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 방위력 정비계획’ 1년 앞당겨 마련

자민당 공식회의서 "핵 무장해야" 언급도

[Focus] 일본, 北미사일 핑계로 군국주의 부활 노리나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를 계기로 일본의 '군사 대국론'이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일본의 집권 여당인 자민당에선 '핵 무장론'까지 나왔고, 방위성은 최첨단 군비 확장을 더욱 본격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원래 일본은 이른바 '평화헌법'이라고 불리는 헌법 9조 1항과 2항에 따라 전쟁을 일으킬 수 없고, 자위대의 전투임무 활동도 사실상 금지돼 있다.

현재 일본 자위대는 신테러특별법에 따른 인도양 급유 활동,이라크 부흥특별법에 따른 항공 자위대 공수 활동 등을 실시하고 있다.

일본은 동맹국이 다른 나라로부터 무력공격을 받을 때 실력행사를 통해 저지하는 권리인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받지 못하는 대신, 자국의 방어를 위한 개별적 자위권만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엔 북한의 로켓 발사와 자위대의 해외 파병 등을 계기로 일본 사회가 군사강국론을 다시 꺼내드는 형국이다.

지난 3월 요미우리신문이 실시한 헌법 개정 관련 전국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헌법 9조에 대해서는 "해석과 운영으로 대응하는 것은 한계가 있어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가장 많은 38%로 지난해보다 7%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달 초 일본 방위성은 북한의 위협을 명분으로 당초 계획을 1년 앞당겨 차기 '중기 방위력 정비계획'을 올해 마련하기로 했다.

2010~2014년의 군비 확장 계획을 세우는 이 방안에는 2012년까지 미사일방어(MD) 체제를 완성한다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이와 관련해 하마다 야스카즈 일본 방위상은 9일 "현재 조기경계 정보를 미군에 의존하는 만큼 일본도 독자적으로 조기경계위성을 보유하는 방안을 검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방위성은 조기경계위성 연구개발의 필요성을 담은 '우주개발이용에 관한 기본방침'을 지난 1월 마련했으며,정부 우주개발전략본부에서 5월에 마련하는 '우주기본계획'에도 이를 반영할 방침임을 밝힌 바 있다.

자민당의 사카모토 고지 조직본부장은 7일 개최된 임원 연락회의에서 "저쪽(북한)은 핵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도 '핵을 보유한다'고 말해도 좋은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고 일본 언론들이 전했다.

일본에선 극우파를 중심으로 핵 무장론이 제기돼 왔지만 자민당 공식회의에서 지도부 인사가 핵 무장을 언급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파문이 예상되자 사카모토는 기자회견에서 "일본이 핵 무장도,유엔 탈퇴도 할 수 없다는 것은 잘 알지 않은가. 북한에 강력하게 대응하자는 뜻으로 예를 들었을 뿐"이라며 한발 물러섰지만 우파 내에선 '핵 무장론'이 고개를 들 가능성이 커졌다.

일본 언론들도 8일 북한이 전날 공개한 로켓 발사 영상의 분석 결과와 북한의 군사기술 발전에 대해 일제히 보도하며 일본의 군사대국화가 필요함을 넌지시 암시했다.

미사일 기술 전문가인 군사평론가 노기 게이이치는 아사히신문에서 "로켓의 디자인이 미끈하게 빠졌고 구조도 안정감이 있어 북한의 로켓 기술이 크게 진척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군사평론가 에바타 겐스케도 "로켓의 크기가 상당히 대형인데도 발사 직후 상승 속도가 굉장히 빨라 북한의 기술이 크게 진전됐다"고 평가했다.

요미우리신문은 "한국이 보유한 미사일은 사거리가 300㎞로 제한돼 있어 북한에 대응하기 어렵다"며 "한국에서도 미사일 사거리 확대와 MD 체제 구축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 언론이나 군사 전문가들이 북한 로켓 기술을 높게 평가하고 한국의 대응 필요성까지 언급한 것은 일본의 군비 확장 명분을 쌓으려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대대적인 군비 증강을 위한 일본의 여론 조성 작업도 강화되고 있다.

최근 실시된 요미우리신문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본 국민 88%가 "북한의 탄도미사일 개발에 대해 불안감을 느낀다"고 대답했다.

로켓이 발사된 5일 후지TV의 전화 여론조사에서는 60% 이상이 방위예산 증액에 찬성 의견을 나타냈다.

일본 방위예산은 1997년 4조9475억엔을 정점으로 줄어드는 추세에 있지만 이번 로켓 발사로 증액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는 평가다.

호소다 히로유키 자민당 간사장은 "일본은 북한이 핵을 탑재해 일본에 떨어뜨릴 기술이 있다고 봐야 한다"며 "인공위성을 탑재했는가 아닌가는 관계없다. 로켓이 일본을 넘어서 날아갔다는 것 자체가 위협"이라면서 군비 증강론에 힘을 실었다.

또 음주회견 파문으로 물러난 나카가와 쇼이치 전 재무상은 "북한이 핵무기 운반 시스템을 완성하면 어떻게 대항할 것인가.

이젠 일본도 핵과 관련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일본은 그동안 대포동 발사 등 북한의 군사적 행동이 있을 때마다 MD 구축 등 군사력을 강화해 왔다.

일본은 1998년 북한이 대포동 1호를 발사한 후 15조원 규모의 MD를 구축했고 2006년 북한 핵실험을 빌미로 방위청을 방위성으로 격상시킨 후 본격적인 군비 강화에 나선 상태다.

일본은 2008년 1월 이지스함 3척을 전력화했으며 내년까지 일본 열도 전역 10곳 기지에 신형 패트리엇(PAC-3)을 추가로 배치하고 2010년에는 미국과 함께 공동미사일사령부를 설치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스텔스기 도입,항공모함 건조도 추진 중인 상태다.

또 일본 정부는 지난 3월 소말리아 해협에 첨단 미사일과 대함 어뢰로 중무장한 해상자위대 소속 정예 구축함 2척을 파견했다.

"소말리아 인근 해적을 소탕해 국제사회에 공헌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전투능력을 갖춘 해상자위대 구축함이 해외에 사실상 처음 파견됨으로써 일본이 군사력을 다시 증강하려는 속내가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일본 정부는 해적 소탕을 위해 소말리아에 파견 중인 해상자위대가 해적 제압을 위해 무기를 사용하는 경우엔 헌법 9조가 금지하고 있는 자위대의 무력행사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

국가나 국가에 준하는 조직을 공격하는 것은 헌법이 금지한 무력행사에 해당하지만 개별 집단인 해적에 대해 자위대가 무력을 행사해도 위헌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미아 한국경제신문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