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공교육 질을 높이고 다양성 추구에 큰 보탬”

반 “입시 경쟁 부추기고 학교내 견제 세력 위축”

학교 운영의 핵심 권한을 학교장에게 부여하고 자율학교를 확대해나가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정부의 3단계 학교 자율화 추진 방안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 쪽에서는 "초 · 중등 교육이 획일화되고 경쟁력이 저하된 이유는 학교장에게 교육과정 등의 권한이 없어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를 반영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며 "창의적인 인재 양성을 위해서는 학교 교육의 다양화가 필수"라고 강조한다.

이에 대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쪽에서는 "중등 교육과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대학입시제도는 그대로 둔 채 학교 자율화를 추진하겠다는 것은 중학교까지 입시 경쟁 교육을 강요하고,이를 위한 교장의 친위체제를 구축해 학교를 교장의 권력기구로 변경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며 반박한다.

그 동안 우리 교육계가 너무 획일적인 틀에 묶여 창의적인 교육을 실시하기가 어려웠던 점에 비춰볼 때 학교 자율화 추진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전교조 쪽에서도 "교육과정의 자율화를 보장하는 것은 선진형 교육 과정의 추세"라며 이번 방안의 취지는 십분 이해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현 상황에서 교육과정의 다양화와 자율화를 위한 제도 개선이 과연 실효를 거둘 수 있느냐는 점이다.

교과의 증감 편성 등은 교사 수급 문제를 비롯,교사 간 이해관계와 직결되는 민감한 사안이며, 교장의 인사권 확대 등도 경우에 따라선 악용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학교 자율화 방안을 둘러싼 논란을 분석해본다.

⊙ 찬성 측, "공교육 질적 개선과 다양성 추구에 큰 도움 줄 것"

학교 자율화 방안을 찬성하는 쪽에서는 "우리 교육계가 다양하고 창의성 있는 인재를 양성해내지 못한 원인은 획일적인 교육과정 때문"이라며 "이번 조치는 공교육의 질적 개선과 다양화 추구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강조한다.

지금처럼 고도화된 지식사회에서는 기존 교사들의 역량만으로는 학생들을 잘 가르치기 어려운 만큼 산업,수학,외국어,예 · 체능계 전문가와 박사학위 소지자의 교직 진출 허용 방안을 크게 반기고 있다.

각 분야에 전문성과 경험을 갖춘 고급 인력을 교단으로 끌어내 활용하는 것은 선진 교육을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교장 한 사람만 제대로 해도 학교 분위기는 확 바뀔 수 있다"며 교장에게 책임과 권한을 주고 성과에 따라 평가받게 한 것도 의미가 적지 않다고 강조한다.

교과부는 대입제도 개선 등 다른 교육 정책들과의 유기적 연계 속에 이번 자율화 방안을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 반대 측, "과열 입시경쟁 몰고오고 학교 내 견제세력 위축시킬 것"

이에 대해 반대하는 쪽에서는 "지금 상황에서 학교 교육의 자율성을 확대할 경우 각 학교는 오로지 지필고사, 문제 풀이, 학력 배양에만 전념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주요 대학들이 지필고사 성적 순이나 학교 서열에 따라 학생을 선발하는 관행을 유지한다면 대입에 필요한 학력을 신장하는 데 온 힘을 쏟는 교육의 현실은 바뀔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교과과정 편성의 자율권이 확대되면 입시에 필요한 국어 영어 수학 과목의 수업은 강화되고 다른 교과목은 희생될 게 뻔하다고 꼬집는다.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각각 국제중과 외국어고 등의 진학을 위한 교육에 집중함으로써 자칫 과열 입시 경쟁을 불러올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우려한다.

학교장에게 교사 20%의 초빙권을 주는 인사권 확대는 학교장에게 실질적인 학교 운영권을 준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현 상황에서는 학교 내 비판 · 견제 세력을 위축시키는 부정적 측면이 오히려 더 강할 것이라고 걱정한다.

⊙ 일선학교 자율성은 살리되 입시과열 부작용 막도록 온 힘 쏟아야

학교 자율화 추진 방안은 전 세계적인 흐름에서 볼 때 옳은 방향이다.

우리 교육과정이 획일적인 틀에 묶여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조치는 오히려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걱정되는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학교장이 과목별로 수업시수를 탄력 편성할 때 학부모들이 국어 영어 수학 과목을 늘려달라고 요구하면 학교장으로선 거부하기 쉽지 않다.

이럴 경우 예 · 체능 등 다른 과목은 줄어들어 입시 위주 교육이 심화될 우려가 크다.

이번 방안의 취지에 배치되는 이런 부작용들을 막기 위해선 대학입시제도 개혁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학교장의 인사권 확대도 바람직한 일이지만 운영의 묘가 요구된다.

학교장에게 교사 20%의 초빙권을 주면 우수 교사를 다른 곳에서 데려올 수 있는 여지가 넓어지면서 학교 특성화 제고와 학생 학력 신장에 기여할 수 있는 반면 학교 내 비판 · 견제 교사를 내보내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는 만큼 이의 남용을 막을 장치도 강구해야 한다.

교육 당국은 일선 학교의 자율성을 살리면서 입시 위주의 교육과정이 편성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용어 풀이

학교 자율화 방안

교육과학기술부가 창의적 인재 양성을 위해 4월30일 발표한 것으로, 수업시간을 부분 자율화하고 학교장에게 일부 인사권을 부여하며 교사문호를 개방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정부가 특정 학교에 한해 교육과정의 자율성을 허용한 적은 있지만 모든 학교를 대상으로 수업시간을 자율적으로 운영하도록 한 것은 1954년 초 · 중등 교육과정이 시행된 후 55년 만이다. 정부가 수업 시간표를 짜주던 시대가 막을 내린 셈이다. 교과부는 공청회를 거쳐 내년 1학기부터 시행에 들어갈 예정이다.

수업 시수(時數)

일반적으로 교과과정의 일주일에 특정 교과목이 들어있는 시간 수, 혹은 일주일 동안 교사들이 맡아야 할 수업시간 수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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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4월 30일자 보도기사

이르면 내년부터 전국 모든 초 · 중 · 고교는 일정 범위 내에서 재량으로 특정 교과의 수업시간을 늘리거나 줄일 수 있게 되는 등 교육과정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된다.

또 학교장의 교원인사권이 확대되고,교육과정 운영,교과서 선택,교원임용 등에서 자율권을 허용받는 일종의 '특례학교'인 자율학교도 대폭 늘어난다.

교육과학기술부는 학부모 · 학생 등 수요자 중심으로 학교교육을 다양화하고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교육과정과 교원인사 등의 학교운영 관련 핵심 권한을 학교에 직접 부여하는 내용을 담은 '학교자율화 추진방안(시안)'을 마련,30일 발표했다.

시안에 따르면 각 초 · 중 · 고교는 국민공통 기본교육과정이 정한 연간 총 수업시수(時數)의 20% 범위 내에서 교과를 증감 편성하거나 재량활동과 특별활동을 통합,운영할 수 있게 된다.

총 수업시수의 20% 범위 내에서 교과를 증감 편성하게 되면 국어,영어,수학 등 특정 과목의 수업시간을 학교 재량에 따라 지금보다 주당 1~2시간 늘리거나 줄일 수 있게 된다.

시안은 또 교육감이 지정하는 학교에 한해 정원의 10%까지 허용되는 교사초빙권을 모든 학교를 대상으로 20%까지 상향 조정하는 등 학교장의 인사권을 크게 확대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