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습과 규범을 넘어서는 사랑

⊙ 1960년,자유의 분위기

[강영준 선생님의 소설이야기] 22. 강신재「젊은 느티나무」
1960년은 4 · 19가 있었던 해이다.

그만큼 자유에 대한 갈망과 지향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렬했던 한 해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60년의 자유로운 분위기는 문학적으로도 더없는 성과를 가져왔다.

남북 이데올로기를 함께 비판한 최인훈의 「광장」을 가능하게 했고,시인 김수영의 「육법전서와 혁명」 같은 자유를 향한 시편들이 창작되는 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젊음의 에너지는 무엇이든지 가능하게 할 것 같았고 그런 까닭에 불가능해 보이는 것은 없었다.

독재정권을 민중의 힘으로 무너뜨렸다는 자신감 앞에서 기존의 관습이나 규범들이 견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이러한 60년의 자유로운 분위기는 개인의 욕망에 대해서도 상대적으로 너그럽게 작용한 듯하다.

기존의 관습과 규범을 벗어나 개인의 자유로운 욕망을 우선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던 것이다.

1960년 「사상계」에 발표된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는 이러한 분위기를 잘 드러내는 작품이다.

「젊은 느티나무」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크게 두 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그 하나는 가족 개념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며,또 다른 하나는 관습보다도 개인의 행복과 자유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보편적으로 한국의 전통적인 가족 개념은 강력한 혈연관계가 그 핵심을 이루고 있다.

부모 자식이 혈연으로 이루어진 것은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고,부부관계 역시 혈연의 개념이 절대적으로 작용한다.

물론 결혼은 혈연관계가 절대 성립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배타적 혈연관계가 부부를 성립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 중 하나라면 혈연의 개념은 또 다른 방식으로 부부관계의 형성에 영향을 주고 있음에 틀림없다.

결국 전통적인 가족 개념은 혈연에 의해 형성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0년.

이제 막 근대화가 시작된 시점이고 또 전통적인 가치가 여전히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던 이 시기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에는 당대에는 낯설 수밖에 없는 가족이 등장한다.

서술자이자 주인공인 숙희에게 새아버지와 이복오빠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물론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이는 크게 새로울 것이 없다.

아니 그 시절에도 이와 같은 경우는 아주 드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이나 그때나 새로운 가족구성원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가 않다.

오히려 반감을 갖거나 지나칠 경우 혐오하는 것이 더 보편적일 것이다.

이 작품이 새로운 것은 바로 이 점에 있다.

주인공 숙희는 새로운 가족 구성원에게 반감을 갖기보다 오히려 반기고 연정마저 품게 될 만큼 너그러웠던 것이다.

⊙ 새로운 가족의 구성

작품을 시간 순서로 재구성한 줄거리는 이렇다.

서술자이자 주인공인 숙희는 젊고 아름다운 어머니와 함께 시골 외할아버지 댁에서 살고 있었다.

어느 날,서울 모 사립대학 교수(므슈 리-숙희가 부르는 호칭이다. 불어의 Mr에 해당)가 찾아와 어머니와 재혼하게 된다.

처음에 숙희는 외가에 남겨지지만 므슈 리의 간절한 요청에 따라 숙희 역시 서울로 와서 살게 된다.

작품을 감상하며 놓칠 수도 있겠지만 이 부분에서 중요한 것은 므슈 리와 숙희의 이미지가 기존의 의붓아버지라든지 의붓딸에 대한 이미지와는 사뭇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아무런 심리적 동요나 거부감 없이 한곳에 모여 살게 되는데 이는 혈연을 매개로 한 가족이 아니더라도 가족이 성립할 수 있음을 제시하는 것이라 하겠다.

기존의 관습이나 규범을 넘어서는 새로운 가족 모델을 제시하는 것인 셈이다.

문제는 숙희가 서울로 올라와 새 아버지의 아들,다시 말해 이복 오빠가 되는 현규를 만나는 대목이다.

이 장면 역시 기존의 이복 형제에서 볼 수 있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현규는 숙희를 매우 친절하게 대하고 숙희 역시 그를 적대적으로 보지 않았던 것이다.

이 소설에서 주목해야 할 두 번째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숙희는 오누이 아닌 오누이의 관계에서 현규를 오빠가 아닌 이성으로 느끼며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혈족은 아니지만 가족의 관습은 둘을 사랑할 수 없는 관계로 규정짓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미국에서 체류 중인 므슈 리를 따라 어머니마저 떠나게 되자 숙희와 현규는 단 둘이서 집에 있게 될 상황에 놓이고 이를 예감한 숙희는 서울을 떠나 홀로 시골로 내려간다.

⊙ 사회적 금기를 넘어서

작품에서 제기한 두 번째 문제는 가족의 관습과 개인의 사랑 사이에서 존재하는 갈등이다.

쉽게 말하자면 근친상간과 흡사한 사회적 금기가 적용되는 내용인 것이다.

보편적으로 근친상간의 주제들은 그 구조나 결말이 비극적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어머니를 범한 것을 자책하며 스스로 눈을 뽑는 오이디푸스 왕의 이야기라든지,누이에게 연정을 품고 목숨을 끊었다는 달래고개 설화,이 밖에 모 방송사의 인기 드라마였던 「가을동화」나,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 등에서도 근친상간은 결코 순탄한 결말을 맺지 못했다.

물론 숙희와 현규가 서로 피를 섞지 않았다는 점에서 둘을 근친상간으로 보는 것이 적절치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둘은 가족 구성원으로서 서로에게 이성의 감정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금기를 위반하고 있음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작가는 이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낼까.

그는 급한 비탈을 올라오고 있었다.

입을 일자로 다물고 언젠가처럼 화를 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아니 일자로 다문 입은 좀 슬퍼 보여서 화를 낸 것 같은 얼굴은 아니었다. (중략)

"숙희는 돌아와서 학교에 가야 해.

무엇이고 다 잊고 공부를 해야 해.

나도 그렇게 할 작정이니까.

우리는 헤어져 있어야 해.

헤어져서 공부해야 해.

어머니가 떠나시려면 비용도 들테니까 집은 남 빌려주자고 말씀드렸어.

내가 갈 곳도 생각해 놓고.

숙희도 어머니 친구 댁에 가 있으면 될 거야.

그렇게 헤어져 있어야 하지만 숙희,우리에겐 길이 없는 것은 아니야.

내 말을 알아 들어줄까?"

그는 두 발로 땅을 꾹 딛고 서서 말하였다.

나는 느티나무를 붙들고 가늘게 떨고 있었다.

"그때 숲속에서의 일은 우리에게는 어찌할 수도 없는 진실이었다.

우리는 이 일을 부정하고는 살아가지도 못할 게다.

우리는 만나기 위해서 헤어지는 것이야.

우리에겐 길이 없지 않어. 외국엘 가든지……." (중략)

바람이 마주 불었다.

나는 젊은 느티나무를 안고 웃고 있었다.

펑펑 울면서 온 하늘로 퍼져 가는 웃음을 웃고 있었다.

아아,나는 그를 더 사랑하여도 되는 것이었다.

- 강신재,「젊은 느티나무」


흥미롭게도 작가는 둘 사이의 사랑을 부정하지 않는다.

혈연 중심의 가족 개념을 벗어났듯이 가족의 관습도 뛰어넘어 둘 사이의 사랑을 긍정해준 것이다.

'우리에겐 길이 없지 않어' 라는 현규의 대사는 개인의 사랑이 관습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으로 충분히 읽힐 수가 있다.

자유로운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관습이나 규범은 개인의 욕망을 가로막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 자유에 대한 지향

1960년의 사회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자유에 대한 열망이 강렬한 시기였다.

그리고 그것은 기존의 관습이나 규범을 깨뜨리는 힘이 있었다.

잠시 눈을 돌려 보면 당시 자유에 대한 갈망은 한국사회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었다.

세계적으로 보면 시간적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유럽에서는 프라하의 봄이나 68혁명이 있었고 미국사회에서는 반전평화 및 히피문화가 출현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은 개인의 자유로운 삶에 대한 옹호였다고 할 수 있다.

전체주의적이고 획일적인 문화가 집단적인 가치를 지나치게 강요하던 시절에 대한 역사적 반동이었던 것이다.

물론 4 · 19혁명을 세계사적인 맥락에서 보는 것이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시의 독재정권 역시 개인의 자유와 욕망을 억압했다는 점에서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젊은 느티나무」는 단순히 열여덟 여자아이의 순진하고 통속적인 로맨스로 보기보다는 자유에 대한 지향이 감수성 있는 언어로 변주된 것으로 바라보는 것이 더욱 적절할 듯하다.

전주 상산고 교사 etika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