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국민생활에 불편주고 유지비용도 많이 들어”

반 “인감제 만큼 신분 확인할 안전한 장치 없어”

인감증명제는 이제 폐지되는 게 바람직한가.

거래 당사자의 본인 여부를 확인하는 제도로, 1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인감증명제도의 폐지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정부가 내놓은 ‘인감증명제도 개편방안’은 인감증명 요구 사무를 올해 안에 60% 줄이고, 앞으로 5년 안에 제도 자체를 완전히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한다는 게 골자다.

정부 쪽에서는 인감증명제 폐지를 계기로 각종 거래관계때 일일이 인감증명을 제출해야 하는 국민의 불편과 연간 4500억원에 이르는 인감제도 운용 비용이 줄어들고, 인감으로 인한 사건·사고나 법적 분쟁 또한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다.

이들은 “매년 약 4000만통의 인감증명서가 발급되지만 연평균 인감 사고 건수는 190여건에 지나지 않는다”며 “정부 방안은 혼란과 시행착오만 일으킬 게 뻔하다”고 지적한다.

일각에서는 인감증명제가 폐지될 경우 거래관계의 위조나 조작 문제가 기승을 부릴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게다가 한나라당까지 “이번 발표에 당 측 건의 내용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며 인감증명제 폐지 안에 반대하고 나서 주목된다.

인감 폐지문제는 지난 2006년에도 논의됐지만 개인정보 유출 등의 논란을 빚은 끝에 무산된 바 있다.

물론 정부는 내년부터 ‘전자위임장’ 제도를 도입하고 인감증명을 대신할 ‘본인서명 사실확인서’를 발급하는 등 다양한 대체수단을 활용할 계획이다.

문제는 이런 수단으로도 과연 거래의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인감증명제 폐지를 둘러싼 논란을 분석해본다.

⊙ 찬성 측, “국민생활에 불편 끼치고 유지비 또한 엄청나게 들어”

인감증명제 폐지에 찬성하는 쪽에서는 “1914년 조선총독부가 조선에서 일본인의 경제활동을 합법적으로 보호하고,조선인의 경제활동을 통제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가 아직까지 시행되고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국민생활에 큰 불편을 주고 유지비용 또한 엄청나다는 점이라고 꼬집는다.

국민들의 인감증명 발급 수수료가 한 해 2500억원에 이르며, 전국 3850개 읍·면·동 사무소의 발급 시스템을 유지하고 인건비를 지급하는 데 연간 2000억원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게다가 현행 간접증명방식은 인감제도 순기능의 하나인 인감의 진정성에 대한 확인 기능이 크게 떨어질 뿐아니라 위·변조 가능성에 노출돼 있어 법적 분쟁도 자주 일어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특히 “인감제도를 시행 중인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대만 뿐이며 미국 유럽 등은 사인제도와 공증제도를 도입하고 있다”며 도장은 본인 서명으로 계약을 매듭짓는 국제 관행과도 어긋나며 인감증명제는 외국인의 국내 진입에 장벽이 될 수있다고 강조한다.

⊙ 반대 측, “신분 확인 위해 현행 인감제 만한 수단 찾기 어려워”

이에 대해 반대하는 쪽에서는 “매년 약 4000만통의 인감증명서가 발급되지만 연평균 인감 사고건수는 190여건에 지나지 않는다”며 이는 인감증명이 얼마나 안전한 지를 그대로 입증해주고 있다고 강조한다.

인감제도를 폐지하면 본인 신분을 확인하기 위한 별도의 제도가 민간에 위임돼야 하지만 현 시스템으로는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한다.

이 경우 당장 공증인 제도를 활용해야 하지만 비용도 만만치 않고,접근성도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인감증명서 위·변조 사고는 거액이 오가는 부동산 매매 등의 거래에서 자주 발생하며 피해 당사자는 증명서를 잘못 발급한 공무원과 그 사용인,즉 국가나 지자체를 상대로 소송을 걸게 된다”며 인감제 폐지의 이유는 이러한 법률적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현행 인감제도에 문제점이 있다면 그 개선 방법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할 때이며 폐지를 논의할 단계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 인감제 폐지 앞서 대체수단에 대한 신뢰부터 확보해야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상사거래 관행도 바뀌어야 한다는 점에서 인감제도 또한 개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2008년에만 무려 4846만통의 각종 인감이 발급된 데서도 드러났듯이, 국민의 불편과 엄청난 사회적 비용부담을 초래하는 과도한 인감증명 요구를 줄여나가야 할 것임은 물론이다.

인감증명제를 만든 일본조차 전자인증제도로 전환하고 있는 상황을 이제는 우리도 적극 참고할 필요도 있다.

문제는 인감증명제 없이 거래를 안전성을 과연 어떻게 확보할 것이냐는 점이다.

지난 2006년에도 인감 폐지문제가 논의됐지만 국민들이 불안해한다는 이유로 결국 무산된 바 있다.

인감제 폐지에 앞서 대체 수단에 대한 국민적 신뢰부터 우선 확보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도 그러한 연유에서다.

부동산거래 등 필요한 경우에는 공증제도와 전자인증제도,서명제도 등으로 대체하는 방안부터 서둘러 강구해야 할 것이다.

당장 내년 말까지 도입키로 한 전자위임장 제도를 정착시키는 등 인감증명을 대체할 전자기반을 갖추는데 온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이런 대안들을 모색하면서 인감을 요구하는 법령과 사무의 필요성 등을 면밀히 검토해 불필요한 분야부터 점진적으로 폐지해나가야 할 것이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용어풀이

인감(印鑑)증명제

거래 당사자가 날인한 인장의 인영이 본인이 행정기관에 신고한 인감과 동일한 경우 거래 당사자의 본인임을 확인하는 제도로, 일본 강점기인 1914년에 도입됐다.공적·사적 거래관계에 있어 본인 의사를 확인하는 수단으로 100년 가까이 활용돼온 셈이다.인감을 신고한 사람은 전 국민의 66.5%에 이르며,지난해 전국 읍·면·동 등 3850개 기관에서 4846만통이 발급됐다.

전자인증제

인터넷 상의 공인인증서를 이용해 인감을 대신하는 것을 말하며 정부는 인감대체 수단으로 ‘전자위임장’과 ‘본인 서명 사실확인서’ 등을 도입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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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신문 7월 30일자 A4면

금융이나 부동산 거래 등 인감증명을 제출해야 하는 사무가 크게 줄어든다.

행정안전부는 29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제15차 회의를 열어 올해 안으로 인감증명 요구 사무를 60% 줄이고,5년 안에 제도 자체를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우선 중앙부처 209개 인감증명 요구 사무 중 재개발사업 동의 등 125개 사무의 인감증명을 신분증 사본이나 인·허가증 등으로 대체하기로 결정했다.

이 중 122개 사무는 올해 안으로,3개 사무는 내년 상반기 법 개정을 통해 폐지한다.

부동산 등기,자동차 이전 등록 등 이번에 폐지되지 않은 주요 재산권 관련 사무도 직접 기관을 방문하거나 계약서·위임장 등에 공증을 받으면 인감증명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

정부는 내년부터 5년 안에 ‘전자위임장제도’ ‘본인서명사실확인서’ 등 인감증명 대체 방안을 마련한 뒤 정착되는 대로 인감증명 제도 자체를 완전히 폐지할 계획이다.

정부는 또 서명을 본인 확인의 보조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내년까지 주민등록법을 개정해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 같은 신분증에 서명 등록을 권장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정부는 4500억원에 달하는 인감증명 제도 운용비용을 줄이고,위·변조 등 인감증명 관련 사건·사고를 없앨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발생한 인간증명 관련 사고는 914건이다.

이재철 한국경제신문 기자 eesang6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