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석 화

<美유타대 교수 ·건축구조>


☞ 한국경제신문 3월12일자 A 39면

"여자는 수학을 못 한다"란 한마디 말실수로 하버드대 총장직에서 물러나고 노벨 경제학상까지 못 받게 된 래리 서머스.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해 노벨상을 받은 뒤에도 계속 일간지 칼럼니스트로 남아 경제평론을 내고 있는 폴 크루그먼.

중국계 미국인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고 오바마 행정부의 신임 에너지장관으로 취임한 스티븐 추.

이 세 사람이 요즘 미국사회에서 가장 빛나는 지성이란 평이 있다.

서머스 교수는 16세 때 MIT에 조기 입학을 허가 받았고,28세의 나이에 하버드대 사상 최연소 테뉴어(정년보장) 교수로 발탁됐으며 또 여성 비하로 구설에 오르기도 한 말 많은 인사였다.

클린턴 정부 시절 40대 나이로 재무장관을 역임했고 이미 노벨상을 제외한 거의 모든 상을 받은 이론 경제학자이다.

유능한 행정가이기도 한 서머스 박사는 하버드대 총장 신분으로 "여성들의 수학 · 과학 능력이 남성보다 훨씬 떨어져 있는 것은 통계가 증명한다"란 실언으로 결국 재임 5년 만에 사임하게 됐고,한동안 실직자로 있다가 이번 오바마 행정부의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돼 궁지에 빠진 세계 경제 문제 해결에 결정적인 두뇌 역할을 하고 있다.

폴 크루그먼 박사는 뉴욕의 유대인 사회에서 자라나 유대인 특유의 유토피아적인 경제철학을 어릴 때부터 체득한 이론 경제학자로 그의 유명한 국제교역론과 경제지리학은 많은 학생들에게 특별한 인기를 얻고 있다.

그는 미국의 주택금융 문제가 터지기 전에 이를 정확하게 예고했으며,지금의 세계적인 경제불황은 같은 유대인 출신인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에게 책임이 있다고 공개적인 공격을 서슴지 않는다.

또 지금 진행되고 있는 오바마 행정부의 8000억달러 구제금융은 그 효과가 매우 의심스럽다는 비판을 계속 퍼붓고 있다.

스티븐 추 박사는 주변 친척 대부분이 높은 학력의 소지자로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고등학교를 마쳤으며 원자물리학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공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추 박사는 오바마 대통령의 권유로 에너지 장관에 취임하자마자 2030년까지 전 미국 에너지 생산의 20%를 풍력으로 대체하겠다는 계획을 내놨고 이미 실행 단계에 들어가고 있다.

에너지 공급원을 원자력,석탄,석유,천연가스,태양광 및 풍력 등으로 구분해보면 이는 엄청나고도 획기적인 결정이고 그 성공 여부가 큰 관심사로 떠올랐다.

풍력발전은 오래전부터 합리적인 공급원으로 인정받고 있었지만 지역구민의 이해관계와 투자회사의 정치권 개입 등으로 미뤄오다가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하고부터는 추 박사의 방침을 전적으로 뒷받침해주게 됐다.

위에 거론한 세 명의 지성인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50대의 연령은 별도로 치고 어린 시절 글쓰기와 수학 공부를 특별히 잘했다는 점이다.

물리학을 전공한 추 박사는 당연하다 하더라도 인터뷰나 언론 기고 등을 통해 스스로 밝혔듯이 두 경제학자가 크게 성공하게 되기까지엔 수학이 크게 뒷받침이 됐다.

이는 기초수학이 우리의 지식과 창의력에 얼마나 깊은 토대가 되고 원천이 되는지를 설명해주는 것이다.

한국의 수학 교육이 개개인의 머리는 좋지만 오래가지 못하는 '반짝'수학인 데 비해 미국은 생활 속에서 수학적 사고를 유도하는,끈기 있는 '생활'수학이라는 게 차이점이다.

또 수학적으로 축적된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전수하기 위해선 글쓰기란 소통채널이 필요하다.

글쓰기는 우리의 사상을 표현해주는 위대한 예술이다.

아마 그래서 크루그먼이 매일 고통스러운 글쓰기 작업을 하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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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수학은 논리학·경제·철학 등 모든 학문의 기초

얼마 전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수학 실력이 형편없이 낮은 것으로 보도된 적이 있다.

전국자연과학대학장협의회가 2007년 3월 전국 20개 대학의 2007학년도 이공계 신입생 976명을 대상으로 중 · 고교 수준의 주관식 수학문제 20개를 풀게 한 결과,평균 점수가 48.8점(100점 만점)을 기록했다.

상위권 6개 대학 학생들은 평균 75.1점을 받았지만,중 · 하위권 대학 학생들의 평균 점수는 각각 49.4점, 25.6점에 불과했다.

특히 미 · 적분 등 고등학교 2 · 3학년 문제 9개 중에서 학생들은 평균 3문제만 정답을 써냈다고 한다.

자연과학대학장협의회는 이후 수학 교육 강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그 효과는 나타나고 있지 않다.

수학은 철학 천문학과 함께 가장 오래된 학문이면서 다른 학문에 많이 활용되고 있는 기초 학문이다.

과학 기술 등 자연과학은 물론 금융 등 사회과학과 철학 등 인문과학에도 수학은 널리 사용되고 있다.

최근의 세계 금융공황이 발생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미국 투자은행들의 파생금융상품도 중국 출신의 수학자가 부도 위험을 수치로 계산해 가격으로 표시할 수 있는 방정식을 개발하면서 시중에 등장한 것이다.

다산칼럼의 필자가 지적한 것처럼 미국의 유명한 경제학자들도 대부분 튼튼한 수학 지식을 갖추고 있다.

수학이 많은 학문에 널리 이용되는 것은 계산학이 아니라 논리학의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학자는 수학은 정확하게 논리학으로 번역해야 맞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경제학 경영학 등 사회과학에서 수학은 점점 더 많이 활용되고 있다.

현실의 제약 조건 아래서 비용을 최소한으로 줄이거나 수익을 최대로 늘리는 방안을 찾는 일은 수학 없이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수학의 중요성을 국가 차원에서 인식한 것은 세계 2차대전 때부터라고 한다.

2차대전을 맞으면서 적군의 암호를 알아내는 암호학과 핵무기 개발을 위한 물리학의 발전에 수학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던 것이다.

이에 미국은 세계적인 수학자와 물리학자를 대거 양성하여 군사 전략에 있어서 가장 효율적인 조건과 방법을 찾는 데 주력했다.

미국은 태평양 전쟁에서 수학자들의 노력으로 일본의 암호를 모두 해독해 일본 군대의 이동 경로를 파악하는 등 성과를 올려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1950년대 말 미국은 소련이 유인 우주선을 먼저 쏘아 올리자 크게 자극을 받아 신수학운동을 벌인다.

그 결과 1965년 유인 우주선을 달에 먼저 착륙시켜 우주 경쟁에서 소련을 앞설 수 있었다.

박주병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b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