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탈출위해 어쩔수 없다지만 과도한 간섭은 毒될수도
[Global Issue] 오바마는 ‘빅 브라더’? … 美정부 지나친 시장개입 논란
미국의 대표적 자동차 업체 제너럴모터스(GM)가 지난 1일 101년 역사를 뒤로 하고 파산신청을 했다.

또다른 자동차 업체 크라이슬러는 이미 지난 4월 이탈리아 피아트에 매각되는 걸 전제로 파산보호 절차를 밟고있다.

이른바 '빅3' 중 두 곳이 파산할 정도로 미국 자동차 산업이 몰락한 것이다.

로버트 로렌스 하버드케네디스쿨 국제무역학 교수는 미국의 과도한 보호관세가 자동차 업체 몰락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

1970년대 일본산 승용차가 미국 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했을 때 미국 자동차 업계는 경쟁을 피하고 관세에 보호를 받는 트럭 생산을 늘렸다.

경트럭(승용차를 제외한 픽업, SUV 등 차종을 포함하는 말) 차종엔 25%의 높은 관세가 부과돼 일본차의 시장 진입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 결과 현재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 자동차 업체들의 매출에서 경트럭의 비중은 지난해 기준 각각 57.8%, 64.9%, 72.1%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연료 효율이 나쁜 차종에 집중된 제품 구성이 경기침체 시기 이들 '빅3'에 독으로 작용했다고 지적해왔다.

재미있는 것은 트럭 관세가 자동차 산업의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1962년 유럽공동시장(ECM, 현 EU의 전신)이 미국산 닭고기 수입을 금지하자 보복으로 독일 폭스바겐제 콤비 미니버스를 겨냥했을 뿐이다.

미-유럽 간 통상전쟁은 끝났지만 트럭관세는 자동차 업체들에 엄청난 보조금이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없어지지 않았다.

트럭관세는 정부 개입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에 대한 좋은 예다.

흔히 '시장 실패'를 비판하는 이들은 '정부 개입'을 만능 해결사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정부 개입은 외과 수술이나 기계 수리처럼 깔끔하게 마무리되기 힘들다.

"워싱턴DC가 평양처럼 될 것 같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한 지 닷새 만인 지난 1월25일 워싱턴포스트(WP)가 예상한 미국의 권력 지형도다.

WP는 금융 · 경제위기를 계기로 금융권력의 중심지인 월스트리트가 붕괴되고,제조업의 메카인 디트로이트 자동차산업 벨트가 무너지면서 워싱턴DC의 중앙정부로 파워가 집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부는 지금까지 총 5120억달러(636조6700억원) 규모의 자금을 583개 금융회사에 구제금융으로 지원하고 그 대가로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우선주를 인수했다.

이를 통해 씨티그룹, AIG, 크라이슬러 등이 부분 국유화됐다.

또한 정부는 뱅크오브아메리카(BOA),씨티그룹 등의 이사진 개편에도 관여했다.

제너럴모터스(GM)는 아예 국유화를 자청했다.

이에 화답해 정부는 자신이 지분의 60%를 갖도록 하는 구조조정안을 내놓았다.

그리고 194억달러를 투입한 대가로 릭 왜고너 당시 회장을 축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정부는 단지 지분을 보유하기만 할 뿐 GM의 운영엔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향후 공장 폐쇄, 노조와의 협상, 고연비 소형차량 개발 · 생산 등에 백악관의 개입이 계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대놓고 비판하는 이는 드물다.

경제학자들도 위기상황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발생한 금융위기에서 누구도 돈을 내놓으려고 하지 않을 땐 언제나 중앙은행이 나서서 돈을 풀고 신용경색을 완화시켜왔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중앙은행의 '최종대부자' 역할이라고 한다.

지금처럼 주택버블이 붕괴한 1986년에도 미국 정부는 부도위기에 몰린 주택대부조합 1000여곳을 총 913억달러를 투입해 매입했다.

미국 정부는 금융시장 규제도 강화하고 있다.

금융시장이 최근 십수년 동안 급속도로 발달했지만 이에 대한 규제가 뒤떨어져 위기를 심화시켰다는 인식 때문이다.

금융위기 주범으로 지목된 190조달러 규모의 장외 파생상품 시장에 대해 미 재무부는 장외 파생상품 거래현황을 감독당국에 보고하고,거래소를 통해 결제토록 했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는 여기서 더 나아갈 기세다.

오바마 대통령이 강조하는 '그린 뉴딜'은 정부가 나서서 경제 전체의 틀을 바꾸는 것으로 시장 자율을 강조하는 전통적인 미국 경제 시스템과 배치된다.

10년간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1500억달러를 투입해 50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공약을 강조하는 건 이 때문이다.

지난 2월 통과된 7870억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안에서 500억달러는 재생에너지 개발과 에너지 효율성 제고 관련 사업에 투입되고, 189억달러는 고속철도를 비롯한 공공교통 인프라 구축에 쓰인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 20일 상장기업의 사외이사를 지명해 선출할 권한을 소액주주들에게 주는 파격적인 규정 개정안을 발표했다.

경영진에 대한 과도한 보수지급 등 경영진의 전횡을 막는다는 취지이지만 기업지배구조 영역마저 손보겠다는 의지인 셈이다.

무역분야에서도 '자유 무역'이 후퇴하고 미국인의 일자리와 산업을 지키기 위해 상대방의 환경기준과 노동조건을 따지는 '공정 무역'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정부의 시장개입은 언제나 그 허점을 찾으려는 움직임을 낳는다.

정치적으로 결정되는 정부예산을 타내거나 규제를 유리하게 만드는 게 경쟁보다 훨씬 이득이기 때문이다.

한번 생긴 규제는 좀체로 없어지지 않는다.

많은 경우 규제를 이용해 경제적 이득을 얻는 집단의 저항 때문이다.

정부 규제는 원래 의도와 동떨어진 부작용을 가져오기도 한다.

미국 정부가 1929년 고리대 억제와 은행의 투기성 투자를 막기 위해 제정한 이자율 규제는 2차 대전 이후 막대한 규모의 달러화가 해외로 빠져나가는 데 일조했다.

정부 보조금과 규제로 비효율적인 부문이 계속 남아 경제 전체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것은 말할 필요없는 '보이는 손'의 부작용이다.

시장이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무능력해 보일지라도 개입을 자제하는 게 좋다고 많은 경제학자들이 조언하는 이유다.

오바마 대통령은 크라이슬러 정리 과정에서 헤지펀드 등 일부 소규모 채권단이 부채 탕감을 거부하자 이들을 '투기꾼'이라고 공개적으로 낙인찍었다.

시장은 부글부글 끓었다.

200억달러를 운용하고 있는 한 헤지펀드 이사는 "끝까지 버틴 것은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자연스런 시장논리였다"면서 "대통령의 비난은 우리 시장경제 자본주의가 올바로 작동하는지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었다"고 격분했다.

정부개입이 장기적으로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최신호(5월 30일자)에서 "미국 경제는 '창조적 파괴'의 배양 접시였다"며 최근 미국 정부의 개입 증가가 미국의 역동성을 해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경제가 평상시에도 해마다 15%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새로 만들어질 정도로 활력이 넘쳤던 까닭은 최소한으로 억제된 정부 개입 때문이란 게 이코노미스트들의 설명이다.

정경 유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최근 워싱턴DC의 로비업체는 때아닌 호황을 맞이하고 있다.

행정부와 의회가 뿌리는 경기부양자금을 얻기 위해 기업들이 로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 의회가 통과시킨 탄소배출권 거래 법안은 기업들의 배만 불리는 법이라며 강한 비판을 받고 있다.

배출권거래제는 기업들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해 이산화탄소 배출권리를 구매토록 하는 게 핵심이다.

그런데 미국 정부는 85%의 배출권을 무상분배하기로 결정했다.

이코노미스트들은 "무상으로 배분하는 과정에서 정치적인 거래는 피할 길이 없다"고 지적했다.

조귀동 한국경제신문 기자 claymo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