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영어 '글로비시' 비영어권에서 급속 확산

중국·스페인어 '뜨고' …프랑스·러시아어 '지고'
[Global Issue] 언어는 國力의 상징? …세계는 지금 언어 전쟁중
세계에서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이 15억명으로 추정되면서 영어는 확실히 현대의 '링구아 프랑카(공용어)'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영어 사용자 중 영어가 외국어인 사람이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보다 3배가량 많은 상황에서 '원어민 영어'보다는 알아듣기 쉬운 '제3자 실무형 영어'가 오히려 힘을 얻고 있다.

이에 따라 1500개 단어만을 조합해 단 · 복수와 관사를 무시하는 등 간단하고 쉬운 표현만 사용하는 '글로비시(글로벌+잉글리시)'가 비영어권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싱글리시'나 '스팽글리시'처럼 세계 각국의 현지 언어와 결합한 '방언'들도 다양해지고 있다.

여기에 인터넷 발달에 따른 각종 신조어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 중국어 열풍…프랑스어는 시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인 중국어는 최근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월가의 거물 짐 로저스가 자신의 딸에게 중국어를 가르치는 등 '필요에 의해' 중국어를 배우는 인구도 급증하는 추세다.

중국 정부는 세계 각국에 중국어를 전파하기 위해 2004년부터 현재까지 81개국 324개소에 공자학원을 설립했다.

프랑스의 '알리앙스 프랑세즈'가 120년간 1110개,영국의 '브리티시 카운슬'이 70년간 230개,독일의 '괴테 인스티튜트'가 50년간 128개 설립된 것을 능가하는 실적이다.

중국 정부는 공자학원을 2010년까지 500개소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스페인어도 정치학자 사무엘 헌팅턴이 "히스패닉계의 거대한 유입으로 미국 사회가 영어와 스페인어의 2개 언어로 나뉘고 있다"고 평했듯 급속한 신장세다.

특히 스페인어는 강한 문화정체성을 동반하며 스페인과 중남미 여러 국가,미국에서 강한 유대감과 결속력도 자랑하고 있다.

⊙ 쇠락하는 러시아어

반면 구소련이 무너지기 직전인 1990년만 해도 3억명이 사용했던 러시아어는 최근 급속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러시아어는 러시아의 경제 발전과 함께 옛 소련 국가 국민들에게 '러시안 드림'의 보증수표로 통했다.

옛 소련 붕괴 후에도 독립국가연합(CIS)을 중심으로 공용어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러시아 경제가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러시아어가 찬밥 신세가 됐다.

실업률이 8%대로 치솟으면서 CIS 출신 국민들의 러시아 행렬이 줄어든 탓이다.

러시아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옛 소련 국가들의 독립 움직임도 러시아어 쇠락에 불을 지폈다.

친서방 성향의 빅토르 유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우크라이나어를 배우는 것"이라며 정부 및 학교에서 우크라이나어를 공식어로 사용하라고 지침을 내렸다.

중앙아시아의 옛 소련 연방국이었던 타지키스탄도 최근 러시아와 거리를 두겠다며 모든 정부 문서를 타지크어로만 쓰겠다고 공언했다.

또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등 발틱 국가들은 자국어 습득을 시민권 획득의 의무 조항으로 달았다.

러시아와 분쟁 중인 그루지야는 TV 채널과 라디오의 러시아어 방송을 전면 금지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러시아어가 세계 공용어 10위권은 유지하겠지만 지위는 크게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알렉세이 보론초프 상트페테르부르크 게르첸사범대 사회학과장은 "러시아어의 몰락은 경제사회적 측면에서 러시아의 고립을 재촉할 것"이라고 말했다.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타지키스탄에서도 러시아어가 점차 발을 못 붙이고 있다.

아프리카 각국에서 사용되고 외교 공용어인 프랑스어도 국제무대에서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

한때 '학술언어'의 대명사로 꼽혔던 독일어도 학문 주도권이 영어권으로 넘어가면서 중부유럽 지역어로 위축됐다.

중앙아시아 각지에서 통용되는 투르크어와 아랍어,힌두어 등은 사용자 수가 많지만 아직 글로벌 언어 경쟁에선 한참 뒤처진 상태다.

김미희 한국경제신문 기자 icii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