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 사회의 똑똑한 군중은 변화를 주도하는 핵심세력”

[실전 고전읽기] 25. 하워드 라인골드「참여군중」
"미래는 이미 우리에게 당도해 있다. 다만 우리가 그 사실을 잘 모르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확연히 눈치채지 못할 뿐 미래는 이미 우리 생활 곳곳에 스며들고 있다는 앞의 경구대로 현재의 사회는 지난 수천 년의 과거와 질적으로 다르다.

그 차이를 느끼고 싶다면 당신의 일상을 해부해 보면 된다.

요새 도토리 선물이라는 말에 참나무 숲을 떠올리는 사람은 별로 없다.

만에 하나 있다 하더라도 주변인들로부터 야만인 취급을 당하고야 만다.

21세기의 도토리는 참나무에 열리는 도토리가 아니라 싸이월드에서 주고받는 도토리이기 때문이다.

'국민 싸이'라는 명칭을 획득할 만큼 너나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싸이월드에 가입해서 자신의 싸이 거실을 치장하고 이웃집에 들락거린다.

간혹 '파도타기'를 통해 사돈의 팔촌에게까지 걸음을 옮기기도 한다.

인기 관리를 위해서는 싸이가 필수라는 연예인들은 싸이에서 자신의 근황을 알리고,심지어 정치인들도 싸이를 운영하며 유권자들과 1촌을 맺고 댓글을 주고받는다.

뭐,싸이가 싫다면 다른 매체들도 얼마든지 많다.

뜨거웠던 싸이 열풍이 잠잠해질 무렵 한국 사회에 다시 불어 닥친 네이버,이글루 등의 블로그 열풍은 강호의 '숨은 고수'들을 세상에 알려주었다.

블로그는 갑남을녀가 사이버 공간에서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자신만의 집으로 기능하면서 그네들의 취미와 관심사를 소소하게 알려주기도 하지만,탄탄한 내공을 뽐내는 숨은 고수들의 깊이 있는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대학 강의실에 앉거나 저명한 세미나에 참석하지 않고서도 그냥 클릭 몇 번만으로 방대한 지식과 예리한 통찰력을 자랑하는 블로거들을 접하다 보면,기존 사회의 정렬된 권위 체계가 서서히 허물어지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몇 년 사이 유행을 타고 있는 UCC는 무궁무진한 소재를 통해 다시 우리를 즐겁게 해주고 있다.

이러한 네트워크 환경의 변화는 개인과 사회에 서서히 변화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정보통신 기기를 활용하는 이상 더 이상 고립된 개인은 있을 수 없으며,사이버 세계에 커뮤니티 공간을 만들어 결속을 다지고 서로 정보를 알려주는 각양각색의 집단들은 그 이전의 모임들과 성격이 다르다.

미국의 테크놀러지 전문가인 하워드 라인골드(Howard Rheingold)는 이러한 '작지만 거대한' 변화를 예리하게 포착하여 '스마트 몹'이라는 책에 담아내었다.

2002년 10월에 출간된 저서 '스마트 몹(Smart Mobs)'은 원제를 그대로 직역하자면 '영리한 군중'이 되겠지만 번역의 미학을 살려 '참여군중'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소개되었다.

번역가가 '영리한 군중'을 '참여군중'으로 번역한 이유는,21세기의 영리한 군중은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변화를 주도해 나가는 핵심 세력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군중은 언론이나 기업이 만들어내는 여론이나 홍보에 휘둘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상부의 지시에 따라 수동적으로 움직여 왔다.

하지만 PDA · 휴대폰 · 메신저 · 인터넷 · 이메일 등 첨단 정보통신 기술을 구비한 사람들은 더 이상 소극적 집단으로 뒤처져 있지 않고 스스로 여론을 형성하고,기업의 마케팅에 직접 참여하는 새로운 성격의 사회 세력으로 발돋움하였다.

첨단 정보통신 기술을 바탕으로 긴밀한 네트워크를 이루어 정치 · 경제 · 사회 등의 제반 문제에 참여하는 '똑똑한' 군중은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사회의 각종 사안에 직접 참여해 의견을 제시한다.

가끔 현실 정책이 자신들의 주의에 심각하게 위배되는 경우에는 거리로 뛰쳐나와 실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2001년 필리핀에서 에스트라다 대통령이 하야한 결정적 이유는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 때문이었다.

"검은 옷을 입고 에피파니오 데 로스산토스 거리로 가라(Go2EDSA,Wear black)"라는 내용의 문자 연락은 백만 명이 넘는 군중이 집결한 정치 집회를 가능하게 하였다.

첨단 통신기기와 신속하고 효율적인 조직망을 활용해 여러 영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군중의 출현은 사회의 판도를 확연하게 바꾸었다.

이처럼 스스로를 조직화하는 새로운 유형의 사회집단 출현은 기존의 체계와 권위가 붕괴되는 신호탄이다.

권력 역학의 근본적 변화를 가져오는 '참여군중'이 저널리즘에까지 참여하면서 언론 또한 '하이브리드 언론'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베트남 전쟁이나 천안문 사태를 알리는 사진은 전문 사진기자가 촬영하였으나 최근 이란 사태는 이란의 일반 군중들이 스스로 세계에 알렸다.

이란 정부의 폭력적 시위 진압으로 인한 대학생 네다의 죽음 또한 누군가의 휴대전화 동영상으로 촬영된 것이다.

'참여군중'의 저자 라인골드는 자신은 이러한 변화를 일본의 시부야 거리에서 절실하게 체감(Shibuya Epiphany)하였다고 한다.

시부야 거리의 '엄지족'을 관찰하면서 새로운 미래가 도래하고 있음을 느낀 저자는 총 8장으로 이루어진 '참여군중'을 집필할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참여군중' 안에서 라인골드는 기술과 사회의 변화를 통해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려면 개인의 책임감과 열린 의사소통,재빠른 사고능력뿐만 아니라 사회의 신뢰와 협동심 또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라인골드는 모든 영리한 군중이 반드시 현명한 군중은 아니라는 점을 환기하면서 "도구를 과제로 착각하지 말라"는 충고를 한다.

군중의 힘은 인터넷에서의 토론이 아니라 현실에서의 실제적 행동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사이버 담론이 생산적인 정치적 토론이 되기 위해서는 감정적이고 인신공격적인 발언 대신,논리적 주장을 하고 자신의 주장을 논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라인골드는 IT강국 한국의 군중문화에도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인터넷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라인골드가 한국의 군중문화에 관해서 논평하는 인터뷰 동영상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동영상의 마지막에서 라인골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단순히 소란스러운 무리에 머무르지 않고 더욱 영리해질 수 있을까요?(How can we make sure that smart mobs become smarter rather than more mob-like?)"

☞ 기출 제시문 (서강대학교 2004학년도 정시 논술)

최근에 나타난 현상인 블로그(blogs: weblogs에서 유래)는 자체 발표하는 웹 검색 일지이며,일종의 개인적 온라인 일기이다.

블로깅 소프트웨어 덕분에,누구든지 간단한 웹사이트를 쉽고 자주 갱신할 수 있게 되었다. (…중략…)

블로그는 규칙적으로 갱신되고,좋아하는 사이트로 이동할 수 있는 링크를 포함하며,하나의 주제나 관심거리에 집중하고,언급된 사이트에 대한 논평을 포함한다.

블로그는 때로는 일기 같고 때로는 팬이 제작한 잡지 또는 하부 문화에 대한 색인(索引) 같다.

거의 모든 블로그가 관련있거나 좋아하는 블로그의 목록을 포함하고 있으며,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게 해 주는 링크에 대해 '토론한다'.

비슷한 관심거리에 관한 블로그의 무리가 자체 조직되고 취향이 비슷한 사람끼리 모인 공동체가 토론을 통해 자발적으로 생겨난다. …(중략)…

블로그를 하는 사람들은 쟁점들을 서로 다른 대중을 위해 재구성하고,모든 사람들이 발언할 기회를 갖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다.

우리들은 가상 공간을 통하여 직업적인 작가,예술가,방송 언론인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이제는 출판업자나 방송인이 될 수 있다.

다자간 통신 매체는 대중적이고 민주적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중략…)

가상 공간에서 우리들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하여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알 필요도,예의를 지키며 조리있게 대화해야 할 필요도 없다.

유즈넷의 역사가 그 증거이다.

혐오스럽고 짜증나는 의견을 내놓는 사람들,거칠고 속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또는 의사 전달 능력이 거의 없는 사람들 때문에 토론이 불쾌해지곤 한다.

그들만 아니었다면 대다수 참여자들에게 유익한 토론이 되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관심에 대단히 집착하고 그것이 부정적인 관심이라 하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익명성이라는 방패를 사용하여 자신들의 호전성,편협함,가학적인 충동을 마음껏 표출한다.

온라인상의 대화에서 싸움을 즐기는 사람,약한 자를 괴롭히는 사람,고집불통,돌팔이,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그리고 괴짜의 존재로 말미암아 공유지(共有地)의 딜레마라는 고전적인 비극이 발생한다.

만약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관심사에 도달할 수 있는 공개된 통로를 이용한다면,과다한 무임 승차객들이 그 대화를 가치있게 만드는 사람들을 몰아내는 셈이 될 것이다.

-하워드 라인골드 「참여 군중」

홍보람 S · 논술 선임연구원 nikehbr@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