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대기업의 방송 진출 허용놓고 대립… 여·야 몸싸움속 국회 통과

미디어 관련법이 지난 22일 국회를 통과했다.

이 과정에서 여야 의원들 사이의 고성과 욕설,몸싸움이 펼쳐지면서 국회는 또 한바탕 난투극을 벌였다.

국회의원들이 스스로의 권위와 인품을 깎아내리는 언행을 하면서까지 미디어법을 두고 대립한 배경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 미디어 관련법의 내용

[Focus] 국회가 또 난장판이 됐다고요?… 미디어법, 무슨 문제 있기에…
한나라당은 지난해 12월 신문이나 일반 기업들도 방송을 겸영할 수있도록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 미디어법을 국회에 제출했다.

매체 간 장벽을 허물어 미디어 환경이 급격히 변화하는 추세를 반영하자는 취지였다.

특히 방송법은 군사독재 시절인 5공화국 때 구축된 이후 큰 틀의 변화 없이 계속 이어져 오고 있는 게 현실이어서 특정 3개 방송사만 지상파 방송을 해온 독점을 깨자는 것이었다.

IPTV(인터넷TV) 육성도 필요했다.

국회에서 논란이 된 미디어 관련법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신문법이다.

1980년 신군부 시절 성립되었던 우리나라 과거 신문법은 신문사가 방송사를 함께 운영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 법은 방송 시장이 KBS MBC 등으로 독점화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따라서 방송 시장을 정상적인 산업구조로 돌려놓기 위해서 신문도 방송을 겸영할 수있도록 한 것이 신문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이다.

신문법에 이어 여야 간 가장 첨예한 대립을 낳은 법안은 방송법 개정안이었다.

한나라당이 제출한 방송법 개정안은 방송 산업에 존재하던 진입장벽을 개방함으로써 산업 자체의 성장을 도모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목표 달성의 새로운 주체가 될 잠재적 진입자인 신문사와 대기업의 방송사 지분 소유를 어디까지 허용하느냐를 규정하는 데 있어서 지상파의 경우 10%,종합편성 및 보도채널의 경우 30%까지 허용하는 것으로 법안이 수정되었다.

거대 신문사나 대기업이 방송에 진출할 경우 여론 독과점이 발생할 것이라는 야당의 반발을 우려해 구독률 20% 이상의 신문사는 방송을 못하도록 하고 시청점유율 30% 이상인 방송사는 규제한다는 규정을 뒀다.

지상파와 보도전문 채널의 지분 제한 한도가 여야 협상 과정에서 축소되면서 규제완화라는 당초 입법 취지를 살리지 못한 '반쪽짜리' 개혁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29년 만의 시장 진입장벽 제거라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마지막으로 쟁점이 된 것이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사업법,즉 IPTV법이었다.

다른 법안이 개정 법안인 데 반해 이 법안은 인터넷 미디어 환경에 맞춰 새로운 법을 제정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쟁점이 되었던 종합편성채널과 YTN과 같은 보도전문채널에 대한 대기업과 신문사의 지분소유는 49% 한도 내에서 이뤄지도록 했다.

이 같은 변화로 신문사와 대기업의 사업 진출은 가능해졌지만,어느 한쪽도 독자적으로는 방송사를 소유,경영할 수는 없도록 했다.

⊙ 정치 갈등의 배경

이런 내용을 놓고 야당인 민주당이나 기존 방송사들이 극도로 반발한 이유는 무엇일까.

반대론자들의 핵심적인 주장은 자본에 의한 여론 독과점이 우려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논란의 배경에는 현실적으로 방송의 기득권을 지키자는 것, 그리고 정치적 이념 논란도 가세해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KBS나 MBC 등은 공영방송이라는 이름 아래 지난 수십 년 동안 경쟁자 없는 독점적 지위를 누려왔다.

여기에 민영방송인 SBS가 가세해 이들 3개 방송사가 방송 시장을 거머쥐어왔던 것이다.

"방송 시장에도 다양한 언론이 출현해야 한다"는 것이 이번 미디어법 개정의 기본 취지였다.

다시 말해 누구라도 다양한 표현 매체를 만들 수 있고 이를 통해 언론의 자유를 향유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누구나 공론장으로 나와서 독자와 시청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언론 자유법에 야당이 반대하고 나선 이유는 신문사들이 방송에 진출할 경우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보수우파적 논조인 신문사가 방송 시장에까지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는 진보좌파 진영의 우려 때문이기도 했다.

이 같은 주장은 성립되는 것일까.

야당이 반발하는 배경에는 KBS나 MBC 등 방송사들이 대체로 진보 좌파적인 논조를 보여왔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광우병 파동을 비롯한 많은 국정 아젠다에서 방송매체들은 대체로 좌파 혹은 진보적 색채를 보여왔고 이는 야당에 유리하게 작용해왔다.

바로 이 때문에 일종의 정치적인 자기편 지키기 식의 논쟁이 미디어법을 둘러싼 갈등의 본질이기도 했던 것이다.

야당의 시각에서 보자면 보수적 논조인 대형 신문사들이 방송시장에까지 진출할 경우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이 좁아질 것을 두려워해 갈등을 증폭시켰던 셈이다.

⊙ 공론장에 자유를

그러나 정치적 계산에 따라 갈등을 빚는 것을 어느 정도 인정하더라도 최소한 언론 자유라는 기본 원칙에 입각한 갈등이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일 것이다.

이런 기본 원칙에서 보자면 방송시장의 자유를 확대하는 것은 이를 반대할 근거가 없다.

만일 누군가가 이런저런 이념이 옳다고 판단해서 국민들에게 이를 강요한다면 이는 언론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된다.

언론의 자유는 초월적인 판단능력을 가진 누군가가 이 지식은 국민에게 이롭기 때문에 허용하고 이 지식은 국민들에게 좋지 않은 지식이기 때문에 불허한다는 식의 독재적 상황을 배척한다는 것을 기본 가치로 한다.

미국 헌법을 기초한 토머스 제퍼슨은 "인간의 간섭이 진리의 자연적인 무기인 자유로운 주장과 토론을 무장해제 하지 않는다면 그 갈등에서 두려워할 아무 것도 없고 오류가 서로 자유로이 반박하도록 허용될 때 오류는 더 이상 위험한 것이 아니다"며 언론의 자유와 이를 통해 공론장이 형성된다고 갈파하고 있다.

야당이 주장하는 독점이 형성되어 있는 곳은 신문이 아니라 오히려 대중 영향력이 큰 방송 시장에서의 독점이다.

더구나 이들 방송사는 치열한 경쟁을 벌여 시청자의 선택을 받은 결과의 독점이 아니라 오로지 주파수를 독점한 그런 악성 독점이라는 면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점도 미디어법 반대자들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 앞으로 전망

이번 미디어법 개정으로 시청자들은 더욱 다양한 뉴스와 정보 오락물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야당이 격렬하게 반대하면서 미디어법에 불필요한 규제가 많이 들어갔기 때문에 당장은 그 효과도 제한적일 것이다.

규제가 많아 방송시장에 진출하려는 기업들의 진입이 여전히 쉽지 않을 것이고 방송 3사의 기득권도 계속 남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방송 매체가 등장하고 시청자들의 선택권도 그만큼 늘어날 것이다.

박주병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b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