
'트러스트'가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처럼 도덕,협동심,사회관습처럼 고전 경제학에서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요소들이 경제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된다.
☞ 기출 제시문 (고려대 2008학년도 정시 논술 : 고려대는 Russell Hardin의 'Trust and Trustworthiness'와 Francis Fukuyama의 'Trust'에서 관련 내용들을 부분 발췌하여 출제의도에 맞도록 편집한 제시문을 활용하였다)
(…上略…) 대체로 불신이 만연할수록 사회적 거래 비용은 증대하고 공동의 이익을 실현할 기회는 줄어든다.
불신 사회에서 사람들이 협동하려는 시도는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
따라서 불신 사회에서 사람들은 협동하지 않는 반면 적자생존의 경쟁과 제로섬적인 갈등에 몰입하게 된다.
사람들은 무익한 협동 대신 기만과 협잡,배신 등을 통해 이익을 추구한다.
다른 모두가 나를 속이려 한다면 나도 다른 모두를 불신할 수밖에 없다.
가족의 울타리 너머로 확산되는 신뢰의 연결망이 존재하지 않으며 감시와 제재와 처벌의 위협이 사람들을 비로소 정직하게 행동하도록 한다는 것이 불신 사회의 공통된 특징이다.
그처럼 비극적인 균형 상태는 외부의 개입이 없는 한 그대로 유지된다.
불신 사회에서 타인을 신뢰하는 사람은 불행하고 그래서 삶은 매우 암울하고 위태롭게 지탱된다.
팽배한 불신 상태에서 벗어나는 일은 개인만의 결단이 아닌 여러 사람들의 공동 행동을 통해 가능하다.
홍보람 S · 논술 선임연구원 nikehbr@nonsul.com
번영하는 국가는 왜 창창히 뻗어나가고,못 사는 국가들은 도대체 왜 제대로 살지 못하는가?
비록 같은 지구에 발을 디디고 있다 하더라도 어느 국가에 속해 살아가느냐에 따라 세상살이 모양새가 현격하게 다른 만큼 이 질문은 누구나 한번쯤 품어보는 의문이다.
가족의 식수를 마련하려고 하루에도 수십㎞를 걸어 흙탕물을 퍼오는 사람들도 있지만,손가락만 까딱하면 깨끗한 수자원을 문자 그대로 '물 쓰듯이' 펑펑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지역에서는 식량이 없어 주민의 거의 모두가 아사(餓死) 지경에 다다르지만 다른 곳에서는 오히려 비만 인구가 지나쳐 비만세라도 신설하자는 고민을 한다.
'국가마다의 번영 정도가 왜 이처럼 천양지차인가.'
그 의문을 풀기 위해서 여러 사람이 각자의 이론을 한보따리씩 풀어놓는데,특히 그 중에서 현재 많은 학자가 지지하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라는 해명(解明)은 무척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은 한 사회가 가지고 있는 사회 그 자체의 경쟁력이다.
애덤 스미스를 위시한 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은 각 개인이 사적 합리성을 최대한 추구하는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손의 조정에 의해서 사회가 발전한다고 상정하였다.
그래서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개인이 사적 합리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제도가 잘 구비되고,각 행위주체들이 합리적 판단에 따라 자유로이 행동하면 충분하다고 설명하였다.
하지만 사회적 자본의 차이를 논하는 사람들은 사회적 자본이 부족하다면 합리적 개인의 활동만으로는 사회의 번영을 구가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한 사회가 발전하려면 물론 사회 제도가 잘 정비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단순히 제도만 잘 갖추었다고 해서 사회가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현재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이 민주주의 정치체제와 자본주의 경제제도를 표방하는 엇비슷한 국가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는데 국가적 현실은 저마다 제각각이다.
여기에 관해 사회과학자들은 사회적 자본의 차이를 주목하라고 말한다.
이들이 설명하는 사회는 개개인의 단순한 총합이 아니라,그보다 더 큰 의미가 있는 실질적 무엇이다.
설령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들이 동일하고 사회의 제도가 같다고 할지라도,사회적 자본,즉 다시 옮기자면 한 사회가 갖춘 미덕에 따라서 번영의 정도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법과 제도는 정치 안정과 경제 발전을 위한 필요조건이기는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민주주의 발전과 경제적 번영을 위해서는 제도가 뒷받침하는 개인적 차원의 합리성도 필요하지만 사회적 자본 역시 중요한 요소다.
그러므로 아무리 국가 간에 제도적 유사성이 있다 하더라도 사회적 자본의 수준에 따라서 정치경제적 현실은 다양하게 발현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적 자본을 사회발전의 주요 변수로 간주한 학자로는 로버트 푸트남(Robert Putnam)과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가 대표적인데,푸트남은 민주주의 확립과 정치적 효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사회자본의 형성이 중요하다는 주장하였고,오늘 함께 살펴볼 명저 '트러스트(Trust)'의 저자 후쿠야마는 한 국가가 갖추고 있는 사회적 자본이 그 나라의 경제적 번영을 결정한다고 단언하였다.
후쿠야마는 1995년 발간한 그의 대표작 '트러스트(TRUST:The Social Virtues and the Creation of Prosperity)'를 통해,"경제적 현실을 검토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은 한 국가의 복지와 경쟁력은 하나의 지배적인 문화적 특성,즉 한 사회가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신뢰의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책의 부제가 말하는 그대로 사회적 덕목(social virtues)이 그 사회의 경제적 번영을 창출한다는 설명이다.
높은 대중적 인기를 자랑하는 사상가로 손꼽히는 후쿠야마는 1992년 출간된 '역사의 종언과 최후의 인간: 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에서,민주주의 제도의 역사적 승리를 선포하여 세간의 이목을 끈 바가 있는데,민주주의가 전 세계로 확산되더라도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국가간의 괴리를 설명하기 위해 이후 '트러스트'의 집필을 통해 제도 이상으로 중요한 사회적 자본의 가치를 설파하였다.
후쿠야마는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개인이 반드시 경제적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오히려 기존의 도덕공동체의 미덕으로 효과적으로 함께 일할 수 있었던 개인들의 집단이 이를 이룰 수 있었다"고 정리하면서 여러 사회자본 중에서도 특히 사회 구성원간의 신뢰를 경제 발전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라고 보았다.
후쿠야마는 '트러스트' 안에서 그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전개하고 있다.
"사회적 자본은 한 사회,또는 그 특정 부분에 신뢰가 정착되었을 때 생긴다.
사회적 자본은 그것이 통상 종교나 전통,역사적 관습 등 문화적 기제를 통해 창조되고 전수된다는 점에서 다른 형태의 인적 자본과는 차이가 있다.
계약과 이기심이 결속의 중요한 원천이 될 수는 있지만,조직은 윤리적 가치를 공유하는 공동체에 기초할 때 가장 효율적으로 된다.
이러한 공동체는 사전에 합의된 도덕률이 그 집단의 구성원에게 상호 신뢰의 기초를 마련해 주기 때문에 더 이상의 계약과 구성원의 관계에 대한 법적인 규제가 필요하지 않다.
이와 같은 도덕 공동체를 구성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자본은 다른 형태의 인적 자본의 경우처럼 투자에 대한 합리적인 결정을 통해서 획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자본을 획득하려면 공동체의 도덕 규범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고,같은 맥락에서 충성심 · 정직 · 책임감 따위의 덕목을 획득하는 것이 필요하다.
더욱이 집단이 먼저 공동규범 전체를 수용하여야만 그 구성원 사이에 신뢰가 일반화된다.
달리 말하자면 사회적 자본은 개인 각자가 자기 나름대로 행동해서는 획득될 수 없다.
사회적 자본은 개인적 덕목이 아니라 사회적 덕목에 기초하고 있다."
즉,타인을 믿을 수 있는 상호호혜적인 사회가 형성되어야 경제적 번영을 일굴 수 있다는 요지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를 믿는 고신뢰 문화의 사회이면 경제적으로 번영하고,구성원들이 상대를 불신하는 저신뢰 문화의 사회는 경제적 번영이 힘들다는 것이 후쿠야마가 '트러스트'를 통해서 전달하고자 한 내용이다.
후쿠야마는 국가의 사회적 신뢰도 차이에 주목하여 '신뢰'라는 사회의 문화가 경제적 번영에 미치는 영향력을 여러 사례를 통해 분석하였다.
특히 그가 '트러스트'에서 강조하는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신뢰는 혈연 등의 개인적 연고(緣故)를 초월하여 사회적 범위에서 통용될 수 있는 '공적인 신뢰'임에 주목하여야 한다.
사적인 연고를 뛰어넘는 공적인 신뢰가 형성되어 있을 때 사람들은 타인을 신뢰하면서 활발한 경제행위를 할 수 있고,이를 통해 경제 발전에 유리한 여건을 확보할 수 있다.
사적인 연대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폐쇄적 배타주의는 그 외의 무관한 다른 사람들과는 신뢰관계를 형성하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후쿠야마는 사회적 차원의 신뢰가 형성된 독일 미국 일본과 같은 고신뢰 문화의 국가에서는 연고주의가 약하고 공적인 신뢰가 높은 반면 이탈리아 인도 중국 한국과 같은 저신뢰 문화권에서는 가족이나 지인과는 잘 지내지만 오히려 공적인 신뢰도는 낮다는 예증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신뢰를 근간으로 한 자발적 사회성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살린다는 후쿠야마의 시선은 참신하면서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물론 사회과학의 이론은 언제나 눈 앞에 펼쳐진 광막한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하나의 이론을 잣대로 세상을 모두 재단할 수는 없다.
또한 신뢰 유무에 따른 일도양단의 논리로 사회의 경제적 번영을 설명하는 후쿠야마의 주장이 과연 사회과학적 엄밀함과 진정성을 갖추었는가 하는 비판도 있다.
게다가 '트러스트'의 논지와 상반되는 현실의 예도 자주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비판은 더욱 힘을 얻고 있다.
후쿠야마가 혈연적 폐쇄주의에 갇힌 '저신뢰 사회'라고 지적한 중국은 오히려 그 '가족주의'가 경제 발전에 긍정적 작용을 하였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로 높은 인기를 누리는 후쿠야마를 그저 학술 흥행사라고 공격하는 사람들도 많다.
사실 동아시아의 비약적 경제성장을 풀이하는 이론으로서 각광받던 '유교 자본주의'가 1997년 발발한 금융위기 이후 추풍낙엽의 신세가 되어 은근슬쩍 자취를 감추고 만 선례를 떠올린다면 문화적 요소로 사회경제적 현실을 재단하는 명쾌하고 손쉬운 설명이 항상 정답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유념하여야 한다.
하지만 고전 경제학에서 간과하고 있었던 사회적 자본의 가치를 조명한 '트러스트'의 의의는 후쿠야마의 지지자이건 비판자이건 인정해야 할 것이다.
'트러스트'가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처럼 도덕,협동심,사회관습처럼 고전 경제학에서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요소들이 경제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된다.
☞ 기출 제시문 (고려대 2008학년도 정시 논술 : 고려대는 Russell Hardin의 'Trust and Trustworthiness'와 Francis Fukuyama의 'Trust'에서 관련 내용들을 부분 발췌하여 출제의도에 맞도록 편집한 제시문을 활용하였다)
(…上略…) 대체로 불신이 만연할수록 사회적 거래 비용은 증대하고 공동의 이익을 실현할 기회는 줄어든다.
불신 사회에서 사람들이 협동하려는 시도는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
따라서 불신 사회에서 사람들은 협동하지 않는 반면 적자생존의 경쟁과 제로섬적인 갈등에 몰입하게 된다.
사람들은 무익한 협동 대신 기만과 협잡,배신 등을 통해 이익을 추구한다.
다른 모두가 나를 속이려 한다면 나도 다른 모두를 불신할 수밖에 없다.
가족의 울타리 너머로 확산되는 신뢰의 연결망이 존재하지 않으며 감시와 제재와 처벌의 위협이 사람들을 비로소 정직하게 행동하도록 한다는 것이 불신 사회의 공통된 특징이다.
그처럼 비극적인 균형 상태는 외부의 개입이 없는 한 그대로 유지된다.
불신 사회에서 타인을 신뢰하는 사람은 불행하고 그래서 삶은 매우 암울하고 위태롭게 지탱된다.
팽배한 불신 상태에서 벗어나는 일은 개인만의 결단이 아닌 여러 사람들의 공동 행동을 통해 가능하다.
홍보람 S · 논술 선임연구원 nikehbr@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