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보이는 자연은 진정한 자연의 모습이 아니다”
유명인은 대중에게 자신을 환기시키는 이미지를 적어도 하나씩은 가진다.
이러한 대표적 이미지는 강렬한 인상을 반복해서 남기기 때문에 누구나 그러한 표정,그러한 자세를 보면 금세 그 인물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표적 이미지는 종종 패러디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별 다른 설명이 거추장스럽게 붙지 않아도 누구를 드러내고자 하는지 우리는 바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여기 사진이 한 장 있다.
사진 속의 인물은 눈을 한껏 부릅뜨고 혀를 아래턱까지 쭉 내밀었다.
얼굴의 주름이 꿈틀대고 손은 산만하게 들려 있다.
참고로 머리는 부스스하다.
이 사진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사진의 주인공을 맞췄을 것이다.
상대성 이론으로 유명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다.
기인(奇人)이기를 즐기는 사람들은 이 표정과 자세를 재치있게 모방한다.
그리고 사진이 한 장 더 있다.
이 사진은 방금 전의 사진과 비교할 때 그다지 두드러지는 인상을 주지는 않는다.
곱게 나이 든 할아버지가 고개를 약간 숙이고 눈을 수줍게 맞추며 웃고 있다.
이 사람의 웃는 버릇인지 풋풋한 시절에 찍힌 사진에서도 줄곧 비슷한 모양으로 웃는다.
얌전하게 보이는 이 사람의 이름은 베르너 카를 하이젠베르크다.
사진이 비교적 평범해 이 사진은 패러디되지 않는다.
사실 이 인물 자체가 패러디의 대상이 될 만큼 유난스러운 인상을 남기는 사람이 아니어서,학습지 광고에서 아인슈타인은 자주 활용해도 이 사람은 그냥 지나간다.
하지만 이 사람은 현대 과학을 공부하는 모든 이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그 이름이 거듭 불려지는 사람이며,심지어 요란한 아인슈타인조차 놀라게 만든 사람이다.
그러니 단적인 이미지 하나만 보고 인물을 평가하지는 말자.
아인슈타인은 이 사람 때문에 놀라서 툴툴거리며 외쳤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하이젠베르크가 소개하는 양자역학에 대한 거부감을 표현한 유명한 말이다.
하이젠베르크는 25세에 불확정성 원리를 발표하였는데(이 공로를 인정받아 1932년,즉 1901년생인 하이젠베르크가 나이 31세가 되던 해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그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미시적 세계에서는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은 동시에 정확히 결정되지 않고,위치의 불확정성과 운동량의 불확정성은 반드시 불확정성원리가 성립하도록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이젠베르크의 발견은 당시 과학계를 들썩이게 하였고 아인슈타인은 끝끝내 하이젠베르크가 보여주는 새로운 세상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였다.
본인 스스로도 뉴턴의 고전 물리학을 흔들어 놓기는 했지만 하이젠베르크가 말하는 우주의 불확정성은 그러한 아인슈타인에게조차 힘겨웠나 보다.
하지만 신은 정말로 주사위 놀이를 하는 것으로 판명이 났다.
불확정성 원리는 현대과학의 새로운 장을 열었는데,하이젠베르크는 나중에 다음과 같이 담담하게 말하며 사람들에게 자신의 발견을 전달하고자 하였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관찰하고 있는 자연은 진정한 자연의 모습 그대로가 아니다. 다만 우리가 탐구하는 방법에 따라 각각 다르게 나타나는 자연일 뿐이다. 자연과학은 자연을 단순히 묘사하고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자연과 우리 인간을 이어주는 중개자 역할을 한다(What we have to remember is that what we observe is not nature herself, but nature exposed to our method of questioning. Natural science does not simply describe and explain nature: it is part of the interplay between nature and ourselves)."
이 구절을 읽어보면 하이젠베르크가 글에도 재능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왠지 이 사람의 글을 읽으면 과학계의 고민과 발견 속으로 침잠하면서 새로운 우주관에 눈뜰 것도 같다는 기대감에 설렌다.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하이젠베르크가 저술한 '부분과 전체(Der Teil und das Ganze)'라는 책이 있기 때문이다.
'부분과 전체'는 하이젠베르크가 아인슈타인,보어,프리드리히 등 당대의 석학들과 함께 물리학,생물학,화학 등의 자연과학 및 인간적이고 철학적인 문제에 대해 나눈 대화와 토론을 생생하게 정리한 책이다.
이 책에는 그가 어떻게 원자학과 조우하고 물리학을 연구하게 되었는지 하는 삶의 행로와 함께,현대 물리학에서의 이해의 기반,과학과 종교,정치와 과학,과학과 칸트 및 플라톤 철학 등 다양하고 깊이 있는 주제가 20개로 정리되어 있다.
책 전체에 잔잔하게 흐르는 그의 인품과 그가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세월을 덧입어 가면서 바라보는 이 세상에 대한 고민은 자연과학에 특별한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 책을 즐겁게 읽게 만든다.
'부분과 전체'라는 책의 제목은 학문의 세분화와 전문화 시대에 전체를 보는 눈을 잃지 않았던 하이젠베르크가 적절하게 고른 이름으로 생각된다.
그는 세밀의 정확성과 총체적인 관련성을 늘 인식한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다음 글을 읽으며 '부분과 전체'의 한 대목을 맛보기로 하자.
☞ 기출 논제 (경희대 1999학년도 정시 논술)
[논제]
다음 대화에서 논점을 찾아,그 논점을 중심으로 '가'의 주장을 보완하고 '가'의 입장에서 '나'의 주장을 비판하여 논술하시오.
[제시문]
(가) : 당신의 견해에 따르면,옛 것을 변화시키려는 시도는 잘못된 것입니다.
당신 말씀대로라면,이 세상에서 새로운 일이란 절대로 일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당신의 학문 분야에서 새로운 혁명적인 이론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까?
도대체 무슨 권리로 말입니까?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 이론은 철저하게도 이전의 모든 것을 단절하고 있는데요.
(나) : 우리가 과학에서의 혁명을 말할 때는 정확하게 살펴보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플랑크의 양자이론을 생각해봅시다.
플랑크는 애초부터 기존의 물리학을 변화시키려는 생각이 추호도 없었던 아주 보수적인 정신의 소유자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는 다만 극히 제한된 특정한 문제 해결에 집착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열 복사의 스펙트럼을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물론 그는 이전 물리학의 모든 법칙을 총동원해서 이를 해결하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이전의 것을 가지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여러 해가 필요했습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그는 이전의 물리학 테두리를 벗어나는 하나의 가설을 제안했던 것입니다.
그런 이후에도 그는 부가적 가설로써 옛 물리학을 둘러싸고 있는 벽에다 자기가 뚫은 구멍을 막아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후 계속된 플랑크의 가설 추구는 물리학 전체를 근본적으로 개조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역시 고전적 개념으로 완전히 파악할 수 있는 물리학의 영역 내에서는 변화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과학에서는 사람들이 가능한 한 적게 변화시키려고 노력할 때,즉 우선 좁고 윤곽이 확실한 문제의 해결에만 한정시킬 때,그때에만 결실 있는 혁명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기 마음대로 변화시키려는 시도는 터무니없는 짓입니다.
확립되어 있는 것을 모두 뒤집어 엎으려는 짓은 자연과학에선 다만 분별력 없는 반미치광이 같은 광신자들만이-예컨대 영구기관(永久機關)을 발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시도하고 있을 뿐입니다.
물론 그런 시도로부터 무엇이 나올 까닭이 없습니다.
나는 과학에서의 혁명이 인간 공동 생활에서의 혁명과 어떻게 비교 가능한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성공적인 혁명은 다만 좁고 범위가 한정된 문제를 해결하고,되도록 적게 변화시키려고 노력해야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00년 전의 저 위대한 혁명을 생각해 봅시다.
그 혁명을 일으킨 그리스도는 "나는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러 왔노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면,하나의 중요한 목표에만 한정시키고 가능한 한 작은 범위에서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 : 당신은 어째서 그렇게까지 옛 형식에 집착하는 겁니까?
옛 형식들이 이미 새 시대에는 적합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다만 일종의 타성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견지되고 있는 사례가 허다하지 않습니까?
그런 경우 어째서 그러한 것을 제거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까?
홍보람 S · 논술 선임연구원 nikebb@nonsul.com
유명인은 대중에게 자신을 환기시키는 이미지를 적어도 하나씩은 가진다.
이러한 대표적 이미지는 강렬한 인상을 반복해서 남기기 때문에 누구나 그러한 표정,그러한 자세를 보면 금세 그 인물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표적 이미지는 종종 패러디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별 다른 설명이 거추장스럽게 붙지 않아도 누구를 드러내고자 하는지 우리는 바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여기 사진이 한 장 있다.
사진 속의 인물은 눈을 한껏 부릅뜨고 혀를 아래턱까지 쭉 내밀었다.
얼굴의 주름이 꿈틀대고 손은 산만하게 들려 있다.
참고로 머리는 부스스하다.
이 사진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사진의 주인공을 맞췄을 것이다.
상대성 이론으로 유명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다.
기인(奇人)이기를 즐기는 사람들은 이 표정과 자세를 재치있게 모방한다.
그리고 사진이 한 장 더 있다.
이 사진은 방금 전의 사진과 비교할 때 그다지 두드러지는 인상을 주지는 않는다.
곱게 나이 든 할아버지가 고개를 약간 숙이고 눈을 수줍게 맞추며 웃고 있다.
이 사람의 웃는 버릇인지 풋풋한 시절에 찍힌 사진에서도 줄곧 비슷한 모양으로 웃는다.
얌전하게 보이는 이 사람의 이름은 베르너 카를 하이젠베르크다.
사진이 비교적 평범해 이 사진은 패러디되지 않는다.
사실 이 인물 자체가 패러디의 대상이 될 만큼 유난스러운 인상을 남기는 사람이 아니어서,학습지 광고에서 아인슈타인은 자주 활용해도 이 사람은 그냥 지나간다.
하지만 이 사람은 현대 과학을 공부하는 모든 이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그 이름이 거듭 불려지는 사람이며,심지어 요란한 아인슈타인조차 놀라게 만든 사람이다.
그러니 단적인 이미지 하나만 보고 인물을 평가하지는 말자.
아인슈타인은 이 사람 때문에 놀라서 툴툴거리며 외쳤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하이젠베르크가 소개하는 양자역학에 대한 거부감을 표현한 유명한 말이다.
하이젠베르크는 25세에 불확정성 원리를 발표하였는데(이 공로를 인정받아 1932년,즉 1901년생인 하이젠베르크가 나이 31세가 되던 해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그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미시적 세계에서는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은 동시에 정확히 결정되지 않고,위치의 불확정성과 운동량의 불확정성은 반드시 불확정성원리가 성립하도록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이젠베르크의 발견은 당시 과학계를 들썩이게 하였고 아인슈타인은 끝끝내 하이젠베르크가 보여주는 새로운 세상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였다.
본인 스스로도 뉴턴의 고전 물리학을 흔들어 놓기는 했지만 하이젠베르크가 말하는 우주의 불확정성은 그러한 아인슈타인에게조차 힘겨웠나 보다.
하지만 신은 정말로 주사위 놀이를 하는 것으로 판명이 났다.
불확정성 원리는 현대과학의 새로운 장을 열었는데,하이젠베르크는 나중에 다음과 같이 담담하게 말하며 사람들에게 자신의 발견을 전달하고자 하였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관찰하고 있는 자연은 진정한 자연의 모습 그대로가 아니다. 다만 우리가 탐구하는 방법에 따라 각각 다르게 나타나는 자연일 뿐이다. 자연과학은 자연을 단순히 묘사하고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자연과 우리 인간을 이어주는 중개자 역할을 한다(What we have to remember is that what we observe is not nature herself, but nature exposed to our method of questioning. Natural science does not simply describe and explain nature: it is part of the interplay between nature and ourselves)."
이 구절을 읽어보면 하이젠베르크가 글에도 재능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왠지 이 사람의 글을 읽으면 과학계의 고민과 발견 속으로 침잠하면서 새로운 우주관에 눈뜰 것도 같다는 기대감에 설렌다.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하이젠베르크가 저술한 '부분과 전체(Der Teil und das Ganze)'라는 책이 있기 때문이다.
'부분과 전체'는 하이젠베르크가 아인슈타인,보어,프리드리히 등 당대의 석학들과 함께 물리학,생물학,화학 등의 자연과학 및 인간적이고 철학적인 문제에 대해 나눈 대화와 토론을 생생하게 정리한 책이다.
이 책에는 그가 어떻게 원자학과 조우하고 물리학을 연구하게 되었는지 하는 삶의 행로와 함께,현대 물리학에서의 이해의 기반,과학과 종교,정치와 과학,과학과 칸트 및 플라톤 철학 등 다양하고 깊이 있는 주제가 20개로 정리되어 있다.
책 전체에 잔잔하게 흐르는 그의 인품과 그가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세월을 덧입어 가면서 바라보는 이 세상에 대한 고민은 자연과학에 특별한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 책을 즐겁게 읽게 만든다.
'부분과 전체'라는 책의 제목은 학문의 세분화와 전문화 시대에 전체를 보는 눈을 잃지 않았던 하이젠베르크가 적절하게 고른 이름으로 생각된다.
그는 세밀의 정확성과 총체적인 관련성을 늘 인식한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다음 글을 읽으며 '부분과 전체'의 한 대목을 맛보기로 하자.
☞ 기출 논제 (경희대 1999학년도 정시 논술)
[논제]
다음 대화에서 논점을 찾아,그 논점을 중심으로 '가'의 주장을 보완하고 '가'의 입장에서 '나'의 주장을 비판하여 논술하시오.
[제시문]
(가) : 당신의 견해에 따르면,옛 것을 변화시키려는 시도는 잘못된 것입니다.
당신 말씀대로라면,이 세상에서 새로운 일이란 절대로 일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당신의 학문 분야에서 새로운 혁명적인 이론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까?
도대체 무슨 권리로 말입니까?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 이론은 철저하게도 이전의 모든 것을 단절하고 있는데요.
(나) : 우리가 과학에서의 혁명을 말할 때는 정확하게 살펴보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플랑크의 양자이론을 생각해봅시다.
플랑크는 애초부터 기존의 물리학을 변화시키려는 생각이 추호도 없었던 아주 보수적인 정신의 소유자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는 다만 극히 제한된 특정한 문제 해결에 집착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열 복사의 스펙트럼을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물론 그는 이전 물리학의 모든 법칙을 총동원해서 이를 해결하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이전의 것을 가지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여러 해가 필요했습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그는 이전의 물리학 테두리를 벗어나는 하나의 가설을 제안했던 것입니다.
그런 이후에도 그는 부가적 가설로써 옛 물리학을 둘러싸고 있는 벽에다 자기가 뚫은 구멍을 막아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후 계속된 플랑크의 가설 추구는 물리학 전체를 근본적으로 개조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역시 고전적 개념으로 완전히 파악할 수 있는 물리학의 영역 내에서는 변화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과학에서는 사람들이 가능한 한 적게 변화시키려고 노력할 때,즉 우선 좁고 윤곽이 확실한 문제의 해결에만 한정시킬 때,그때에만 결실 있는 혁명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기 마음대로 변화시키려는 시도는 터무니없는 짓입니다.
확립되어 있는 것을 모두 뒤집어 엎으려는 짓은 자연과학에선 다만 분별력 없는 반미치광이 같은 광신자들만이-예컨대 영구기관(永久機關)을 발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시도하고 있을 뿐입니다.
물론 그런 시도로부터 무엇이 나올 까닭이 없습니다.
나는 과학에서의 혁명이 인간 공동 생활에서의 혁명과 어떻게 비교 가능한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성공적인 혁명은 다만 좁고 범위가 한정된 문제를 해결하고,되도록 적게 변화시키려고 노력해야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00년 전의 저 위대한 혁명을 생각해 봅시다.
그 혁명을 일으킨 그리스도는 "나는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러 왔노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면,하나의 중요한 목표에만 한정시키고 가능한 한 작은 범위에서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 : 당신은 어째서 그렇게까지 옛 형식에 집착하는 겁니까?
옛 형식들이 이미 새 시대에는 적합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다만 일종의 타성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견지되고 있는 사례가 허다하지 않습니까?
그런 경우 어째서 그러한 것을 제거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까?
홍보람 S · 논술 선임연구원 nikebb@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