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기지 갈등…26일 제주도지사 주민소환 투표

오남용땐 행정공백·정치혼란 등 부작용 우려도

[Focus] 주민 소환제는 민주주의의 '꽃'인가?
주민소환제는 주민참여, 주민소송제와 함께 주민 직접 민주주의를 이루는 3대 요소 중 하나이다.

민주주의 꽃이라고도 불린다.

주민들이 지방자치단체장의 행정 처분이나 결정에 문제점이 있다고 판단할 경우 자치단체의 장을 직접 해임할 수 있는 것이다.

요즘 제주도가 주민소환제로 인해 시끌벅적하다.

김태환 제주도지사의 해임 여부를 놓고 주민들 간 찬반 양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 등 일부 시민들은 '도지사를 해임해야' 한다고 벼르고 있고, 또 다른 시민들은 도지사 해임은 온당하지 못하다고 맞서고 있다.

어느 쪽이 이길지는 8월26일 예정된 주민소환 투표에서 결정난다.

이 투표의 결과에 따라 제주지사는 옷을 벗을 수도 있다.

주민들이 뽑은 도지사를 주민들이 소환(해임)하는 실험이 지금 제주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 배경과 전망은

제주도에 주민소환제가 발의된 것은 김 지사가 해군기지를 유치하겠다고 나선 것이 '화근'이었다.

제주도는 공청회 여론조사 등을 거쳐 2007년 5월 해군기지를 유치하기로 했으며 올해 4월 정부와 기본협약서(MOU)를 체결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사업은 해군의 전력 강화와 남방 해양수송로 확보를 위한 국가 핵심 사업으로 2014년 완공을 목표로 잡고 있다.

이 같은 제주도의 결정에 대해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서귀포시 강정마을회 등 도내 35개 시민사회단체가 김태환 지사 주민소환운동본부(이하 주민소환운동본부)를 구성, 지난 5월14일부터 주민소환 투표 청구를 위한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이유는 제주지사가 해군기지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민주성과 절차적 타당성 등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추진해왔다는 것이다.

운동본부 관계자는 "정부와 기본협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도의회의 의견을 묵살했을 뿐만 아니라 기본계약에 제주도의 이익과 미래에 대한 보장이 담겨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제주도에 해군기지가 건설될 경우 '평화의 섬'으로서의 가치를 잃는 것은 물론 관광자원으로서의 기능도 상당 부분 상실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고 있다.

주민소환에 반대하는 쪽에서는 "해군기지는 크루즈선박도 드나드는 민 · 군 복합형 관광미항으로 조성되며 6000여명의 일자리 창출 효과까지 기대된다"며 "해군기지 사업을 트집잡아 지사를 소환하려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주장한다.

주민소환운동본부는 5월29일 제주특별자치도 선거관리위원회에 도민 7만7367명으로부터 서명을 받아 주민소환 투표 청구서와 청구인 서명부를 제출했다.

시 · 도지사의 경우 유권자의 10% 이상,기초단체장은 유권자의 15% 이상의 서명을 받아야 주민소환 투표에 들어갈 수 있는데 이 요건을 충족시킨 것이다.

광역자치단체장으로서는 처음 김 지사에 대한 주민소환투표제가 8월6일 발의돼 김 지사의 직무가 정지됐다.

주민소환 투표는 2007년 7월부터 시행된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에 따라 실시된다. 26일 예정된 투표에서 유권자의 3분의 1 이상이 투표에 참여하고 투표자의 과반수가 소환에 찬성할 경우 김 지사는 투표 결과 공표 시점부터 도지사직을 상실하게 된다.

하지만 투표율이 33.3%를 넘지 못하면 이번 주민소환은 무효로 끝나고 김 지사는 업무에 복귀한다.

투표율이 33.3%를 넘으려면 작년 말 기준으로 유권자 13만8830명이 투표해야 한다.

주민소환 투표 청구에 서명한 주민들(7만7367명)의 2배가량이 투표장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주민소환 투표가 김 지사의 해임으로 연결될지 아직 예상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주민소환 사례는

우리나라에서는 경기도 화장장 유치 계획을 발표한 김황식 하남시장과 그를 지지하던 시의원 3명에 대해 '유치 과정에서 독선과 졸속 행정을 펼치는 등 자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2007년 7월23일 주민소환 투표가 청구돼 그해 12월12일 전국에서 처음으로 실시됐다.

투표 결과 김 시장에 대한 주민소환은 투표율이 31.1%에 그쳐 투표 자체가 무효화됐다.

반면 시의원 3명 중 2명은 33.3%이상 투표율에 과반수 찬성으로 해임됐다.

미국 일본 독일 스위스 등은 오래 전부터 주민소환제를 시행하고 있다.

2003년 미국 그레이 데이비스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주민소환을 통해 물러난 게 대표적인 예다.

2002년 재선에 성공한 데이비스 주지사는 이듬해 380억달러의 재정적자로 인해 임기 중 퇴출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당시 소환선거로 당선된 사람이 아널드 슈워제네거 현 주지사다.

미국에서 주민소환으로 주지사가 해임된 것은 1921년 린 프레지어 당시 노스다코타 주지사 이래 두 번째였다.

⊙ 문제점은 없나

주민소환제가 남발하면 지방자치단체 행정의 안정성이 훼손될 뿐 아니라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하남시장이나 제주도지사의 주민소환 사건은 모두 기피시설 유치에 따른 것이다.

지역 발전과 환경 유지라는 양립하기 힘든 목표에 대해 일부 주민들의 불만이 국민 소환으로 번진 것이다.

주민소환 투표로 홍역을 치렀던 김 시장은 "현행 주민소환법은 소환 대상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고 소환투표 청구 및 발의를 거부할 규정이 없어 다수 유권자의 권리를 소수 유권자가 침해할 수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다.

이 법률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주장이다.

헌법재판소는 그러나 "주민소환제가 공무담임권이나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또 "주민소환제는 그 사유를 묻지 않는 것이 취지에 맞으며 비민주적,독선적 정책 추진 등을 광범위하게 통제하려면 청구 사유를 제한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헌법재판소의 판단에도 불구하고 주민소환제는 오 · 남용될 경우 자칫 행정 공백과 정치 혼란이 생길 수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국민소환제의 남용을 막기 위한 법률 개정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일부 국회의원은 법령 위반과 직권 남용,직무유기 등 위법하고 부당한 행위에 대해서만 주민소환 투표를 청구할 수 있도록 주민소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장진모 한국경제신문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