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은 권력으로부터 벗어날수 없다?
[실전 고전읽기] 30. 엘리아스 카네티「군중과 권력」
불교의 경전은 '여시아문(如是我聞)'이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불법(佛法)을 '내가 이와 같이 들었다'는 의미이다.

붓다 사후 그를 따르던 제자들에 의해 경전 정리작업이 진행되면서,스승의 말씀을 기록하는 제자들이 경전의 앞머리에 '여시아문(如是我聞)'을 달아둔 것이다.

스승의 진실한 육성을 왜곡 없이 공손하게 옮긴다는 뜻도 되겠고,교법을 의심하는 자에게 스승님이 언제 어느 장소에서 말씀하시는 것을 두 귀로 똑똑히 들었으니까 의심을 접으라는 의미도 되겠다.

혹은 첫머리에 '여시아문(如是我聞)'이라는 언표(言表)를 둠으로써 자기 확신의 교리를 감히 스승의 사상으로 갈무리하려는 괘씸한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살아 생전 붓다가 설법할 때 그의 말을 이해하고 염화미소를 띤 제자는 하나였는데,경전 작업은 너나없이 하였으니 다들 '여시아문(如是我聞)'이라며 떠들지만,과연 제대로 듣기나 하였을까 싶다.

하지만 자신의 귀를 때린 붓다의 쟁쟁한 설법이 그와 같았다고 하니 수천 년 전 이 세상을 밟고 다녔던 붓다와 일견 면식도 없는 우리로서는 일단 믿어주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붓다의 제자들은 '여시아문(如是我聞)'이라며 글을 시작하지만,다른 일반 작가들에게는 또 다른 여시아문,즉 '여시아문(如是我問)'이 필요하다.

'내가 이와 같이 묻노라' 하는 의식도 없이 이 세상을 관찰하고 자신의 글을 내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신이 답을 찾고자 하는 주제에 관한 날카로운 의문(如是我問)은 일생을 가로지르는 치열한 탐구의 모태이다.

그러므로 당신에게 전해지는 답에만 주의하지 말고,당신이 묻고자 하는 질문을 유심히 살펴보라.

당신을 결정짓는 무엇인가가 그 속에 똬리를 틀고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던지는 질문은 모두 제각기 다를진대,오늘 소개하는 엘리아스 카네티(Elias Canetti · 1905~1994년)가 품고 다녔던 의문은 '군중'이라는 화두였다.

카네티는 평생을 코스모폴리탄으로 살면서 20세기를 휩쓸었던 다양한 역사적 사건을 계기로 군중에 눈을 뜨게 되어 군중에 관해 묻고 스스로 답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1905년 루스추크(당시는 불가리아였으나,현재는 러시아)에서 태어나 1911년 영국으로 이주한 카네티는 여섯 살 때 갑작스럽게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홀로 된 어머니를 따라 어린 시절부터 오스트리아,스위스,독일 등 여러 나라를 전전하였다.

그 덕분에 카네티는 자연스럽게 고대 스페인어와 불가리아어,영어,독어,프랑스어를 일찍부터 접할 수 있었지만 집필 활동만은 항상 독일어로만 수행하였다고 하니 코스모폴리탄인 그에게 마음의 조국은 독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카네티는 성장하여 빈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까지 받았으나 어디까지나 주요 관심사는 문학과 철학이었고,그가 평생을 품고 다녔던 질문은 군중 현상이었다.

카네티가 군중에 관심을 가진 구체적인 계기가 되었던 사건은 1924년 독일 국수주의자들이 저지른 라테나우 외무장관 암살 사건에 항의하기 위해 노동자들이 벌인 대규모 시위였다.

카네티는 그 때 체험하였던 놀라움을 다음과 같이 술회한 바 있다.

"이 군중은 예전에 내가 보았던 군중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나는 내 피부로 이 군중을 느꼈고,이 군중의 일부가 된 것처럼 느끼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서 깜짝 놀랐다. 나는 그때까지 군중을 마치 나를 향해 습격해오는 것 같은 위협적인 것으로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때에는 정반대 현상이 일어나 어떤 저항하기 힘든 힘에 의해 군중 속으로 빨려 들어가 나 자신이 군중의 일원이 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데모가 끝나 군중이 해산하고 각자 집으로 뿔뿔이 흩어져갈 때,나는 나 자신이 지금까지보다 가련한 존재가 되고 무언가 귀중한 것을 잃고 만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이 사건 이후 군중에 관한 의문은 그의 저작을 관통하는 탐구 주제가 된다.

그에게 작가로서의 국제적 명성을 가져다 준 장편소설 '현혹(Die Blendung · 1935년)' 역시 군중에 관해 논한 작품이다.

토마스 만,헤르만 브로흐 등이 '우리 안의 군중 위협에 대한 탁월한 은유'라며 격찬한 '현혹'은 그 진가를 높이 인정받아,1981년 스웨덴 한림원이 카네티에게 '광범위한 시야,풍부한 이상,미학적 힘'을 기리며 노벨문학상을 수여하는 주요한 이유가 된다.

'결혼식' '허영의 희극' '죽음을 앞둔 사람' 등 일련의 희곡에서도 일관되게 대중심리를 다뤘던 카네티는 평생 그를 사로잡았던 주제인 군중에 관한 연구를 총망라하여 사회과학 저서 '군중과 권력(Mass und macht)'을 출판하였다.

책의 제목 그대로 카네티는 '군중과 권력'에서 온갖 군중현상과 권력의 상관관계를 분석한다.

군중에 관한 연구를 계속해 나가던 중 군중 연구가 권력에 대한 포괄적이고도 철저한 분석에 의해서 뒷받침되어야만 한다는 깨달음이 제목에 그대로 반영된 결과이다.

'군중과 권력은 서로 극히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서 둘 중 어느 한 편이 결핍되면 나머지를 이해할 수 없다'는 스스로의 말대로 카네티는 이 책에서 군중에 대한 세세한 분류와 설명,군중의 역사 및 군중의 심리학,권력의 분석 등 원시부족의 신화에서부터 세계 종교들의 원전,동서고금 권력자들의 전기,환자의 병례에 이르기까지 문학,종교,인류학,심리학,생물학의 영역을 넘나들며 군중과 권력을 철저하게 분석하였다.

'군중과 권력'은 카네티가 일생을 바친 연구주제를 집대성한 책이니만큼 방대한 내용과 완숙한 깊이를 자랑하는 책이지만 한번 읽어본다면 그에 어울리는 독서의 즐거움을 안겨준다.

그렇다면 기출 제시문으로도 활용된 바 있는 '군중과 권력'의 한 토막을 맛보면서 카네티의 글을 읽을 것인지 어디 한번 결정해보기로 하자.

☞ 기출 제시문 (서강대 2005학년도 정시 논술)

군중 내부에서 일어나는 가장 중요한 사건은 '방전'(구속 상태로부터의 해방,에너지의 폭발과 방출)이다.

방전이 일어나기 전의 군중은 본질적으로 군중이 아니다.

방전이 있어야만 비로소 군중이 생성된다.

방전의 순간에 군중의 모든 구성은 그들 사이의 차이를 제거하고 평등을 느끼게 된다.

여기서 차이란 주로 외부로부터 주어진 것들,즉 계급,신분,재산 따위의 차이를 말한다.

개별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항상 이런 차이를 의식한다.

이 차이는 개개인들에게 중압감을 주고 그들이 상호 고립되도록 강요한다.

인간은 일정하고 안전한 위치에 고고하게 선 채,온갖 몸짓으로 마치 자신이 남들과 거리를 유지할 권리를 가진 것처럼 주장한다.

인간은 광활한 평원 위에 우뚝 서 인상적으로 움직이는 풍차와도 같다.

그리고 이때 그 풍차와 이웃 풍차 사이에는 간격이 있을 뿐,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삶이 이 간격 속에서 펼쳐진다.

인간이 자기 자신과 재산을 넣어두는 집,그가 차지한 지위,그가 바라는 계급,이 모든 것들이 간격을 만들고,확고하게 하며,확대시킨다. …(중략)…

인간은 함께 모임으로써만 이러한 간격의 질곡에서 해방될 수 있는데,이것이 바로 군중 속에서 일어난다.

방전을 통해 온갖 괴리가 사라지고 모든 구성원이 평등감을 느끼게 된다.

몸과 몸이 밀고 밀리는,틈이라고 거의 없는 밀집 상태 속에서 각 구성원은 상대를 자기 자신만큼이나 가깝게 느끼게 되며,결국 커다란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아무도 남보다 위대할 것도 나을 것도 없는,이 축복의 순간을 맛보기 위해 인간은 군중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토록 염원하였고 그토록 행복한 이 방전의 순간은 자체 내에 위험성을 안고 있다.

방전의 순간은 근본적으로 환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람들은 갑자기 평등감을 느끼지만 그들이 실제로 평등한 것은 아닐 뿐더러 영원히 평등해질 수도 없다.

그들은 결국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각자의 침대에 누울 것이며,각자의 소유물을 지니며,자신의 이름을 결코 버리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딸려 있는 권속을 버리지 않는다.

그들은 가족을 이탈하지 않는다.

- 엘리아스 카네티,'군중과 권력'

홍보람 S · 논술 선임연구원 nikehbr@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