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서민 고통 덜어줘 국민통합·민생안정에 큰 보탬"

반 "사면권 남용하면 법 안지키고 도덕 불감증 초래"

정부가 광복 64주년을 맞아 운전면허 제재자 150만5376명을 비롯 152만7770명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특별사면 조치를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다.

"이번 조치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서민의 어려움을 덜어주고 민생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마련됐으며,반인륜적 흉악범이나 정치인 · 경제인 · 고위 공직자 등은 배제했다"는게 정부 당국의 설명이다.

서민의 경제적 어려움을 덜어주려는 '생계형 사면'이라는 얘기다.

정부 쪽에서는 "사소한 행정법규를 위반해 생활에 불편을 겪고 있는 서민들에게 사면의 초점을 맞췄다"며 이번 조치가 서민의 경제적 어려움을 덜어줌으로써 민생에 실질적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번 조치는 이명박 대통령이 그동안 강조해 온 '친(親)서민 정책'과도 부합한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찮다.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은 준법정신을 약화시키고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독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게 핵심이다.

특히 '움직이는 살인자'와 다름없는 음주운전자에 대한 사면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고 꼬집는다.

특별사면은 국가원수로서의 대통령 고유 권한인 것은 새삼 설명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사면권은 사법적용에 대한 예외적 조처인 만큼 제한적이고 신중하게 행사돼야 하는 것 또한 주지의 사실이다.

문제는 이번처럼 생계형이라는 이유로 대통령이 사면권을 행사하는 것이 과연 설득력이 있느냐는 점이다.

생계형 사면을 둘러싼 논란을 분석해본다.

⊙ 찬성 측, "서민 고통경감 통해 국민통합과 민생안정에 큰 도움 줄 것"

이번 조치를 찬성하는 쪽에서는 "사면 대상자의 대부분이 운전면허 제재자이며, 특히 초범에 한해 음주운전자까지도 사면을 받게 된 것은 서민을 위한 큰 결단"이라며 반기고 있다.

교통법규를 비롯 단속 만능주의 풍조로 인해 사소한 실수로도 범법자로 전락해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며, 특히 운전면허 정지 · 취소로 생활에 지장을 받는 생계형 자영업자가 수없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 특별사면은 서민의 고통을 덜어줌으로써 국민통합 및 민생 안정에 큰 도움을 줄 것은 물론 글로벌 위기 극복을 위한 당면 현안인 경제살리기에도 한몫을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번 조치는 이 대통령이 염두에 두고 있는 '서민행보'와도 일치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특히 부정부패에 연루된 정 · 관계 인사와 경제인을 사면 대상에서 배제함으로써 사면권 오남용 문제도 없다고 주장한다.

⊙ 반대 측, "사면권 남용은 준법정신을 약화시키고 도덕적 해이 초래할 것"

이에 대해 반대하는 쪽에서는 "이 대통령은 출범 1년6개월도 지나지 않아 벌써 세 번의 특사로 468만명에게 은사를 베풀었다"며 이러한 사면권 남용은 준법정신을 약화시키고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게 뻔하다고 지적한다.

운전면허 정지 및 취소,벌점,재시험 결격사유 등을 소멸시켜줌으로써 일반인들의 법규 위반사례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음주운전으로 인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감안할 때 음주운전자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도 마뜩찮을 판에 오히려 이들을 사면해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꼬집는다.

이 대통령 스스로 '사면권 오남용방지시스템 구축'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으며 지난해에도 '현 정부 출범 이후의 범법행위에 대해선 일절 사면복권이 없을 것'이라고 약속해놓고도 이를 어겼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사태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법치를 뒤흔들고,궁극적으로 법질서 확립을 강조해 온 현 정부에 부담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 특별사면권은 차별적 조치인 만큼 신중하고 엄격하게 행사돼야

교통법을 비롯한 각종 법규의 위반자 중에는 서민층이 많다는 점에서 이번 특사는 이들의 생활에 적잖은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지금과 같은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운전면허 취소 같은 제재가 서민 생활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특별사면은 본질적으로 차별적 조치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이 법규를 지키느라 애를 쓰는 마당에 이를 어긴 사람을 주기적으로 사면해 주면 형평에 맞지 않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더구나 '제재를 받아도 얼마 안 있어 사면될 것'이라는 풍조가 생기면 준법의식은 심각한 도전을 받기 십상이다.

대통령의 사면권이 신중하고 엄격하게 행사돼야 하는 것도 바로 그러한 연유에서다.

더구나 최고 행정책임자인 대통령의 1차적 의무는 사면이 아니라 법과 질서를 수호하는 일이다.

'친서민'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바로 법과 질서라는 얘기다.

생계형과 비(非)생계형의 구분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뿐더러 자칫 '생계'라는 이유로 많은 것이 용인될 위험이 있는 만큼 '생계형'이란 표현도 신중히 사용돼야 할 것임은 물론이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용어풀이

◆사면권 = 국가 원수가 형사소송법이나 그 밖의 형사법규에 의하지 아니하고 형 선고 효과 또는 공소권을 소멸시키거나,형 집행을 면제시키는 것을 말한다.

군주국가시대 군주의 은전권(恩典權)에서 유래됐으며 사법권 독립에 대한 예외적 현상의 하나다.

일반사면과 특별사면의 두 종류가 있다.

◆ 일반사면 = 범죄의 종류를 지정해 이에 해당하는 모든 범죄인에 대해 형 선고 효과를 전부 소멸시키거나 또는 형 선고를 받지 아니한 자에 대한 공소권을 소멸시키는 것을 말한다.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국회 동의를 얻어야 하고,그 형식은 대통령령으로 하도록 돼 있다.

◆ 특별사면 = 특정 범죄인에 대해 형의 집행을 면제하거나 유죄선고의 효력을 상실시키는 대통령의 조치로 줄여서 특사라고도 부른다.

형의 선고를 받은 자에 대해 법무부 장관의 상신으로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행한다.

형 집행을 면제하는 것이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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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경닷컴 8월11일자 보도기사

정부는 광복 64주년을 맞아 정지 · 취소 등 운전면허 제재를 받았거나 생계형 범죄로 처벌받은 서민 152만7770명을 대상으로 대규모 특별사면 · 감형 · 복권을 15일자로 단행한다고 11일 발표했다.

특별사면 내용은 △운전면허 제재자 150만5376명 특별감면 △생계형 서민범죄자 9467명 특별사면 · 감형 · 복권 △어업 면허 · 허가 행정처분 8764명 특별감면 △해기사 면허제재 2530명 특별감면 △1633명 모범수 가석방 및 보호관찰 해제 등이다.

이에 따라 운전면허가 취소 또는 정지된 6만9605명이 운전대를 다시 잡을 수 있게 됐으며 123만8157명은 6월29일 이전 도로교통법상 벌점 일괄 삭제로 '0점'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됐다.

또 운전면허 취소 등으로 1~2년간 운전면허 시험에 응시할 수 없는 19만7614명은 결격 기간이 해제돼 곧바로 재시험을 치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운전면허 취소자 중 5년 내 2회 음주운전,무면허 음주운전,음주 인명사고,음주측정 불응,뺑소니,단속 공무원 폭행범 등은 감면 대상에서 제외됐다.

특별감면 대상자에게는 안내문이 발송되며 운전면허시험관리단 홈페이지(www.dla.go.kr)에서 결격 기간 해제에 대한 조회가 가능하다.

이해성 한국경제신문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