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의료서비스 질 향상위해 시장 진입장벽 없애야”

반 “돈벌이 치중해 의료비 오르고 서비스 나빠질것”


현행 의료법 규정에 따라 국내에서는 의료기관 설립 자격이 의사와 비영리법인으로 제한돼 있다.

다시 말해 일반인 및 회사는 영리병원을 설립할 수 없으며 기부나 출연 등의 형식을 택하지 않으면 의료서비스 시장에 진출할 수 없다.

이로 인해 기존 병원들의 독과점 현상이 심화되고 의료시장 또한 공급자 위주로 움직이는 등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는 실정이다.

영리병원 설립 허용 문제를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도 바로 그러한 연유에서다.

영리병원 설립 문제는 지난 정부 때 논의가 시작돼 허용하는 쪽으로 일단 가닥을 잡았다.

하지만 영리병원이 설립될 경우 의료비가 인상되고 일반 환자들에게 소홀해지는 등 의료 양극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시민사회단체 등 반대론자들의 주장에 막혀 아직까지 성사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제주도를 영리병원 설립의 전초기지로 삼으려던 정부 계획이 주민들의 거부로 무산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영리병원이 설립되면 의료서비스의 공공성이 사라지고 민간 의료보험 활성화로 이어져 건강보험이 민영화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여전히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이런 와중에 기획재정부는 서비스산업 육성을 명분으로 내세워 대형 자본이 자유롭게 병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재추진하고 나서면서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영리병원을 설립하는 게 과연 바람직한지 분석해본다.

⊙ 반대 측, "병원이 돈벌이 나서면서 의료비 부담 가중시킬 것"

영리병원 허용에 반대하는 쪽에서는 "투자비를 회수하기 위해 병원이 건강보험보다는 고가의 비보험 진료,고급 서비스,과잉 진료 등 돈벌이에 나서지 않을 수 없다"며 "의료비 부담이 급증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영리병원제 도입으로 의료비 인하를 실현한 사례가 없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영리병원은 비용 절감을 위해 인력을 최소한으로 고용하기 때문에 사회적 일자리도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고용을 창출하기는커녕 오히려 취업률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얘기다.

적은 인력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의료서비스의 질이 떨어지고 의료사고도 더 많이 발생할 게 불을 보듯 뻔하다고 꼬집는다.

특히 "해외 진료비 규모가 크지 않으며 그나마 원정출산과 장기이식 관련 의료비가 대부분을 차지한다"며 영리병원 도입으로 내국인의 해외 진료비가 줄어든다는 주장도 억지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

영리병원은 일단 허용하면 접을 수 없기 때문에 건강보험제도가 선진국 단계에 진입했을 때 추진해도 결코 늦지 않다는 입장이다.

⊙ 찬성 측, "의료서비스 향상과 관련 산업 육성 위해 규제 혁파해야"

이에 대해 찬성하는 쪽에서는 "의료서비스 분야는 차세대 성장동력이며 고용창출 효과도 크다"며 선진국 진입을 위해서는 의료시장 진입 제한 등 불합리한 규제를 혁파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의사 위주로 구성된 의료서비스 시장의 동질적 경쟁은 독점적 이윤을 낳고 사회적 후생을 저해할 뿐 아니라 개인 의사 투자에만 의존해서는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재원을 조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영리법인을 도입하더라도 국민건강보험 약화,민영 의료보험에 의한 대체 등 '의료 민영화' 문제가 유발되지 않으며, 이미 대형 병원을 운영 중인 비영리 법인들이 영리법인으로 전환하는 것도 법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의료비가 폭등하고 의료서비스에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해질 것이라는 주장은 터무니없다"며 국민을 위한 의료 개혁의 표류는 시대착오적이며 후진적인 현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 영리병원 허용 앞서 부작용 최소화 위한 사회적 논의 거쳐야

우리나라는 건강보험 체계가 잘 갖춰져 있어 의료비 부담이 적은 것은 물론 의료 기술 또한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대형 자본의 의료서비스 시장 참여 규제로 인해 의료 소비자들의 수요 변화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실제 국내 의료기관의 90% 이상이 개인의사 자격으로 설립돼 영리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대형 자본을 유치해 소비자가 원할 경우 보다 질 높은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일각에서 우려하고 있는 의료 양극화 문제는 건강보험 급여 확대와 공공 의료기관 확충 등으로 해결해야 할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응급 체계를 제대로 갖추고, 개별 병원의 의료비와 수술 성공률,평가 결과 등 각종 정보를 인터넷에 공개하는 등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여 나가야 할 것이다.

의료기관의 대도시 편중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영리병원 설립의 궁극적인 목적은 양질의 의료서비스 제공이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영리병원 설립 허용에 앞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점이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 용어풀이 >

영리 의료법인(영리병원) :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의료법인을 말하며 비영리 병원에 대응되는 개념이다. 투자자로부터 자본을 조달해 병원을 운영하고,그 수익을 투자자에게 다시 돌려주는 주식회사 형태의 병원을 일컫는다. 수익을 얻기 위해 환자 유치에 나서게 되고 고급 병원을 짓는 등 경쟁을 유도할 수 있는 반면 의료비 상승 등 부작용을 몰고올 수도 있다. 누구나 제한 없이 의료기관을 설립할 수 있게 된다. 현행 의료법에는 의료기관 설립 자격을 의사와 비영리 법인만으로 제한, 주식회사 형태의 의료기관 설립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건강보험 민영화 : 국가가 사회보험으로 운영 중인 국민건강보험을 자본시장에 개방해 민간 보험회사에서도 이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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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경제신문 3월10일자 A1면

기획재정부는 9일 병원이 기부나 출연이 아닌 투자를 받을 수 있고 이에 따른 과실을 투자자에게 배당할 수 있는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을 허용하는 방안을 본격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은 대형 자본이 첨단 병원을 설립하고 고급 의료서비스를 제공토록 하자는 취지로 연간 6000만달러가 넘는 의료수지 적자를 개선하겠다는 목적도 있다.

하지만 의료 양극화에 대한 우려가 높은 데다 보건복지가족부가 점진적으로 추진하자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 10일 토론회에서 격론이 예상된다.

재정부는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은 영리법인적 성격을 갖지만 이사회 구성의 일정수를 의료인 등으로 한정하고 병원 건물과 의료기기 등 고유 재산을 분배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일반 주식회사와는 약간 다르다고 설명했다.

차기현/서욱진 한국경제신문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