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의무 수입량 계속 늘어 개방 늦출수록 손해”

반 “개방하면 미국이 FTA에 쌀 포함시킬 것”

쌀 시장 조기 개방 문제를 놓고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민 · 관합동기구인 농어업선진화위원회가 쌀시장 조기개방 문제를 의제의 하나로 선정해 앞으로 본격 논의하기로 결정한 게 그 발단이다.

물론 쌀 시장 개방을 둘러싼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쌀 시장을 지키기 위해 김영삼 정부는 2004년까지 관세화유예 조치를 택했다.

노무현 정부도 10년간 개방을 미뤘다.

그 대신 일종의 의무수입 물량인 최소시장접근(MMA) 물량을 낮은 관세로 매년 의무 수입하고 있다.

조기 개방론은 MMA 물량이 매년 늘어나고 있는 반면 국제 쌀 가격은 큰 폭으로 뛰면서 국내 쌀도 어느정도 경쟁력을 갖게 된 만큼 쌀 시장을 개방하는 것이 차라리 쌀 수입량을 줄이는 방법이라는 데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이런 논리는 그동안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등을 통해 제기됐고 정부도 그 타당성을 인정해왔다.

다만 정부는 그 간 사안의 정치적 민감성 등을 감안해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 결과가 나오면 그 때 가서 논의하자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농어업선진화위원회의 이번 의제 채택으로 관세장벽을 앞세워 쌀 시장을 앞당겨 열 것인 지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문제는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하는 대신 수입 쌀에 관세를 붙여 시장을 개방하는 쪽이 과연 국가나 농민에게 더 유리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쌀 시장 조기 개방 논란을 분석해본다.

⊙ 찬성 측, "개방 늦출수록 의무수입량 늘어 국가적으로 손해 "

쌀 시장 조기개방에 찬성하는 쪽에서는 "현재대로 계속 가면 최소시장접근(MMA)방식에 따라 2005년 22만5575t에서 시작한 쌀 수입물량이 2014년에는 40만8700t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2014년까지 개방을 늦추면,그해 쌀 소비량의 12% 정도를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한다는 얘기다.

게다가 2014년말에 쌀 시장을 전면 개방할 경우 의무 수입량이 없어지거나 줄지 않기 때문에 매년 최소 40만t의 쌀을 수입해야 하지만 관세화 조치를 통해 시장을 열면 개방 시점의 MMA수준 물량만 수입하면 된다고 강조한다.

뿐만 아니라 국제 쌀값이 크게 올라 초기 8배에 이르던 가격 차이가 대폭 줄어들면서 수입 쌀이 쏟아져 들어올 우려도 크지 않다고 지적한다.

MMA 물량을 최소화하고 환율(원 · 달러 환율 926원)과 국제 쌀가격(t당 425달러)을 최악의 조건으로 놓고 따져도 10년간 1800억~3700억원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쌀 전면 개방을 늦추면 늦출수록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할 외국 쌀이 해마다 늘어나므로 결국 손해라는 입장이다.

⊙ 반대 측, "쌀시장 전면개방시 미국에서 FTA에 쌀 포함을 요구할 것"

이에 대해 반대하는 쪽에서는 "한국이 쌀 의무수입량을 계속 늘려주는 대신 쌀의 전면 개방 이른바 '관세화'를 하지 않는 상태였기 때문에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에서는 쌀 관세율 감축 의무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FTA 서명 당시에 한국에는 쌀의 관세율 자체가 없었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또 "한 · 미 FTA에는 한국이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에서 2014년까지 쌀 의무수입량 증가를 약속했다는 조항이 들어 있다"며 한국이 의무수입량을 늘리지 않으려고 쌀을 전면 개방하겠다고 나설 경우 미국은 당연히 FTA에 쌀을 포함시키려고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조기 개방에 찬성하는 쪽에서는 일본의 경우 1999년에 전면 개방했음에도 쌀 수입량은 늘지 않았다며 일본을 본보기로 들지만 한국은 사정이 다르다고 강조한다. 일본이 미국 쌀에 대해 600% 대의 높은 관세를 매길 수 있는 것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쌀 시장 조기 개방에 앞서 국민적 합의부터 도출해야

농어업선진화위원회의 의제 선정으로 쌀 시장 조기개방 문제를 공론화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그런 만큼 정부 당국은 관세화 유예로 치러야 할 대가와 관세화 개방에 따른 국익을 철저히 비교분석하는 데 온 힘을 쏟지 않으면 안된다.

쌀 시장을 조기 개방하면 의무 수입물량이 더 늘지 않게 되고 그 만큼 재정 부담도 줄일 수 있다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연구결과도 다시 한번 검증해야 할 것이다.

의무 수입물량이 이대로 계속 늘어나는 것보다는 지금이라도 높은 관세를 붙여 쌀시장을 개방하는 게 국가적으로 더 유리하다는 결론이 나온다면 정부 당국은 대국민 설득에 발벗고 나서야 한다.

쌀시장 조기 개방이 농민에게 더 유리하다는 사실을 설득해 그들의 불안을 덜어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총리 등이 전면에 나서야 할 것이다.

이번 기회에 관세화 조기 전환으로 자국 농업 보호에 성공한 일본과 대만의 사례도 적극 참고할 필요가 있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 용어풀이 >

최소시장접근 (MMA · Minimum Market Access)

수입이 금지된 상품의 시장을 개방할 때 국내 시장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일정기간 동안 최소한의 개방 폭을 규정한 것을 말한다. 식량안보나 환경보호차원에서 일부 품목에 대해 시장을 개방하지 않더라도 국내 소비량에 대한 일정 부분은 반드시 수입하도록 의무화한 제도이다. 1991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타결을 위해 제시된 던켈 초안에서 최초로 사용되었으며,UR에서 확립된 시장개방 원칙의 하나다.

도하개발아젠다협상 (DDA · Doha Development Agenda)

우루과이라운드협상에 이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홉번 째 열린 다자간 무역협상. 2001년 11월 카타르 도하에서 개최된 제4차 WTO 각료회의에서 출범했다. '개발'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앞선 협상들과 달리 개도국의 개발에 중점을 둬야한다는 주장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출범 당시에는 2005년 이전에 협상을 일괄타결방식으로 종료할 계획이었으나 농산물에 대한 수입국과 수출국간 대립,공산품 시장개방에 대한 선진국과 개도국간 대립 등으로 아직까지 협상이 계속되고 있다.

-------------------------------------------------------------

연합뉴스 4월 8일자 보도기사

정부가 쌀 시장 조기 개방 문제를 공론화하기로 했다.

8일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농어업선진화위원회는 7일 첫 워크숍을 열고 쌀 시장 조기 개방 문제를 위원회의 의제 중 하나로 선정해 본격 논의하기로 했다.

쌀 시장 조기 개방이란 2014년까지 유예돼 있는 쌀의 관세화 시기를 앞당겨 이보다 일찍 쌀을 관세화하자는 것이다.

한국은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에서 2004년까지 쌀에 대해 관세화 유예(시장 개방 유예) 조치를 인정받았고 2004년 쌀 협상에서 관세화 유예를 2014년까지 추가로 연장했다.

그 대신 일종의 의무수입 물량인 최소시장접근(MMA) 물량을 낮은 관세로 매년 의무 수입하고 있다.

조기 개방론은 이 MMA 물량이 매년 늘어나고 있는 반면 국제 쌀 가격은 고공 행진하면서 국내 쌀도 경쟁력을 갖게 된 만큼 쌀 시장을 개방하는 것이 차라리 쌀 수입량을 줄이는 방법이라는 논거에 기초하고 있다.

이런 논리는 그동안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등 학계,연구소 등을 통해 제기됐고 정부도 그 타당성을 인정해왔다.

다만 정부는 그간 사안의 정치적 민감성 등을 감안해 진행 중인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 결과가 나오면 그때 가서 논의하자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를 농어업선진화위의 의제로 채택함에 따라 미묘한 입장의 변화가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 기구는 이명박 대통령의 '농업 개혁' 주문에 따라 농어업 정책 전반의 개혁 청사진을 마련하기 위해 구성된 민관 합동기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