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제시문을 읽고 문제에 답하시오. (세 문제 모두 답하시오. 시험시간 3시간 30분)
가 연민은 우리가 고통 받는 자의 입장에 서서 느끼게 되는 감정이다.
이 감정은 미개인에게는 형체가 뚜렷하지는 않지만 강렬하게 나타나고,문명인에게는 그 윤곽이 선명하지만 미약하게 나타난다.
연민은 고통을 목격하는 동물이 스스로를 고통 당하고 있는 동물과 동일시하면 할수록 더욱 강해질 것이다.
그런데 이 동일시하는 성향이 이성이 지배하는 상태보다 자연 상태에서 훨씬 깊었으리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기심을 낳게 하는 것은 이성이다.
그리고 이성을 반추하는 것은 이기심을 강화시킨다.
이성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게 하여 자신을 흔들어 놓거나 고통스럽게 하는 외부의 모든 것으로부터 격리시켜준다. (…중략…)
미개인에게는 이러한 훌륭한 재능이 없다.
이성적이지도 현명하지도 못한 그는 바보스럽게도 항상 인간 본연의 감정에 따라 움직인다. (…중략…)
연민이 하나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연민은 각 개체 안에 있는 자기애의 수위를 조절함으로써 종 전체가 보존될 수 있게 해주는 감정인 것이다.
남이 고통 받는 모습을 보고 깊이 생각하지 않고 바로 나서서 도와주게 되는 것은 연민 때문이다.
자연의 상태에서는 연민이 법과 도덕과 미덕을 대신해주며,이때에 아무도 연민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저항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는 이점이 있다.
생존에 필요한 것을 다른 곳에서 발견할 가능성이 있는 한,건장한 미개인이 약한 어린 아이나 노인이 어렵게 획득한 식량을 강탈하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 연민이다.
"남이 해주길 바라는 대로 남에게 행하라"는 합리적이고 숭고한 정의의 원리 대신에,그다지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더 유용하다고 할 만한,인간은 본래 선하다는 믿음에 기초한 또 다른 원리인 "타인의 불행을 되도록 적게 하여 너의 행복을 이룩하라"를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품게 하는 것이 연민이다.
요컨대 인간이 악을 행했을 때 느끼게 되는 혐오감의 근원은 교묘한 논리에서보다는 오히려 자연의 감정 속에서 찾아야 하며,이는 교육의 여러 원칙과는 별개로 찾아야 하는 것이다.
이성을 통해 덕을 얻는 것이 소크라테스나 그 부류 사람들의 덕택일지는 모르겠지만,인류의 생존이 개인들의 추론에만 달려 있었다면 종으로서의 인간은 오래 전에 사라졌을 것이다.
나 심리학적 -좀 더 엄밀히 말하면 정신분석학적- 연구는 인간성의 가장 깊은 본질은 원초적 성격을 가진 본능적 충동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인간이 가진 충동은 모두 비슷하며,그 목적은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이 충동 자체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충동이 인간 공동체의 욕구 및 요구와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우리는 충동과 그 발현을 선과 악으로 구분한다.
사회가 악이라고 비난하는 충동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이기적인 충동과 잔인한 충동을 들 수 있다- 이 모두 이러한 원초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을 마땅히 인정해야 한다. (…중략…)
'악한' 본능을 변화시키는 것은 같은 방향으로 작용하는 두 가지 요인 -내적 요인과 외적 요인- 이다.
내적 요인은 에로티시즘 -가장 넓은 의미로 해석하면 사랑에 대한 욕망- 이 악한(이기적인) 본능에 행사하는 영향력이다.
'에로틱한' 요소가 섞여들면,이기적 본능은 '사회적' 본능으로 바뀐다.
우리는 남에게 사랑 받는 것을 커다란 이익으로 평가하는 법을 배우고,사랑받기 위해서라면 다른 이익은 기꺼이 희생해도 좋다고 생각하게 된다.
외적 요인은 가정교육이 행사하는 강박이다.
가정교육은 문화적 환경의 요구를 나타내며,성장한 뒤에는 그 환경의 직접적인 압력이 계속해서 외적 요인을 이룬다.
문명은 본능의 만족을 포기함으로써 얻어진 것이고 문명세계에 새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에게도 그것을 포기하도록 요구한다.
개인이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외적 강박은 끊임없이 내적 강박으로 대치된다.
문명의 영향은 이기적인 경향에 에로틱한 요소를 첨가하여 그것을 이타적이고 사회적인 경향으로 바꾸고 그런 변화는 계속 늘어난다.
결국 인간이 발달과정에서 느끼는 모든 내적 강박은 원래 -즉 '인류의 역사'에서 보면- 하나의 외적 요인에 불과했다고 가정할 수도 있다.
오늘날 태어나는 사람은 이기적 본능을 사회적 본능으로 바꾸는 경향을 어느 정도 유전적 소질로 갖고 있다.
이러한 소질은 조금만 자극을 주어도 이기적 본능을 사회적 본능으로 바꾼다.
본능을 더 많이 변화시키는 것은 개인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룩해야 하는 일이다.
이처럼 인간은 당면한 문화적 환경의 압력을 받을 뿐만 아니라 조상들의 문화적 역사에도 영향을 받고 있다.
다 코스타리카에서 조사를 하고 1983년 캘리포니아로 돌아온 생물학자 제럴드 윌킨슨은 조금은 섬뜩한 얘기를 보고했다.
그가 코스타리카에서 연구한 흡혈박쥐는 낮에 고목에 매달려 있다가 밤이 되면 짐승들을 찾아가 몰래 살갗에 작은 절개창을 내고 조용히 피를 빨아먹는다.
그러나 마땅한 대상을 찾지 못하거나 찾았다 해도 상대에게 들켜서 피를 빨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배를 자주 곯는 불안정한 생활을 한다.
노련한 박쥐는 열흘에 하루 꼴로 이러한 불행을 겪지만 어리고 미숙한 박쥐는 보다 자주 굶게 된다.
박쥐는 60시간 동안 피를 먹지 못하면 아사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다행히도 박쥐들은 하루 필요량 이상의 피를 빨아두었다가 잉여분을 다시 토해내서 다른 박쥐에게 줄 수가 있다.
이런 좋은 해결책이 있지만,박쥐의 처지에서 본다면 이것은 하나의 딜레마이다.
여분의 피를 서로 나누는 박쥐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 박쥐들보다 이익이다.
그러나 먹이를 얻기만 하고 주지 않는 박쥐가 가장 큰 이익을 얻으며,주기만 하고 받지 못하는 박쥐는 가장 큰 손해를 본다.
박쥐는 같은 장소에 여러 마리가 함께 서식하는 경향이 있는데,그들의 수명은 8년 이상으로 제법 길기 때문에 특정 상대와 여러 차례 게임을 반복할 기회가 있다.
통계적으로 볼 때,한 장소에 사는 박쥐들이 가까운 친족은 아니기 때문에 이들의 아량을 친족애로 설명할 수는 없다.
윌킨슨은 박쥐들이 맞대응 게임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과거에 피를 제공한 박쥐는 그 상대로부터 피를 보답 받는다.
남은 피를 주지 않은 박쥐는 다음에 피를 얻지 못한다.
박쥐들은 이 규칙을 성실하게 준수하는 것으로 보이는데,서로 털을 손질해 주는 행위는 아마도 이 규칙을 강제 이행하기 위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들은 서로의 깃털을 손질해 줄 때 피를 저장하는 위가 있는 부위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인다.
그 때문이라도 포식으로 불룩해진 배를 다른 박쥐에게 들키지 않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속임수를 쓰는 박쥐는 쉽게 적발된다.
라 어느 가을 들녘을 상상해 보라.
한 해 동안 땀 흘려 추수를 하고 나서 볏짚들을 들판에 쌓아놓았다.
볏짚 더미는 들쥐들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보금자리이다.
각 볏짚에 두 마리의 들쥐가 서식을 시작했다고 가정해보자.
쥐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한 부류는 같은 볏짚 내에 살고 있는 다른 쥐들을 돕는 이타적인 쥐들이며,다른 부류는 남을 도울 줄 모르는 이기적인 쥐들이다.
그림에서 세모는 볏짚을 나타낸다.
그 속에 그려진 조그만 동그라미는 각각의 볏짚 속에 서식하는 쥐들이다.
검은색은 이타적인 쥐를,흰색은 이기적인 쥐를 각각 나타낸다.
그리고 밑에 그려진 동그라미들은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 볏짚을 제거했을 때 각 볏짚에서 나온 쥐들 중 1세대인 부모세대를 제외한 번식 결과를 나타낸다.
두 마리의 이기적인 쥐들에 의해 점유되었던 첫 번째 볏짚에서는 두 마리의 이기적인 쥐들이 나왔다.
한 마리의 이기적인 쥐와 한 마리의 이타적인 쥐에 의해 점유되었던 두 번째 볏짚을 제거하자 거기서도 두 마리의 이기적인 쥐들만 나왔다.
반면 두 마리의 이타적인 쥐들이 서식하던 볏짚에서는 올망졸망 많은 수의 이타적인 쥐들이 나왔다.
이 모형은 개인선택과 집단선택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각 볏짚은 집단을 나타낸다.
볏짚 내부에서는 개인선택이 진행되었다.
두 번째 볏짚을 보면 이기적인 쥐들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쥐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타적인 쥐들이 모두 없어져버리고 말았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집단선택과정을 통해서는 이타적인 쥐들이 전체적으로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즉 이타적인 쥐들이 많은 집단(볏짚),정확히 말하면 이타적인 쥐들만 사는 볏짚에서는 더 많은 쥐들이 태어날 수 있었고,그렇지 않은 집단에서는 오직 두 마리의 쥐들만이 태어날 수 있었다.
각 볏짚에 이타적인 쥐들이 얼마나 많이 포함되어 있느냐에 따라 집단이 얼마나 번성하게 되는지가 결정되고,그 결과 전체적으로 이타적인 쥐의 비율이 증가할지 안 할지도 결정된다.
바로 이것이 집단선택과정이다.
⊙ 연세대학교 논술 출제 의도
이번 연세대학교 모의 논술 문제는 개인들이 모여 공동체를 구성하고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덕목의 하나인 이타심이 어떻게 형성되고 유지될 수 있는가를 토론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
만약 모든 개인이 이기적 태도로 살아가게 되면 사회의 구성이 힘들어지게 되거나 비록 사회가 구성된다 하더라도 수많은 갈등과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타심은 공동체 구성의 필수적인 요소로 간주된다.
하지만 이러한 이타심은 항상 동일한 근원을 갖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근원으로부터 유발될 수 있다.
이타심은 때로는 타인에 대한 동정심이라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의 발로이기도 하고,때로는 인간이 살아오면서 받은 교육과 사회적 압력의 결과이기도 하다.
또한 인간의 행동이 기본적으로 개인의 이익추구를 위한 것이라는 입장이 제기되면서 이타심의 근원이 이기심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주장도 제시되고 있다.
이 문제는 이타심에 대한 이러한 다양한 주장들을 비교하고 각 주장이 현실적으로 어떠한 적합성을 가지고 있는가를 따져볼 것을 요구한다.
수험생은 우선 제시문을 분석하면서 이타심에 대한 다양한 주장이 어떠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개인들이 이타심을 갖게 되는 동기는 무엇이며 이렇게 형성된 이타심이 어떤 특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분석하고 적절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기부행위라는 특정한 사회적 현상에 대해 제시문에서 보여준 다양한 이타심의 동기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힐 수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서는 이타심의 다양한 형태 및 근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생물계의 진화를 설명하는 이론모형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가의 여부를 묻고 있다.
작년에 비해 특이할 만한 변화는 없으나 문제 풀이 시간이 30분 늘어났고 2번 문항에서 논점을 현실과 결합하는 능력을 묻고자 한 유형이 새롭다.
[문제 1] (1) 제시문 [가] [나] [다]는 이타적 행위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을 하고 있다. (2)그 차이점을 비교 · 분석하시오. (30점 : 800자 내외로 쓰시오.)
⊙ 해제
(1) 제시문 [가] [나] [다]의 이타적 행위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
제시문 [가] [나] [다]에서는 인간 혹은 동물 사이에서 나타나는 이타적인 행위들의 동기와 그러한 행위의 작동방식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타적 행위를 유발시키고 활성화하는 조건들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설명을 내놓는다.
이렇게 동일한 '이타적인 행위'에 대한 설명들이 서로 달라지는 이유는 인간이나 동물의 본성에 대해 서로 다른 이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의 차이들이 결국은 각각의 제시문에서 '이타심'이라는 동일한 주제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지도록 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제시문 가]의 입장은 연민이라는 인간의 자연적인 감정에서부터 인간의 이타심을 발견하고 있다.
이때의 연민은 고통 받는 자의 입장에서 그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따라서 상대방에게 연민을 가지게 되면 타인의 고통이 곧 자기 자신의 고통이 된다는 것을 제시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제시문 가]에서는 연민이라는 자연 상태의 감정과 이성의 상태를 대비시키고 있다.
특히 연민을 통해 발현되는 이타심은 미개인들의 경우가 교육을 받고 이성적인 문명인의 경우보다 훨씬 강하다고 설명한다.
이글의 필자는 이타심이라는 감정이 약해지는 것이 이기심을 강화시키는 이성의 작용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문명사회가 이룩한 '남이 해주길 바라는 대로 남에게 행하라'라는 합리화의 과정에 대해서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또한 이타심에 대해서 필자가 위에서 말한 합리적인 원리들보다 인간의 연민이 더 유용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점을 보았을 때,필자는 이타심이 발휘되기 위한 조건으로서는 교육과 법,도덕을 통한 문명과 문화의 작용보다 자연적인 본래의 상태가 좋은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시문 나]는 이타심에 대해 정신 분석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인간성은 본능적인 충동이 가장 원초적인 형태이며 그러한 충동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때 이 충동 자체는 선하지도,악하지도 않다.
인간이 자기 자신의 이기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충동에 대해서 사랑에 대한 욕망이라고 할 수 있는 '에로티시즘'이라는 또 다른 충동이 개입하게 되면 인간은 자기 자신의 내적인 충동만을 충족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익을 희생하면서 타인으로부터 사랑을 받고자 한다.
특히 문명과 문화적인 압력을 받으면서 인간의 이기적인 경향은 '에로티시즘'과 합쳐지면서 이타적이고 사회적인 경향으로 바뀌어 간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제시문 나]의 입장에서 이타심은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욕구가 표현되는 것이라고 이해하게 된다.
[제시문 다]에서는 앞의 두 제시문과는 다르게 이타심과 이타적인 행위에 대해 '흡혈박쥐'라는 구체적인 예를 들면서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앞의 두 제시문과 마찬가지로 '이타심'이라는 핵심 주제의 입장에서 제시문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수험생은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정리하면서 제시문에 드러난 문제 상황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1) 박쥐는 60시간 동안 피를 먹지 못하면 아사 위기에 처한다.
(2) 박쥐는 하루 필요량 이상의 피를 빨아 두었다가 잉여분을 다시 토해내 다른 박쥐에게 줄 수 있다.
(3) 여분의 피를 서로 나누는 박쥐는 그렇게 하지 않는 박쥐들보다 이익이다.
(4) 먹이를 얻기만 하고 주지 않는 박쥐는 가장 큰 이익을 얻고,주기만 하고 받지 못하는 박쥐는 가장 큰 손해를 본다.
(5) 박쥐가 상대방에게 먹이를 주는 것은 친족애가 아니라 맞대응 게임이다.
위의 과정을 통해 이해한다면,박쥐가 친족관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에게 피를 나누는 행위를 하는 것은 상대방을 돕는 것이 곧 나중에 자신이 도움을 받게 되는 것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즉 이 제시문에서 박쥐들의 이타심은 곧 자기 자신을 위해 이득이 되기 때문에 발휘되는 것이다.
제시문에서 보여지는 것과 같은 사회 속에서 그 구성원인 동물이나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본성으로 한다.
서로 돕거나 협동을 하게 되더라도 그러한 행동의 이유는 자기자신의 이익을 보장받기 위한 이기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이 제시문에서의 인간관은 이기적인 인간관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기적인 개체들이 서로 어울리고 있는 이러한 사회 속에서 이타적인 행위가 유지되고 사회적인 질서가 유지되기 위해 중요한 것이 제시문에서와 같은 '호혜성의 원칙'이다.
상대방에 대한 도움이 나중에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는 원칙을 게임을 통해서 배우면서 박쥐들은 상대방을 도울 때의 이로운 점을 깨닫게 된다.
(2) 제시문 [가] [나] [다]의 차이점 비교 · 분석
앞에서 정리한 제시문 [가] [나] [다]의 입장을 (1)이타심의 동기 (2)이타적 행위의 작동방식 (3)인간에 대한 이해,즉 인간관 (4)이타적 행위를 작동시키는 사회적인 조건이라는 이상의 네 가지 기준으로 종합해 보면서 각각의 기준에 대해 제시문이 어떻게 이타적 행위를 바라보고 이해하는지를 명확하게 비교하고 분석해 갈 수 있다.
각 제시문 사이에서 이타심의 동기가 어떻게 차이나고 있는지 다음과 같이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제시문 가]는 상대방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즉 타인 지향적인 동기에서 이타심을 발휘하게 된다.
[제시문 나]에서는 상대방에게 사랑을 받거나 사회적으로 비난받지 않기 위해서 이타적인 행위를 한다.
[제시문 다]의 입장에서는 상대방을 돕는 행위가 궁극적으로 자신의 이익이 된다는 자기중심적인 동기에서 이타적인 행위를 하게 된다.
두 번째 기준인 이타심이 어떠한 방식으로 작동되는 지를 살펴보자.
[제시문 가]에서는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공감 혹은 감정이입을 통해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스스로 포기하는 이타적 행위를 하게 된다.
[제시문 나]의 입장에서는 가정교육과 문화적 혹은 사회적 환경의 강박이 인간 내면으로 스며들면서 이기적인 본능을 변화시키거나 포기하게 됨으로써 남을 돕는 행위를 하게 된다.
[제시문 다]에서는 내가 도움을 주면 상대도 내게 보답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므로 남을 돕는 행위를 한다.
인간관의 차이에 대해 살펴보면,먼저 [제시문 가]에서 연민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따라서 이타적 행위는 인간 본성의 자연스러운 발현이며 자연 상태의 인간은 그러한 이타적인 본성을 가진 긍정적인 존재라고 이해할 수 있다.
[제시문 나]에서의 인간은 자신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본능적 충동이 있다.
그러한 본능적인 충동은 다른 욕망이나 사회의 요구에 의해 이러한 이기적 본능의 만족을 포기하게 만든다.
따라서 이러한 입장에서 바라보는 인간은 본능이 제어되어야만 이타적 행위가 가능한 존재이다.
[제시문 다]의 입장에서 동물(혹은 인간)은 항상 자신의 이익을 먼저 추구하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개인들이 서로 돕고 협동을 하는 이유는 향후 자신에게 돌아오게 되는 이익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타적 행위를 촉진하거나 저해하는 조건의 차이에 대해서 살펴보자.
[제시문 가]에서는 이성과 합리성,그리고 추론의 능력을 발전시키는 교육이나 문명화를 통해 자연상태의 인간이 풍부하게 가지고 있던 연민이 사라지고 따라서 이타심이 약해진다고 본다.
이에 반해 [제시문 나]는 인간은 원래 이기적인 본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교육과 같은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요인을 통해 인간 본성을 이타적이고 사회적인 경향으로 변화시키게 된다고 본다.
[제시문 다]에서는 사회의 구성원이 자신의 이타적인 행위가 이후에 자신의 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믿음이 반복적인 상호적 행위를 통해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는 호혜성의 규칙을 습득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김윤환 S · 논술 선임연구원 pogara@nate.com
가 연민은 우리가 고통 받는 자의 입장에 서서 느끼게 되는 감정이다.
이 감정은 미개인에게는 형체가 뚜렷하지는 않지만 강렬하게 나타나고,문명인에게는 그 윤곽이 선명하지만 미약하게 나타난다.
연민은 고통을 목격하는 동물이 스스로를 고통 당하고 있는 동물과 동일시하면 할수록 더욱 강해질 것이다.
그런데 이 동일시하는 성향이 이성이 지배하는 상태보다 자연 상태에서 훨씬 깊었으리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기심을 낳게 하는 것은 이성이다.
그리고 이성을 반추하는 것은 이기심을 강화시킨다.
이성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게 하여 자신을 흔들어 놓거나 고통스럽게 하는 외부의 모든 것으로부터 격리시켜준다. (…중략…)
미개인에게는 이러한 훌륭한 재능이 없다.
이성적이지도 현명하지도 못한 그는 바보스럽게도 항상 인간 본연의 감정에 따라 움직인다. (…중략…)
연민이 하나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연민은 각 개체 안에 있는 자기애의 수위를 조절함으로써 종 전체가 보존될 수 있게 해주는 감정인 것이다.
남이 고통 받는 모습을 보고 깊이 생각하지 않고 바로 나서서 도와주게 되는 것은 연민 때문이다.
자연의 상태에서는 연민이 법과 도덕과 미덕을 대신해주며,이때에 아무도 연민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저항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는 이점이 있다.
생존에 필요한 것을 다른 곳에서 발견할 가능성이 있는 한,건장한 미개인이 약한 어린 아이나 노인이 어렵게 획득한 식량을 강탈하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 연민이다.
"남이 해주길 바라는 대로 남에게 행하라"는 합리적이고 숭고한 정의의 원리 대신에,그다지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더 유용하다고 할 만한,인간은 본래 선하다는 믿음에 기초한 또 다른 원리인 "타인의 불행을 되도록 적게 하여 너의 행복을 이룩하라"를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품게 하는 것이 연민이다.
요컨대 인간이 악을 행했을 때 느끼게 되는 혐오감의 근원은 교묘한 논리에서보다는 오히려 자연의 감정 속에서 찾아야 하며,이는 교육의 여러 원칙과는 별개로 찾아야 하는 것이다.
이성을 통해 덕을 얻는 것이 소크라테스나 그 부류 사람들의 덕택일지는 모르겠지만,인류의 생존이 개인들의 추론에만 달려 있었다면 종으로서의 인간은 오래 전에 사라졌을 것이다.
나 심리학적 -좀 더 엄밀히 말하면 정신분석학적- 연구는 인간성의 가장 깊은 본질은 원초적 성격을 가진 본능적 충동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인간이 가진 충동은 모두 비슷하며,그 목적은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이 충동 자체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충동이 인간 공동체의 욕구 및 요구와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우리는 충동과 그 발현을 선과 악으로 구분한다.
사회가 악이라고 비난하는 충동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이기적인 충동과 잔인한 충동을 들 수 있다- 이 모두 이러한 원초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을 마땅히 인정해야 한다. (…중략…)
'악한' 본능을 변화시키는 것은 같은 방향으로 작용하는 두 가지 요인 -내적 요인과 외적 요인- 이다.
내적 요인은 에로티시즘 -가장 넓은 의미로 해석하면 사랑에 대한 욕망- 이 악한(이기적인) 본능에 행사하는 영향력이다.
'에로틱한' 요소가 섞여들면,이기적 본능은 '사회적' 본능으로 바뀐다.
우리는 남에게 사랑 받는 것을 커다란 이익으로 평가하는 법을 배우고,사랑받기 위해서라면 다른 이익은 기꺼이 희생해도 좋다고 생각하게 된다.
외적 요인은 가정교육이 행사하는 강박이다.
가정교육은 문화적 환경의 요구를 나타내며,성장한 뒤에는 그 환경의 직접적인 압력이 계속해서 외적 요인을 이룬다.
문명은 본능의 만족을 포기함으로써 얻어진 것이고 문명세계에 새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에게도 그것을 포기하도록 요구한다.
개인이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외적 강박은 끊임없이 내적 강박으로 대치된다.
문명의 영향은 이기적인 경향에 에로틱한 요소를 첨가하여 그것을 이타적이고 사회적인 경향으로 바꾸고 그런 변화는 계속 늘어난다.
결국 인간이 발달과정에서 느끼는 모든 내적 강박은 원래 -즉 '인류의 역사'에서 보면- 하나의 외적 요인에 불과했다고 가정할 수도 있다.
오늘날 태어나는 사람은 이기적 본능을 사회적 본능으로 바꾸는 경향을 어느 정도 유전적 소질로 갖고 있다.
이러한 소질은 조금만 자극을 주어도 이기적 본능을 사회적 본능으로 바꾼다.
본능을 더 많이 변화시키는 것은 개인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룩해야 하는 일이다.
이처럼 인간은 당면한 문화적 환경의 압력을 받을 뿐만 아니라 조상들의 문화적 역사에도 영향을 받고 있다.
다 코스타리카에서 조사를 하고 1983년 캘리포니아로 돌아온 생물학자 제럴드 윌킨슨은 조금은 섬뜩한 얘기를 보고했다.
그가 코스타리카에서 연구한 흡혈박쥐는 낮에 고목에 매달려 있다가 밤이 되면 짐승들을 찾아가 몰래 살갗에 작은 절개창을 내고 조용히 피를 빨아먹는다.
그러나 마땅한 대상을 찾지 못하거나 찾았다 해도 상대에게 들켜서 피를 빨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배를 자주 곯는 불안정한 생활을 한다.
노련한 박쥐는 열흘에 하루 꼴로 이러한 불행을 겪지만 어리고 미숙한 박쥐는 보다 자주 굶게 된다.
박쥐는 60시간 동안 피를 먹지 못하면 아사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다행히도 박쥐들은 하루 필요량 이상의 피를 빨아두었다가 잉여분을 다시 토해내서 다른 박쥐에게 줄 수가 있다.
이런 좋은 해결책이 있지만,박쥐의 처지에서 본다면 이것은 하나의 딜레마이다.
여분의 피를 서로 나누는 박쥐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 박쥐들보다 이익이다.
그러나 먹이를 얻기만 하고 주지 않는 박쥐가 가장 큰 이익을 얻으며,주기만 하고 받지 못하는 박쥐는 가장 큰 손해를 본다.
박쥐는 같은 장소에 여러 마리가 함께 서식하는 경향이 있는데,그들의 수명은 8년 이상으로 제법 길기 때문에 특정 상대와 여러 차례 게임을 반복할 기회가 있다.
통계적으로 볼 때,한 장소에 사는 박쥐들이 가까운 친족은 아니기 때문에 이들의 아량을 친족애로 설명할 수는 없다.
윌킨슨은 박쥐들이 맞대응 게임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과거에 피를 제공한 박쥐는 그 상대로부터 피를 보답 받는다.
남은 피를 주지 않은 박쥐는 다음에 피를 얻지 못한다.
박쥐들은 이 규칙을 성실하게 준수하는 것으로 보이는데,서로 털을 손질해 주는 행위는 아마도 이 규칙을 강제 이행하기 위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들은 서로의 깃털을 손질해 줄 때 피를 저장하는 위가 있는 부위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인다.
그 때문이라도 포식으로 불룩해진 배를 다른 박쥐에게 들키지 않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속임수를 쓰는 박쥐는 쉽게 적발된다.
라 어느 가을 들녘을 상상해 보라.
한 해 동안 땀 흘려 추수를 하고 나서 볏짚들을 들판에 쌓아놓았다.
볏짚 더미는 들쥐들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보금자리이다.
각 볏짚에 두 마리의 들쥐가 서식을 시작했다고 가정해보자.
쥐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한 부류는 같은 볏짚 내에 살고 있는 다른 쥐들을 돕는 이타적인 쥐들이며,다른 부류는 남을 도울 줄 모르는 이기적인 쥐들이다.
그림에서 세모는 볏짚을 나타낸다.
그 속에 그려진 조그만 동그라미는 각각의 볏짚 속에 서식하는 쥐들이다.
검은색은 이타적인 쥐를,흰색은 이기적인 쥐를 각각 나타낸다.
그리고 밑에 그려진 동그라미들은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 볏짚을 제거했을 때 각 볏짚에서 나온 쥐들 중 1세대인 부모세대를 제외한 번식 결과를 나타낸다.
두 마리의 이기적인 쥐들에 의해 점유되었던 첫 번째 볏짚에서는 두 마리의 이기적인 쥐들이 나왔다.
한 마리의 이기적인 쥐와 한 마리의 이타적인 쥐에 의해 점유되었던 두 번째 볏짚을 제거하자 거기서도 두 마리의 이기적인 쥐들만 나왔다.
반면 두 마리의 이타적인 쥐들이 서식하던 볏짚에서는 올망졸망 많은 수의 이타적인 쥐들이 나왔다.
이 모형은 개인선택과 집단선택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각 볏짚은 집단을 나타낸다.
볏짚 내부에서는 개인선택이 진행되었다.
두 번째 볏짚을 보면 이기적인 쥐들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쥐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타적인 쥐들이 모두 없어져버리고 말았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집단선택과정을 통해서는 이타적인 쥐들이 전체적으로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즉 이타적인 쥐들이 많은 집단(볏짚),정확히 말하면 이타적인 쥐들만 사는 볏짚에서는 더 많은 쥐들이 태어날 수 있었고,그렇지 않은 집단에서는 오직 두 마리의 쥐들만이 태어날 수 있었다.
각 볏짚에 이타적인 쥐들이 얼마나 많이 포함되어 있느냐에 따라 집단이 얼마나 번성하게 되는지가 결정되고,그 결과 전체적으로 이타적인 쥐의 비율이 증가할지 안 할지도 결정된다.
바로 이것이 집단선택과정이다.
⊙ 연세대학교 논술 출제 의도
이번 연세대학교 모의 논술 문제는 개인들이 모여 공동체를 구성하고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덕목의 하나인 이타심이 어떻게 형성되고 유지될 수 있는가를 토론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
만약 모든 개인이 이기적 태도로 살아가게 되면 사회의 구성이 힘들어지게 되거나 비록 사회가 구성된다 하더라도 수많은 갈등과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타심은 공동체 구성의 필수적인 요소로 간주된다.
하지만 이러한 이타심은 항상 동일한 근원을 갖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근원으로부터 유발될 수 있다.
이타심은 때로는 타인에 대한 동정심이라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의 발로이기도 하고,때로는 인간이 살아오면서 받은 교육과 사회적 압력의 결과이기도 하다.
또한 인간의 행동이 기본적으로 개인의 이익추구를 위한 것이라는 입장이 제기되면서 이타심의 근원이 이기심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주장도 제시되고 있다.
이 문제는 이타심에 대한 이러한 다양한 주장들을 비교하고 각 주장이 현실적으로 어떠한 적합성을 가지고 있는가를 따져볼 것을 요구한다.
수험생은 우선 제시문을 분석하면서 이타심에 대한 다양한 주장이 어떠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개인들이 이타심을 갖게 되는 동기는 무엇이며 이렇게 형성된 이타심이 어떤 특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분석하고 적절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기부행위라는 특정한 사회적 현상에 대해 제시문에서 보여준 다양한 이타심의 동기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힐 수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서는 이타심의 다양한 형태 및 근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생물계의 진화를 설명하는 이론모형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가의 여부를 묻고 있다.
작년에 비해 특이할 만한 변화는 없으나 문제 풀이 시간이 30분 늘어났고 2번 문항에서 논점을 현실과 결합하는 능력을 묻고자 한 유형이 새롭다.
[문제 1] (1) 제시문 [가] [나] [다]는 이타적 행위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을 하고 있다. (2)그 차이점을 비교 · 분석하시오. (30점 : 800자 내외로 쓰시오.)
⊙ 해제
(1) 제시문 [가] [나] [다]의 이타적 행위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
제시문 [가] [나] [다]에서는 인간 혹은 동물 사이에서 나타나는 이타적인 행위들의 동기와 그러한 행위의 작동방식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타적 행위를 유발시키고 활성화하는 조건들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설명을 내놓는다.
이렇게 동일한 '이타적인 행위'에 대한 설명들이 서로 달라지는 이유는 인간이나 동물의 본성에 대해 서로 다른 이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의 차이들이 결국은 각각의 제시문에서 '이타심'이라는 동일한 주제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지도록 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제시문 가]의 입장은 연민이라는 인간의 자연적인 감정에서부터 인간의 이타심을 발견하고 있다.
이때의 연민은 고통 받는 자의 입장에서 그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따라서 상대방에게 연민을 가지게 되면 타인의 고통이 곧 자기 자신의 고통이 된다는 것을 제시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제시문 가]에서는 연민이라는 자연 상태의 감정과 이성의 상태를 대비시키고 있다.
특히 연민을 통해 발현되는 이타심은 미개인들의 경우가 교육을 받고 이성적인 문명인의 경우보다 훨씬 강하다고 설명한다.
이글의 필자는 이타심이라는 감정이 약해지는 것이 이기심을 강화시키는 이성의 작용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문명사회가 이룩한 '남이 해주길 바라는 대로 남에게 행하라'라는 합리화의 과정에 대해서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또한 이타심에 대해서 필자가 위에서 말한 합리적인 원리들보다 인간의 연민이 더 유용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점을 보았을 때,필자는 이타심이 발휘되기 위한 조건으로서는 교육과 법,도덕을 통한 문명과 문화의 작용보다 자연적인 본래의 상태가 좋은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시문 나]는 이타심에 대해 정신 분석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인간성은 본능적인 충동이 가장 원초적인 형태이며 그러한 충동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때 이 충동 자체는 선하지도,악하지도 않다.
인간이 자기 자신의 이기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충동에 대해서 사랑에 대한 욕망이라고 할 수 있는 '에로티시즘'이라는 또 다른 충동이 개입하게 되면 인간은 자기 자신의 내적인 충동만을 충족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익을 희생하면서 타인으로부터 사랑을 받고자 한다.
특히 문명과 문화적인 압력을 받으면서 인간의 이기적인 경향은 '에로티시즘'과 합쳐지면서 이타적이고 사회적인 경향으로 바뀌어 간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제시문 나]의 입장에서 이타심은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욕구가 표현되는 것이라고 이해하게 된다.
[제시문 다]에서는 앞의 두 제시문과는 다르게 이타심과 이타적인 행위에 대해 '흡혈박쥐'라는 구체적인 예를 들면서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앞의 두 제시문과 마찬가지로 '이타심'이라는 핵심 주제의 입장에서 제시문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수험생은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정리하면서 제시문에 드러난 문제 상황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1) 박쥐는 60시간 동안 피를 먹지 못하면 아사 위기에 처한다.
(2) 박쥐는 하루 필요량 이상의 피를 빨아 두었다가 잉여분을 다시 토해내 다른 박쥐에게 줄 수 있다.
(3) 여분의 피를 서로 나누는 박쥐는 그렇게 하지 않는 박쥐들보다 이익이다.
(4) 먹이를 얻기만 하고 주지 않는 박쥐는 가장 큰 이익을 얻고,주기만 하고 받지 못하는 박쥐는 가장 큰 손해를 본다.
(5) 박쥐가 상대방에게 먹이를 주는 것은 친족애가 아니라 맞대응 게임이다.
위의 과정을 통해 이해한다면,박쥐가 친족관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에게 피를 나누는 행위를 하는 것은 상대방을 돕는 것이 곧 나중에 자신이 도움을 받게 되는 것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즉 이 제시문에서 박쥐들의 이타심은 곧 자기 자신을 위해 이득이 되기 때문에 발휘되는 것이다.
제시문에서 보여지는 것과 같은 사회 속에서 그 구성원인 동물이나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본성으로 한다.
서로 돕거나 협동을 하게 되더라도 그러한 행동의 이유는 자기자신의 이익을 보장받기 위한 이기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이 제시문에서의 인간관은 이기적인 인간관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기적인 개체들이 서로 어울리고 있는 이러한 사회 속에서 이타적인 행위가 유지되고 사회적인 질서가 유지되기 위해 중요한 것이 제시문에서와 같은 '호혜성의 원칙'이다.
상대방에 대한 도움이 나중에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는 원칙을 게임을 통해서 배우면서 박쥐들은 상대방을 도울 때의 이로운 점을 깨닫게 된다.
(2) 제시문 [가] [나] [다]의 차이점 비교 · 분석
앞에서 정리한 제시문 [가] [나] [다]의 입장을 (1)이타심의 동기 (2)이타적 행위의 작동방식 (3)인간에 대한 이해,즉 인간관 (4)이타적 행위를 작동시키는 사회적인 조건이라는 이상의 네 가지 기준으로 종합해 보면서 각각의 기준에 대해 제시문이 어떻게 이타적 행위를 바라보고 이해하는지를 명확하게 비교하고 분석해 갈 수 있다.
각 제시문 사이에서 이타심의 동기가 어떻게 차이나고 있는지 다음과 같이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제시문 가]는 상대방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즉 타인 지향적인 동기에서 이타심을 발휘하게 된다.
[제시문 나]에서는 상대방에게 사랑을 받거나 사회적으로 비난받지 않기 위해서 이타적인 행위를 한다.
[제시문 다]의 입장에서는 상대방을 돕는 행위가 궁극적으로 자신의 이익이 된다는 자기중심적인 동기에서 이타적인 행위를 하게 된다.
두 번째 기준인 이타심이 어떠한 방식으로 작동되는 지를 살펴보자.
[제시문 가]에서는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공감 혹은 감정이입을 통해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스스로 포기하는 이타적 행위를 하게 된다.
[제시문 나]의 입장에서는 가정교육과 문화적 혹은 사회적 환경의 강박이 인간 내면으로 스며들면서 이기적인 본능을 변화시키거나 포기하게 됨으로써 남을 돕는 행위를 하게 된다.
[제시문 다]에서는 내가 도움을 주면 상대도 내게 보답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므로 남을 돕는 행위를 한다.
인간관의 차이에 대해 살펴보면,먼저 [제시문 가]에서 연민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따라서 이타적 행위는 인간 본성의 자연스러운 발현이며 자연 상태의 인간은 그러한 이타적인 본성을 가진 긍정적인 존재라고 이해할 수 있다.
[제시문 나]에서의 인간은 자신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본능적 충동이 있다.
그러한 본능적인 충동은 다른 욕망이나 사회의 요구에 의해 이러한 이기적 본능의 만족을 포기하게 만든다.
따라서 이러한 입장에서 바라보는 인간은 본능이 제어되어야만 이타적 행위가 가능한 존재이다.
[제시문 다]의 입장에서 동물(혹은 인간)은 항상 자신의 이익을 먼저 추구하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개인들이 서로 돕고 협동을 하는 이유는 향후 자신에게 돌아오게 되는 이익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타적 행위를 촉진하거나 저해하는 조건의 차이에 대해서 살펴보자.
[제시문 가]에서는 이성과 합리성,그리고 추론의 능력을 발전시키는 교육이나 문명화를 통해 자연상태의 인간이 풍부하게 가지고 있던 연민이 사라지고 따라서 이타심이 약해진다고 본다.
이에 반해 [제시문 나]는 인간은 원래 이기적인 본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교육과 같은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요인을 통해 인간 본성을 이타적이고 사회적인 경향으로 변화시키게 된다고 본다.
[제시문 다]에서는 사회의 구성원이 자신의 이타적인 행위가 이후에 자신의 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믿음이 반복적인 상호적 행위를 통해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는 호혜성의 규칙을 습득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김윤환 S · 논술 선임연구원 pogara@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