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 재판 압력” vs “정당한 지휘권 행사”
신영철 대법관 거취놓고 사법부 내부 이견
신영철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방법원장 재직 시절 법관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둘러싼 재판 간섭 여부를 놓고 사법부 내부가 들끓고 있다.
신 대법관은 일부 법관들이 촛불시위 사건 재판을 연기하거나 보류하자 재판을 독촉하는 내용을 담은 이메일을 이들에게 보냈다.
이메일을 받은 일부 소장 판사들은 신 대법관의 행위가 중대한 사법권 독립을 훼손하는 행위라며 반발하고 있다.
소장 판사들은 전국 16개 법원에서 판사회의를 갖고 신 대법관의 자진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판사들의 반발이 집단 행동의 행태를 보인다면 이것이야말로 사법권 독립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사법권 독립이 과연 무엇이며 법관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알아보자.
⊙ 촛불 집회 재판이 발단
지난해 10월 서울 중앙지법의 한 판사가 촛불집회 사건을 재판하면서 야간집회를 금지한 집시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규정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위헌 법률심판을 제청했다.
이 규정이 헌법에 규정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자유와 배치한다는 내용이었다.
위헌 법률 심판을 신청하면 헌법재판소의 최종 결정이 날 때까지 재판은 중단된다.
사안이 이렇게 되자 촛불 집회 사건을 집행 중이었던 다른 판사들도 잇따라 재판 집행을 보류했다.
당시 중앙지법원장이던 신 대법관은 이에 대해 판사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재판 당사자의 이의가 없다면 재판을 계속 진행하라고 주문했다.
젊은 판사들은 이 주문이 사법권의 독립을 침해한다며 반발했다.
이 사건은 그러나 조용히 묻혀 있다가 지난 2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세상에 알려졌고 급기야 신 대법관이 판사들에게 보낸 압력성 이메일까지 공개됐다.
침묵을 지키던 대법원도 지난 3월6일 정식으로 진상조사에 나섰으며 진상조사단은 신 대법관이 재판에 관여했고 사법 행정권을 남용한 것으로 볼 소지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조사단은 이에 따라 신 대법관을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에 회부했으며 윤리위는 신 대법관에게 경고 또는 주의 권고라는 처분을 내렸다.
윤리위 결정을 지켜보던 일선 판사들은 이 처분이 상식에 어긋난 가벼운 처분이라며 집단적으로 반발, 공개적으로 신 대법관의 사퇴를 촉구하기 시작했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신 대법관을 엄중 경고하고 신 대법관도 사과했지만 전국의 일선 판사들은 21일 현재 전국 16개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에서 판사회의를 열어 신 대법관의 사퇴를 요구하는 등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 "사법권 독립에 중대한 침해"
판사회의에서 일부 소장 판사들은 "신 대법관의 행위가 법관의 독립에 대해 중대하고 명백한 침해행위로 본다"며 "신 대법관이 (앞으로)직무를 수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신 대법관의 사퇴를 촉구했다.
사법권 독립은 법관이 구체적으로 재판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하는 판결의 자유를 의미한다.
우리나라 헌법 102조에도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규정을 명시하고 있다.
서울동부지법의 한 판사는 "신 대법관의 재판 몰아주기와 이메일,전화 등을 통한 종용은 통상적인 사건 처리 필요성을 지적하는 것에서 한참 뛰어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즉 아무리 상급 판사라 하더라도 누구의 지휘나 명령에도 구속되지 않은 재판권에 대해 감놔라 밤놔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법권 독립은 정치로부터의 주안점을 두고 있고 신 대법관은 법원장으로서 정상적인 지휘를 했을 뿐이라는 반론도 적지 않다.
일부 판사 회의에서는 신 대법관의 거취와 관련해서는 입장을 표명하지 않은 곳도 많다.
재발 방지를 위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많았다.
⊙ 집단 행동이라는 시각도
이에 맞서 일부에서는 대법원 진상조사단과 공직자 윤리위원회가 위법으로 판단하지 않았으며 대법원장이 엄중 경고하고 신 대법관이 사과한 마당에 법관들의 판사회의는 판사들의 회의가 아닌 집단행동으로 비쳐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20일 "법관은 자신의 신념과 양심을 가지고 재판을 통해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지 집단 행동으로 정의를 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법관들의 집단 항의 행위가 전국적으로 이어지면서 법원내에서 일종의 집단 따돌림 현상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닌가 우려스럽다"며 "다수가 집단의 힘으로 개인을 몰아 붙이는 것은 동기를 불문하고 정의 관념에 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는 20일자 사설에서 "저간의 절차를 무시하고 집단행동으로 대법관 사퇴를 압박하고,기자회견을 통해 개인의 정치적 성향을 거리낌 없이 표출하면서 사법부 독립을 운운한다면 모순도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역설했다.
문화일보도 21일자 사설에서 "(판사회의가) 절차의 정의를 실체적 진실에 앞세워 법을 안정시켜야 할 사법부의 절차 경시 내지 폄훼 또한 심각한 파행으로 비친다"고 지적했다.
일부 법학자는 "법 철학자 라드브루흐가 법의 이념으로 법적 정의와 합목적성, 법적 안정성을 들면서 그중에서 법적 안정성을 가장 중시했다"며 "이 점을 생각해보면 법 정신의 구현체인 법원 조직이 결국 법적 절차나 과정의 합리성과 투명성을 간과하고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오춘호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choon@hankyung.com
신영철 대법관 거취놓고 사법부 내부 이견
신영철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방법원장 재직 시절 법관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둘러싼 재판 간섭 여부를 놓고 사법부 내부가 들끓고 있다.
신 대법관은 일부 법관들이 촛불시위 사건 재판을 연기하거나 보류하자 재판을 독촉하는 내용을 담은 이메일을 이들에게 보냈다.
이메일을 받은 일부 소장 판사들은 신 대법관의 행위가 중대한 사법권 독립을 훼손하는 행위라며 반발하고 있다.
소장 판사들은 전국 16개 법원에서 판사회의를 갖고 신 대법관의 자진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판사들의 반발이 집단 행동의 행태를 보인다면 이것이야말로 사법권 독립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사법권 독립이 과연 무엇이며 법관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알아보자.
⊙ 촛불 집회 재판이 발단
지난해 10월 서울 중앙지법의 한 판사가 촛불집회 사건을 재판하면서 야간집회를 금지한 집시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규정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위헌 법률심판을 제청했다.
이 규정이 헌법에 규정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자유와 배치한다는 내용이었다.
위헌 법률 심판을 신청하면 헌법재판소의 최종 결정이 날 때까지 재판은 중단된다.
사안이 이렇게 되자 촛불 집회 사건을 집행 중이었던 다른 판사들도 잇따라 재판 집행을 보류했다.
당시 중앙지법원장이던 신 대법관은 이에 대해 판사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재판 당사자의 이의가 없다면 재판을 계속 진행하라고 주문했다.
젊은 판사들은 이 주문이 사법권의 독립을 침해한다며 반발했다.
이 사건은 그러나 조용히 묻혀 있다가 지난 2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세상에 알려졌고 급기야 신 대법관이 판사들에게 보낸 압력성 이메일까지 공개됐다.
침묵을 지키던 대법원도 지난 3월6일 정식으로 진상조사에 나섰으며 진상조사단은 신 대법관이 재판에 관여했고 사법 행정권을 남용한 것으로 볼 소지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조사단은 이에 따라 신 대법관을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에 회부했으며 윤리위는 신 대법관에게 경고 또는 주의 권고라는 처분을 내렸다.
윤리위 결정을 지켜보던 일선 판사들은 이 처분이 상식에 어긋난 가벼운 처분이라며 집단적으로 반발, 공개적으로 신 대법관의 사퇴를 촉구하기 시작했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신 대법관을 엄중 경고하고 신 대법관도 사과했지만 전국의 일선 판사들은 21일 현재 전국 16개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에서 판사회의를 열어 신 대법관의 사퇴를 요구하는 등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 "사법권 독립에 중대한 침해"
판사회의에서 일부 소장 판사들은 "신 대법관의 행위가 법관의 독립에 대해 중대하고 명백한 침해행위로 본다"며 "신 대법관이 (앞으로)직무를 수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신 대법관의 사퇴를 촉구했다.
사법권 독립은 법관이 구체적으로 재판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하는 판결의 자유를 의미한다.
우리나라 헌법 102조에도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규정을 명시하고 있다.
서울동부지법의 한 판사는 "신 대법관의 재판 몰아주기와 이메일,전화 등을 통한 종용은 통상적인 사건 처리 필요성을 지적하는 것에서 한참 뛰어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즉 아무리 상급 판사라 하더라도 누구의 지휘나 명령에도 구속되지 않은 재판권에 대해 감놔라 밤놔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법권 독립은 정치로부터의 주안점을 두고 있고 신 대법관은 법원장으로서 정상적인 지휘를 했을 뿐이라는 반론도 적지 않다.
일부 판사 회의에서는 신 대법관의 거취와 관련해서는 입장을 표명하지 않은 곳도 많다.
재발 방지를 위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많았다.
⊙ 집단 행동이라는 시각도
이에 맞서 일부에서는 대법원 진상조사단과 공직자 윤리위원회가 위법으로 판단하지 않았으며 대법원장이 엄중 경고하고 신 대법관이 사과한 마당에 법관들의 판사회의는 판사들의 회의가 아닌 집단행동으로 비쳐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20일 "법관은 자신의 신념과 양심을 가지고 재판을 통해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지 집단 행동으로 정의를 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법관들의 집단 항의 행위가 전국적으로 이어지면서 법원내에서 일종의 집단 따돌림 현상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닌가 우려스럽다"며 "다수가 집단의 힘으로 개인을 몰아 붙이는 것은 동기를 불문하고 정의 관념에 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는 20일자 사설에서 "저간의 절차를 무시하고 집단행동으로 대법관 사퇴를 압박하고,기자회견을 통해 개인의 정치적 성향을 거리낌 없이 표출하면서 사법부 독립을 운운한다면 모순도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역설했다.
문화일보도 21일자 사설에서 "(판사회의가) 절차의 정의를 실체적 진실에 앞세워 법을 안정시켜야 할 사법부의 절차 경시 내지 폄훼 또한 심각한 파행으로 비친다"고 지적했다.
일부 법학자는 "법 철학자 라드브루흐가 법의 이념으로 법적 정의와 합목적성, 법적 안정성을 들면서 그중에서 법적 안정성을 가장 중시했다"며 "이 점을 생각해보면 법 정신의 구현체인 법원 조직이 결국 법적 절차나 과정의 합리성과 투명성을 간과하고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오춘호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