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갈 구멍이라고는 없이 얼마나 깊은지도 모르게 땅속 깊이에 쿡,박혀 든 그 속으로 바위들이 어떻게 그리 묘하게 엇갈렸는지 용하게 한 줄로 틈이 뚫려져 거기로 흘러든 가느다란 햇살이 마치 프리즘을 통과한 것처럼 방안에다 찬란한 스펙트럼의 여울을 쳐 놓았던 것입니다.
도무지 불행이라는 것을 모르고 자랐습니다.
일곱 가지 고운 무지개 색밖에 거기에는 없었으니까요.
그러던 그가 그 일곱 가지 고운 빛이 실은 천장 가까이에 있는 창문 같은 데로 흘러 든 것이라는 것을 겨우 깨닫기는 자기도 모르게 어딘지 몸이 간지러워지는 것 같으면서 그저 까닭 모르게 무엇이 그립고 아쉬워만 지는 시절에 들어서였습니다.
말하자면 이 깊은 땅 속에도 사춘기(思春期)는 찾아온 것이었고,밖으로 향했던 그의 마음이 내면으로 돌이켜진 것입니다.
그는 생각하였습니다.
"이렇게 고운 빛을 흘러 들게 하는 저 바깥세계는 얼마나 아름다운 곳일까……."
이를테면 그것은 하나의 개안(開眼)이라고 할까. 혁명(革命)이었습니다.
이때까지 그렇게 탐스럽고 아름답게 보이던 그 돌집이 그로부터 갑자기 보잘것없는 것으로 비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는 올빼미가 울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보아도 바깥세계로 나갈 구멍은 역시 없었습니다.
두드려도 보고 울면서 몸으로 떠밀어도 보았으나 끄떡도 하지 않는 돌바위였습니다.
차디찬 감옥(監獄)의 벽이었습니다.
갇혀 있는 자기의 위치를 깨달아야 했을 뿐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런 곳에서 살게 되었던가? 모릅니다.
그런 까다로운 문제는 생각해본 적도 없었습니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생각해 보아도 일곱 가지 색밖에 떠오르는 것이 없었습니다.
일곱 가지 색으로 엉클어지는 기억 저쪽에 무엇이 무한(無限)한 무슨 느낌을 주는 무슨 세계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그것은 지금 눈망울에 그리고 있는 바깥세계를 두고 그렇게 느껴지게 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나면서부터 이곳에서 산 것이 아닌 것만은 사실이다."
그는 결국 이렇게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야 바깥세계가 있다는 것이 확실해지는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중략…)
그는 그 창으로 나갈 수 없을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기상천외(奇想天外)의 착안(着眼)을 끝내 해낸 것입니까.
거기로 흘러드는 빛이 없이는 이 무지개 색의 집도 저 바깥세계가 있다는 것도 생각할 수 없는 어떻게 보면 암벽(岩壁)보다 더 철석 같아서 오히려 무(無)처럼 보이는 그 창구멍으로 기어나갈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마침내 해냈다는 것은 저 지상에 살고 있는 토끼들이 공기를 마시지 않고는 한시도 살 수 없으면서 그 공기의 존재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에 비하여 이 얼마나 놀라운 발견,발견이라기보다 발명을 해낸 것입니까.
그러나 그것은 그에 못지않게 위험한 사상이었습니다.
그는 창으로 기어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가다가 넓어진 데도 있었지만 벌레처럼 뱃가죽으로 기면서 비비고 나가야 했습니다.
살은 터지고 흰 토끼는 빨갛게 피투성이였습니다.
그 모양을 멀리서 보면 마치 숨통을 꾸룩꾸룩 기어오르는 각혈 같았을 것입니다.
몇 번 도로 돌아가려고 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라는 것은 이제는 되돌아가는 길이 앞으로 나아가는 길보다 더 멀어지고 그러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수록 앞길 또한 멀어만 지는 것 같이 느껴질 때입니다. (…중략…)
얼마나 그렇게 기었는지 자기도 모릅니다. 그는 움직임을 멈추었습니다.
소리를 들은 것입니다. 새 우는 소리였습니다.
소리라는 것을 처음 들어본 것입니다.
밀려 오르는 환희와 함께 낡은 껍질이 벗겨져 나가는 몸 떨림을 느꼈습니다.
피곤과 절망에서 온 둔화(鈍化)는 뒤로 물러서고 새 피가 혈관을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은 그렇게 뛰는데 그의 발은 앞으로 움직여지지 않아 합니다.
바깥세계는 이때까지 생각한 것처럼 그저 좋기만 한 곳 같지 않아지게도 생각되는 것이었습니다.
훗날 그때 도로 돌아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모릅니다마는 그러나 그때 누가 있어 "도로 돌아가거라" 했다면 그는 본능적으로 "자유 아니면 죽음을!"하는 감상적(感傷的) 포즈를 해 보였을 것입니다.
마지막 코스를 기어나갔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관문에 다다랐습니다.
이제 저 바위틈으로 얼굴을 내밀면 그 일곱 가지 색 속에 소리의 리듬이 춤추는 흥겨운 바깥세계는 그에게 그 현란한 파노라마를 펼쳐 보이는 것입니다.
전율하는 생명의 고동에 온몸을 맡기면서 그는 가다듬었던 목을 바위틈 사이로 쑥 내밀며 최초의 일별을 바깥세계로 던졌습니다.
그 순간이었습니다.
쿡!
십 년을 두고 벼르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홍두깨가 눈알을 찌르는 것 같은 충격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