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구르 사태는 차별 대우에 불만 폭발

“서부대개발 성장 과실 한족이 독차지”
[Global Issue] 성장의 그늘… 中 소수민족 ‘55의 반란’
1989년 톈안먼 사태 이후 최악의 유혈시위가 일어난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수도 우루무치.

사태 발생 이후 첫 금요일인 지난 9일 위구르족과 한족 간 민족분쟁의 긴장은 이슬람사원으로 옮겨졌다.

중국 정부는 이슬람교도인 위구르족들이 금요 기도를 위해 모이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이슬람사원의 문을 닫도록 했으며, 이에 대해 위구르족은 강력 반발했다.

또한 중국 공안은 13일 우루무치에서 흉기를 들고 폭력을 휘두르던 위구르인 3명에게 총을 발사,2명이 사망하고 1명은 부상했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가 위구르인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고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55 반란'의 화약고 '신장과 시짱'

위구르 사태는 중국의 소수민족 문제를 되돌아보게 한다. 중국은 '1+55'의 국가다.

'1'이란 인구의 92%를 차지하는 한족을 말한다.

'55'는 중국에 존재하는 소수민족의 숫자다.

인구비율로는 적지만 55개 소수민족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지역은 중국 영토의 65%에 해당한다.

이들은 중국 정부 입장에선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다.

도화선은 국경선을 맞대고 있는 15개 나라로 연결돼 있다.

티베트족은 네팔과 인도,위구르족은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인들과 정신적으로 동일한 뿌리를 갖는다.

터키 산업장관이 9일 중국산 제품 불매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위구르족과 인종적으로 동질감을 갖고 있어서다.

조선족이나 몽골족처럼 이웃한 독립국가와 같은 언어와 문화를 갖고 있는 종족도 있다.

소수민족 반란의 선봉은 서부지방에 위치한 신장과 시짱이다.

신장의 위구르족이나 시짱의 티베트족은 모두 중화인민공화국 설립과 맞물려 독립국가의 깃발이 꺾였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위구르족의 독립 움직임은 지난 수백년간 지속돼 왔다.

아랍인 외모를 하고 있는 위구르족은 종교 문화 언어 등 모든 면에서 중국인과 이질적이다.

1759년 청나라 지배를 받기 시작한 이래 42차례에 걸쳐 독립운동을 벌였고 1865년에는 봉기로 잠시 독립을 이루기도 했다.

국공내전의 틈을 타 1933~1934년,1943~1949년 독립국가인 동투르키스스탄을 건립했으나 1949년 중국의 지배 체제에 완전히 편입됐다.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한 이듬해인 1950년 10월 중국 인민해방군이 진주,강제 합병한 티베트 역시 독립 요구가 끊이지 않는다.

전환점은 1959년 3월의 대규모 폭동이었다.

수천명이 희생되고 최고 지도자 달라이 라마는 인도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

티베트 망명정부는 이후에도 프랑스 등의 지지에 힘입어 독립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작년만 해도 208명이 숨지는 유혈사태가 발생했다.

나머지 소수민족 중에도 일부는 중국에 동화돼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는가 하면, 일부는 이따금 한족과 충돌하며 야성을 보이기도 한다.

⊙ 우대냐 차별이냐 논란

소수민족 정책과 관련해 중국 내에선 상반된 시각이 존재한다.

한족들은 소수민족을 지나치게 우대해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올해 충칭시에선 대학입학 시험을 본 31명이 소수민족이라고 속였다가 적발돼 합격증을 반납했다.

소수민족에겐 일정한 가산점이 붙기 때문에 핏줄을 속였던 것이다.

허저족 등 인구가 극히 적은 종족은 출산장려금을 받는다.

중국 '민족구역 자치법'에는 자치지역의 경제 발전과 투자 확대 등을 위해 별도의 감세가 가능하도록 했다.

'양소일관(兩少一寬)'이란 정책도 있다.

이는 소수민족 범죄자는 '처벌을 적게하고 처리를 관대히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소수민족들의 머리속엔 차별이란 단어가 따라다닌다.

예컨대 '부(副)는 되고 정(正)은 안 된다'는 콤플렉스다.

2인자까지가 최고로 올라갈 수 있는 자리란 말이다.

실제 자치주의 성장은 소수민족이지만, 성의 당서기는 모두 한족으로 구성돼 있다.

중국 공산당원 수 7593만명 중 소수민족은 인구비율에 못 미치는 494만명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경제 발전은 한족과 소수민족 간 빈부 격차를 확실히 벌려놨다.

대표적인 게 서부대개발이다.

우루무치의 1인당 평균소득은 2003년 9823위안에서 2007년 1만6860위안으로 70% 이상 늘었다.

하지만 거대기업은 대부분 한족이 소유, 위구르인은 주변인에 머물고 있다.

이 지역의 경제 성장은 '서부대개발' 정책에 의해 인프라, 석유, 자원 개발 등의 분야에 중국 정부가 대대적인 규모로 투자를 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중앙 권력과 강하게 연계되어 있는 한족들이 성장의 과실을 독차지하는 이유다.

게다가 돈이 없으니 소수민족의 자녀는 좋은 학교에 갈 수도 없고, 가난은 대물림된다.

차별받는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중국정부는 소수민족 거주지역의 안정을 위해서 경제 발전을 핵심 과제로 삼고 있지만 그 정책이 도리어 시위의 동력을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 공산당의 철칙은 '독립 불가'

중국공산당은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확보했다는 데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신장과 시짱지역은 국토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게다가 이들 지역엔 무궁한 자원이 묻혀 있다.

신장위구르자치주만 하더라도 중국이 생산하는 원유의 3분의 1을 공급한다.

희귀 자원의 보고이기도 하다.

중국 정부가 이런 땅을 소수민족에게 내줄 리가 없다.

중국 지도부는 한족들을 소수민족 거주지로 대거 이주시켜 동화시키는 정책을 펴고 있다.

그러나 고유 문화를 잃지 않고 있는 소수민족들의 민족의식은 오히려 높아지는 추세다.

소수민족 밀집지역에서 한족이 밀려 들어오고, 한족의 지배력이 강화되면서 소수민족의 소외감이 증폭돼 결국 소수민족 정체성 강화로 귀결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 정부가 소수민족을 달래고 그들을 통합할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은 많지 않다.

다양한 민족에 중국인으로서 정체성을 갖도록 할 수 있는 새로운 비전이나 가치를 제공하는 길이 협소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공산주의는 하나의 이념으로서 정체성을 상실한 지 오래되었으며 한족의 민족주의적 성향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

이번 신장 사태도 중앙 정부와 위구르족 사이의 문제가 아닌 한족과 위구르족 사이의 인종 갈등 양상을 강하게 보였다.

광둥과 우루무치에서 위구르족을 테러한 것은 경찰과 군인이 아니라 바로 한족 시민들이었다.

유일한 대안이라 할 수 있는 경제 발전은 오히려 소수민족의 소외감을 키웠을 뿐이다.

결국 중국 정부로서는 소수민족을 경찰력을 동원해서라도 압박하는 수를 쓸 수밖에 없다.

이번 우루무치 사태를 수습하는 데 중국 정부는 사망자에겐 20만위안의 보상금을 지급하고 1680명의 부상자 전원에게 의료비를 전액 지급하기로 했다.

민심을 추스르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한편으로 후진타오 주석을 비롯한 중국 당국은 시위 주동자들을 사회 불안 세력으로 규정해 사형 등 엄벌에 처할 것이라고 천명하고 나섰다.

중국 경제가 발전하고 민주화가 진전될수록 소수민족 문제는 뇌관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조귀동 한국경제신문 기자 claymo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