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절감·삶의 질 개선” vs “근로시간만 늘어날 것”

[Focus] 22년만에 부활되는 서머타임제 ‘得일까 失일까’

정부가 내년 4월부터 서머타임(Summer Time) 제도를 시행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서머타임은 평소보다 해가 떠 있는 시간이 긴 여름철 사람들의 활동시간을 인위적으로 한 시간 앞당기는 제도로 ‘일광절약시간제’라고도 불린다.

정부는 이 제도를 도입하면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어 경제적 이득효과가 크고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근무시간만 늘어나고 경제적 효과도 별로 없을 것이라는 비판적 의견도 나오고 있다.

과연 서머타임은 우리 경제와 국민의 삶에 득(得)일까,실(失)일까?

⊙ 서머타임은 어떤 제도?

서머타임은 낮의 길이가 긴 여름철(통상 4∼10월)에 한해 표준시를 한 시간 앞당기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내년 4월1일부터 서머타임을 실시한다고 하면 4월1일 새벽 1시를 2시로,아침 7시를 8시로 조정하는 식으로 실시된다.

즉,평소의 오전 7시가 서머타임 실시로 오전 8시가 되기 때문에 아침엔 한 시간 더 일찍 일어나야 하고 출근도 한 시간 더 빨리해야 한다.

반면 오후 퇴근시간은 한 시간 더 빨라져 해가 저물 때까지 여유시간이 더 늘어나게 된다.

서머타임 제도를 처음 제안한 것은 미국의 벤자민 플랭클린이다.

플랭클린은 1784년 전기를 사용하지 않던 당시 주요 조명기구인 양초를 절약하기 위해 낮 시간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며 이 제도를 도입하자고 했다.

이후 1916년 독일과 영국이 도입했고 2차 오일쇼크 때인 1981∼1984년 당시 유럽공동체(EC) 회원국을 중심으로 확산됐다.

현재 서머타임은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미국,캐나다,브라질,호주 등 전세계 77개국에서 실시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에서는 우리나라와 일본,아이슬란드 등 3개 국가만 도입하지 않고 있다.

아이슬란드가 백야 현상으로 도입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와 일본만 실시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지금은 시행하지 않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과거 이 제도를 도입했던 적이 있다.

광복 직후인 1948년 처음으로 서머타임제가 도입됐다가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로 1961년 폐지됐다.

서울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1987년과 1988년에도 시행됐지만 역시 국민들의 생활리듬이 흐트러지고 근무시간이 연장된다는 불만이 커지면서 1989년 폐지됐다.

1997년에도 서머타임 도입이 논의됐지만 성사되지는 못했다.

⊙ 에너지 절감,삶의 질 개선 효과 ‘톡톡’

서머타임을 시행할 경우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효과는 에너지 소비절감이다.

평소보다 한시간 빨리 활동하기 때문에 무더운 낮 시간대 근무가 줄어 냉방 및 전력 사용량을 줄일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선진국형 라이프스타일’을 즐길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서머타임 도입으로 퇴근시간이 평소보다 한 시간 빨라지기 때문에 퇴근 후 여가활동을 즐길 시간 여유가 많이 생긴다는 점에서다.

예컨대 표준시 기준으로 일출이 오전 5시22분,일몰은 오후 7시53분인 7월15일의 경우 서머타임을 도입하면 밤 8시53분이 돼야 해가 저문다.

오후 6시에 퇴근한다고 치면 해가 지기까지 약 3시간의 여유가 있어 운동,영화관람 등을 할 수 있는 셈이다.

이밖에 평소보다 밝을 때 퇴근할 수 있기 때문에 교통사고 위험을 줄일 수 있고 퇴근 후 음주 등이 줄어들면서 밤 시간대 범죄를 줄이는 부수효과도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렇다면 서머타임 도입으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은 얼마일까.

정부로부터 용역을 의뢰받은 서울대 경제연구소,한국개발연구원(KDI),에너지경제연구원 등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내년 4월부터 9월까지 서머타임을 시행할 경우 경제적 이익은 최대 1362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용 측면에서는 국제항공 스케줄 조정 및 금융 전산망,행정정보망,각종 IT인프라 구축 등에 210억원이 들겠지만 연간 전력소비량이 0.13∼0.25% 감소해 약 341억∼653억원의 에너지 절감 효과가 생기고 교통사고 감소 등에 따른 808억∼919억원 비용절감 효과도 있을 것으로 추산됐다.

정부는 여기에 덧붙여 국민들의 여가활동 증가에 따른 소비진작 효과도 클 것으로 기대한다.

이와 관련,에너지경제연구원은 2007년에 내놓은 보고서에서 서머타임 시행으로 영화관람,외식,쇼핑,국내관광 등이 늘어나 2조원의 경기진작 효과가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아

그러나 이같은 기대와 달리 경제적 이득이 생각만큼 크지 않다는 분석결과도 있다.

실제로 올해 서머타임 연구용역을 맡은 KDI,에너지경제연구원 등은 2007년에 내놓은 보고서에선 서머타임 도입으로 전력 사용량 감소에 따른 경제적 이득이 800억∼9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를 입증할 근거는 미흡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당시 호주가 일부 지역에서 서머타임 제도를 도입했지만 에너지 절감효과가 거의 없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서머타임이 실시됐던 1987∼1988년에 가계 전력소비가 줄었다는 증거가 없다는 게 당시 보고서 내용이었다.

특히 서머타임 도입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근무시간만 늘어나는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서머타임이 도입돼 퇴근시간은 앞당겨지겠지만 근무시간이 끝나면 곧바로 퇴근하는 선진국과 달리 잔업,초과근무가 많은 국내 기업 및 관공서 특성을 감안하면 정시 퇴근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다.

서머타임 도입으로 국민들의 혼란이 클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실제 서머타임을 도입했던 1987년의 경우 시행 첫날 시계를 조정하지 않은 탓에 회사에 지각하는 근로자가 속출하는 현상이 빚어지기도 했다.

아울러 유흥·서비스업 등 일부 산업이 받을 타격도 우려된다.

이전 같으면 퇴근 후 늦은 밤까지 술을 마시는 사람이 많겠지만 서머타임 도입으로 해 지는 시간이 늦춰지면서 술을 먹는 경우가 줄 것이기 때문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서머타임을 도입했던 1987년 술 소비는 1년 사이 2.3% 감소했고 유흥업 매출도 30% 가량 줄어들었으며 밤 9시 이후 택시승객도 3∼5% 감소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지금 제기되는 반대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오는 10월까지 시행 여부를 최종 결정할 방침”이라며 “전세계적인 저탄소·녹색성장 추세와 소득수준에 걸맞는 삶의 질 향상 등을 감안할 때 서머타임 도입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이태명 한국경제신문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