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등 사교육비 급증 차라리 현지에서 배우자"
[Focus] 해외 유학생 34만명…미래위한 가치있는 투자인가?
한국인 해외 유학생이 많다는 건 더 이상 화젯거리가 아니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이 최근 발표한 바에 따르면 유학생 · 교환학생 정보시스템(SEVIS)에 등록된 한국 국적 유학생 수는 지난해 말 11만83명에 달했다.

SEVIS에 등록된 한국인 유학생 수는 2004년 7만3272명에서 4년 만에 3만7000명, 연평균 10.7%나 증가한 수치다.

미국 내 전체 외국인 유학생의 무려 15%에 달하는 수준이다.

우리 정부가 추산한 해외 유학생 총수는 미국을 포함해 무려 34만4133명에 달한다.

이들 중엔 초 · 중 · 고등학생도 상당해서 2007년 유학을 목적으로 출국한 초 · 중 · 고 유학생은 2만7668명에 이른다.

10년 전인 1998학년도 1562명에서 17.8배나 불어난 수치다.

대원외고나 민족사관고등학교의 경우 아이비리그 입학 성적이 30위 내에 들어 미국 유수의 명문고와 어깨를 나란히하고 있을 정도다.

아예 초등학생이 '나홀로 유학'을 가는 경우도 요즘은 비일비재하다.

왜 이렇게 해외 유학생이 급증하게 된 걸까.

해외 유학생 증가 기사엔 으레 '공교육'이란 단어가 따라붙는다.

경제학 용어로 보자면 해외 유학(특히 영어권 국가에서의 유학)과 국내 교육과정 사이엔 '대체재' 관계가 성립한다.

대체재란 어느 한 재화가 다른 재화와 비슷한 효용을 가지고 있어 한 재화의 수요가 늘면 다른 재화는 줄어드는 경우를 말한다.

2007년 중앙일보가 동아시아연구원과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공교육에 만족한다는 응답은 25.3%에 불과했다.

무려 62.9%가 불만족스럽다고 응답했고, 11.8%는 매우 불만족스럽다고 답변했다.

불만족을 합치면 전체 응답자의 4분의 3에 이르는 것이다.

외국 유학은 학비가 매우 비싸다.

아이비리그에 유학 갈 경우 교육비는 평균 연 4만달러(5300만원)에 달한다.

이렇게 값비싼 비용을 지불하고도 외국에 있는 학교에 보낼 만큼 국내 공교육은 불신받고 있는 것이다.

교육은 '인적 자본(human capital)'에 대한 투자라는 미국 경제학자 개리 베커(Gary Becker)의 주장도 한번 생각해 보자.

개리 베커는 교육은 그 사람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일종의 투자이고, 따라서 교육을 통해 높아진 생산성으로 얻을 수 있는 추가적인 소득과 교육 비용을 고려해 교육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최근의 외국 유학 열기는 △외국 유학, 특히 영어권 국가 유학을 통해 유용한 기능을 확보할 수 있고 △이 기능은 앞으로 비용을 상쇄할 만큼 수익을 거둘 수 있으며 △비용 또한 감당할 만하다고 많은 이들이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실제로 정일준 고려대 교수가 2008년 발표한 논문에 의하면 자녀를 조기 유학 보낸 부모들은 '영어와 외국어 학습에 유리'(45.0%) '입시 위주의 교육제도'(16.2%) '과도한 사교육비'(11.6%)를 그 이유로 꼽았다.

먼저 외국 유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유용한 기능은 외국어, 특히 영어구사 능력이 핵심이다.

가구당 사교육비 지출을 조사한 통계청 자료(2008년)에 의하면 영어 사교육비는 월 7만6000원으로 수학(6만2000원), 국어(2만3000원)를 압도했다.

2007년 김진영 건국대 교수와 최형재 고려대 교수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영어 구사가 필요한 직무에 종사하는 근로자나 영어 능력을 갖췄다고 스스로 평가한 근로자들은 다른 조건이 같으면 영어 능력이 부족한 근로자보다 30% 정도 높은 임금을 받았다.

2006년 한국일보가 서울대 경영학과 86학번 졸업생 51명을 조사한 결과 '영어 실력이 우수하다'고 응답한 집단의 평균 연봉(1억600만원)은 '중간 혹은 그 이하'라고 답한 그룹(7000만원)보다 3000만원 이상 많았다.

더구나 외국의 명문대에 진학할 경우 한국의 학벌 체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기러기 아빠' 현상을 보도하며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는 한국 교육에 관해 "직업과 사회적 지위는 물론 배우자마저도 시험 성적에 따라 결정됨으로써 창조성이나 기업정신이 설 자리가 없다"고 평했다.

"사회적으로는 아직 왕조 시대의 교육 체제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나라"라는 지적은 외국 언론들의 한국 유학열풍 보도에서 빼놓지 않고 등장한다.

이러한 문제를 미국에서의 교육 배경을 내세워 만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외고나 과학고 등에서 불고 있는 미국 대학 진학은 이런 배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아울러 그러한 사고의 배후에는 장차 외국 대학 진학자가 국내 대학 진학자에 비해서 상당한 대우를 받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음은 물론이다.

비용 측면에서도 사교육비의 급증은 유학을 감당할 만한 옵션으로 바꾸어 놓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08년 사교육비는 20조9000억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2.0%에 달한다.

한국은행이 한국교육고용패널 자료를 이용해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고등학교 2학년 자녀를 둔 가정의 사교육비는 수입의 21.3%를 차지하는데 고소득층 집단에선 30%까지 비중이 높아졌다.

더구나 사교육비는 매년 크게 오르고 있다.

최근 8년간 대입 학원비 상승률은 평균 6.3%로 물가상승률 3.2%의 두 배에 달했다.

8년간 물가는 28.7% 뛴 반면 학원비는 63%나 오른 셈이다.

해외 유학 급증을 공교육 실패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이들은 자율형 사립고를 비롯해 다수의 '자율학교'를 설립하면 잠재적인 수요를 확보해 해외 유학생을 붙잡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바로 영어이다.

과연 영어를 어떻게 하면 제대로 교육할 것인가.

한국이 가진 것은 인적 자원밖에 없다는 점, 그리고 바야흐로 세계화 시대라는 점을 생각하면 미국 유학의 가치를 쉽게 부정할 수만도 없다.

조귀동 한국경제신문 기자 claymo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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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들어간 돈만큼 이득 얻을 수 있을까?

美 유학생 44%가 중도하차

수출로 애써 번 외화 낭비도

유학이 비용만큼 수익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도 제기된다.

재미교포인 김승기씨가 미국 컬럼비아대 박사논문으로 제출한 '한인 명문대생 연구'에 의하면 1985~2007년 동안 하버드대 등 미국 14개 명문대에 입학한 한인 학생 1400명 중 44%는 중간에 학교를 그만뒀다.

이는 미국 학생들의 중퇴율 34%를 크게 웃돈 수치다.

2006년 한국교육개발원이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유학 가기 전 자녀의 성적이 '상위 10% 이내'라고 응답한 학부모는 50.4%였지만,귀국 후에는 그 비율이 31.5%로 감소했다.

조기 유학을 경험한 학부모 중 '조기 유학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응답한 사람도 절반이 채 못 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 대학을 졸업하고 국내에 귀국한 이들 중 상당수가 원하는 직장에 취업하지 못하고,한국 대학이나 대학원에 다시 진학하는 이들도 많다.

인적 자본 투자가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지고,특정 시점 이후엔 투자가 어렵다는 점을 생각하면 개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극히 비효율적인 결과다.

또한 경상수지 악화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연간 유학 연수 지급액은 44억8000만달러를 기록했다.

그나마 환율 급등으로 전년 같은 기간(50억3000만달러)보다 10.9% 감소한 수치다.

그 이전에는 1999년 이후 매년 평균 23.2%씩 올랐다.

자동차 반도체로 힘들게 번 돈이 외국에서 교육받기 위해 뭉치로 빠져 나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