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젊음과 아름다움을 얻는게 진정 쾌락인가?
절묘한 입담이 어록으로 전해지는 세기의 배우 매 웨스트(Mae West)는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 아닌 바에야,나는 유혹을 피해 다니는 편이다 (I generally avoid temptation unless I can't resist it)."
좋은 여자들은 천국에 가지만 나쁜 여자들은 천국만 제외하고는 어디든지 갈 수 있다고 말했던 매 웨스트의 캐릭터를 생각한다면 이 발언이 가지는 매력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살바도르 달리를 비롯한 무수한 예술가들이 매 웨스트를 기렸고 관객들은 그녀에게 열광했다.
솔직한 배덕자는 모름지기 시대를 불문하고 흥미와 경탄의 대상이 되는 법이다.
괴테의 파우스트를 분석할 때도 사람들은 노학자를 유혹하는 악마 메피스토필리스의 달변에 언제나 깊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가.
그리고 이러한 유명한 배덕자의 명단에 이름을 추가할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 등장하는 헨리 워턴 경이다.
제목이 말해주듯 소설의 주인공은 도리언 그레이라는 인물이다.
도리언 그레이는 미모가 얼마나 출중한지 종종 천사에 비견되고 매혹의 왕자님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옛날식으로 표현하면 '절세가인',요즘 유행어로 말하자면 '꽃미남'이다.
하지만 눈부신 아름다움을 지닌 도리언 그레이를 타락시키면서 탐미주의 소설의 물꼬를 트는 인물은 바로 그의 친구 헨리 워턴 경이다.
화가 바질이 스무 살이 된 도리언 그레이의 모습을 화폭에 담는 작업실에 바질의 친구 헨리 경이 찾아온다.
도리언 그레이와 처음 대면한 헨리는 우의를 표시하고 이때부터 능수능란한 언변으로 순수한 귀족청년 도리언을 방탕과 악의 길로 이끈다.
헨리는 '유혹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유혹에 굴복하는 것'이라며 매 웨스트의 발언보다 훨씬 어지러운 말로 도리언 그레이의 도덕관념을 흔들기 시작하더니,'외모로써 판단하지 않는 자는 천박한 인간뿐. 아름다움은 천재(天才)의 한 형태이며,사실은 천재 이상의 것'이라면서 도리언의 미모를 추켜세운다.
그리고는 "영혼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관능밖에 없다네. 마치 관능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영혼밖에 없듯이"라고 말하면서 감각적이고 향락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삶을 예찬한다.
헨리의 발언을 충격적이라고 여기면서도 도리언은 계속되는 대화의 물길 속에서 서서히 헨리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고,바질이 어느새 완성한 초상화를 보고 비탄에 잠긴다.
헨리의 철학을 주입 받고 돌아본 자신의 모습은 초상화에 비해 너무나 초라하였기 때문이다.
초상화의 주인공인 자신은 점점 늙고 추해질 것이지만,그에 반해 초상화는 변치 않는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한다는 생각에 도리언은 자신의 초상화에 강렬한 질투심을 느낀다.
격정에 휩싸여 울고야 마는 도리언은 "영원한 젊음을 그대로 유지하는 게 나 자신이고,늙어가는 게 이 초상화라면!" 하고 외친다.
이 절절한 호소는 다음과 같이 소설에 표현되어 있다.
"How sad it is! I shall grow old,and horrible,and dreadful. But this picture will remain always young…. If it were only the other way! If it were I who was to be always young,and the picture that was to grow old! For that-for that I would give everything! Yes,there is nothing in the whole world I would not give! I would give my soul for that!"
그런데 놀랍게도 이 호소가 하늘에 가 닿았는지 그는 영원한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하며 늙지도 추해지지도 않는다.
대신 그의 초상화가 노쇠와 죄악의 무게를 고스란히 떠안는다.
인생의 모든 쾌락을 열정적으로 추구하라는 헨리의 권유를 받아들인 도리언 그레이는 순진한 겉모습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방종한 생활을 이끌어 나간다.
하지만 퇴폐적이고 부도덕한 삶의 영향은 도리언의 얼굴에 아로새겨지는 것이 아니라,다락방에 숨겨 둔 그의 초상화를 변모시켜 캔버스 위의 초상은 나날이 비열하고 험상궂은 모양새가 되어간다.
가끔씩 도리언이 과오를 뉘우치고 바른 길을 가려고 할 때마다 헨리는 이기심이 없는 사람들은 빛깔이 없다든가,아름다운 죄악은 아름다운 물건과 마찬가지로 돈 많은 부유층이 누리는 특권이니 자기의 죄악을 자랑스럽게 여기라든가 하는 말로 참회하고자 하는 도리언을 저지한다.
헨리는 한걸음 더 나아가 도덕과 선량함에 대한 그만의 정의를 새로이 제시하는데,교양 있는 사람이 자기 시대의 표준을 받아들이는 것은 일종의 가장 심한 부도덕이며 선량하다는 것은 자기 자신과의 조화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쾌락주의를 주창하며 영국 보수층의 종교적 · 윤리적 위선을 공격하는 헨리의 말에 안심한 도리언은 다시 방탕한 생활로 돌아가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도리언은 오랜 만에 초상화를 살피러 다락방에 올라간다.
하지만 추악하기 짝이 없는 형상을 초상화에서 목도한 도리언은 충격에 빠져 초상화를 찢어 버리려고 칼을 휘두른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는 것은 그림이 아니라 자신이었다.
수십년 동안의 죄악과 방탕함을 입증하는 초상화의 형상은 도리언에게 옮겨가고,스무 살의 순진한 미모로 자신을 조롱하듯이 바라보는 그림 앞에서 도리언은 숨을 거둔다.
'도리언 그레이의 저자'인 오스카 와일드(1854~1900)는 대표적인 심미주의 작가로서 후기 빅토리아 시대 가장 성공한 극작가로 세간에 이름을 날렸다.
예리한 재치를 자랑하면서 런던 사교계의 유명인사로 이목을 끌던 그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집필해 영국 사회에 큰 파란을 몰고 왔다.
이 작품이 발표되자 '스코츠 옵서버(Scots Observer)'지는 "쓰이지 않는 게 훨씬 나았을 책"이라 혹평했고,'세인트 제임스 가제트(Saint James Gazette)'지는 "불 속에 던져버려야 할 부도덕하고 불결한 책"이라고 비난했다.
이러한 혹평에 대해 와일드는 "서적에는 도덕적인 것도 부도덕적인 것도 없다. 잘 썼느냐 그렇지 않으냐가 문제이다"라는 심미주의 이론을 전개하면서 작품을 변호했다.
당대 사람들은 극 중 배덕자인 헨리가 오스카 와일드의 분신이라며 오스카 와일드 본인의 도덕성을 공격했으나,금욕주의의 틀에서 벗어나 생산적 에너지로서 쾌락이 지니는 긍정적 측면에 주목한 오스카 와일드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억압과 자기 부정을 떨쳐버린 열정 속에서 자기 발전을 도모하고 삶의 진정성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었다.
그렇다면 쾌락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소설의 다음 대목을 읽어 보기로 하자.
☞ 기출 제시문 (서강대 2002학년도 정시 논술)
관능의 숭배는 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종종 비난받아 왔다.
그것은 인간이 그 자신보다도 더 강하다고 여기는 정열과 감정에 대해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고,또한 인간만큼 고도로 조직화되지 않은 존재 형태를 가진 것에도 관능이 있다고 의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관능의 참다운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그것을 야만적이고 동물적인 것으로 여기는 것은,그들이 아름다움에 대한 섬세한 본능을 그 지배적인 성격으로 하는 새로운 영성(靈性)의 요소로 관능을 승화시키지 못하고 굶주림과 고통으로 그것을 억제하고 말살하려 해 왔기 때문이라고 도리언 그레이는 생각했다.
'역사' 속의 인간을 되돌아보았을 때,그는 일종의 상실감에 사로잡혔다.
얼마나 많은 것들이 포기되어 왔던가! 더구나 아무런 의미도 없이!
거기엔 격렬하고도 완고한 거부(拒否),기이한 형태의 자기 학대와 자기 부정이 있었다.
그리고 그 원인은 공포심이며,그 결과는 인간이 무식하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려고 애써 온 그 상상적인 타락보다도 훨씬 더 무서운 타락이었다. (…중략…)
우리 시대에 야릇한 부흥을 보이고 있는 가혹하고 꼴사나운 청교도주의로부터 인생을 구할 새로운 '쾌락주의'가 일어나야만 한다.
그것은 틀림없이 지성에도 도움을 주어야만 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떠한 형태의 것일지라도 정열적인 체험을 희생으로 하는 이론이나 체계를 결코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실제로 쾌락주의의 목적은 체험 그 자체여야 하는 것이지,체험이 달든 쓰든 간에 그 결과여서는 안 된다.
관능을 죽이는 금욕주의에 대해서는,역시 관능을 무디게 하는 저속한 방탕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새로운 쾌락주의가 전혀 관여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쾌락주의는 그 자체가 순간에 불과한 인생의 모든 순간에 자기를 집중하게 하는 것을 인간에게 가르쳐야만 한다. (…하략…)
[논제] 제시문들은 '쾌락'에 대한 다양한 입장들을 보이고 있다. 제시문 [가: 아리스토텔레스,'니코마코스 윤리학']를 긍정적 논거로 활용하여 '쾌락'의 의미에 대해 논술하라. (단,반드시 제시문 [나: 에리히 프롬,'소유냐 존재냐'] [다: 톨스토이,부활] [라: 오스카 와일드,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의 내용을 구체적 논거로 활용할 것)
홍보람 s.논술 선임연구원 nikebbr@nonsul.com
절묘한 입담이 어록으로 전해지는 세기의 배우 매 웨스트(Mae West)는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 아닌 바에야,나는 유혹을 피해 다니는 편이다 (I generally avoid temptation unless I can't resist it)."
좋은 여자들은 천국에 가지만 나쁜 여자들은 천국만 제외하고는 어디든지 갈 수 있다고 말했던 매 웨스트의 캐릭터를 생각한다면 이 발언이 가지는 매력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살바도르 달리를 비롯한 무수한 예술가들이 매 웨스트를 기렸고 관객들은 그녀에게 열광했다.
솔직한 배덕자는 모름지기 시대를 불문하고 흥미와 경탄의 대상이 되는 법이다.
괴테의 파우스트를 분석할 때도 사람들은 노학자를 유혹하는 악마 메피스토필리스의 달변에 언제나 깊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가.
그리고 이러한 유명한 배덕자의 명단에 이름을 추가할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 등장하는 헨리 워턴 경이다.
제목이 말해주듯 소설의 주인공은 도리언 그레이라는 인물이다.
도리언 그레이는 미모가 얼마나 출중한지 종종 천사에 비견되고 매혹의 왕자님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옛날식으로 표현하면 '절세가인',요즘 유행어로 말하자면 '꽃미남'이다.
하지만 눈부신 아름다움을 지닌 도리언 그레이를 타락시키면서 탐미주의 소설의 물꼬를 트는 인물은 바로 그의 친구 헨리 워턴 경이다.
화가 바질이 스무 살이 된 도리언 그레이의 모습을 화폭에 담는 작업실에 바질의 친구 헨리 경이 찾아온다.
도리언 그레이와 처음 대면한 헨리는 우의를 표시하고 이때부터 능수능란한 언변으로 순수한 귀족청년 도리언을 방탕과 악의 길로 이끈다.
헨리는 '유혹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유혹에 굴복하는 것'이라며 매 웨스트의 발언보다 훨씬 어지러운 말로 도리언 그레이의 도덕관념을 흔들기 시작하더니,'외모로써 판단하지 않는 자는 천박한 인간뿐. 아름다움은 천재(天才)의 한 형태이며,사실은 천재 이상의 것'이라면서 도리언의 미모를 추켜세운다.
그리고는 "영혼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관능밖에 없다네. 마치 관능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영혼밖에 없듯이"라고 말하면서 감각적이고 향락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삶을 예찬한다.
헨리의 발언을 충격적이라고 여기면서도 도리언은 계속되는 대화의 물길 속에서 서서히 헨리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고,바질이 어느새 완성한 초상화를 보고 비탄에 잠긴다.
헨리의 철학을 주입 받고 돌아본 자신의 모습은 초상화에 비해 너무나 초라하였기 때문이다.
초상화의 주인공인 자신은 점점 늙고 추해질 것이지만,그에 반해 초상화는 변치 않는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한다는 생각에 도리언은 자신의 초상화에 강렬한 질투심을 느낀다.
격정에 휩싸여 울고야 마는 도리언은 "영원한 젊음을 그대로 유지하는 게 나 자신이고,늙어가는 게 이 초상화라면!" 하고 외친다.
이 절절한 호소는 다음과 같이 소설에 표현되어 있다.
"How sad it is! I shall grow old,and horrible,and dreadful. But this picture will remain always young…. If it were only the other way! If it were I who was to be always young,and the picture that was to grow old! For that-for that I would give everything! Yes,there is nothing in the whole world I would not give! I would give my soul for that!"
그런데 놀랍게도 이 호소가 하늘에 가 닿았는지 그는 영원한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하며 늙지도 추해지지도 않는다.
대신 그의 초상화가 노쇠와 죄악의 무게를 고스란히 떠안는다.
인생의 모든 쾌락을 열정적으로 추구하라는 헨리의 권유를 받아들인 도리언 그레이는 순진한 겉모습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방종한 생활을 이끌어 나간다.
하지만 퇴폐적이고 부도덕한 삶의 영향은 도리언의 얼굴에 아로새겨지는 것이 아니라,다락방에 숨겨 둔 그의 초상화를 변모시켜 캔버스 위의 초상은 나날이 비열하고 험상궂은 모양새가 되어간다.
가끔씩 도리언이 과오를 뉘우치고 바른 길을 가려고 할 때마다 헨리는 이기심이 없는 사람들은 빛깔이 없다든가,아름다운 죄악은 아름다운 물건과 마찬가지로 돈 많은 부유층이 누리는 특권이니 자기의 죄악을 자랑스럽게 여기라든가 하는 말로 참회하고자 하는 도리언을 저지한다.
헨리는 한걸음 더 나아가 도덕과 선량함에 대한 그만의 정의를 새로이 제시하는데,교양 있는 사람이 자기 시대의 표준을 받아들이는 것은 일종의 가장 심한 부도덕이며 선량하다는 것은 자기 자신과의 조화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쾌락주의를 주창하며 영국 보수층의 종교적 · 윤리적 위선을 공격하는 헨리의 말에 안심한 도리언은 다시 방탕한 생활로 돌아가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도리언은 오랜 만에 초상화를 살피러 다락방에 올라간다.
하지만 추악하기 짝이 없는 형상을 초상화에서 목도한 도리언은 충격에 빠져 초상화를 찢어 버리려고 칼을 휘두른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는 것은 그림이 아니라 자신이었다.
수십년 동안의 죄악과 방탕함을 입증하는 초상화의 형상은 도리언에게 옮겨가고,스무 살의 순진한 미모로 자신을 조롱하듯이 바라보는 그림 앞에서 도리언은 숨을 거둔다.
'도리언 그레이의 저자'인 오스카 와일드(1854~1900)는 대표적인 심미주의 작가로서 후기 빅토리아 시대 가장 성공한 극작가로 세간에 이름을 날렸다.
예리한 재치를 자랑하면서 런던 사교계의 유명인사로 이목을 끌던 그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집필해 영국 사회에 큰 파란을 몰고 왔다.
이 작품이 발표되자 '스코츠 옵서버(Scots Observer)'지는 "쓰이지 않는 게 훨씬 나았을 책"이라 혹평했고,'세인트 제임스 가제트(Saint James Gazette)'지는 "불 속에 던져버려야 할 부도덕하고 불결한 책"이라고 비난했다.
이러한 혹평에 대해 와일드는 "서적에는 도덕적인 것도 부도덕적인 것도 없다. 잘 썼느냐 그렇지 않으냐가 문제이다"라는 심미주의 이론을 전개하면서 작품을 변호했다.
당대 사람들은 극 중 배덕자인 헨리가 오스카 와일드의 분신이라며 오스카 와일드 본인의 도덕성을 공격했으나,금욕주의의 틀에서 벗어나 생산적 에너지로서 쾌락이 지니는 긍정적 측면에 주목한 오스카 와일드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억압과 자기 부정을 떨쳐버린 열정 속에서 자기 발전을 도모하고 삶의 진정성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었다.
그렇다면 쾌락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소설의 다음 대목을 읽어 보기로 하자.
☞ 기출 제시문 (서강대 2002학년도 정시 논술)
관능의 숭배는 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종종 비난받아 왔다.
그것은 인간이 그 자신보다도 더 강하다고 여기는 정열과 감정에 대해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고,또한 인간만큼 고도로 조직화되지 않은 존재 형태를 가진 것에도 관능이 있다고 의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관능의 참다운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그것을 야만적이고 동물적인 것으로 여기는 것은,그들이 아름다움에 대한 섬세한 본능을 그 지배적인 성격으로 하는 새로운 영성(靈性)의 요소로 관능을 승화시키지 못하고 굶주림과 고통으로 그것을 억제하고 말살하려 해 왔기 때문이라고 도리언 그레이는 생각했다.
'역사' 속의 인간을 되돌아보았을 때,그는 일종의 상실감에 사로잡혔다.
얼마나 많은 것들이 포기되어 왔던가! 더구나 아무런 의미도 없이!
거기엔 격렬하고도 완고한 거부(拒否),기이한 형태의 자기 학대와 자기 부정이 있었다.
그리고 그 원인은 공포심이며,그 결과는 인간이 무식하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려고 애써 온 그 상상적인 타락보다도 훨씬 더 무서운 타락이었다. (…중략…)
우리 시대에 야릇한 부흥을 보이고 있는 가혹하고 꼴사나운 청교도주의로부터 인생을 구할 새로운 '쾌락주의'가 일어나야만 한다.
그것은 틀림없이 지성에도 도움을 주어야만 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떠한 형태의 것일지라도 정열적인 체험을 희생으로 하는 이론이나 체계를 결코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실제로 쾌락주의의 목적은 체험 그 자체여야 하는 것이지,체험이 달든 쓰든 간에 그 결과여서는 안 된다.
관능을 죽이는 금욕주의에 대해서는,역시 관능을 무디게 하는 저속한 방탕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새로운 쾌락주의가 전혀 관여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쾌락주의는 그 자체가 순간에 불과한 인생의 모든 순간에 자기를 집중하게 하는 것을 인간에게 가르쳐야만 한다. (…하략…)
[논제] 제시문들은 '쾌락'에 대한 다양한 입장들을 보이고 있다. 제시문 [가: 아리스토텔레스,'니코마코스 윤리학']를 긍정적 논거로 활용하여 '쾌락'의 의미에 대해 논술하라. (단,반드시 제시문 [나: 에리히 프롬,'소유냐 존재냐'] [다: 톨스토이,부활] [라: 오스카 와일드,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의 내용을 구체적 논거로 활용할 것)
홍보람 s.논술 선임연구원 nikebbr@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