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현 후텐마 기지 이전 둘러싸고 신경전 거듭
[Global Issue] 일본, 이제 미국에 No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일본의 민주당 정권 출범 이후 미 · 일 동맹에 파열음이 터져나오고 있다.

하토야마 정부는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을 거듭 역설하면서 이미 합의된 주일 미군 재편 계획에 대해 재검토를 주장하고 있어 미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

미 워싱턴포스트는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북한 문제에 정신 없는 미 행정부에 아시아의 맹방인 일본이 새로운 '골칫거리(troubles)'로 등장했다"고 보도했다.

현재 미국과 일본 간 최대 갈등 현안은 바로 오키나와현 후텐마 미군 비행장 (사진)이전이다.

당초 양국은 2006년 후텐마 기지를 2014년까지 오키나와 내 나고시에 있는 슈워브 미군 기지로 옮기기로 합의했었다.

하지만 지난 8월 말 중의원 총선 당시 주요 공약으로 후텐마 기지의 오키나와현 밖 이전을 내걸었던 민주당이 새로운 집권 여당이 되면서 양국이 이 문제에 대해 고민에 빠지게 됐다.

1945년 건설된 후텐마 기지는 오키나와현 나하시 중심부에 위치해 극심한 소음과 미군과 관련된 각종 범죄로 주민들의 이전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특히 2004년 8월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에 추락하기도 했다.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은 지난 20~21일 방일 중 오카다 가쓰야 외상,기타자와 도시미 방위상과 회담한 후 "이전이 안 되면 오키나와 주둔 미군 해병대의 괌 이전도 하지 않겠다"며 "오바마 대통령 방일 때까지 결론을 내달라"고 으름장을 놨다.

또 오키나와현 가데나 공군기지로의 통합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일본 정부가 새로운 후보지를 제시해도 미국이 이를 수용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산케이신문은 "정부가 새 후보지를 결정해도 미국과 오키나와현이 합의에 이를 가능성은 낮다"며 "결국 슈워브 기지로 이전하는 안으로 협의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일본 국내 사정으로 봐도 조기에 결론이 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연정 파트너인 사민당은 여전히 후텐마 비행장 해외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지난 22일 "미국 요구가 (후텐마 문제를) 오바마 대통령이 올 때까지 반드시 해결하라는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며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지원이 훨씬 중요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또 "기지 이전 문제는 미 · 일 합의와 총선 공약,오키나와 주민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내가 최종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를 제외하고도 최근 미국과 일본 간에 오간 신경전은 변화한 미 · 일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첫 사례는 제프 모렐 미 국방부 대변인과 후지사케 이치로 주미 일본대사 간 언쟁이다.

지난달 9일 모렐 대변인이 인도양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미군 함대에 대한 일본 해상자위대의 급유 지원이 계속돼야 한다고 촉구하자 이튿날 후지사케 대사는 "그 결정은 일본의 몫"이라고 반박했다.

후지사케 대사는 "미 · 일 관계는 그런 문제를 대변인을 통해서 얘기할 정도의 관계는 아니다"고 말해 국방부 대변인이 일본의 주요 정책 변경에 관한 사안을 거론한 데 대해 불쾌감을 표시했다.

하토야마 정부는 내년 1월 이후 인도양 급유 지원 활동을 중단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두 번째는 지난달 14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다니오카 구니코 일본 참의원과 케빈 마허 국무부 일본 과장 간에 후텐마 비행장 이전을 둘러싸고 벌어진 격돌이다.

마허 과장이 "후텐마 비행장 협의는 일단락된 문제"라고 말하자 다니오카 의원은 "협상 과정이 투명하지 못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마허 과장이 다시 "일본의 민주당 고위 인사가 협정은 반드시 이행돼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고 강조하자 다니오카 의원은 곧바로 "내가 그 사람보다 더 현명하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세 번째는 일본 정부가 주일미군에 대한 일본의 수사권과 재판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미 · 일지위협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이다.

지난 26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주일 미군 범죄의 경우 미군 당국이 우선 범인을 구속 수사하고 살인 등 중범죄에 한해서만 인도하는 현 미 · 일지위협정의 규정을 확대,일본 사법 당국의 요청이 있을 경우 모든 범죄에 대해 범인을 인도할 수 있도록 미 측에 요청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은 지금까지 일본이 수사 내용을 녹음하거나 녹화하지 않는 등 범인 조사 과정이 불투명하다는 점을 들어 지위협정 개정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미국은 일본의 수사 방법에 인권 침해 우려가 있다고 본다"며 "미 · 일지위협정 개정을 위해서는 수사과정을 투명하게 하는 노력이 필요하며 하토야마 정부는 그런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다음 달 일본을 방문하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이 같은 의사를 전할 계획이지만 후텐마 미군 비행장 이전 문제 갈등으로 미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본 정부는 미군에 재판권이 있는 공무 중 범죄의 경우도 사건이 기지 밖에서 발생했을 경우 일본 측에 재판권을 넘기도록 요청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이 통신은 덧붙였다.

외교 전문가들은 종전과는 달리 일본이 무조건적으로 미국에 동의하진 않는 새로운 시도에 크게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이 서로가 갖고 있는 막대한 외교 · 군사적 영향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쉽게 동맹 관계에 금이 가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켄트 칼더 존스홉킨스대 라이샤워 동아시아연구소장은 "일본이 미국 외교관에게 공개적으로 반박하는 것을 30년 동안 본 적이 없다"며 "하지만 이제는 새로운 상황이 도래했다"고 말했다.

시게무라 도시미쓰 와세다대 교수는 "일본에서는 미국 관계가 악화하면 정권 유지가 어려워지므로 한국처럼 결국엔 타협해 미 · 일 관계가 복원될 것"으로 전망했다.

하토야마 총리가 이달 말 열린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에서 미국을 배제할 생각이 없다"며 "동아시아 협력도 미 · 일 동맹의 기축관계 속에서 추진하겠다"고 강조한 점도 미 · 일 동맹관계가 깨지진 않을 것이란 전망에 힘을 싣고 있다.

현지 외교가에서는 최근 불거져 나온 미 · 일 갈등 분위기를 조기에 봉합하려는 시도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미아 한국경제신문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