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으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개인의 발견
⊙ '댄디'의 출현
패션이나 스타일을 일컫는 말 중에 '댄디즘'이라는 말이 있다.
또 흔히 멋을 잘 부리는 이들에게 사람들은 '댄디'라고 부르기도 한다.
평범하고 일상적이고 캐주얼한 멋보다는 귀족적이고 품위가 느껴지면서도 주류적인 것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이 말은 19세기 유럽사회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19세기 말 유럽은 자본주의와 상업주의가 전면으로 드러나던 시기였고 그런 상황에서 다수의 시민은 전에 없던 물질적인 풍요를 대중적으로 향유할 수 있게 되었다.
과거에 귀족들이 지녔던 경제적 특권을 함께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시민들이 누렸던 것은 정신적이고,우아하고,고상한 문화적 가치와는 거리가 있었다.
조금 과격하게 말하자면 천박한 자본주의 문화만이 유럽의 대중에게 널리 퍼져 있었던 것이다.
'댄디'는 이러한 자본주의적 유행과는 일정한 거리를 둔 말하자면 고상하고 우아한 멋,특히 정신적인 고상함을 추구하는 존재들이었다.
모든 것이 교환가치로 전락하는 상황에서 정신적,문화적 가치만큼은 단순히 자본으로 포섭될 수 없었고, 이에 천박한 대중으로부터 일탈을 꿈꾸던 존재들이 소위 정신적 귀족주의를 추구하며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그들이 곧 '댄디'였던 것이다.
싸구려 대중주의로부터 자신만의 고유한 정신성을 뚜렷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공동체적 흐름에 함몰되거나 종속될 수 없다는 자존감이 곧 '댄디즘'의 핵심이다.
한국사회는 1970,80년대 급속한 산업화를 거쳐 90년대에 이르러서는 물질적 풍요로움을 경험하게 된다.
이전까지만 해도 근검 절약,저축이 미덕이었지만 90년대는 소비주의 문화가 만개할 경제적 여건이 마련되었던 것이다.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넘어섰고 가구마다 소비문화의 상징인 자동차를 소유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한국사회도 물질적 풍요와 소비문화가 드디어 대중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더불어 이 시점에 한국사회는 정치적으로 독재를 벗어나 민주화가 실현되어 그간 사치스럽게 생각해왔던 개인적인 삶을 맘껏 누릴 수 있는 풍토가 마련될 수 있었다.
한국사회에서 서구유럽의 '댄디즘'적인 요소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즈음이다.
경제적 풍요와 더불어 한쪽에서는 대중적인 소비문화가,다른 한쪽에서는 대중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개인들이 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 대중과의 거리두기
한국소설은 1970,80년대 리얼리즘이 주류를 이뤘다.
분단으로 인한 민족의 모순과 급속한 산업화로 인한 계급의 모순이 팽배했기 때문에 리얼리즘적인 모색이 이루어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90년대에 들어서는 소설 창작에도 일정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 전통적인 리얼리즘의 주제였던 사회적 문제와 일정한 거리를 둔 작품들이 창작된 것이다.
윤대녕의 「은어낚시 통신」도 그러한 작품 중 하나다.
이 작품에는 70,80년대의 공동체적 가치를 추구하는 입장이나 특정한 주의 · 주장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지극히 사적인 체험이 소설의 주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의 주인공인 '나'는 프리랜서 사진작가이다.
'나'는 한때 신문사에 임시로 고용되어 어릴 때 아버지와 은어낚시를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낚시터에 대한 기사를 게재한 적이 있는데 이 기사를 계기로 '나'는 '은어낚시 모임'이라는 비밀스러운 모임으로부터 초청장을 받게 된다.
누구로부터 어떻게 해서 초청장이 전달되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초청장에 인쇄된 에드워드 커티스의 「호피인디언」이라는 사진을 보고 과거의 일을 회상하기 시작한다.
언젠가 '나'는 커티스의 사진집을 어떤 여인에게 선물한 적이 있었다.
그 여자는 3년 전 제주도에서 광고를 찍다가 우연히 알게 된 여성 모델이었는데 '나'는 그녀와 밤바다에서 우발적인 관계를 맺은 후로 특별한 이유 없이 만남을 유지해왔었다.
그런 어느 날 그녀는 이별을 고하며 사라졌고 그 후로 그녀는 잊혀졌다.
그런데 놀랍게도 초청장의 앞면에 그녀에게 건네주었던 커티스의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결국 고심 끝에 정체불명의 초청에 응하게 되고 빨간색 스포츠카를 몰고 나타난 여성과 조우하게 된다.
작품의 간략한 줄거리에서 느껴지듯이 이 작품에서 70,80년대식의 리얼리즘적인 사유를 찾아보기는 극히 어렵다.
주인공은 현실 문제를 고뇌하는 지식인도,노동자도,민족주의자도,이데올로기도 아닌,타인과 교류하기보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자유분방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 독신 남성일 뿐이다.
또 그에게 일어난 사건도 사회적인 문제가 아니라 지극히 비밀스럽고 폐쇄적인 성격의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주인공과 '은어 낚시 모임'의 사람들이 당시만 해도 대중에게 낯설고 소설에서조차 잘 등장하지 않았던 문화적 경험들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빌리 할리데이의 재즈,에드워드 커티스의 「호피인디언」,빨간색 스포츠카,제인 버킨의 「예스터데이 예스터데이」,짐자무시의 영화,엘뤼아르의 시 등등이다.
이것들은 대개 당시 한국사회에서 그다지 대중성을 얻지 못한 것들이었거나 고상하고 우아한 취미로 취급받는 것들이었다.
적어도 상업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대중이 쉽게 즐거움을 얻을 수 없는 영역에 속하는 것들이었다.
한마디로 이것들은 공동체적 가치라든지,대중주의적 유행과는 일정한 거리를 둔 문화적 대상이었는데 이러한 것이 작품 속에 등장했던 이유는 결국 대중 속에 함몰되지 않으려는 욕망의 발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 새로운 개인의 발견과 공동체의 위험
"보충해서 말하죠. 우리들 최초의 모임은 이 년 전 봄에 시작됐죠.
당시 무명 배우였던 그녀와 동갑내기 친구인 잡지사 기자,대학강사,화가 이렇게 몇몇 사람들이 신촌의 한 카페에서 모임을 갖게 된 게 동기가 됐죠.
저마다 이유야 다르겠지만 아까도 말했듯 그들은 모두가 사람으로부터 거부된 사람들이었어요.
그들은 자주 만나 공통의 것을 찾으며 좀더 은밀한 방식으로 모임을 키워나갔죠.
그후 건축가,수련의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던 가수,시인들이 더 들어왔고 집단의 동일성을 확보하자는 뜻에서 육십사 년 칠 월 생들만으로 모임을 제한했어요.
물론 그들은 겉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는 사람처럼 살아요.
하지만 역시 삶에 제대로 뿌리박지 못하는 사람들이죠.
아무튼 우리는 한두 달에 한 번쯤 은밀히 모였다가 헤어지곤 해요.
어떻게 보면 두 겹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죠.
현실적인 삶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으니까,그렇게는 살아지지 않으니까,말하자면 지하에서 다른 삶의 부락을 하나 더 세운 거예요.
우리가 은어를 문장으로 한 것도 다른 뜻이 아녜요.
말하자면 우린 여기서 거듭나기 연습을 해요.
어떻게든 우리 방식으로 버티고 사는 법을 배운단 말이죠."
- 윤대녕,「은어낚시 통신」
위의 인용은 빨간 스포츠카를 타고 나타난 여성이 '나'에게 모임의 성격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대목이다.
위의 인용에서 확인되듯이 '은어 낚시 모임'에 모인 이들은 모두가 삶에 뿌리를 박지 못한 이들이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일상적이고 대중적인 삶으로부터 벗어난 사람들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결국 이들은 자신의 정체를 대중 속에 함몰시키지 않고 자기의 영혼,자기의 정체를 지켜나가기를 간절히 원하는 이들인 셈이다.
'우리 방식으로 버티고 사는 법'이란 대중과 거리를 둔 정신적이고 문화적인 방식에 다름아니며 이렇게 보면 이들은 19세기 말 유럽사회에 등장했던 '댄디'들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이 작품에서 간과해선 안 될 것은 '은어'라는 상징물에 대한 해석이다.
은어는 회귀성 어종으로 자신의 근본을 찾아가는 상징으로 사용된다.
따라서 은어는 도시의 부박한 삶 속에서,혹은 천박한 자본주의적 유행 속에서,혹은 공동체적 가치추구라는 명분 하에서 잃어버린 자신을 찾아가는 존재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분명히 민족,이념,계급의 모순 속에 묻혀 있던 '개인'을 찾아 나선 것은 그 의미가 적지 않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공동체로부터 벗어난 개인의 삶을 한번 되돌아 볼 필요도 동시에 존재한다.
이를테면 공동체의 결속으로부터 벗어난 개인이 과연 거대한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지부터 문제가 될 수 있다.
정신적 귀족주의를 추구하는 댄디즘이 자칫 자본의 지배를 조장하고 사회적 모순을 은폐하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할 위험도 충분히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주 상산고 교사 etika1@naver.com
⊙ '댄디'의 출현
패션이나 스타일을 일컫는 말 중에 '댄디즘'이라는 말이 있다.
또 흔히 멋을 잘 부리는 이들에게 사람들은 '댄디'라고 부르기도 한다.
평범하고 일상적이고 캐주얼한 멋보다는 귀족적이고 품위가 느껴지면서도 주류적인 것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이 말은 19세기 유럽사회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19세기 말 유럽은 자본주의와 상업주의가 전면으로 드러나던 시기였고 그런 상황에서 다수의 시민은 전에 없던 물질적인 풍요를 대중적으로 향유할 수 있게 되었다.
과거에 귀족들이 지녔던 경제적 특권을 함께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시민들이 누렸던 것은 정신적이고,우아하고,고상한 문화적 가치와는 거리가 있었다.
조금 과격하게 말하자면 천박한 자본주의 문화만이 유럽의 대중에게 널리 퍼져 있었던 것이다.
'댄디'는 이러한 자본주의적 유행과는 일정한 거리를 둔 말하자면 고상하고 우아한 멋,특히 정신적인 고상함을 추구하는 존재들이었다.
모든 것이 교환가치로 전락하는 상황에서 정신적,문화적 가치만큼은 단순히 자본으로 포섭될 수 없었고, 이에 천박한 대중으로부터 일탈을 꿈꾸던 존재들이 소위 정신적 귀족주의를 추구하며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그들이 곧 '댄디'였던 것이다.
싸구려 대중주의로부터 자신만의 고유한 정신성을 뚜렷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공동체적 흐름에 함몰되거나 종속될 수 없다는 자존감이 곧 '댄디즘'의 핵심이다.
한국사회는 1970,80년대 급속한 산업화를 거쳐 90년대에 이르러서는 물질적 풍요로움을 경험하게 된다.
이전까지만 해도 근검 절약,저축이 미덕이었지만 90년대는 소비주의 문화가 만개할 경제적 여건이 마련되었던 것이다.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넘어섰고 가구마다 소비문화의 상징인 자동차를 소유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한국사회도 물질적 풍요와 소비문화가 드디어 대중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더불어 이 시점에 한국사회는 정치적으로 독재를 벗어나 민주화가 실현되어 그간 사치스럽게 생각해왔던 개인적인 삶을 맘껏 누릴 수 있는 풍토가 마련될 수 있었다.
한국사회에서 서구유럽의 '댄디즘'적인 요소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즈음이다.
경제적 풍요와 더불어 한쪽에서는 대중적인 소비문화가,다른 한쪽에서는 대중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개인들이 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 대중과의 거리두기
한국소설은 1970,80년대 리얼리즘이 주류를 이뤘다.
분단으로 인한 민족의 모순과 급속한 산업화로 인한 계급의 모순이 팽배했기 때문에 리얼리즘적인 모색이 이루어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90년대에 들어서는 소설 창작에도 일정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 전통적인 리얼리즘의 주제였던 사회적 문제와 일정한 거리를 둔 작품들이 창작된 것이다.
윤대녕의 「은어낚시 통신」도 그러한 작품 중 하나다.
이 작품에는 70,80년대의 공동체적 가치를 추구하는 입장이나 특정한 주의 · 주장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지극히 사적인 체험이 소설의 주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의 주인공인 '나'는 프리랜서 사진작가이다.
'나'는 한때 신문사에 임시로 고용되어 어릴 때 아버지와 은어낚시를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낚시터에 대한 기사를 게재한 적이 있는데 이 기사를 계기로 '나'는 '은어낚시 모임'이라는 비밀스러운 모임으로부터 초청장을 받게 된다.
누구로부터 어떻게 해서 초청장이 전달되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초청장에 인쇄된 에드워드 커티스의 「호피인디언」이라는 사진을 보고 과거의 일을 회상하기 시작한다.
언젠가 '나'는 커티스의 사진집을 어떤 여인에게 선물한 적이 있었다.
그 여자는 3년 전 제주도에서 광고를 찍다가 우연히 알게 된 여성 모델이었는데 '나'는 그녀와 밤바다에서 우발적인 관계를 맺은 후로 특별한 이유 없이 만남을 유지해왔었다.
그런 어느 날 그녀는 이별을 고하며 사라졌고 그 후로 그녀는 잊혀졌다.
그런데 놀랍게도 초청장의 앞면에 그녀에게 건네주었던 커티스의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결국 고심 끝에 정체불명의 초청에 응하게 되고 빨간색 스포츠카를 몰고 나타난 여성과 조우하게 된다.
작품의 간략한 줄거리에서 느껴지듯이 이 작품에서 70,80년대식의 리얼리즘적인 사유를 찾아보기는 극히 어렵다.
주인공은 현실 문제를 고뇌하는 지식인도,노동자도,민족주의자도,이데올로기도 아닌,타인과 교류하기보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자유분방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 독신 남성일 뿐이다.
또 그에게 일어난 사건도 사회적인 문제가 아니라 지극히 비밀스럽고 폐쇄적인 성격의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주인공과 '은어 낚시 모임'의 사람들이 당시만 해도 대중에게 낯설고 소설에서조차 잘 등장하지 않았던 문화적 경험들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빌리 할리데이의 재즈,에드워드 커티스의 「호피인디언」,빨간색 스포츠카,제인 버킨의 「예스터데이 예스터데이」,짐자무시의 영화,엘뤼아르의 시 등등이다.
이것들은 대개 당시 한국사회에서 그다지 대중성을 얻지 못한 것들이었거나 고상하고 우아한 취미로 취급받는 것들이었다.
적어도 상업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대중이 쉽게 즐거움을 얻을 수 없는 영역에 속하는 것들이었다.
한마디로 이것들은 공동체적 가치라든지,대중주의적 유행과는 일정한 거리를 둔 문화적 대상이었는데 이러한 것이 작품 속에 등장했던 이유는 결국 대중 속에 함몰되지 않으려는 욕망의 발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 새로운 개인의 발견과 공동체의 위험
"보충해서 말하죠. 우리들 최초의 모임은 이 년 전 봄에 시작됐죠.
당시 무명 배우였던 그녀와 동갑내기 친구인 잡지사 기자,대학강사,화가 이렇게 몇몇 사람들이 신촌의 한 카페에서 모임을 갖게 된 게 동기가 됐죠.
저마다 이유야 다르겠지만 아까도 말했듯 그들은 모두가 사람으로부터 거부된 사람들이었어요.
그들은 자주 만나 공통의 것을 찾으며 좀더 은밀한 방식으로 모임을 키워나갔죠.
그후 건축가,수련의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던 가수,시인들이 더 들어왔고 집단의 동일성을 확보하자는 뜻에서 육십사 년 칠 월 생들만으로 모임을 제한했어요.
물론 그들은 겉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는 사람처럼 살아요.
하지만 역시 삶에 제대로 뿌리박지 못하는 사람들이죠.
아무튼 우리는 한두 달에 한 번쯤 은밀히 모였다가 헤어지곤 해요.
어떻게 보면 두 겹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죠.
현실적인 삶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으니까,그렇게는 살아지지 않으니까,말하자면 지하에서 다른 삶의 부락을 하나 더 세운 거예요.
우리가 은어를 문장으로 한 것도 다른 뜻이 아녜요.
말하자면 우린 여기서 거듭나기 연습을 해요.
어떻게든 우리 방식으로 버티고 사는 법을 배운단 말이죠."
- 윤대녕,「은어낚시 통신」
위의 인용은 빨간 스포츠카를 타고 나타난 여성이 '나'에게 모임의 성격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대목이다.
위의 인용에서 확인되듯이 '은어 낚시 모임'에 모인 이들은 모두가 삶에 뿌리를 박지 못한 이들이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일상적이고 대중적인 삶으로부터 벗어난 사람들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결국 이들은 자신의 정체를 대중 속에 함몰시키지 않고 자기의 영혼,자기의 정체를 지켜나가기를 간절히 원하는 이들인 셈이다.
'우리 방식으로 버티고 사는 법'이란 대중과 거리를 둔 정신적이고 문화적인 방식에 다름아니며 이렇게 보면 이들은 19세기 말 유럽사회에 등장했던 '댄디'들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이 작품에서 간과해선 안 될 것은 '은어'라는 상징물에 대한 해석이다.
은어는 회귀성 어종으로 자신의 근본을 찾아가는 상징으로 사용된다.
따라서 은어는 도시의 부박한 삶 속에서,혹은 천박한 자본주의적 유행 속에서,혹은 공동체적 가치추구라는 명분 하에서 잃어버린 자신을 찾아가는 존재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분명히 민족,이념,계급의 모순 속에 묻혀 있던 '개인'을 찾아 나선 것은 그 의미가 적지 않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공동체로부터 벗어난 개인의 삶을 한번 되돌아 볼 필요도 동시에 존재한다.
이를테면 공동체의 결속으로부터 벗어난 개인이 과연 거대한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지부터 문제가 될 수 있다.
정신적 귀족주의를 추구하는 댄디즘이 자칫 자본의 지배를 조장하고 사회적 모순을 은폐하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할 위험도 충분히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주 상산고 교사 etika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