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라는 선물뒤엔 고독과 불안이란 짐이 뒤따른다
진정한 행복의 요건은 '지각하는 만큼의 자유(perceived freedom)'라는 말이 있다.
과연 그럴까 하는 의문이 반사적으로 응집하다가도,내밀한 기쁨을 맛보는 순간이 어느 때인가를 떠올리면 고개를 끄덕이며 이 주장에 수긍하게 된다.
간혹 허여되는 완벽한 자유의 시간은 삶의 지복(至福)이다.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쓰면서 거리낌없이 돌아다니는 일은 정말이지 그렇게도 즐거울 수가 없지 않은가.
하루 24시간이 몽땅 내 것이라는 의기양양함,무엇을 하건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는 쾌감은 포만에 가까운 행복감을 선사한다.
점점 더 무한(無閑)계급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현대의 권력자들이 가끔 우울한 표정을 짓는 이유도,사회적 희소자원인 권력을 얻는 데에는 비록 성공하였으나 본인의 자유는 헌납하였다는 사실에 그만 회색 낯빛이 되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허허벌판에 내던져진 막막한 기분이 드는 자유도 있다.
더 나아가 가끔은 자유가 문자 그대로의 공포로 다가오는 경우도 있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 등장하는 장면은 이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브룩스라는 죄수는 수십 년의 장기 복역을 마친 다음 감옥 밖의 자유로운 세상으로 나오게 되자 불안을 견디다 못해 그만 자살한다.
그의 죽음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개인의 '독립'은 '고립'이 될 수 있고,'자유'는 '단절과 공포'로 해석될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된다.
과연 '자유'의 실체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하여 정교한 답변을 찾고자 한다면 에리히 프롬의 저서 「자유로부터의 도피」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출생의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 · 1900~1980)의 이름은 '자유로부터의 도피(Escape from Freedom)' 외에도 '소유냐 존재냐' 내지는 '사랑의 기술'과 같은 유명한 저서 때문에 친숙하다.
그는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자유의 양면적 의미를 규명한다.
책의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수백만의 독일 사람들이 그들 선조들이 자유를 위하여 싸운 것과 같은 열성으로 자유를 포기하였으며,자유를 찾는 대신 그로부터 도피하는 길을 찾았다."
이처럼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싸워 온 사람들이 막상 자유와 독립을 맛보게 되자 불안에 싸인 무력한 존재가 되는 모순에 관해서 에리히 프롬은 심리학적 분석을 시도한다.
나치즘을 수용하고 지지한 대중들의 심리를 파헤치면서 근대인의 성격 구조를 진단하고 전체주의로 퇴화하는 위기 상황에 대해 고찰한 에리히 프롬은 '어쩌면 인간에게는 자유에 대한 본유적 욕망 이외에 다른 사람에게 복종하려는 본능적인 욕구가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자유를 감당하지 못하고 도피해 버리는 사람들의 복종에 대한 갈망과 권력에의 동경을 탐구한다.
그런데 그 도피의 메커니즘을 분석하기 이전에 우선 인간 심리에 관해서 하나의 기본 전제를 마련한다.
인간의 성향은 본성의 단순한 발현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인간을 '형성해나가는' 사회적 과정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사회적 과정의 '결과'로서 인간의 심리가 형성되기 때문에 각 시대에 따라서 인간의 성격구조는 제각기 차별화되며,인간이 시대에 의해 '창조'되는 과정을 이해하는 일이 사회심리학의 과제이다.
프롬은 이러한 기본 태도를 견지하면서,현대인을 소외로 몰고 가는 현대사회의 기본적 틀을 설명하고,이러한 사회구조로 인해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점점 생각하는 힘을 잃고 꼭두각시로 전락한다고 역설한다.
비판적 사고가 마비되면서 사람들은 본인의 사유나 판단은 전혀 개입되지 않는 수동적인 삶 속에서 무력감과 불행의 구렁텅이로 내몰린다는 주장이다.
에리히 프롬은 자유를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로 구분하는데 '~으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와 '~를 향한 자유(freedom to ~)'가 그 두 가지이다.
억압적 권위조직으로부터의 벗어남을 의미하는 소극적 자유는 자유의 신장과 개성이라는 선물과 더불어 고독과 불안이라는 짐도 인간에게 함께 부여한다.
우리가 소극적 자유가 가져오는 괴로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적극적 자유를 실현하여야 하며,만일 소극적 자유의 단계에서 적극적 자유의 단계로 이행하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파시즘에 몰입하여 고독과 불안을 해결하려 들 것이다.
독일에서 나치 발흥이 가능한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현대사회의 구조와 인간 심리에 관한 예리한 통찰을 보여주는 에리히 프롬의 글은 대입 논술에서도 인기가 높아 연세대 서강대 한양대 건국대 등 여러 대학이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논술 제시문으로 출제하였다.
대학에서 에리히 프롬의 글을 자주 활용하는 이유는 수험생들이 자신의 주변에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서 얼마나 심층적이고 종합적으로 성찰하고 있는가를 테스트하기 위해서이다.
☞ 기출 제시문 1 (연세대학교 2000학년도 자연계 논술)
우리 문화의 대부분은 개인 생활과 사회 생활의 모든 기본적 문제에 대해서그리고 심리적,경제적,정치적,도덕적 문제들에 대해서 그 쟁점을 흐리게 연막 치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 연막 중의 하나는 그러한 문제들이 너무나 복잡해서 평범한 개인은 파악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와 반대로 개인 생활과 사회 생활의 기본적 문제들은 대부분 너무나 단순하여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문제들은 대단히 복잡해서 오직 '전문가'만이,그것도 그 자신의 제한된 영역에서만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제시된다.
이러한 현상은 실제로 때로는 의도적으로,사람들로 하여금 정말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서 자기 자신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불신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개인은 혼란스러운 자료더미 속에 무기력하게 갇혀서 무엇을 할 것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전문가들이 찾아줄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애처롭게 기다릴 뿐이다. (… 중략 …)
비판적 사고 능력을 마비시키는 또 다른 방식은 모든 형태의 체계적 세계상을 파괴하는 것이다.
개개의 사실은 그것이 구조화된 전체의 부분일 때 가질 수 있는 특수한 성질을 상실하고,단순히 추상적이고 양적인 의미만을 갖는다.
각각의 사실은 단지 또 다른 사실일 따름이고,오로지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만이 관심의 대상이 된다.
라디오 영화 신문 등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 파괴적인 효과를 갖는다.
어떤 도시에 대한 폭격과 수백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죽었다는 발표에 이어 거리낌없이 비누와 술의 광고가 나온다.
많은 것을 시사해주는 매력적이고 신뢰감 있는 목소리로 중대한 정치적 상황에 대해서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바로 그 아나운서가,이번에는 그 뉴스 방송을 위해 돈을 지불한 특정 회사의 비누 품질이 좋다는 것을 청취자들에게 선전한다.
뉴스 영화에서는 어뢰정(魚雷艇) 화면에 뒤이어 패션쇼 화면이 나타난다.
신문은 신인 여배우의 진부한 생각이나 아침식사 버릇을 과학계나 예술계의 중대 사건을 보도할 때와 똑같은 비중으로 진지하게 전달한다.
이로 인해 우리는 자신이 들은 것과 제대로 관계를 맺지 못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둔감해지고 우리의 감정과 비판적 판단은 방해를 받으며,결국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밋밋하고 무관심한 태도를 갖게 된다.
'자유'라는 이름 아래 삶은 모든 구조를 상실한다.
삶은 무수한 단편(斷片)들로 이루어진 것인데,각각의 단편들은 서로 분리되어 전체로서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퍼즐을 풀어야 하는 어린아이처럼 개인은 단편들 속에 외롭게 남아 있다.
☞ 기출 제시문 2 (건국대학교 2006학년도 수시 영어논술)
In considering the psychological basis for the success of Nazism,this differentiation has to be made at the outset.
One part of the population bowed to the Nazi regime without any strong resistance,but also without becoming admirers of Nazi ideology and political practices.
Another part was deeply attracted to the new ideology and fanatically attached to those who proclaimed it.
The first group consisted mainly of working class.
In spite of an excellent organization,this group,although continuously hostile to Nazism from its beginning up to 1933,did not show the inner resistance one might have expected as the outcome of their political convictions.
Their will to resist collapsed quickly and since then they have caused little difficulty for the regime.
Psychologically,this readiness to submit to the Nazi regime seems to be due mainly to a state of inner tiredness and resignation,which is characteristic of the individual in the present era even in democratic countries.
홍보람 S · 논술 선임연구원 nikehbr@nonsul.com
진정한 행복의 요건은 '지각하는 만큼의 자유(perceived freedom)'라는 말이 있다.
과연 그럴까 하는 의문이 반사적으로 응집하다가도,내밀한 기쁨을 맛보는 순간이 어느 때인가를 떠올리면 고개를 끄덕이며 이 주장에 수긍하게 된다.
간혹 허여되는 완벽한 자유의 시간은 삶의 지복(至福)이다.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쓰면서 거리낌없이 돌아다니는 일은 정말이지 그렇게도 즐거울 수가 없지 않은가.
하루 24시간이 몽땅 내 것이라는 의기양양함,무엇을 하건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는 쾌감은 포만에 가까운 행복감을 선사한다.
점점 더 무한(無閑)계급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현대의 권력자들이 가끔 우울한 표정을 짓는 이유도,사회적 희소자원인 권력을 얻는 데에는 비록 성공하였으나 본인의 자유는 헌납하였다는 사실에 그만 회색 낯빛이 되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허허벌판에 내던져진 막막한 기분이 드는 자유도 있다.
더 나아가 가끔은 자유가 문자 그대로의 공포로 다가오는 경우도 있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 등장하는 장면은 이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브룩스라는 죄수는 수십 년의 장기 복역을 마친 다음 감옥 밖의 자유로운 세상으로 나오게 되자 불안을 견디다 못해 그만 자살한다.
그의 죽음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개인의 '독립'은 '고립'이 될 수 있고,'자유'는 '단절과 공포'로 해석될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된다.
과연 '자유'의 실체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하여 정교한 답변을 찾고자 한다면 에리히 프롬의 저서 「자유로부터의 도피」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출생의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 · 1900~1980)의 이름은 '자유로부터의 도피(Escape from Freedom)' 외에도 '소유냐 존재냐' 내지는 '사랑의 기술'과 같은 유명한 저서 때문에 친숙하다.
그는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자유의 양면적 의미를 규명한다.
책의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수백만의 독일 사람들이 그들 선조들이 자유를 위하여 싸운 것과 같은 열성으로 자유를 포기하였으며,자유를 찾는 대신 그로부터 도피하는 길을 찾았다."
이처럼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싸워 온 사람들이 막상 자유와 독립을 맛보게 되자 불안에 싸인 무력한 존재가 되는 모순에 관해서 에리히 프롬은 심리학적 분석을 시도한다.
나치즘을 수용하고 지지한 대중들의 심리를 파헤치면서 근대인의 성격 구조를 진단하고 전체주의로 퇴화하는 위기 상황에 대해 고찰한 에리히 프롬은 '어쩌면 인간에게는 자유에 대한 본유적 욕망 이외에 다른 사람에게 복종하려는 본능적인 욕구가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자유를 감당하지 못하고 도피해 버리는 사람들의 복종에 대한 갈망과 권력에의 동경을 탐구한다.
그런데 그 도피의 메커니즘을 분석하기 이전에 우선 인간 심리에 관해서 하나의 기본 전제를 마련한다.
인간의 성향은 본성의 단순한 발현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인간을 '형성해나가는' 사회적 과정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사회적 과정의 '결과'로서 인간의 심리가 형성되기 때문에 각 시대에 따라서 인간의 성격구조는 제각기 차별화되며,인간이 시대에 의해 '창조'되는 과정을 이해하는 일이 사회심리학의 과제이다.
프롬은 이러한 기본 태도를 견지하면서,현대인을 소외로 몰고 가는 현대사회의 기본적 틀을 설명하고,이러한 사회구조로 인해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점점 생각하는 힘을 잃고 꼭두각시로 전락한다고 역설한다.
비판적 사고가 마비되면서 사람들은 본인의 사유나 판단은 전혀 개입되지 않는 수동적인 삶 속에서 무력감과 불행의 구렁텅이로 내몰린다는 주장이다.
에리히 프롬은 자유를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로 구분하는데 '~으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와 '~를 향한 자유(freedom to ~)'가 그 두 가지이다.
억압적 권위조직으로부터의 벗어남을 의미하는 소극적 자유는 자유의 신장과 개성이라는 선물과 더불어 고독과 불안이라는 짐도 인간에게 함께 부여한다.
우리가 소극적 자유가 가져오는 괴로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적극적 자유를 실현하여야 하며,만일 소극적 자유의 단계에서 적극적 자유의 단계로 이행하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파시즘에 몰입하여 고독과 불안을 해결하려 들 것이다.
독일에서 나치 발흥이 가능한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현대사회의 구조와 인간 심리에 관한 예리한 통찰을 보여주는 에리히 프롬의 글은 대입 논술에서도 인기가 높아 연세대 서강대 한양대 건국대 등 여러 대학이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논술 제시문으로 출제하였다.
대학에서 에리히 프롬의 글을 자주 활용하는 이유는 수험생들이 자신의 주변에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서 얼마나 심층적이고 종합적으로 성찰하고 있는가를 테스트하기 위해서이다.
☞ 기출 제시문 1 (연세대학교 2000학년도 자연계 논술)
우리 문화의 대부분은 개인 생활과 사회 생활의 모든 기본적 문제에 대해서그리고 심리적,경제적,정치적,도덕적 문제들에 대해서 그 쟁점을 흐리게 연막 치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 연막 중의 하나는 그러한 문제들이 너무나 복잡해서 평범한 개인은 파악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와 반대로 개인 생활과 사회 생활의 기본적 문제들은 대부분 너무나 단순하여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문제들은 대단히 복잡해서 오직 '전문가'만이,그것도 그 자신의 제한된 영역에서만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제시된다.
이러한 현상은 실제로 때로는 의도적으로,사람들로 하여금 정말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서 자기 자신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불신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개인은 혼란스러운 자료더미 속에 무기력하게 갇혀서 무엇을 할 것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전문가들이 찾아줄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애처롭게 기다릴 뿐이다. (… 중략 …)
비판적 사고 능력을 마비시키는 또 다른 방식은 모든 형태의 체계적 세계상을 파괴하는 것이다.
개개의 사실은 그것이 구조화된 전체의 부분일 때 가질 수 있는 특수한 성질을 상실하고,단순히 추상적이고 양적인 의미만을 갖는다.
각각의 사실은 단지 또 다른 사실일 따름이고,오로지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만이 관심의 대상이 된다.
라디오 영화 신문 등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 파괴적인 효과를 갖는다.
어떤 도시에 대한 폭격과 수백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죽었다는 발표에 이어 거리낌없이 비누와 술의 광고가 나온다.
많은 것을 시사해주는 매력적이고 신뢰감 있는 목소리로 중대한 정치적 상황에 대해서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바로 그 아나운서가,이번에는 그 뉴스 방송을 위해 돈을 지불한 특정 회사의 비누 품질이 좋다는 것을 청취자들에게 선전한다.
뉴스 영화에서는 어뢰정(魚雷艇) 화면에 뒤이어 패션쇼 화면이 나타난다.
신문은 신인 여배우의 진부한 생각이나 아침식사 버릇을 과학계나 예술계의 중대 사건을 보도할 때와 똑같은 비중으로 진지하게 전달한다.
이로 인해 우리는 자신이 들은 것과 제대로 관계를 맺지 못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둔감해지고 우리의 감정과 비판적 판단은 방해를 받으며,결국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밋밋하고 무관심한 태도를 갖게 된다.
'자유'라는 이름 아래 삶은 모든 구조를 상실한다.
삶은 무수한 단편(斷片)들로 이루어진 것인데,각각의 단편들은 서로 분리되어 전체로서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퍼즐을 풀어야 하는 어린아이처럼 개인은 단편들 속에 외롭게 남아 있다.
☞ 기출 제시문 2 (건국대학교 2006학년도 수시 영어논술)
In considering the psychological basis for the success of Nazism,this differentiation has to be made at the outset.
One part of the population bowed to the Nazi regime without any strong resistance,but also without becoming admirers of Nazi ideology and political practices.
Another part was deeply attracted to the new ideology and fanatically attached to those who proclaimed it.
The first group consisted mainly of working class.
In spite of an excellent organization,this group,although continuously hostile to Nazism from its beginning up to 1933,did not show the inner resistance one might have expected as the outcome of their political convictions.
Their will to resist collapsed quickly and since then they have caused little difficulty for the regime.
Psychologically,this readiness to submit to the Nazi regime seems to be due mainly to a state of inner tiredness and resignation,which is characteristic of the individual in the present era even in democratic countries.
홍보람 S · 논술 선임연구원 nikehbr@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