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발한 재치와 날카로운 풍자로 세상을 조롱하다
세상이 더 이상 우리가 익히 알던 그 모습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할 때의 설렘과 두근거림은 우리를 자못 신나게 한다.
이러한 흥겨움에 도취되어 많은 학자들은 일생을 연구에 매진하고,탐험가들은 관습을 거스르는 과감한 용단을 내린다.
하지만 세상이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는 경우가 이뿐만은 아니다.
우리가 시원하게 웃을 때도 세상은 일상과 다른 모습을 띤다.
해학의 즐거움은 마땅한 규범과 진지한 가치관이 도전을 받아 위계질서가 역전되는 순간에 찾아온다.
마당극 놀이에서 시작하여 여러 코미디 프로그램과 각종 패러디 문화는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나 세상을 특이하게 바라본다.
해학의 공간에서는 공식 질서가 비틀어지고 엄숙하고 진지한 인물들이 우리 눈앞에서 까불어대며 바보짓을 한다.
지배적 가치관의 의도적 폄하와 익살스러운 모방은 우리의 시야를 일상의 관점에서 해방시키며,우리는 쾌활한 웃음 속에서 세상과 삶에 관한 색다른 전망을 펼친다.
이처럼 강력한 웃음의 기능에 집중하였던 이들은 고래(古來)부터 많았으며,특히 그리스 희극(喜劇)은 우수한 작품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그리스의 희극을 소개하자면 절대 지나칠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이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에서 태어난 아리스토파네스는 기발한 재치와 날카로운 풍자로 고대 그리스 최고의 희극시인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예리한 펜 끝으로 정치와 학문에 대한 비판을 희극 속에 발랄하게 꿰매어,당대 그리스인들에게 풍자와 해학을 통해 사회를 새롭게 진단해보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아리스토파네스는 기원전 427년에 소피스트 방식의 신교육을 비판하는 <연회의 사람들>을 데뷔작으로 상연한 이후 꾸준히 집필 활동을 하여 현재 제목이 알려진 작품이 44편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 완전한 형태로 현존하는 작품은 11편이며,부분적으로 전해지는 많은 단편이 있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연회의 사람들>을 상연한 이듬해 발표한 <바빌로니아인>이란 작품에서 당시의 권력자 클레온을 통렬히 야유해서 혹독한 보복을 당하기도 하였지만,개의치 않고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입김을 이어나갔다.
기원전 425년에 <아카르나이 사람들:Acharneis>에서 전쟁 때문에 빈곤해진 농민의 편을 들며 클레온을 풍자하고 기원전 424년에는 <기사:Hippheis>라는 작품으로 또다시 클레온을 공격한 것을 보면,재치만 남달리 기민했던 것이 아니라 배포 또한 두둑하였던 모양이다.
다른 그리스 사람들도 아리스토파네스의 재치와 배짱에 다 같이 흥겨워한 결과,아리스토파네스는 극 경연대회에서 1등을 네 번,2등을 세 번,3등은 한 번 하였다고 전해진다.
아리스토파네스의 작품 가운데 오늘 살펴볼 작품은 그가 기원전 423년에 발표한 <구름 : Nephelai>이다.
이 작품에서는 오늘날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도마에 올라 무참한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구름> 속에서 묘사되는 소크라테스는 위대한 철학자가 아니라 말장난으로 빚을 안 갚는 방법이나 가르치는 사이비 선생에 불과하다.
작품에는 스프레프시아데스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아들 때문에 진 빚을 떼어 먹을 방법을 찾던 스프레프시아데스는 소크라테스의 말 기술에 혹해 아들을 소크라테스의 학원에 들여 말장난을 배우게 한다.
하지만 아들이 학원을 나와서 아버지를 구타하고 제우스를 부정하자 화가 난 스프레프시아데스가 소크라테스의 집에 불을 지른다는 내용이 <구름>의 줄거리이다.
스프레프시아데스의 다음 대사는,아리스토파네스가 소크라테스를 얼마나 맹렬하게 풍자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스프레프시아데스 : 이 아이에게 두 가지 논리를 다 가르쳐 주십시오. 그것이 무엇이든 더 나은 것과 더 못한 것을 말입니다. 더 못한 것은 옳지 못한 말로 더 나은 것을 넘어뜨리지요.
둘 다가 안 된다면 옳지 못한 것만이라도 꼭 가르쳐 주십시오.
스프레프시아데스 : 오오,내 아들이여,얼씨구 절씨구! 먼저 네 안색을 보니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구나.
이제 너는 우선 부정적 반박의 모습을 하고 있고,이 나라 특유의 "그게 무슨 뜻이죠?"가 입가에 활짝 피어있구나.
나쁜 짓과 범행을 행하고도 오히려 자신이 당한 척 하는 것,나도 알지.
그것이 아티케의 눈길이라는 것을. 너는 전에는 나의 파멸이었지만 이제는 구원자가 되어 다오!
<구름>은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가운데 누구나 손꼽는 작품이며,우리나라에서 <구름>과 비슷한 유명세를 즐기는 그의 작품으로는,새의 세계에서 인간 세계를 바라본 <새 : Ornithes><뤼시스트라테 : Lysistrat><개구리 : Batrachoi> 등이 있다.
당돌하고 끝없는 상상력으로 세상을 바라본 상기 작품 중 어느 하나를 골라 읽으면서 아리스토파네스의 신랄한 혀끝이 세상을 희롱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막바지에 다른 여름을 즐기는 좋은 피서법이 될 것이다.
☞ 기출 제시문(연세대 2004학년도 인문계 논술)
소크라테스 : (등장하며) 숨결과 혼돈과 대기에 맹세코 나는 아직도 저렇게 무능하고 어리석은 멍텅구리는 본 적이 없어.
까마귀 고길 먹었나. 한두 마디도 못 외우고 금세 잊어버리니….
어쨌든 저 자를 여기 해가 쬐는 곳으로 불러내자. 스트레프시아데스,이불을 가지고 나와!
스트레프시아데스 : 벼룩 놈들 저항이 만만치 않은데요. (스트레프시아데스, 집에서 이불을 들고 등장)
(…중략…)
스트레프시아데스 : 소크라테스 선생!
소크라테스 : 뭐야?
스트레프시아데스 : 이자(利子)를 안 낼 방법이 떠올랐어요.
소크라테스 : 말해봐.
스트레프시아데스 : 이건 어떻습니까?
소크라테스 : 뭐가?
스트레프시아데스 : 테살리아의 무당을 불러서 밤중에 달을 끌어내려요. 그러고는 달님을 둥근 투구함에 넣어 두는 거죠. 거울처럼.
소크라테스 : 그게 무슨 소용이야?
스트레프시아데스 : 무슨 소용이냐고? 나 참,달님이 아무데도 뜨지 않으면 이자를 한푼도 낼 필요가 없거든요.
소크라테스 : 왜지?
스트레프시아데스 : 왜라니, 이자는 달로 계산하니까.
소크라테스 : 근사하군. 또 하나 문제를 내지. (…중략…) 증인이 없어 불리할 때는 어떻게 상대의 고소를 걷어치우지?
스트레프시아데스 : 식은 죽 먹기죠.
소크라테스 : 말해 봐.
스트레프시아데스 : 이렇게 하는 거예요. 내가 불려가기 전, 다른 재판을 하고 있는 사이에 달려가서 목을 매지요.
소크라테스 : 바보 같은 소리.
스트레프시아데스 : 천만에, 그게 아녜요. 내가 죽으면 아무도 기소하지 못 한다 이겁니다.
소크라테스 : 잠꼬대 같은 소리. 꺼져! 이제 가르치는 것도 진저리난다!
- 아리스토파네스 <구름>
홍보람 S · 논술 선임연구원 nikehbr@nonsul.com
세상이 더 이상 우리가 익히 알던 그 모습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할 때의 설렘과 두근거림은 우리를 자못 신나게 한다.
이러한 흥겨움에 도취되어 많은 학자들은 일생을 연구에 매진하고,탐험가들은 관습을 거스르는 과감한 용단을 내린다.
하지만 세상이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는 경우가 이뿐만은 아니다.
우리가 시원하게 웃을 때도 세상은 일상과 다른 모습을 띤다.
해학의 즐거움은 마땅한 규범과 진지한 가치관이 도전을 받아 위계질서가 역전되는 순간에 찾아온다.
마당극 놀이에서 시작하여 여러 코미디 프로그램과 각종 패러디 문화는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나 세상을 특이하게 바라본다.
해학의 공간에서는 공식 질서가 비틀어지고 엄숙하고 진지한 인물들이 우리 눈앞에서 까불어대며 바보짓을 한다.
지배적 가치관의 의도적 폄하와 익살스러운 모방은 우리의 시야를 일상의 관점에서 해방시키며,우리는 쾌활한 웃음 속에서 세상과 삶에 관한 색다른 전망을 펼친다.
이처럼 강력한 웃음의 기능에 집중하였던 이들은 고래(古來)부터 많았으며,특히 그리스 희극(喜劇)은 우수한 작품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그리스의 희극을 소개하자면 절대 지나칠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이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에서 태어난 아리스토파네스는 기발한 재치와 날카로운 풍자로 고대 그리스 최고의 희극시인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예리한 펜 끝으로 정치와 학문에 대한 비판을 희극 속에 발랄하게 꿰매어,당대 그리스인들에게 풍자와 해학을 통해 사회를 새롭게 진단해보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아리스토파네스는 기원전 427년에 소피스트 방식의 신교육을 비판하는 <연회의 사람들>을 데뷔작으로 상연한 이후 꾸준히 집필 활동을 하여 현재 제목이 알려진 작품이 44편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 완전한 형태로 현존하는 작품은 11편이며,부분적으로 전해지는 많은 단편이 있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연회의 사람들>을 상연한 이듬해 발표한 <바빌로니아인>이란 작품에서 당시의 권력자 클레온을 통렬히 야유해서 혹독한 보복을 당하기도 하였지만,개의치 않고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입김을 이어나갔다.
기원전 425년에 <아카르나이 사람들:Acharneis>에서 전쟁 때문에 빈곤해진 농민의 편을 들며 클레온을 풍자하고 기원전 424년에는 <기사:Hippheis>라는 작품으로 또다시 클레온을 공격한 것을 보면,재치만 남달리 기민했던 것이 아니라 배포 또한 두둑하였던 모양이다.
다른 그리스 사람들도 아리스토파네스의 재치와 배짱에 다 같이 흥겨워한 결과,아리스토파네스는 극 경연대회에서 1등을 네 번,2등을 세 번,3등은 한 번 하였다고 전해진다.
아리스토파네스의 작품 가운데 오늘 살펴볼 작품은 그가 기원전 423년에 발표한 <구름 : Nephelai>이다.
이 작품에서는 오늘날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도마에 올라 무참한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구름> 속에서 묘사되는 소크라테스는 위대한 철학자가 아니라 말장난으로 빚을 안 갚는 방법이나 가르치는 사이비 선생에 불과하다.
작품에는 스프레프시아데스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아들 때문에 진 빚을 떼어 먹을 방법을 찾던 스프레프시아데스는 소크라테스의 말 기술에 혹해 아들을 소크라테스의 학원에 들여 말장난을 배우게 한다.
하지만 아들이 학원을 나와서 아버지를 구타하고 제우스를 부정하자 화가 난 스프레프시아데스가 소크라테스의 집에 불을 지른다는 내용이 <구름>의 줄거리이다.
스프레프시아데스의 다음 대사는,아리스토파네스가 소크라테스를 얼마나 맹렬하게 풍자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스프레프시아데스 : 이 아이에게 두 가지 논리를 다 가르쳐 주십시오. 그것이 무엇이든 더 나은 것과 더 못한 것을 말입니다. 더 못한 것은 옳지 못한 말로 더 나은 것을 넘어뜨리지요.
둘 다가 안 된다면 옳지 못한 것만이라도 꼭 가르쳐 주십시오.
스프레프시아데스 : 오오,내 아들이여,얼씨구 절씨구! 먼저 네 안색을 보니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구나.
이제 너는 우선 부정적 반박의 모습을 하고 있고,이 나라 특유의 "그게 무슨 뜻이죠?"가 입가에 활짝 피어있구나.
나쁜 짓과 범행을 행하고도 오히려 자신이 당한 척 하는 것,나도 알지.
그것이 아티케의 눈길이라는 것을. 너는 전에는 나의 파멸이었지만 이제는 구원자가 되어 다오!
<구름>은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가운데 누구나 손꼽는 작품이며,우리나라에서 <구름>과 비슷한 유명세를 즐기는 그의 작품으로는,새의 세계에서 인간 세계를 바라본 <새 : Ornithes><뤼시스트라테 : Lysistrat><개구리 : Batrachoi> 등이 있다.
당돌하고 끝없는 상상력으로 세상을 바라본 상기 작품 중 어느 하나를 골라 읽으면서 아리스토파네스의 신랄한 혀끝이 세상을 희롱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막바지에 다른 여름을 즐기는 좋은 피서법이 될 것이다.
☞ 기출 제시문(연세대 2004학년도 인문계 논술)
소크라테스 : (등장하며) 숨결과 혼돈과 대기에 맹세코 나는 아직도 저렇게 무능하고 어리석은 멍텅구리는 본 적이 없어.
까마귀 고길 먹었나. 한두 마디도 못 외우고 금세 잊어버리니….
어쨌든 저 자를 여기 해가 쬐는 곳으로 불러내자. 스트레프시아데스,이불을 가지고 나와!
스트레프시아데스 : 벼룩 놈들 저항이 만만치 않은데요. (스트레프시아데스, 집에서 이불을 들고 등장)
(…중략…)
스트레프시아데스 : 소크라테스 선생!
소크라테스 : 뭐야?
스트레프시아데스 : 이자(利子)를 안 낼 방법이 떠올랐어요.
소크라테스 : 말해봐.
스트레프시아데스 : 이건 어떻습니까?
소크라테스 : 뭐가?
스트레프시아데스 : 테살리아의 무당을 불러서 밤중에 달을 끌어내려요. 그러고는 달님을 둥근 투구함에 넣어 두는 거죠. 거울처럼.
소크라테스 : 그게 무슨 소용이야?
스트레프시아데스 : 무슨 소용이냐고? 나 참,달님이 아무데도 뜨지 않으면 이자를 한푼도 낼 필요가 없거든요.
소크라테스 : 왜지?
스트레프시아데스 : 왜라니, 이자는 달로 계산하니까.
소크라테스 : 근사하군. 또 하나 문제를 내지. (…중략…) 증인이 없어 불리할 때는 어떻게 상대의 고소를 걷어치우지?
스트레프시아데스 : 식은 죽 먹기죠.
소크라테스 : 말해 봐.
스트레프시아데스 : 이렇게 하는 거예요. 내가 불려가기 전, 다른 재판을 하고 있는 사이에 달려가서 목을 매지요.
소크라테스 : 바보 같은 소리.
스트레프시아데스 : 천만에, 그게 아녜요. 내가 죽으면 아무도 기소하지 못 한다 이겁니다.
소크라테스 : 잠꼬대 같은 소리. 꺼져! 이제 가르치는 것도 진저리난다!
- 아리스토파네스 <구름>
홍보람 S · 논술 선임연구원 nikehbr@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