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표현을 지향하다
⊙ 양심에 따라 알고 말하고 주장하다
「실낙원」으로 잘 알려진 영국의 서사시인 존 밀턴(1608~1674)은 보수적인 가톨릭 교회에 맞서 이혼을 옹호하는 책자를 간행한 바 있다.
그는 결혼은 육체적 결합이 아니라 서로의 우의를 도모하고 고독을 위로하는 데 그 의미가 있기 때문에 부부가 서로 다른 정신과 기질을 지닐 경우 이혼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당시 결혼의 신성함을 강조하며 이혼을 제한했던 가톨릭 교회와 의회 당국자들에게 반발을 일으켰고 그 결과 그의 책은 출판허가법을 위반했다고 고발되기에 이른다.
이에 밀턴은 언론자유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며 고의적으로 출판허가법을 위반하면서까지 후대에 언론자유의 경전이라 일컬어지는 「아레오파기티카」(Areopagitica)를 집필하게 된다.
'나의 양심에 따라,자유롭게 알고 말하고 주장할 자유를,다른 어떤 자유보다도 그러한 자유를 나에게 달라'는 경구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 나오게 된 것이다.
밀턴은 '아레오파기티카'의 적지 않은 분량을 검열제를 비판하는 데 할애했다.
그는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이야말로 학문의 진보를 가능하게 할 것이며,당시에 진행되던 종교개혁도 완전하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또한 소수에 의해 이뤄지는 검열은 다수의 시민이 지닌 이성 그 자체를 죽이는 행위라고 못을 박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그의 저술은 근대적인 자유의 개념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주었고 상호비판에 관대한 영국과 미국의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했다.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알고 말하고 주장할 자유는 종래에는 사회적 진보를 가져왔던 것이다.
불행하게도 한국은 근대화 과정에서 군국주의와 군사독재를 겪으면서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알고 말하고 주장할 자유를 오랫동안 제한받아왔다.
어떤 형태로든 정권을 비판하는 것은 그 자체가 용인되지 않았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엄격한 검열 때문에 사상과 창작의 자유도 온전하게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엄격한 통제 사회 속에서도 자유로운 표현을 지향하는 작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청준은 그 대표적인 인물로 1970년대 군사독재 속에서도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당대 사회분위기를 예리하게 형상화해낸 바가 있다.
그의 작품 「소문의 벽」을 함께 탐구해보기로 하자.
⊙ 보이지 않는 위협
이청준의 「소문의 벽」은 겉으로는 어느 젊은 소설가의 삶을 조명하는 데 집중한다.
작품의 서술자인 '나'는 잡지의 편집장인데 어느 날 밤 낯선 사람의 방문을 받게 된다.
그는 스스로를 미친 사람이라고 소개하면서 무작정 자기를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다음 날 아침 '나'는 그가 실제로 근처 정신병원에서 뛰쳐나온 소설가 '박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실제로 미친 것은 아니었지만 심한 강박증에 시달려 정신병원을 찾았던 것이고 그곳에서도 평안을 찾지 못하자 자기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나'에게 찾아온 것이었다.
약간 황당한 일을 당하긴 했지만 잡지의 편집장으로서 '나'는 자연스럽게 최근에 작품발표가 뜸하던 작가 '박준'과 '박준'의 소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소문의 벽」에 언급된 '박준'의 소설은 대략 3편 정도다.
첫 번째 소설은 가사(假死) 상태를 휴식으로 알던 사람이 결국 자기의미를 상실한 채 죽음을 맞이했다는 내용이고,두 번째 소설은 주위의 간섭 때문에 진실을 제대로 말할 수 없는 어느 운전기사의 이야기다.
다시 말해 두 번째 이야기는 현대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와 같은 류인 것이다.
세 번째 소설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심문관이 등장해 그가 G라는 인물을 심문하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세 작품 모두 각각의 상징적 의미가 있지만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세 번째 소설이다.
왜냐하면 그 작품은 '박준'의 자전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창작되었기 때문이다.
작가 '박준'은 언젠가 인터뷰에서 자기가 6 · 25 때 겪었던 일을 고백한 적이 있다.
자기가 살던 마을에 한동안 국군 경찰대와 북한군 공비가 뒤죽박죽으로 찾아드는 일이 있었고,그러던 어느 날 밤 방문이 열리면서 한 사내가 어머니에게 '당신은 누구편이야?'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으며,불행하게도 어머니는 사내가 내리비추는 눈이 부신 밝은 전짓불 때문에 얼른 대답을 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밝은 전짓불 뒤에 있는 사내의 정체가 국군인지,공비인지 도대체 구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섣부른 대답은 자칫 목숨을 잃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보면 결국 소설가 '박준'에게 강박증을 일으키게 한 것은 '밝은 전짓불 뒤에 존재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느 심문관' 때문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진실을 말해야 할지,거짓을 말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오직 심문관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는 말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 '박준'에게 심한 강박증을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
이런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서둘러 '박준'이 입원한 정신병원을 찾게 된다.
'박준'의 담당의사가 '박준'에게 '과거의 일'을 집요하게 말하게 함으로써 치료를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박준'에게 담당의사는 그저 전짓불 뒤에 숨어 정체를 알 수 없는,그러나 끊임없이 대답을 강요하는 심문관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나'가 병원을 찾았을 땐 그는 이미 병원에서 사라진 뒤였다.
⊙ '소문의 벽'을 깨기
인터뷰는 그렇게 끝나고 있었다.
이번에는 정말로 모든 것이 명백해지고 있었다.
박준은 작가란 괴로운 일이지만 그 정체가 보이지 않는 전짓불의 공포를 견디면서도 끝끝내 자기의 진술을 계속해나갈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운명을 짊어진 사람들이라고 했다. (중략)
그러나 지난 2년 동안 박준은 그만한 각오조차도 지켜내질 못해온 셈이었다.
그의 독자들이,안형과 내가,그의 소설을 내보내주지 않은 교활한 편집자들이,그보다도 그의 전짓불 뒤에서 끝끝내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복수만을 음모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그들의 입에서 입으로 건너다니는 정체불명의 소문들이 그것을 지켜내지 못하게 한 것이다. (중략)
그 전짓불은 바로 어렸을 때부터 그의 속에서 은밀히 발아를 기다리고 있던 그 갈등과 불안의 씨앗이었다.
이제 그 씨앗이 발아를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박준의 마지막 소설 속에서 한 작가로 하여금 끝끝내 정직한 진술을 할 수 없게 만든 방해 요인의 상징으로 훌륭하게 완성되고 있었다.
- 이청준 「소문의 벽」
위의 인용은 '박준'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 난 후 '나'의 반응이다.
언급된 내용처럼 '박준'은 지난 2년 동안 아무 것도 제대로 발표할 수 없었다.
그것은 독자와 교활한 편집자와 끝끝내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복수만을 음모하는 사람들,그리고 정체불명의 소문들 때문이다.
초조와 불안 속에서 전짓불의 공포를 견뎌야 한다고 말하던 '박준'도 결국은 자기의 진술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고 말았던 것이다.
작품 「소문의 벽」이 발표된 것은 1971년이다.
그 시절은 작가,지식인,문화예술인들이 초조와 불안 속에서 자신의 진술을 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심의에 걸려 음반 발매가 중지되거나 폐기되는 경우는 흔한 일이었고 영화 필름들도 폭력적인 가위질의 희생양이 되었다.
또한 작가들은 도대체 무엇을 써야 심의에 걸리지 않을지,혹시 신변의 위협이나 불이익은 당하지 않을지 미리 자기검열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맥락에서 이청준의 「소문의 벽」은 자기 진술을 포기하게 하고 창작의 자유를 제한하는 사회 그 자체를 반성적으로 조망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깊다.
존 스튜어트 밀은 그의 저서 「자유론」에서 '비록 한 사람을 제외한 전 인류가 동일한 의견을 갖고 있고 오직 한 사람만이 반대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그 한 사람이 권력을 가지고 있어서 전 인류를 침묵시키는 것이 부당한 것과 마찬가지로,인류가 그 한 사람을 침묵시키는 것도 부당하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은 그 누구도 자기 양심에 따라 의견을 표현하는 데 제한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설령 그것이 오류로 가득하다 할지라도 참된 진리를 더욱 명확하게 인식하는 데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짓불 뒤의 정체 모를 그 무엇이나 심문관 따위는 결코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전주 상산고 교사 etika1@naver.com
⊙ 양심에 따라 알고 말하고 주장하다
「실낙원」으로 잘 알려진 영국의 서사시인 존 밀턴(1608~1674)은 보수적인 가톨릭 교회에 맞서 이혼을 옹호하는 책자를 간행한 바 있다.
그는 결혼은 육체적 결합이 아니라 서로의 우의를 도모하고 고독을 위로하는 데 그 의미가 있기 때문에 부부가 서로 다른 정신과 기질을 지닐 경우 이혼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당시 결혼의 신성함을 강조하며 이혼을 제한했던 가톨릭 교회와 의회 당국자들에게 반발을 일으켰고 그 결과 그의 책은 출판허가법을 위반했다고 고발되기에 이른다.
이에 밀턴은 언론자유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며 고의적으로 출판허가법을 위반하면서까지 후대에 언론자유의 경전이라 일컬어지는 「아레오파기티카」(Areopagitica)를 집필하게 된다.
'나의 양심에 따라,자유롭게 알고 말하고 주장할 자유를,다른 어떤 자유보다도 그러한 자유를 나에게 달라'는 경구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 나오게 된 것이다.
밀턴은 '아레오파기티카'의 적지 않은 분량을 검열제를 비판하는 데 할애했다.
그는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이야말로 학문의 진보를 가능하게 할 것이며,당시에 진행되던 종교개혁도 완전하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또한 소수에 의해 이뤄지는 검열은 다수의 시민이 지닌 이성 그 자체를 죽이는 행위라고 못을 박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그의 저술은 근대적인 자유의 개념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주었고 상호비판에 관대한 영국과 미국의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했다.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알고 말하고 주장할 자유는 종래에는 사회적 진보를 가져왔던 것이다.
불행하게도 한국은 근대화 과정에서 군국주의와 군사독재를 겪으면서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알고 말하고 주장할 자유를 오랫동안 제한받아왔다.
어떤 형태로든 정권을 비판하는 것은 그 자체가 용인되지 않았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엄격한 검열 때문에 사상과 창작의 자유도 온전하게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엄격한 통제 사회 속에서도 자유로운 표현을 지향하는 작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청준은 그 대표적인 인물로 1970년대 군사독재 속에서도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당대 사회분위기를 예리하게 형상화해낸 바가 있다.
그의 작품 「소문의 벽」을 함께 탐구해보기로 하자.
⊙ 보이지 않는 위협
이청준의 「소문의 벽」은 겉으로는 어느 젊은 소설가의 삶을 조명하는 데 집중한다.
작품의 서술자인 '나'는 잡지의 편집장인데 어느 날 밤 낯선 사람의 방문을 받게 된다.
그는 스스로를 미친 사람이라고 소개하면서 무작정 자기를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다음 날 아침 '나'는 그가 실제로 근처 정신병원에서 뛰쳐나온 소설가 '박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실제로 미친 것은 아니었지만 심한 강박증에 시달려 정신병원을 찾았던 것이고 그곳에서도 평안을 찾지 못하자 자기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나'에게 찾아온 것이었다.
약간 황당한 일을 당하긴 했지만 잡지의 편집장으로서 '나'는 자연스럽게 최근에 작품발표가 뜸하던 작가 '박준'과 '박준'의 소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소문의 벽」에 언급된 '박준'의 소설은 대략 3편 정도다.
첫 번째 소설은 가사(假死) 상태를 휴식으로 알던 사람이 결국 자기의미를 상실한 채 죽음을 맞이했다는 내용이고,두 번째 소설은 주위의 간섭 때문에 진실을 제대로 말할 수 없는 어느 운전기사의 이야기다.
다시 말해 두 번째 이야기는 현대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와 같은 류인 것이다.
세 번째 소설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심문관이 등장해 그가 G라는 인물을 심문하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세 작품 모두 각각의 상징적 의미가 있지만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세 번째 소설이다.
왜냐하면 그 작품은 '박준'의 자전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창작되었기 때문이다.
작가 '박준'은 언젠가 인터뷰에서 자기가 6 · 25 때 겪었던 일을 고백한 적이 있다.
자기가 살던 마을에 한동안 국군 경찰대와 북한군 공비가 뒤죽박죽으로 찾아드는 일이 있었고,그러던 어느 날 밤 방문이 열리면서 한 사내가 어머니에게 '당신은 누구편이야?'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으며,불행하게도 어머니는 사내가 내리비추는 눈이 부신 밝은 전짓불 때문에 얼른 대답을 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밝은 전짓불 뒤에 있는 사내의 정체가 국군인지,공비인지 도대체 구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섣부른 대답은 자칫 목숨을 잃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보면 결국 소설가 '박준'에게 강박증을 일으키게 한 것은 '밝은 전짓불 뒤에 존재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느 심문관' 때문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진실을 말해야 할지,거짓을 말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오직 심문관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는 말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 '박준'에게 심한 강박증을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
이런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서둘러 '박준'이 입원한 정신병원을 찾게 된다.
'박준'의 담당의사가 '박준'에게 '과거의 일'을 집요하게 말하게 함으로써 치료를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박준'에게 담당의사는 그저 전짓불 뒤에 숨어 정체를 알 수 없는,그러나 끊임없이 대답을 강요하는 심문관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나'가 병원을 찾았을 땐 그는 이미 병원에서 사라진 뒤였다.
⊙ '소문의 벽'을 깨기
인터뷰는 그렇게 끝나고 있었다.
이번에는 정말로 모든 것이 명백해지고 있었다.
박준은 작가란 괴로운 일이지만 그 정체가 보이지 않는 전짓불의 공포를 견디면서도 끝끝내 자기의 진술을 계속해나갈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운명을 짊어진 사람들이라고 했다. (중략)
그러나 지난 2년 동안 박준은 그만한 각오조차도 지켜내질 못해온 셈이었다.
그의 독자들이,안형과 내가,그의 소설을 내보내주지 않은 교활한 편집자들이,그보다도 그의 전짓불 뒤에서 끝끝내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복수만을 음모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그들의 입에서 입으로 건너다니는 정체불명의 소문들이 그것을 지켜내지 못하게 한 것이다. (중략)
그 전짓불은 바로 어렸을 때부터 그의 속에서 은밀히 발아를 기다리고 있던 그 갈등과 불안의 씨앗이었다.
이제 그 씨앗이 발아를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박준의 마지막 소설 속에서 한 작가로 하여금 끝끝내 정직한 진술을 할 수 없게 만든 방해 요인의 상징으로 훌륭하게 완성되고 있었다.
- 이청준 「소문의 벽」
위의 인용은 '박준'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 난 후 '나'의 반응이다.
언급된 내용처럼 '박준'은 지난 2년 동안 아무 것도 제대로 발표할 수 없었다.
그것은 독자와 교활한 편집자와 끝끝내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복수만을 음모하는 사람들,그리고 정체불명의 소문들 때문이다.
초조와 불안 속에서 전짓불의 공포를 견뎌야 한다고 말하던 '박준'도 결국은 자기의 진술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고 말았던 것이다.
작품 「소문의 벽」이 발표된 것은 1971년이다.
그 시절은 작가,지식인,문화예술인들이 초조와 불안 속에서 자신의 진술을 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심의에 걸려 음반 발매가 중지되거나 폐기되는 경우는 흔한 일이었고 영화 필름들도 폭력적인 가위질의 희생양이 되었다.
또한 작가들은 도대체 무엇을 써야 심의에 걸리지 않을지,혹시 신변의 위협이나 불이익은 당하지 않을지 미리 자기검열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맥락에서 이청준의 「소문의 벽」은 자기 진술을 포기하게 하고 창작의 자유를 제한하는 사회 그 자체를 반성적으로 조망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깊다.
존 스튜어트 밀은 그의 저서 「자유론」에서 '비록 한 사람을 제외한 전 인류가 동일한 의견을 갖고 있고 오직 한 사람만이 반대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그 한 사람이 권력을 가지고 있어서 전 인류를 침묵시키는 것이 부당한 것과 마찬가지로,인류가 그 한 사람을 침묵시키는 것도 부당하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은 그 누구도 자기 양심에 따라 의견을 표현하는 데 제한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설령 그것이 오류로 가득하다 할지라도 참된 진리를 더욱 명확하게 인식하는 데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짓불 뒤의 정체 모를 그 무엇이나 심문관 따위는 결코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전주 상산고 교사 etika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