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격차·정치체제 차이 등 첩첩산중… 한·중·일 공동체 ‘헛 구호’
[Focus] ‘하나의 아시아’ 실현 가능성은 제로(0)?
한 · 중 · 일 3국을 포함한 아시아 전체의 통합을 꿈꾸는 '원 아시아(One Asia)' 구상이 벌써부터 삐걱대고 있다.

지난 10일 베이징에서 열린 한 · 중 · 일 3국 정상회담에서 '동아시아 공동체'란 용어가 처음 등장하면서 유럽연합(EU)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맞먹는 동아시아 거대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지만 정작 실현 가능성은 '제로(0)'라는 회의론이 크다.

동방조보 등 중국 언론들은 최근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에는 4대 난제가 존재한다"며 △경제 격차 △정치체제 차이 △과거사 및 영토 문제 △상반된 '원 아시아' 구상 등을 걸림돌로 지적했다.

한 · 중 · 일 각국의 주도권 싸움과 미국의 견제 등 풀어야 할 숙제가 첩첩이 쌓여 있어 '원 아시아'는 과거 여러 차례 좌절됐던 공동체 구상과 마찬가지로 구호에 그치고 말 공산이 높다는 분석이다.

⊙ 하토야마 과거청산 달라진 게 없어

'원 아시아' 구상에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히는 건 일본의 과거사 청산 문제다.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는 "무라야마 담화(1995년 종전 50주년을 기념해 무라야마 도미이치 당시 총리가 일본의 침략전쟁과 식민지배를 공식 사과한 것)를 행동으로 옮기겠다"며 과거 자민당과 다른 역사 인식을 통해 한 · 중 · 일 동북아시아의 관계 개선에 나서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하지만 총리 당선 후 그의 행보가 이전 정권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지적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최신호(10월17일자)에서 "하토야마는 일왕에게 전범 히로히토 일왕을 대신해 사과하라고 요구한 적이 없으며 일본 의회에선 과거사 특별법 논의가 잠자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최근 한국과 중국을 잇따라 방문,이명박 대통령, 원자바오 총리와 함께 '미래 지향적인 관계'를 추구하기로 약속했지만 과거에도 이 같은 수사가 여러 차례 반복됐음에도 진전이 없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덧붙였다.

오바마 미 행정부에 '스마트 파워 외교정책'의 이론적 틀을 제공한 조지프 나이 하버드 케네디스쿨 석좌교수는 "일본은 한국과 중국에 과거 역사를 사과했다고 주장하나 3국 간 신뢰는 없다"고 말했다.

독일의 진정한 사과와 화해를 통해 EU라는 통합체가 성공적으로 탄생했듯 '원 아시아'가 가능하려면 일본이 먼저 동아시아 국가들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 끝나지 않은 영토분쟁

독도와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영유권 분쟁도 '원 아시아'를 가로막는 장벽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일본과 한국 외교부 웹사이트는 독도 또는 다케시마(독도의 일본 식 이름)를 둘러싼 한치 양보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며 "일본은 1905년 이 섬을 합병했다고 주장하고,한국은 512년부터 한국인이 이 섬에 살았다며 일본의 영유권 도전에 맞서고 있다"고 전했다.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영토 분쟁도 만만치 않다.

일본 해안순시선은 지난달 동중국해의 센카쿠열도 인근에서 조업하던 대만 어선을 불법 조업을 이유로 구금하는 등 일촉즉발의 상황이 거듭되고 있다.

아직 개발도상국에 머물러 있는 중국과 선진국인 일본,그 중간의 한국 간 경제력 격차가 너무 커 경제력이 비슷한 EU나 NAFTA와 같은 공동체를 만드는 게 힘들다는 우려도 나온다.

또 여전히 공산주의를 고집하는 중국과 나머지 국가들의 정치체제 차이와 '원 아시아'에 대한 상반된 이해관계 등이 장애물로 지적된다.

주도권 다툼 가능성도 동아시아 통합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인이다.

한국과 중국 등은 자칫 주도권을 일본에 뺏길 경우 과거 아시아를 식민지 수탈의 텃밭으로 삼았던 '대동아 공영권'의 재판이 되지 않을까 잔뜩 긴장하고 있다.

⊙ 미 견제도 걸림돌

미국의 견제도 '원 아시아' 논의를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최근 "커트 통 미 국무부 아시아 · 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담당 고위 관리가 지난 14일 열린 하원 외교위원회에서 아시아 · 태평양 지역의 경제 통합을 미국이 주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통 APEC 담당관은 "아시아 국가 간 협력 노력은 지지하지만 미국은 모든 조직에 참가할 생각은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은 한 · 중 · 일 정상이 밝힌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에 대한 경계감에서 비롯됐다고 신문은 해석했다.

미국은 동아시아 공동체의 대항마로 APEC을 아시아 지역의 대표 기구로 만드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사실상 아시아 지역을 리드해왔던 미국은 태평양 지역을 배제한 아시아 공동체 건설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미 국무부는 의회에 제출한 서면 답변을 통해 "(아시아의) 실효성 있는 지역경제기구가 되려면 태평양 측을 포함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며 "경제 통합에 건설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경제적으로 불리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오카다 가쓰야 일본 외상이 최근 "동아시아 공동체에 미국까지 포함할 수는 없다"고 밝히자 미국은 주미 일본대사관을 통해 일본 정부에 강한 불쾌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다음 달 11일 일본을 방문할 예정이어서 동아시아 정책을 둘러싼 양국 간 입장차가 어떻게 정리될지 주목된다.

김미희 한국경제신문 기자 icii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