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특별한 공적없는데…" 찜찜한 수상 구설수

"핵 폐기 노력등 지도력·비전 인정받아" 반론도

[Focus] 노벨평화상 받은 오바마 …노벨상이 이상해!
"그(오바마)는 후보로 오른 것을 몰랐다. 결코 로비를 하지 않았다."

지난 9일 스웨덴 노벨위원회가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발표한 뒤 백악관 측근들은 이렇게 밝혔다.

하지만 그의 수상 자격을 놓고 지구촌이 웅성거리고 있다.

미국 내에서는 또다시 여론이 양분되는 양상까지 빚어지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룩한 성과에 비해 수상이 너무 이르다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핵무기 폐기 등 그의 지도력과 비전이 인정받고 격려받은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독일 슈피겔지는 "취임 9개월째인 그가 상을 받는 것은 2~3㎞ 달린 마라토너에게 메달을 주는 것과 같다"고 꼬집었다.

오바마가 국제분쟁의 해결책을 찾고 대화와 타협의 국제환경을 조성하느라 노력은 하고 있으나 실적이 없어 아직은 화려한 연설과 외교적 노력에 불과하다는 점에서다.

노동 운동가였던 레흐 바웬사 전 폴란드 대통령도 "수상이 너무 이르다"고 평가했다.

미 주요 언론의 반응도 까칠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사설을 통해 노벨위원회의 결정을 비판했다.

"모두를 당황케 만든 이상한 노벨평화상"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대선 때 그를 지지했던 WP는 "오바마 대통령의 목표는 여전히 목표일 뿐"이어서 그가 아니라도 수상할 인물이 많았다고 전했다.

불법 대선 의혹을 제기하는 시위 과정에서 숨진 이란의 여대생 네다 하그아-솔탄과 같은 분명한 대안이 있었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소한 (임기) 3년 이상은 돼야 오바마 대통령이 그의 담대한 희망을 달성할 수 있을지 알 수 있다"고 보도했다.

미 보수진영의 공격은 더욱 신랄하다.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로 극우보수 논객인 러시 림보는 "탈레반,이란과 의견을 같이 할 일"이라고 깎아내렸다.

그는 "전 세계 엘리트층은 오바마에게 아프가니스탄에 병력을 증파하지 말고,이란의 핵 개발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적대적 조치를 취하지 않도록 촉구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존 볼턴 전 유엔 주재 미 대사는 "그(오바마)는 상을 거부하고 3~4년 뒤에나 다시 (시상을) 검토해 줄 것을 고려해 달라고 요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앞으로 핵 군축,아프간 전쟁,중동평화 문제 등 오바마가 해결해야 할 난제가 수두룩해 영광보다는 정치적 부채로 작용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슈피겔은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이 내민 화해의 손을 이란,탈레반,북한,러시아,이스라엘,팔레스타인 등 누구도 맞잡지 않는 상황에서 외교전략을 재고,수정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이럴 경우 주머니 속에 넣고 있던 다른 한쪽 손을 꺼내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반면 환영과 격려 역시 많다.

카터 전 미 대통령은 "그의 외교정책에 대한 노벨위원회의 강력한 지지 표명"이라고 수상을 환영했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은 "지도력과 비전에 대한 입증"이라고 축하를 보냈다.

지난해 대선 경쟁자였던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은 "축하한다"고 전했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도 "핵무기 폐기 노력을 평가받은 것"이라고 언급했다.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전임 미국 대통령들의 학살정책들에 대한 비판으로 받아들인다"면서도 "내 의견은 긍정적 일보"라고 밝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자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진화에 나섰다.

가이르 룬데슈타드 노벨위원회 사무총장은 12일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다른 어떤 후보보다도 알프레드 노벨이 남긴 유언에 따른 수상 기준을 충족했다"며 "노벨위는 오바마 대통령이 다자외교와 핵무기 군축 그리고 기후변화 등의 분야에서 국제사회의 분위기를 바꾸고 많은 기여를 했음을 확신한다"고 해명했다.

그는 이어 "노벨위 위원들은 노벨상 선정과 관련된 비난 여론에 신경 쓰지 않는다"며 "과거에도 노벨위가 내린 논쟁적인 결정들의 상당수가 결과적으로 가장 성공적인 결정이 됐다"고 주장했다.

또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 상당수가 아직 실행에 옮겨지지 못했음을 인정한 뒤 "이번 노벨상 수상이 정책을 집행하는 데 힘을 보탤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룬데슈타드 사무총장은 자신이 사무총장으로 재임한 19년 동안 달라이 라마,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 등 논쟁적인 수상자를 선정했던 데 비하면 이번 오바마 대통령의 수상은 '유별난' 결정이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진보적 민주당 인사에게 편향되게 상을 준다는 미국 보수층 일각의 비판에 대해선 "과거 노벨위원회가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과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대통령 등 보수 정치인들을 수상자로 선정할 때도 '정치적 선호'에 대해 해명한 적이 없었다"며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미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최근 '노벨위원회는 왜 오바마를 택했나'라는 기사에서 노벨위원회 위원 5명 중 3명이 미국에서라면 '강경 좌파'로 분류될 인물이라며 노벨위의 정치적 성향이 수상자 선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노벨위원회의 구성원 중 토르비외른 야그란드 위원장은 노르웨이 노동당 당수 출신이며,시셀 마리 뢴벡 위원과 아고트 발레 위원도 좌파 정치인이다.

노벨 평화상이 정치적 목적에 따라 수여된 사례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2002년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수상이다.

2000년대 들어 조지 부시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냥하기 시작한 노벨위원회는 당시 카터 전 대통령을 수상자로 선정한 배경을 발표하면서 미국이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에 나선 데 따라 '위협'이 커지고 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지적했다.

노벨위원회는 당시 "힘을 사용하는 데 따른 위협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카터는 국제법과 인권 존중,경제 개발을 토대로 국제적 협력과 중재를 통해 분쟁이 해결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공고히 했다"고 강조했다.

2005년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의 평화상 수상에도 '정치적 고려'가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IAEA는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를 찾아나선 데 대해 이의를 제기하며 불편한 관계를 맺어왔기 때문이다.

위원회는 대선 당시 부시 전 대통령을 끝까지 애먹였던 민주당 후보 앨 고어를 2007년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하기도 했다.

1989년 중국에서 민주화 시위를 무력 진압한 톈안먼(天安門) 사태가 터진 당시에도 노벨위원회는 중국과 대립하고 있는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에게 평화상을 안겨줬다.

노벨위원회는 1994년 야세르 아라파트 당시 PLO 의장과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당시 총리에게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출범을 가져온 오슬로 협정을 성사시킨 공로로 평화상을 공동 수여했다.

그러나 PLO가 과거 테러 공격을 일삼아 왔으며,중동 긴장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수상은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1973년 헨리 키신저 미 국무장관의 평화상 수상을 놓고도 뒷말이 무성했다.

그는 베트남전을 종결시켰다는 공로로 평화상을 받았지만,닉슨 행정부에서 전쟁 정책을 총괄했다는 점에서 "이것보다 더한 풍자거리는 없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한편 올해 노벨상 수상자 13명 중 미국인은 11명으로 85%를 차지했다.

노벨상 시상이 시작된 1901년 이후 지금까지 816명의 노벨상 수상자 중 309명이 미국인으로 미국인의 노벨상 점유율이 38%였다.

올해 노벨상 수상이 끝난 뒤 노벨상의 미국인 쏠림 현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까닭이다.

조귀동 한국경제신문 기자 claymo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