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집회·결사의 자유 침해하는 독소조항 없애야”

반 “폭력 부를수 있는 야간·옥외집회는 규제해야”

헌법재판소가 야간 옥외집회를 원칙적으로 금지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조항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림으로써 집시법 개정이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해당 조항은 헌재가 내년 6월30일까지만 효력을 인정하고 있어 그 다음날 자동 폐기되기 때문이다.

헌재가 야간집회 금지 규정에 대해 헌법 불합치 판정을 내린 취지는 '일몰 이후라고 해서 모든 옥외집회를 제한하는 것은 지나치며 따라서 옥외 집회를 금지해야 하는 특정 시간대를 입법으로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시간대에 야간 옥외집회를 금지하는 게 입법 목적을 달성하면서도 집회의 자유를 최소한 범위에서 제한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입법자 판단에 맡긴 셈이다.

하지만 헌재의 이번 결정을 놓고 논란이 분분하다.

진보 성향의 단체들은 "국민 기본권 신장에 보탬이 될 것"이라며 "옥외집회를 금지할 심야시간대를 정할 때도 집회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보수 단체들은 "심야 집회는 폭력을 수반하기 쉬우며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해치는 집회가 늘어날 수 있다"며 "폭력이 우려되는 야간 집회는 규제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한다.

집회 · 시위의 자유는 '표현의 자유'의 집단적 형태인 만큼 국민의 기본권으로 철저히 보호돼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현행 집시법 조항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재의 결정이 나왔다고 해서 야간 옥외집회를 무제한 허용할 수 없는 것 또한 당연한 이치다.

야간 옥외집회를 과연 어느 수준까지 허용하는 게 바람직한지 살펴본다.

⊙ 진보 집단, "기본권 침해 소지 있는 독소조항 대폭 손질해야"

진보 성향의 단체 쪽에서는 "이번 헌재 결정은 헌법에 명시된 '집회 · 결사의 자유'를 엄격히 보장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수호하려고 한 데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한다.

집회 · 결사의 자유는 참여 민주주의를 확대하기 위해 보장된 것인데도 집시법 10조(야간 집회시 사전허가)는 '사전허가제'라는 점에서,또 집회 · 결사를 일단 금지한 뒤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과잉 규제'라는 점에서 헌법의 취지와 배치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는 얘기다.

이번 결정으로 촛불집회로 재판받고 있는 선량한 국민들이 '폭도'로 낙인 찍히는 사태를 막을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지만 법 개정 전까지는 현행 법체계가 유지되는 만큼 계류 중인 촛불 재판은 헌재 결정의 취지를 감안해 진행하는 게 순리라고 주장한다.

입법부 또한 법의 진공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도록 서둘러 보완작업에 나서야 하며, 이번 기회에 집시법 등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 법률들을 면밀히 살펴 애매모호하게 남아 있는 독소 조항을 대폭 손질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 보수 집단, "폭력이 우려되는 야간 집회는 앞으로도 규제해야"

이에 대해 보수 집단 쪽에서는 "이번 결정은 헌재가 1994년 같은 취지의 집시법 조항에 대해 내린 합헌 결정을 뒤집은 것"이라며 "새로운 헌재 결정이 필요할 만큼 집회 시위 문화가 획기적으로 개선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헌재는 15년 전 야간 옥외집회 금지에 대해 "집회 자유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필수불가결한 경우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

야간이란 특수성과 옥외집회의 속성상 공공의 안녕질서를 침해할 높은 개연성이 있다"며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특히 우리의 시위문화를 선진국과 비교하기엔 아직 멀었고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과격하다고 꼬집는다.

이들은 또 "이번 결정의 취지는 야간 옥외집회를 무조건 허용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며 폭력이 우려되는 야간 집회는 주간 집회와 마찬가지로 규제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현행법의 효력이 내년 6월까지 유지되는 만큼 촛불시위와 관련해 기소된 사람들에 대한 재판도 신속히 재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 불법 폭력시위로 변질되는 사태 막을 수 있도록 법 개정돼야

야간이라고 해서 집회 자체를 원천 금지하는 것은 집회의 자유를 천명한 헌법 정신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

하지만 야간에 발생하는 폭력 시위로 인한 국민 피해와 국가적 손실 등을 감안할 때 신중한 접근이 필요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형법이 야간 행위에 대해 더욱 엄격한 규제를 가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 배경에서 헌재의 1994년 결정도 나왔고,이번에도 2명의 재판관이 합헌 의견을 고수한 것이다.

헌재의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이상 집시법 손질은 불가피해졌다.

무엇보다 야간 집회가 불법 폭력시위로 변질되는 것을 최대한 막을 수 있는 내용으로 법개정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정부는 헌재 결정의 취지를 잘 살피고 선진국의 입법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제대로 된 개정안을 만들어야 할 것임은 물론이다.

아울러 현행 집시법에 규정돼 있는 '교통소통을 위한 제한 (제12조)' 등의 조항들을 적절히 활용해 집회 참가자들의 불법심리를 미리 차단할 수 있는 방안도 강구할 필요가 있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용어풀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적법한 집회 및 시위를 최대한 보장하고 위법한 시위로부터 국민을 보호함으로써 집회 및 시위의 권리 보장과 공공의 안녕질서를 도모하기 위해 제정된 법률로, 흔히 '집시법'으로 불린다. 누구든지 폭행 · 협박 기타의 방법으로 평화적인 집회 또는 시위를 방해하거나 집회 또는 시위 주최자 및 질서유지인의 임무 수행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돼 있다.

옥외집회

천장이 없거나 사방이 막히지 않은 장소에서 다수인이 회합하는 것을 말한다. 집회를 주최하려는 사람은 목적 · 일시 · 장소 · 참가인원,주최자의 주소 · 성명 · 직업 등을 기재한 신고서를 집회 48시간 전에 관할 경찰서장에게 제출해야 하며,일출 전이나 일몰 후에는 옥외집회를 할 수 없고,국회의사당 등 법률에 규정된 건물의 경계 지점으로부터 100m 이내에선 집회를 할 수 없게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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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신문 9월 25일자 A1면

야간 옥외집회를 금지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이 헌법에 불합치한다는 결정이 나왔다.

헌법재판소는 24일 '일몰 후부터 일출 전까지 옥외집회를 금지하고 집회를 열 경우 경찰에 사전 신고를 하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한 집시법 10조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 불합치 결정은 해당 법률의 위헌성을 인정하면서도 사회적 혼란을 감안해 법 개정 때까지 한시적으로 효력을 용인하는 것이다.

헌재는 유예기간을 2010년 6월30일까지로 정했다.

이후에는 해당 조항의 효력이 자동으로 사라진다.

헌재 관계자는 "이번 결정은 옥외집회를 금지하는 심야시간대의 기준을 정하라는 것"이라며 "입법은 헌재 영역이 아니므로 입법을 통해 법률적 공백을 해소할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재판관 9명의 개별 의견은 위헌 5명,헌법 불합치 2명,합헌 2명이었다.

참여연대 소속인 안진걸씨는 작년 5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를 주최한 혐의(집시법 위반) 등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던 중 집시법 10조가 헌법에 위배된다며 위헌법률 심판을 제청했다.

이해성 한국경제신문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