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안전성 검증된 약품, 약국 독점판매는 부당”

반 “일반약이라도 안전성 보장못하고 오·남용 우려”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이 일반의약품(OTC)의 약국 외 판매가 실익이 없기 때문에 이를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 허용 문제가 논란을 빚고 있다.

보건복지부 쪽에서는 "한국에는 약국이 슈퍼마켓보다 많아 국민 불편이 크지 않다"며 약국이 아닌 곳에서 일반 의약품의 판매를 허용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의약품을 일반 공산품과 같이 취급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한약사회 또한 '약품 오남용이 늘어난다'며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 허용에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 쪽에서는 "국민 생활에 도움을 주고 관련 분야 시장 확대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크다"면서 이 제도의 시행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도 "안전성이 충분히 확보된 일반의약품은 국민의 편익을 고려해 약국 외 판매를 허용하는 게 옳다"는 입장이다.

이명박 정부는 일반 소매점에서 팔 수 있는 단순 약품의 확대를 중점 과제의 하나로 내걸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감기약 등의 약국 외 판매를 추진하겠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추가로 판매가 허용된 약품은 한건도 없다.

진통제, 두통약,소화제 등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 문제를 놓고 또다시 논란이 불거진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 허용의 타당성을 검증해본다.

⊙ 찬성 측, "안전성 인정된 일반의약품의 약국 판매는 부당"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 허용에 찬성하는 쪽에서는 "약사의 도움이 전혀 필요 없는데도 약사가 집어주는 약만 먹어야 하는 제도는 부당하다"고 지적한다.

질병 치료와 약물 취급은 전문가에게 맡겨야 하지만 처방이 필요 없는 일반의약품 중에서도 특별히 안전성과 유효성이 인정된 OTC의 경우 약국에서만 판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약국이 많아 국민이 불편하지 않다고 복지부 장관이 밝혔지만 약국이 문을 닫은 주말이나 밤에는 해열제나 진통제를 찾아 헤맬 수밖에 없다고 볼멘소리를 낸다.

무엇이 어느 약국에 있는지,가격은 얼마인지도 약국에 가야만 확인할 수 있으니 가격 경쟁도 불가능하다고 꼬집는다.

실제로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선진국에서는 약사의 전문성이 요구되지 않는 약품의 경우 소비자 편의와 경쟁 유도를 위해 소매점 판매를 허용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국민의 건강과 복지를 책임져야 하는 복지부가 이 제도에 반대하고 나서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 반대 측, "일반약도 안전성 확보가 어렵고 오남용도 우려"

이에 대해 반대하는 쪽에서는 "안전성이 입증된 일반약이라도 환자의 건강 상태나 복용 방법에 따라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며 "의약품은 공산품처럼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특히 의사 진료가 필요한 환자가 의약품을 슈퍼마켓에서 구입해 장기간 복용할 경우 질환을 조기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시기를 놓치게 된다고 꼬집는다.

게다가 일반의약품을 슈퍼마켓에서 판매하면 부작용이나 위해가 발생하더라도 신속한 보고 및 회수가 어렵다고 강조한다.

2005년부터 3년간 국내 유해식품의 수거율은 평균 14%에 불과한 반면 석면 함유 탤크를 원료로 사용한 의약품은 빠른 시일 안에 회수된 데서도 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지식을 갖춘 약사가 약국에서 의약품을 판매하고 당번약국의 의무를 강화해 편의성 및 접근성을 높이고,철저한 복약지도로 국민의 안전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의약품 판매 문제는 국민 편의를 위한 규제 완화 차원에서 접근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 가벼운 증상 치료 약만이라도 약국 외 판매 허용해야

국민의 의약품에 대한 편의성을 제고하고 의약품 선택권 보장을 통해 의료비 절감을 유도하는 일은 바람직한 방향이다.

더구나 안전성이 검증된 일반약 중에서 가벼운 증상의 개선과 호전에 도움을 주는 약 만이라도 약국이 아닌 곳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충분하다.

감기약,진통제,소화제,비타민 및 미네랄 제제,금연보조제 등은 현행법에 따라 고속도로 휴게소와 항공기 등에서 이미 판매가 허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약국들은 의약분업 이후 처방조제에 치중하면서 병의원이 문을 닫는 시간이면 서둘러 문을 닫는 곳이 대부분이다.

평일에도 밤 10시 이후엔 문을 연 약국을 찾기가 쉽지 않으며 휴일에는 약국을 이용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은 실정이다.

대도시 사정이 이 정도인데 중소도시나 농어촌 지역에서의 약국 접근성은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우리나라 전체 약국 수가 슈퍼마켓보다 많다고 해도 국민들이 약국을 이용하는 데 불편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당번약국을 법으로 의무화한다고 해도 결코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복지부가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 문제를 경제논리로 국한시키고 국민건강을 위해 이를 반대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소비자들이 가벼운 질환으로 병원에 가지 않도록 안전성이 검증된 일반약을 슈퍼마켓 등에서 구입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게 타당하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용어 풀이

일반의약품(OTC · Over The Counter)

안전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의사의 처방전 없이 약국이 아닌 일반 소매점에서도 팔 수 있도록 허용된 약을 일컫는다. 미국 영국 독일 등은 일반 상점에서 감기약 소화제 진통제 해열제 등의 판매를 허용하고 있으며 일본도 소화제 정장제 등 400개 품목을 슈퍼나 편의점에서 팔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금연보조제,스프레이 파스,거즈 및 소독제,저함량 비타민제 등만 일반 소매점 판매가 허용되고 있다.

당번 약국제

야간이나 휴일에도 지역별로 약국을 운영하는 것을 말한다. 2001년 의약분업제 실시 이후 환자와 소비자의 편의를 위해 보건복지가족부가 각 지자체별로 자율 시행토록 권장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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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4월7일자 보도 기사

감기약이나 소화제 등 처방전이 필요없는 약들을 일반 슈퍼에서 판매하는 문제에 대해 정부 각 부처는 물론 단체,소비자끼리도 의견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최근 기획재정부 윤증현 장관이 언론 인터뷰와 공식 석상에서 잇달아 일반약 슈퍼 판매를 옹호하는 입장을 밝히면서 찬반 논란이 다시금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윤 장관은 슈퍼 등에서 쉽게 일반약을 구입할 수 있는 외국 사례와 비교하면서 국내 내수 활성화를 장점으로 꼽았다는 전언이다.

그러나 윤 장관의 이같은 발언은 최근 보건복지가족부 전재희 장관이 반대 입장을 표명하면서 한풀 꺾였다.

전 장관은 "우리나라는 약국이 슈퍼보다 많아 국민 불편이 크지 않을 것이며 일반약이 약국 외에서 판매돼도 매출에는 실제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반박 의사를 확실히 했다.

일반약 슈퍼판매에 대해 가장 강력히 반대 의사를 펼치고 있는 대한약사회는 의약품은 시장경제 논리로 설명될 수 없는 부분이 많아 효율성보다는 전문성,안전성 측면이 우선 고려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결국 시장논리에 의해 무조건 결정될 문제가 아니라 국민건강을 우선으로 의약품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