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하락·배당금 감소 등으로 경영진 성토 거셀듯

지난 12일 유가증권시장의 넥센타이어를 시작으로 올해 정기 주주총회 시즌이 개막했다.

주주총회(이하 주총)는 기업이 회사의 주인인 주주들을 모셔놓고 지난해 영업활동을 결산하고 승인받는 자리다.

실적이 좋은 기업의 주총은 잔치 분위기지만 실적이 부진한 기업 주총은 주주들의 질타가 쏟아지기도 한다.

올해 주총은 주가와 실적이 모두 좋았던 지난해 초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가 연출될 것으로 보인다.

주가 하락과 배당금 감소로 인해 주주들이 어느 때보다 경영진을 거세게 성토할 것으로 예상돼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주주들의 '축제'여야 할 주총

[Make Money] 실적 부진에 뿔난 주주들…막 올린 주총 시즌 험난할 듯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벅셔 해서웨이의 주주총회는 '자본주의자들의 우드스톡(록음악) 축제'라고 불린다.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매년 열리는 벅셔 해서웨이의 주총에는 전 세계 40여국에서 3만명가량의 주주들이 모여 칵테일을 마시고 음식을 먹으면서 파티를 즐기기 때문이다.

워런 버핏은 한나절 내내 그간의 벅셔 해서웨이의 성과를 설명하고 미래 비전을 주주들과 공유한다.

주총은 주주들의 잔치다.

경영진과 주주들이 한 해 성과를 확정하고 미래 비전을 공유하는 신성한 행사다.

하지만 지난 12일 개막한 국내 주총에서 이런 잔치 분위기를 낼 수 있는 곳은 없어 보인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주가가 급락한 데다 작년 실적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삼성전자와 은행 등 대부분의 상장사들이 배당금을 크게 줄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올해는 뿔난 주주들이 경영진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클 것이란 우려가 높다.

실제로 코스닥 액정표시장치(LCD) 장비업체인 에이디피엔지니어링의 경우 소액주주들이 2005년 상장 이후 배당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고 거세게 반발하며 이번 주총을 벼르고 있다.

또 지난해 통화옵션상품인 키코로 큰 손실을 기록한 상장사들은 경영진 책임 문제로 이중삼중으로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

실적이 부진한 기업들은 이번 주총에서 어떻게 주주들을 달래야 할지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신성한 주총을 거추장스러운 통과의례로 여기는 기업 경영진들이 적지 않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넥센타이어와 같이 10년째 주총을 가장 먼저 개최한 곳도 있지만 대다수의 상장사들은 다른 기업들과 같은 날에 주총을 열려고 한다.

되도록 주목을 덜 받기 위해 묻어가려는 의도다.

보통 3월 셋째주 금요일에 상장사들의 주총이 한꺼번에 몰리는 이유가 여기 있다.

특히 올해는 배당도 줄이고 주가도 좋지 않은 기업들이 많아 이런 '꼼수'를 부리는 기업들이 많아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주총에 불순한 의도를 갖고 참석하는 주주들도 있다.

이른바 '총회꾼'이라 불리는 이들은 불과 주식 몇 주만 가지고 주총에 참여해,주총 의사 진행을 방해하거나 억지 요구를 하고 심지어 대표이사에게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

주총이라는 행사를 빌미로 금품 등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기업들은 이런 '총회꾼'을 막기 위해 뒷돈을 주고,명절이나 경조사를 챙겨주기도 한다.

또 기업들끼리 총회꾼 명단을 공유할 정도로 관리는 조직적으로 이뤄진다는 후문이다.

⊙ 주총 요식행위 "이제 그만"

과거엔 주총이 요식행위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경영진들은 주총에 올라온 안건을 일사천리로 통과시키면서 주총을 30분 내에 끝내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최근엔 주주 권리가 부각되면서 주총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다.

특히 시민단체를 필두로 지배구조 개선 문제가 잇달아 제기되면서 일부 대기업 주총은 사회적인 주목을 받기도 했다.

2004년 삼성전자 주총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검찰에서 조사 중인 정치자금 지원문제를 참여연대가 주총에서 정식으로 문제 제기했고 주총장은 고성과 몸싸움이 발생하며 아수라장을 방불케했다.

올해도 임기 전에 회장이 옷을 벗은 포스코의 경영진 교체 문제를 놓고 시민단체인 경제개혁연대에서 참석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주총에서 시민단체의 역할은 점점 줄고 있고 주주들이 자발적으로 권리를 행사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일부 기업의 소액주주들은 소액주주협의회를 구성하고 배당 현실화 등 주주권리 찾기에 나서고 있다.

경영권 다툼이 벌어지는 주총장도 소란스럽다.

주총의 주요 안건 중 하나가 회사의 경영을 책임지는 이사를 선임하는 일이다.

회사 경영진과 같이 주주들도 일정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면 주주 제안을 통해 이사 선임 후보를 주총에 올릴 수 있다.

올해도 경영권 분쟁에 휘말린 상장사의 주총은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씨모텍은 오는 26일 주총에서 현 경영진과 전 경영진,적대적 공격세력 등 3자 간 표 대결을 예고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샘표식품 경영참여를 수년째 노리고 있는 우리투자증권 사모펀드 마르스1호는 올해도 사외이사 1명의 선임을 요구한다는 방침이다.

한국화장품도 주요주주인 HS홀딩스가 주총에서 이사 선임을 통한 경영참여 의지를 보이고 있어 표 대결이 예상되고 있다.

상장사에 영향력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자산운용사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의 움직임도 관심 대상이다.

작년 말 기준으로 기관투자가가 지분을 5% 이상 대량 보유한 상장사는 444개사에 달하고 있다.

기관투자가들은 각각의 의결권 행사 지침을 세우고 기업 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주주 권리를 행사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지난해 3월에는 국내 최대 기관투자가인 국민연금이 일부 경제범죄로 문제가 됐던 기업 총수들의 등기이사 선임에 대해 반대 의결권을 행사해 주목을 받았다.

해당 총수가 비자금 조성이나 공금횡령 혐의로 사법 처리됐던 것을 문제 삼았던 것이다.

이원선 상장회사협의회 조사 담당 상무는 "영향력이 더욱 강해진 기관들이 의결권 행사 지침을 만들고 있어 올해부터는 기업들이 기관투자가에 대해 각별히 의식하기 시작했다"며 "과거에 비해 투자자들에게 주총이 가지는 의미는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진형 한국경제신문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