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英·호주·日등 금융업종간 칸막이 없애 경쟁력 키워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이 지난 4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연일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자통법은 아직 국민들의 피부에 와 닿지 않고 있는 것 같지만, 국가의 미래를 바꾸어 놓을 수 있는 대단히 중요한 법이다.
아직 법이 정착하지 못해 곳곳에서 혼선도 빚어지고 있으니 '하지 말자'는 논리가 이젠 통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자통법은 사실 우리만의 독창적인 법률이 아니다.
미국 영국 일본 호주 등 금융 선진국이라 불리는 국가들은 이미 이 같은 법률을 도입해 시행해 오고 있다.
각 국가의 사례들을 통해 자통법이 우리의 삶과 투자관, 국가의 미래를 어떻게 바꿔 놓을 수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 미국에서 먼저 틀을 닦아
우리의 자본시장통합법과 유사한 법률은 주로 불문법을 기초로 하는 국가에서 시작됐다.
그 중에서도 세계 금융 강국의 지위를 오랫동안 누리고 있는 미국이 가장 먼저 이 법을 도입했다.
자통법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각 금융업종 간 칸막이를 없애는 작업이다.
금융투자회사는 은행 증권 자산운용(펀드) 등을 영위할 수 있고, 이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미 1934년 제정된 증권거래법(Securities Exchange Act)과 1940년에 생긴 투자자문업자법(Investment Advisers Act)에서부터 원칙적으로 증권업과 자산운용업의 겸업을 제한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공황을 겪으면서 루스벨트 행정부 시절인 1933년 '글래스-스티걸 법'(glass steagal Act)을 만들어 은행과 투신 업무를 분리했다.
클린턴 행정부 시기인 1999년엔 '그램 리치 브릴리법'(Gramm Leach Bliley Act)이 제정되면서 은행과 증권,자산운용업 사이의 벽이 완전히 사라졌다.
사실상 자통법이 부활한 것으로 창의적인 상품 개발과 자유로운 투자 행위가 가능해졌다.
대신 투자자 보호를 위해 증권거래법과 투자자문업자법 내에서 관련 규제를 꾸준히 만들었다.
'과당매매'(churning)와 '덤핑'을 사기 행위로 금지해 온 것이 대표적이다.
이런 식으로 금융투자회사가 자유로운 상품을 만들 수 있도록 했고, 그에 대한 책임은 분명히 규정했다.
미국의 증권거래법을 연구한 한양대 법과대학의 장근영 교수는 "미국은 금융업종 간 벽을 없애긴 했지만 엄격한 내부 통제기준을 요구했고 문제가 발생해 소송이 불거질 경우 금융사가 투자자에게 손해배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 왔다"며 "자유를 보장하는 한편 그에 대한 책임도 강하게 요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호주는 자통법 혜택을 가장 많이 본 국가
미국에 이어 금융산업 발전 가능성을 높이 본 영국도 1986년 자본시장통합법을 시작으로 2000년 통합금융법을 도입했다.
이에 따라 증권사와 은행 사이의 칸막이가 철폐된 '유니버설 뱅크'(Universal Bank) 시스템이 구축되는 기초를 마련했다.
이 같은 추세는 영연방 국가인 호주로 넘어간다.
호주는 2001년 금융서비스개혁법을 통과시키고 우리의 자통법과 유사한 체제의 금융산업을 발전시켰다.
사실 호주는 국가 출범 초기에 화폐가 부족한 사태를 겪기도 했을 정도로 금융산업이 낙후된 국가였다.
당시 맥쿼리 경은 이 대책으로 '네모난 구멍이 뚫린 원' 모양의 화폐를 고안했다.
이는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맥쿼리그룹의 로고가 된다.
호주에서 맥쿼리처럼 글로벌 금융플레이어가 생겨날 수 있었던 것은 2001년 금융서비스개혁법(Financial Services Reform Act)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금융서비스개혁법이 나타나기 전까지 영국은 미국의 법률을 따라 증권과 선물에 대한 규제를 분리했었는데 이 때문에 새로운 금융상품이 등장하지 못한다고 판단한 호주 정부가 1996년부터 이 법안을 준비해 2001년 통과시킨 뒤 2년간의 유예 기간을 거쳐 2004년부터 전면적으로 시행한 것이다.
우리보다 5년 앞서 시행한 덕분에 호주의 금융산업은 지난 10년간 연 평균 5.3%씩 성장하며 같은 기간 연 평균 경제성장률(3.6%)를 웃돌았다.
또 법 시행 이후 주식시장은 2배,채권시장은 2.2배,외환시장은 1.5배씩 증가하는 등 자본시장 관련상품 거래대금도 2000년 419억호주달러에서 2004년 824억호주달러로 늘었다.
2007년 말 호주의 펀드시장은 1조990억달러로 미국 룩셈부르크 프랑스에 이어 4위를 기록했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우리보다 앞서 금융서비스개혁법을 도입한 호주의 전체 경제 규모 순위는 우리보다 낮지만 금융만 놓고 보면 우리보다 높은 세계 10위권"이라며 "금융산업 육성을 통해 고질적인 실업 문제도 해결하는 등 이 법 도입으로 국가 전체가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 금융국가로 발돋움을 노리는 일본
일본의 1990년대는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린다.
산업국가로 매년 수천억 달러가 넘는 막대한 자본이 유입됐는데, 이를 제대로 금융기관의 투자와 연결시키지 못해 '버블'이 발생했고, 이 버블이 꺼지면서 일본은 장기불황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실을 깨달은 일본 정부는 금융강국으로의 도약을 위해 1996년 하시모토 당시 총리가 '일본판 금융빅뱅'을 선언한다.
그로부터 11년 뒤인 2007년 9월30일 '금융상품거래법'이 시행된다.
이 법은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저축률을 낮추고 투자로 유도하도록 짜여졌다.
또 자본시장의 국제화를 위해 새로운 금융상품거래법을 통해 규제를 유연화한다.
구로누마 에치로우 일본 와세다대 교수는 "금융회사들에 대한 규제를 횡단화하면서 취급 상품이나 업무 내용에 따라 진입 요건을 완화해 기능별 규제로 가는 계기가 됐다"며 "이렇게 되면 투자자를 우선적으로 보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법의 등장으로 펀드 가입에 시간이 과도하게 든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처럼 일본도 상품 설명이 길어지면서 펀드산업이 위축됐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2004년 이후 매년 평균 30건꼴로 접수되던 금융상품에 대한 소비자센터 상담 건수가 2007년엔 10건으로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김재후 한국경제신문 기자 hu@hankyung.com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이 지난 4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연일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자통법은 아직 국민들의 피부에 와 닿지 않고 있는 것 같지만, 국가의 미래를 바꾸어 놓을 수 있는 대단히 중요한 법이다.
아직 법이 정착하지 못해 곳곳에서 혼선도 빚어지고 있으니 '하지 말자'는 논리가 이젠 통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자통법은 사실 우리만의 독창적인 법률이 아니다.
미국 영국 일본 호주 등 금융 선진국이라 불리는 국가들은 이미 이 같은 법률을 도입해 시행해 오고 있다.
각 국가의 사례들을 통해 자통법이 우리의 삶과 투자관, 국가의 미래를 어떻게 바꿔 놓을 수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 미국에서 먼저 틀을 닦아
우리의 자본시장통합법과 유사한 법률은 주로 불문법을 기초로 하는 국가에서 시작됐다.
그 중에서도 세계 금융 강국의 지위를 오랫동안 누리고 있는 미국이 가장 먼저 이 법을 도입했다.
자통법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각 금융업종 간 칸막이를 없애는 작업이다.
금융투자회사는 은행 증권 자산운용(펀드) 등을 영위할 수 있고, 이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미 1934년 제정된 증권거래법(Securities Exchange Act)과 1940년에 생긴 투자자문업자법(Investment Advisers Act)에서부터 원칙적으로 증권업과 자산운용업의 겸업을 제한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공황을 겪으면서 루스벨트 행정부 시절인 1933년 '글래스-스티걸 법'(glass steagal Act)을 만들어 은행과 투신 업무를 분리했다.
클린턴 행정부 시기인 1999년엔 '그램 리치 브릴리법'(Gramm Leach Bliley Act)이 제정되면서 은행과 증권,자산운용업 사이의 벽이 완전히 사라졌다.
사실상 자통법이 부활한 것으로 창의적인 상품 개발과 자유로운 투자 행위가 가능해졌다.
대신 투자자 보호를 위해 증권거래법과 투자자문업자법 내에서 관련 규제를 꾸준히 만들었다.
'과당매매'(churning)와 '덤핑'을 사기 행위로 금지해 온 것이 대표적이다.
이런 식으로 금융투자회사가 자유로운 상품을 만들 수 있도록 했고, 그에 대한 책임은 분명히 규정했다.
미국의 증권거래법을 연구한 한양대 법과대학의 장근영 교수는 "미국은 금융업종 간 벽을 없애긴 했지만 엄격한 내부 통제기준을 요구했고 문제가 발생해 소송이 불거질 경우 금융사가 투자자에게 손해배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 왔다"며 "자유를 보장하는 한편 그에 대한 책임도 강하게 요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호주는 자통법 혜택을 가장 많이 본 국가
미국에 이어 금융산업 발전 가능성을 높이 본 영국도 1986년 자본시장통합법을 시작으로 2000년 통합금융법을 도입했다.
이에 따라 증권사와 은행 사이의 칸막이가 철폐된 '유니버설 뱅크'(Universal Bank) 시스템이 구축되는 기초를 마련했다.
이 같은 추세는 영연방 국가인 호주로 넘어간다.
호주는 2001년 금융서비스개혁법을 통과시키고 우리의 자통법과 유사한 체제의 금융산업을 발전시켰다.
사실 호주는 국가 출범 초기에 화폐가 부족한 사태를 겪기도 했을 정도로 금융산업이 낙후된 국가였다.
당시 맥쿼리 경은 이 대책으로 '네모난 구멍이 뚫린 원' 모양의 화폐를 고안했다.
이는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맥쿼리그룹의 로고가 된다.
호주에서 맥쿼리처럼 글로벌 금융플레이어가 생겨날 수 있었던 것은 2001년 금융서비스개혁법(Financial Services Reform Act)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금융서비스개혁법이 나타나기 전까지 영국은 미국의 법률을 따라 증권과 선물에 대한 규제를 분리했었는데 이 때문에 새로운 금융상품이 등장하지 못한다고 판단한 호주 정부가 1996년부터 이 법안을 준비해 2001년 통과시킨 뒤 2년간의 유예 기간을 거쳐 2004년부터 전면적으로 시행한 것이다.
우리보다 5년 앞서 시행한 덕분에 호주의 금융산업은 지난 10년간 연 평균 5.3%씩 성장하며 같은 기간 연 평균 경제성장률(3.6%)를 웃돌았다.
또 법 시행 이후 주식시장은 2배,채권시장은 2.2배,외환시장은 1.5배씩 증가하는 등 자본시장 관련상품 거래대금도 2000년 419억호주달러에서 2004년 824억호주달러로 늘었다.
2007년 말 호주의 펀드시장은 1조990억달러로 미국 룩셈부르크 프랑스에 이어 4위를 기록했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우리보다 앞서 금융서비스개혁법을 도입한 호주의 전체 경제 규모 순위는 우리보다 낮지만 금융만 놓고 보면 우리보다 높은 세계 10위권"이라며 "금융산업 육성을 통해 고질적인 실업 문제도 해결하는 등 이 법 도입으로 국가 전체가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 금융국가로 발돋움을 노리는 일본
일본의 1990년대는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린다.
산업국가로 매년 수천억 달러가 넘는 막대한 자본이 유입됐는데, 이를 제대로 금융기관의 투자와 연결시키지 못해 '버블'이 발생했고, 이 버블이 꺼지면서 일본은 장기불황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실을 깨달은 일본 정부는 금융강국으로의 도약을 위해 1996년 하시모토 당시 총리가 '일본판 금융빅뱅'을 선언한다.
그로부터 11년 뒤인 2007년 9월30일 '금융상품거래법'이 시행된다.
이 법은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저축률을 낮추고 투자로 유도하도록 짜여졌다.
또 자본시장의 국제화를 위해 새로운 금융상품거래법을 통해 규제를 유연화한다.
구로누마 에치로우 일본 와세다대 교수는 "금융회사들에 대한 규제를 횡단화하면서 취급 상품이나 업무 내용에 따라 진입 요건을 완화해 기능별 규제로 가는 계기가 됐다"며 "이렇게 되면 투자자를 우선적으로 보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법의 등장으로 펀드 가입에 시간이 과도하게 든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처럼 일본도 상품 설명이 길어지면서 펀드산업이 위축됐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2004년 이후 매년 평균 30건꼴로 접수되던 금융상품에 대한 소비자센터 상담 건수가 2007년엔 10건으로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김재후 한국경제신문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