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위하는 마음이 세상을 구한다”

[실전 고전읽기] ⑩ 묵적「묵자」
세상을 명쾌하게 설명해주는 '원리(原理)'에 대한 열망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비단 통일장 이론의 정립을 꿈꾸는 물리학자들뿐만이 아니라,사회과학과 인문학을 따로 가릴 것 없이 어느 분야에 몸 담은 학자건 간에,혹은 학문연구를 업으로 삼지 않더라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는 세계의 원리가 간명하게 파악되기를 바란다.

서양의 경제학자 아담 스미스가 발견한 이 세상의 원리는 '이기심'이었다.

스미스는 자신이 파악한 세상의 원리를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명명하여 그의 저서 「국부론」에서 소개하였다.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개별 경제 주체들의 이기심이라는 것이다.

물론 아담 스미스도 인간이 전적으로 이기적 본능에 의해서만 움직인다고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인간의 이기심은 친절이나 박애심,희생정신 같은 이타적이고 고상한 것들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지속적으로 동기 부여를 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그래서 스미스는 개인의 사익 추구가 근간이 되어야 자본주의 사회 체제가 효율적으로 작동된다고 설명한다.

인간 심성의 고귀한 측면에만 사회를 맡기거나 이타심에 기반하여 미래를 설계할 수는 없으며,인간의 본능 중 가장 강한 이기심을 활용하여야 사회 전체의 이익을 달성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곡해의 우려도 있지만,아담 스미스의 이러한 생각을 짧게 옮기자면,'이기심 예찬'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와는 정반대로 세상의 원리를 '이타심'에서 발견한 인물도 있다.

바로 전국시대(戰國時代) 초기의 사상가인 묵적(墨翟)이다.

묵가 학파의 창시자인 묵적은 그가 남긴 저서 「묵자」(묵적이 항상 화자로서 등장하나,묵적 혼자 「묵자」를 모두 집필한 것은 아니다. 묵적 자신이 집필한 부분도 있지만 그를 추종하는 후학들이 묵적에게 가탁하여 스승의 목소리를 빌려 묵가 사상을 펼친 부분 또한 상당하다. 덕분에 근 300년 세월에 걸쳐 정립되고 발전한 묵가 사상이 총체적으로 집대성되어 있다) 안에서 '겸상애교상리(兼相愛交相利)'를 주장하였다.

사람들이 이타적인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여야 상호 이익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묵자가 분석하기에 당대의 사회적 혼란은 인간들의 이기심 및 자신만 소중하다는 차별 의식에서 비롯하였다.

그래서 묵자는 이기심을 극복하고 만민이 어우러지는 연대적 사랑을 주장하였고 이를 통해서 물질적 이익의 상호 증진을 도모할 수 있다고 설파하였다.

묵가 사상의 요체는 겸상애교상리,편한 일상어로 바꾸자면 '이타심'에 기반한 사회 발전으로 정리된다.

혹자는 묵자가 사람이 순진해서 이타심에 기반한 사회 발전을 설파하였다고 오해할 수도 있다.

아담 스미스는 현실적인 경제학자이고 묵자는 공상이나 즐기는 철학자였다고 비난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묵자가 세상을 모르는 책상물림이거나 백일몽 안에서 헤매기를 좋아하는 비현실적인 부류라서 이타심을 주장한 것은 결코 아니다.

창시자 묵적을 비롯한 묵가 사상가들은 대부분 기술자 출신으로서 춘추전국 시대를 통틀어 현실과 가장 긴밀하게 살을 맞대고 살던 사람들이었다.

묵가 일파는 인간의 본질을 노동하는 존재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타의 제자백가 사상과 뚜렷이 구별되는 특성을 가진다.

또한 총수를 필두로 조직 전체가 엄격한 규율에 따르는 생활을 하면서 노동과 기술 연마,군사 훈련에 종사하였다.

종잇장 사이에서 노닐던 아담 스미스는 명함도 감히 못 내밀 만큼 치열하게 현실과 부대끼며 살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묵자가 비현실적이라서 이타심을 주장했다는 섣부른 비난은 삼가는 것이 좋다.

오히려 묵자는 「묵자」 안에서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이기적 차별보다 이타적 박애정신이 현실적으로 더욱 타당함을 설파하였다.

묵자는 이기적 차별을 평등박애 정신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겸이역별(兼以易別)'을 주장하면서 각 개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그리고 사회와 국가가 어떠한 원리에 기반하여 운영되어야 하는지 설명한다.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자기 나름대로의 이익만을 추구한다면,각자의 이해관계가 충돌하여 불신과 혼란에 빠질 뿐이며,세상을 구제할 수 있는 것은 이타심이라는 것이다.

다른 사상가들을 좀체 가만 두지 못하고 이래저래 비평하던 장자는 묵자를 두고는 '뜻은 좋았으나 실천 행위는 과도했고 자제는 아주 엄했다' 라는 평가를 내렸다.

묵가 일파가 만민박애를 실현하려는 일환에서 사치와 향락을 금지하고 음악조차 즐기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고는 있지만,묵가의 구세 이상은 좋다는 말이다.

까다롭기로는 둘째 가기가 서러운 장자가 이 정도의 평을 남겼다면 묵가가 발견하고 제시한 세상 원리가 오직 그네들만의 미몽(迷夢)으로 머물지는 않으리라 사료된다.

다음은 논술 문제에서 제시문으로 기출되었던 묵자의 '겸애' 일부분이다.

비록 짤막한 글이긴 하지만 세상의 원리를 '이타심'으로 파악한 묵자의 관점이 현명한지 평가해보도록 하자.

☞ 기출 제시문 (한국외대 2006학년도 정시 논술)

살펴보건대 혼란은 어디에서 일어나고 있는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 데서 일어나는 것이다.

신하와 자식이 그의 임금이나 아버지에게 도리에 어긋나는 짓을 하는 것이 이른바 혼란이다.

자식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서도 자신의 아버지는 사랑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버지를 해치고 자신을 이롭게 한다.

아우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서도 자신의 형은 사랑하지 않는다.

그래서 형을 해치고 자신을 이롭게 한다.

신하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서도 자신의 임금은 사랑하지 않는다.

그래서 임금을 해치고 자기 자신을 이롭게 한다.

이것이 이른바 혼란이다.

만약 아버지가 자식에게 자애롭지 않고 형이 아우에게 자애롭지 않고 임금이 신하에게 자애롭지 않는다면 이것 역시 천하의 혼란이다.

아버지는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면서 자식은 사랑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식을 해치고 자신을 이롭게 한다.

형은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면서 아우는 사랑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우를 해치고 자신을 이롭게 한다.

임금은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면서 신하는 사랑하지 않는다.

그래서 신하를 해치고 자신을 이롭게 한다.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

모두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 데서 일어나는 것이다.

천하의 도적들도 역시 그러하다.

도적은 자신의 집은 사랑하면서도 다른 집은 사랑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집의 것을 훔쳐 자신의 집을 이롭게 한다.

도적은 또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고 남은 사랑하지 않는다.

그래서 남을 해치고 자기 자신을 이롭게 한다.

이것은 어째서인가?

모두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 데서 일어나는 것이다.

대부(大夫)들이 서로 남의 집안을 어지럽히고 제후들이 서로 남의 나라를 공격하는 데서도 역시 그러하다.

대부들은 각기 그의 집안은 사랑하면서도 다른 집안은 사랑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집안을 어지럽혀 자신의 집안을 이롭게 한다.

제후들은 각기 자신의 나라는 사랑하면서도 다른 나라는 사랑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나라를 공격하여 그의 나라를 이롭게 한다.

천하를 어지럽히는 것들은 모두 여기에 원인이 있다.

이것이 어디에서 일어나는가를 살펴보면 모두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 데서 일어나는 것이다.

묵자,「겸애(兼愛)」



☞ 기출 논제 (한국외대 2006학년도 정시 논술)

[문제 1] (제시문 1 :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토드 부크홀츠의 죽은 경제학자들의 살아있는 아이디어)와 (제시문 2 : 묵자)에 나타난 각각의 핵심적 주장은 무엇이며,또 가장 중요한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인지를 300자 내외로 기술하시오.

[문제 2] (제시문 2)의 관점에서 (제시문 1 :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토드 부크홀츠의 죽은 경제학자들의 살아있는 아이디어)의 입장을 논하고,(제시문 2 : 묵자)의 문제점도 포함하여 500자 내외로 논술하시오.

[문제 3] (제시문 2 : 묵자)의 입장을 실현시킬 수 있는 구체적 방안들에 대해 400자 내외로 논하시오.

홍보람 S · 논술 선임연구원 nikebbr@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