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금융社 경영진 ‘도덕적 해이’에 뿔난 美국민들
[Global Issue] 회사 망쳐놓고 두둑한 보너스?…양심에 털난 AIG 임직원들
"회사가 망하든 말든 보너스는 포기 못해."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돼온 미국 월스트리트의 주요 금융사들이 경영난으로 파산 위기에 몰렸음에도 불구하고 경영진에게 천문학적인 규모의 보너스를 안기면서 미국인들의 분노가 크게 들끓고 있다.

최근 보너스 파문의 중심엔 정부의 대규모 구제금융을 받아 겨우 연명하고 있는 미국 최대 보험사 아메리칸인터내셔널그룹(American International Group · AIG)이 있다.

AIG는 작년 9월 이후 정부에서 네 차례에 걸쳐 1800억달러에 달하는 공적자금을 지원받았다.

그런데 AIG 측이 지난해 가을 금융위기가 터지기 직전에 연봉 계약을 맺었다는 이유만으로 금융 파생상품 사업부인 'AIG 파이낸셜 프로덕트'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최근 지급한 1억6500만달러를 포함,앞으로 2년에 걸쳐 총 4억5000만달러의 보너스를 주기로 결정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특히 이번에 보너스를 받는 부서가 바로 신용디폴트스와프(CDS) 등 파생상품을 만들어 팔아 AIG에 막대한 손실을 끼친 사업부란 점에서 비난이 더욱 거세졌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16일 백악관에서 중소기업 지원 대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AIG의 보너스 지급 결정은 무모하고 탐욕스러운 행동"이라며 "파생상품 트레이더들에게 1억6500만달러의 보너스를 준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미 의회에선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기관의 경영진에게 지급된 보너스를 회수하는 법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국 누리꾼들도 회사명 약자 풀이 패러디로 AIG에 대한 강한 분노를 표시했다.

17일 UPI통신에 따르면 한 미국인 네티즌은 AIG에 대해 '미국의 보증받은 사기꾼들(America's Insured Grifters)'이라는 풀이를 내놨고,'그리고 사라져 버렸다(And It's Gone)' '제가 탐욕스럽지 않나요(Ain't I Greedy)' '모든 투자자산이 사라졌다(All Investments Gone)' '탐욕스럽고 오만한 부당이득(Avarice Insolence Graft)'이라는 해석으로 AIG를 비판하는 네티즌도 있었다.

AIG 보너스 논란의 파급은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합병된 메릴린치와 모건스탠리로 번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7일 하원 감독 · 정부개혁위원회가 BOA와 메릴린치의 회사 변호사에게 메릴린치가 BOA에 합병되기 전인 지난해 36억2000만달러의 보너스를 지급한 것에 대해 정보 제출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또 로이터는 로버트 메넨데스 상원의원이 티모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에게 모건스탠리가 씨티그룹과 주식브로커 사업부문을 통합한 뒤 중개인들이 이탈하지 않도록 최대 30억달러의 보너스를 지급할 계획이라면서 이를 막도록 촉구했다고 전했다.

이와 더불어 미국 정부로부터 총 45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은 씨티그룹의 비크람 팬디트 최고경영자(CEO)도 지난해 1080만달러(약 150억원)의 수입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팬디트 CEO의 작년 보수에서 연봉은 95만8333달러이고,나머지 대부분은 주식이나 스톡옵션 등이 차지했으며 교통비나 연금 등이 포함됐다.

씨티그룹은 작년 말 위기에 몰린 뒤 정부로부터 45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았고 지난달 말엔 정부가 보유 중인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36%의 지분을 내주면서 사실상 국유화됐다.

회사가 위기에 처하자 팬디트 CEO는 지난해 보너스는 받지 않았고 앞으로 씨티그룹이 수익을 낼 때까지는 성과급은 받지 않은 채 연봉을 1달러만 받겠다고 밝혔었다.

이에 앞서 미국 정부는 지난달 초 대규모 구제금융을 받은 금융회사와 기업들의 CEO 보수 한도를 50만달러로 제한하기로 결정했다.

세금을 지원받은 월가 금융사 임직원들이 천문학적 보수를 챙긴 데 대한 국민적 분노를 반영한 조치다.

월스트리트 금융사들의 거액 보너스 파문은 기업의 도덕적 해이와 더불어 금융계 임직원들의 보수 지급 체계에 대한 심각한 반성을 낳고 있다.

1년이란 짧은 시간 동안의 성과를 토대로 연봉과 보너스를 주는 월스트리트의 현 보수 지급 시스템이 단기적 이익을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위험한 투자에 뛰어들게 만들어 금융위기 촉발의 원인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특히 열심히 일한 대가로 얻은 성과에 대한 '당근'은 보장하면서, 회사 경영과 투자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는 '채찍'이 거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흔히 우리말로 '성과급' '상여금'으로 번역되는 보너스는 경제학이나 경영학에서 나오는 '본인-대리인 (principal-agent)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 중 하나다.

회사의 주주들과 CEO 등 경영진 사이의 관계, 펀드투자자와 펀드매니저 간의 관계 등이 바로 대표적인 본인-대리인 관계다.

주주나 투자자들은 자신이 직접 회사나 펀드를 관리하기보다는 자신들보다 훨씬 능력이 뛰어난 다른 사람에게 그 일을 대신하도록 한다.

이때 일을 맡기는 사람은 자신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일해주기를 일을 맡은 사람에게 기대할 것이고, 그 기대를 충족시키도록 일을 맡긴 사람에게 일의 성과에 맞는 합당한 보수를 주게 된다.

본인-대리인 문제는 본인이 알고 싶어하는 정보를 대리인만이 알고 있는 경우(정보의 비대칭성)에 생기기도 하고,보통의 능력만 가진 본인이 전문적 능력을 가진 대리인의 일을 관리 · 감독할 수 없는 경우(도덕적 해이)에 생기기도 한다.

보너스는 특히 도덕적 해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다.

기업의 주주는 전문경영인에 대해,투자자는 펀드매니저에 대해 성과급을 약속함으로써 각각 회사의 이윤 극대화,펀드의 수익 극대화를 위해 열심히 일하도록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 보너스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과연 어느 정도의 선까지 지급돼야 하는가에 대해선 여전히 많은 논란이 있다.

우선 성과의 등수에 따라 보너스를 주는 게 좋은지 아니면 성과의 절대적인 양에 따라 주는 것이 좋은지가 문제가 될 수 있다.

또 여러 사람이 함께 일하는 경우 개개인의 성과에 따라 보수를 주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모든 사람에게 같은 성과급을 주는 것이 나은지에 대한 고민도 있다.

이미아 한국경제신문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