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은 왜 가르쳐야 하는가?’에 답이 있다

[한준희 선생님의 재밌는 논술세상] <⑩·끝> 학교 논술은 어디로…
"사교육은 된다 안 된다가 초점이 아니다.

솔직히 누가 더 잘 가르치겠는가.

우리는 일년 내내 대학 논술 문제에 대해 고민한다.

정작 출제하는 대학 교수들도 우리만큼 고민 안 한다.

예시 문항을 철저히 분석하고 학생으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도록 끝없이 질문하고 생각을 글로 표현하게 하는 게 사교육이다."

강남의 유명 논술학원을 운영하는 학원장이 주요 일간지에 쓴 글이다.

사실 답답하다.

이런 유형의 글을 읽고도 학교교육에 종사하는 교사의 입장에서 마땅히 반론을 제기할 논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교사들의 현재는 무력하다.

하지만 한 꺼풀만 벗기면 그 주장이 지닌 허상이 드러난다.

대한민국 최고의 논술 강사라는 분이 문제의 본질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일 년 내내 논술 문제에 대해 고민한다'는 말.

학교 교육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으로 볼 때 무척 부러운 진술이다.

학교에 있는 교사들은 그렇게 고민할 시간이 많지 않다.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교과를 가르쳐야 하고 담임으로서 학생들의 학교생활,심지어 학교 너머의 학생들의 생활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나아가 진학지도,각종 보고와 같은 잡무와도 싸워야 한다.

끊임없는 학부모의 의문에도 답해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더 본질적인 지점에 존재한다.

사교육 종사자들이 고민하고 있는 것은 '논술문제'이지 '논술교육'은 아니라는 점이다.

학생들의 미래를 위해 진정 필요한 교육은 단지 대학 입시와 직접 관련된 '논술문제'를 적절하게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는 현재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과정을 배우는 '논술교육'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예시 문항을 철저히 분석하고 학생으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도록 끝없이 질문하고 생각을 글로 표현하게 하는 게 사교육이다'는 진술.

이러한 진술에도 엄청난 문제점이 숨겨져 있다.

'예시 문항을 철저히 분석'하여 다음 해에 출제될 문제를 예상하고 답을 작성하는 방법을 기르는 것이 과연 논술의 전부인가?

예시문항을 분석하여 논술문 작성의 방법을 찾는 것은 대학논술고사를 위한 마지막 점검일 뿐이다.

그것이 전부가 되거나 그것부터 시작한다면 논술고사에서조차 결코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다.

가장 큰 오류는 다음 진술에 있다.

정말로 '학생들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도록 끝없이 질문하고 생각을 글로 표현하게' 한다면 그 교육이 비록 사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분명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가능한가?

사교육에서 그것을 행할 수 있을까?

정말 그것이 논술고사를 준비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사교육이 알고 있다면 몇 백만 원의 수강료를 받으면서 단기 논술 완성이란 강좌 개설은 하지 말았어야 옳지 않은가?

학부모나 수험생들의 불안 심리를 이용하여 이윤만 챙기는 일은 하지 않아야 옳은 것이 아닌가?

물론 이러한 비판은 교육의 본질적인 부분은 외면한 채 이윤에만 신경을 쓰는 일부 사교육 담당자들에게 향한 것이다.

사실 사교육의 문제는 항상 그 자리에서 정체된 채로 이루어지고 있는 학교 교육의 탓이 크다.

학교 교육에 대한 비판은 매스컴마다 떠들고 있으니 재론하지 않겠다.

분명 학교 교육은 뼈를 깎는 각성과 자기반성이 필요하다.

그러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인가?

그렇지 않다.

학교라는 공간의 정규 교육과정이 교과부의 한마디에 휘둘리고 소위 SKY대학의 입시전형 발표에 다시 흔들린다.

해마다 달라지는 대입전형 발표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학부모는 자식의 교육을 위해서는 스스로 신이 되거나 아니면 신이라 자칭하는 어떤 대상의 앵무새가 된다.

한국에서 가장 맹목적이고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집단이 '수험생을 둔 엄마'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평상시 무척 합리적이고 사리분별력이 있는 사람조차도 내 자식만 명문대라는 관문을 통과하면 그만이라면서 무모하고 저돌적인 모습을 보인다.

거기에 모든 것을 건다.

그러다보니 진실을 확인하고 검증할 능력과 여유가 없다.

스스로 교육에 대해서는 신이라고 자처한다.

그런데 알고 보면 어리석은 신이다.

허상으로만 가득 찬 신이다.

자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소리치지만 그 소리는 자식에 대한 무조건적인 애정이 가져온 오류투성이이다.

어쩌면 사교육 시장에서 흘러나온 잘못된 소리를 주워 담았을 뿐이다.

논술과 관련된 요란한 소리들은 더욱 그렇다.

감히 말하건대 논술 교육은 사교육에 비해 학교 교육이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이다.

수학능력시험이면 몰라도 통합교과형 논술 교육은 학교 교육이 지닌 지속적이고 다양한 시스템을 사교육이 결코 따라올 수 없다.

통합교과형 논술 교육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평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정 평가는 필연적으로 학교 교육과정과 접목돼 있다.

나아가 과정 평가 교육과정은 미래사회의 창조적인 인재를 길러내는 첩경이다.

학교 교육을 담당하는 모든 이들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첫 번째 이유이다.

나아가 학교 교육은 평가의 권리가 있고 교육비도 사교육비에 비해 크게 저렴하다.

우리 학교 논술반 학생의 한 학기 수강료는 5만원 정도이다.

한 학기 수강료가 5만원인 사교육이 존재할 수 있는가?

사교육비에 대한 걱정을 해소하면서 교육 평등을 이룰 수 있는 교육 방법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도 최선의 방안이라면 금상첨화 아닌가?

대학 입시를 비롯한 여러 가지 제도적인 문제를 탓하는 사람도 많다.

학교 교육의 무능함을 탓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오늘날과 같은 상황에서는 어떤 교육제도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문제의 본질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나라 교육의 본질적인 문제는 제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교육에 대한 개별적인 의식에 있다.

매스컴에서 집중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취재해서 환기시켜야 할 부분이 오히려 거기에 있다.

따라서 매스컴은 사교육의 문제점을 보도하기보다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바람직한 교육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학교 교육의 현장을 보도할 필요가 있다.

다시 한 번 조금만 거리를 두고 '지금 왜 굳이 논술인가?'를 생각해 보자.

많고 많은 시험과 평가 방법 중 왜 대학 입시의 중요 관문으로 논술이 다시 대두되고 있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사회가 바뀌고 새로운 인재가 필요할 때 일반적으로 평가제도가 변화한다.

엄청난 정보의 홍수 속에서 21세기에는 새로운 지식정보사회형 인재가 필요하다.

단순 암기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다양한 정보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내는 사람,창의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지니고서 상대방을 설득시키고 함께 동참시킬 수 있는,다양성에 근거한 리더십을 지닌 사람,그런 사람을 양성하기 위한 국가적 통과 장치로 논술이 위치한다.

따라서 진정한 문제의 본질은 '사교육이 나으냐? 학교 교육이 나으냐?'하는 것이 아니다.

'논술을 왜 가르쳐야 하는가?'하는 근본적인 문제이다.

논술을 가르치는 이유는 학생들에게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고,그것을 제대로 표현하는 길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이해하고,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의사소통 능력'을 향상하기 위함이며,더 나아가 '대화가 가능한 사회' 혹은 '토론이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다.

한 편의 정제된 글은 단순히 형식을 다듬는 것을 넘어서 하나의 화제를 깊이 있게 통찰하고 다양하게 사고하는 과정을 통해서 완성된다.

인터넷의 확대로 걸러지지 않은 입말을 그대로 활자화하는 것에 익숙해진 현재의 아이들에게 논술은 분명 어려운 과제이다.

더구나 다양한 교과목의 내용이 통합되어 만들어진 어려운 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기술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하지만 어렵다고 방치할 수는 없다.

어려워도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은 단순히 사교육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이 '바른 길'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학교 교육이 바로 서는 길이고 아이들에게 미래를 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장 올바른 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양성된 인재가 이 시대에 필요한 인재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논술은 21세기에 필요한 창조적인 인재를 양성하는 첩경이다.

"드라마에서는 NG가 나면 씩 한번 웃어주고 다시 찍으면 그만이지만 교육 현장에는 NG가 없다.

수없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아이들을 만나야 하고,교육이라는 포기할 수 없는 전제 아래 교단에 서는 것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만큼 교육은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면서도 신중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말이다.

일본은 교육개혁을 20년 가까이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다양한 토론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

논술이 사교육 시장의 주범이니,아이들에게 입시에 대한 부담을 하나 더 늘린다느니,교사들이 논술 수업을 제대로 준비할 시간이 없다느니 하는 논쟁은 교육의 본질에서 벗어난 주장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논술교육이 진정 교육적인가 하는 논쟁이다.

논술에 대한 논쟁도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대구 경명여고 교사 tgnonsu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