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없는 사회, 지역 균형 노력 등 정치 유산 남겨
[Focus] 노 前대통령의 비극… ‘검은 돈’ 의혹에 쓰러진 한국 정치 실험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23일 서거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날 새벽 경남 김해 진영읍 사저 뒤 봉화산 바위에서 투신 자살해 63세의 삶을 마감했다.

1년4개월 전까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나라를 이끌었던 사람이 이렇게 비명에 생을 마감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을 못했던 만큼 국민의 아쉬움도 더욱 커지고 있다.

그는 마지막 가는 길에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는 유언을 남겼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은 29일 국민장으로 경복궁 앞뜰에서 개최됐다.

노 전 대통령은 과연 어떤 인물이고 업적이 뭐였는지, 그리고 왜 투신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선택했는지 살펴보자.

⊙ 강한 도전정신을 가진 대통령

노 전 대통령은 1946년 경남 김해 진영읍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두뇌가 명석하고 성적이 우수했지만 가난했기 때문에 부산상고를 졸업하고 나서야 사법시험 공부에 뛰어들었다.

8년 만에 고시에 합격한 그는 판사로 대전지방법원에 근무하다가 3년 만에 법복을 벗고 변호사로 개업했다.

그는 이후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도움을 받아 통일민주당 후보로 정치에 입문했다.

그는 이때부터 기성 정치권과 제도에 강하게 맞서온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는 특히 평생 신념으로 생각했던 "지역주의의 벽을 넘겠다"는 각오로 호남을 근거지로 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끄는 당(黨)에 속하면서도 부산에서 계속 출마했으나 연거푸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노 전 대통령이 2000년 총선에서 부산에서 또 낙선하자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탄생했고,결국 이 조직을 토대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꺾고 16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2002년 대선에서 등장한 노사모와 촛불,그리고 인터넷 정치는 '노무현 정치'의 상징이 됐다.

⊙ 특권없는 사회 구현에 전력

노 전 대통령의 화두는 탈권위와 지역주의 타파, 반칙과 특권이 없는 사회, 성숙한 민주주의 등이었다.

그는 대통령 시절 지역주의와 빈부격차를 없애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지방 균형 발전을 위해 지역균형발전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했다.

부패방지위원회를 국가청렴위원회로 격상해 정치권과 관료들의 부패를 감시했고 국가인권위원회 기능을 강화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집권 5년은 기존의 제도와 질서를 존중하는 보수세력과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는 진보세력의 싸움으로 바람 잘날이 없는 시절이었다.

경제적으로는 서민 대통령을 꿈꾸었던 그는 "하늘이 두 쪽 나더라도 부동산만은 잡겠다"고 공언했다.

그의 집권 기간 동안 모두 10차례나 집값 안정 대책이 쏟아졌다.

그러나 강남 집값이 오히려 폭등해 내집 마련을 꿈꿨던 서민들에게는 치명상을 입히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도 "퇴임 직전 부동산 말고는 꿀릴 것이 없다"며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기도 했다.

참여정부 시절의 경제정책이 모두 실패한 것만은 아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처음 넘어섰고,종합주가지수도 한때 2000선을 돌파했다.

반대자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한 · 미 FTA(자유무역협정)를 체결해 한국 시장의 개방과 개혁을 가속화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계층 간 갈등이 두드러졌고 국론 분열현상도 깊어졌다.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 세력 간에 간극도 확대됐다.

⊙ 도덕적 자존심이 자살 이유?

[Focus] 노 前대통령의 비극… ‘검은 돈’ 의혹에 쓰러진 한국 정치 실험가
노 전 대통령은 전두환 · 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전직 대통령 가운데 세 번째로 검찰에서 포괄적 뇌물죄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본인과 부인 아들 딸 사위, 형과 친 인척, 그리고 측근들이 줄줄이 뇌물 혐의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거나 이미 구속됐다.

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을 꿈꾸며 대통령에 당선됐던 노 전 대통령의 좌절감과 실망감은 더욱 컸을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만든 요인도 바로 도덕성 붕괴에 대한 좌절감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검찰의 강압적인 수사 등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일본 언론들은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이 '한국 정치와 돈 문제'에서 비롯된 비극이라며 정치 개혁에도 불구하고 이런 문제가 끊이지 않는 것은 한국 정치의 딜레마라고 분석했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좌우익이 충돌해온 한국에서는 사회가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분열될 위험을 안고 있다. 이런 현상들이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만들어냈다"고 전제한 뒤 "한국은 사법 개혁을 통해 대통령을 포함한 어느 누구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는 확신을 국민들이 갖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앞으로 또 어떤 지도자가 퇴임 후 조사를 받는 일이 생기더라도 정치적 동기에 의해서가 아니라 완전한 사법 과정을 통해 조사가 이뤄진다고 국민들은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춘호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