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은 정답이 없는 글쓰기다?
칼럼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어느 다큐 채널에서 내레이터가 하버드 대학 우등생에게 물었다.
'여러분의 소원은 무엇인가?'
가볍게 던진 질문이었지만 학생들의 대답들은 의외였다.
"글 잘 쓰는 거요."
"글을 좀 잘 썼으면 좋겠어요."
"굿 라이팅요."
지구촌의 갈등을 최초로 해결할 수 있는 경제이론을 정립하는 인물이 된다든가,아니면 백악관 주인 가운데 가장 존경 받는 이름으로 남아보고 싶다든가,아니면 물리학 · 수학의 난제(難題)를 가장 먼저 해결하는 천재가 되고 싶다든가,그것도 아니라면,3시간만 자도 안 졸리기,'소프트웨어 황제'에 '게임 도사' 되기,졸업 전 고액 스카우트 되기,여름방학 때 '얼짱' 친구와 단둘이 떠나기….
정말 의외로 우등생들의 한결같은 대답은 '글을 잘 쓰는 것'이었다.
자신이 어떤 상상력과 어떤 아이디어를 갖고 있느냐에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그 생각을 어떻게 잘 표현할 수 있느냐라는 점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대학의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절절하게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한국 교육의 문제점과 함께 출발점이 위치한다.
몇 년 동안 대한민국을 달구었던 통합교과논술에 대한 열기가 많이 사그라진 느낌이다.
웃기는 상황이지만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 한국 교육의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난다.
대학 입시에서의 변화가 교육의 방향을 결정한다.
그 변화에 교육적인 판단은 그리 중요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사실 학교교육에서의 통합교과논술의 열기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단지 사교육과 언론에서 사그라진 것일 뿐이다.
그래도 꾸준하게 학교교육과 통합교과논술 교육의 미래를 위해 지면을 아끼지 않는 몇몇 언론과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통합교과논술의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학교 현장이 고마울 따름이다.
사실 통합교과논술은 제대로 된 교육과정도 없이 소규모로 운영되는 사교육 현장에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통합교과논술 수업은 교육과정에 가장 충실한 수업이기 때문이다.
요즘 학교마다 다양한 방식의 통합교과논술 수업이 실시되고 있으며 그 성과도 점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통합교과논술에 대한 몇 가지 오해와 함께 그 미래에 대한 회의를 지닌 교사와 학생,학부모가 존재한다.
그들이 지닌 오해와 회의를 이해와 확신으로 바꾸기는 쉽지 않겠지만 쉽지 않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들이 지닌 오해와 회의는 대체로 이렇다.
첫째,논술은 궁극적으로 글쓰기이고 당연히 국어 선생님의 몫이다?
통합교과논술이란 개별 교과 지식을 통합하여 비판적 심층적 사고를 바탕으로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이를 논리적으로 서술하는 능력을 측정하는 시험이다.
즉 지식의 양을 측정하는 시험이 아니라 제시문에 주어진 지식의 내용을 바탕으로 어떻게 다양한 현상들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를 물어보는 시험이다.
암기로 얻은 지식보다는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력을 중시하는 교육,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교육,한 교과의 칸막이에 갇힌 교육이 아니라 서로 다른 교과 간에 소통하는 교육,주입식 교육에서 자기주도적 교육으로 교육의 방향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
결국 통합교과논술은 단순한 글쓰기 교육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통합교과논술고사를 위한 논술수업은 모든 교과의 교사가 참여해야 한다.
오히려 국어과는 도구 과목에 불과하다.
실상 대학별 논술고사의 채점 기준표에 나타난 표현력의 비중은 10% 정도다.
둘째,논술은 정답이 없는 글쓰기이다?
논술문은 선택의 방향이 정해지지 않은 문제,즉 논제를 놓고 각자의 입장에서 주장을 하는 글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정답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 주장이나 다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의 요구에 부합해야 한다.
논술문 작성에 반드시 필요한 여러 가지 전제가 논제와 제시문 속에 들어 있다.
답안의 내용은 반드시 논제에서 제기한 내용과 관련되는 것이어야 하며,일정한 근거를 바탕으로 하는 논리적인 것이어야 하며,글의 모든 구성 요소가 논제의 요구에 부합하여야 한다.
답변이 과연 일정한 조건에 부합하는가를 보는 것,이것은 입시논술의 본질이다.
따라서 입시논술에는 하나의 정답은 없으나 복수의 정답은 있으며,흔히 말하는 모범답안은 없으나 답안으로서의 갖추어야 할 필수요소는 반드시 존재한다.
이러한 우리나라 논술의 특징은 학생을 선발하기 위한 하나의 제도라는 현실과 결합한 결과다.
셋째,정규수업,보충수업하기에도 바쁜데 논술 수업할 여유가 없다?
이러한 주장에는 정말 할 말이 없다.
논술 수업에 임하는 선생님들은 정말 바쁘다.
정규수업과 보충수업을 모두 준비하고 소화한 다음 논술 수업이 이루어진다.
논술 1차 시의 수업을 위해서 2주일이 넘는 수업 준비가 필요하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정규수업이나 보충수업 준비에도 철저한 선생님들이 오히려 논술 수업 준비에도 더욱 열의를 보인다는 점이다.
그런 분들을 위해서라도 논술 수업은 모든 교과의 선생님들이 참여해야 하며 나아가 정규수업을 통해 이루어져야 마땅하다.
넷째,논술은 창의적인 사고를 요구한다?
논술은 논제와 제시문에 대한 보다 새로운 해석과 주장을 요구한다.
그러나 논제에 대한 해석과 주장은 어디까지나 일정한 논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어야 한다.
새롭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다.
새로우면서도 논리적이어서 설득력을 갖춘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창의성을 유별난 것,내지는 튀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어떤 대상에 대한 개개인의 생각은 모두 다르다.
다른 것을 다르게 인식하는 것이 바로 창의성이다.
창의성은 유별난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거기에서 출발한다.
다섯째,논술문은 기본적으로 '서론,본론,결론'이 필요하다?
모든 글은 기본적으로 저마다의 형식을 지니고 있으며 그 대표적인 방식이 처음과 중간,끝이다.
하지만 규격화된 틀이 반드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고착화된 틀에 얽매여 쓰다 보면 상투적인 글이 되거나 군더더기가 들어갈 수 있다.
최근 통합교과논술의 개별화된 질문은 400~800자 정도의 핵심적인 대답만을 요구한다.
1200~1600자 정도의 제법 긴 글도 논제가 요구하는 사항에 대한 답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나가면 자연스럽게 나름대로의 형식을 갖출 수가 있다.
여섯째,그래봤자 논술 열풍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통합교과논술고사가 2년 이상 가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교육 제도가 지금까지 그래왔지 않느냐는 것이다.
지금 그러한 예상이 맞아 들어가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통합교과논술이 부상하게 된 이유는 시대적 변화 때문이다.
학문 간의 소통과 통합이 중시되면서 학교교육에서도 다양한 교과간의 소통을 통해 상황이나 사물의 진정한 본질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먼저 서로 다른 과목의 교사들이 정보를 교류하는 방법부터 하나씩 정립해 간다면 오히려 지금까지의 일방적이고 독선적이었던 교육방식보다는 훨씬 효율적인 교육방법을 도출할 수도 있다.
결국 적절한 방향성의 정립과 노력여하에 따라 통합교과논술은 침체된 학교교육 현장을 되살릴 긍정적인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대학입학을 위한 통합교과논술고사가 폐지되는 상황이 되더라도 학교에서의 논술교육은 당연히 지속되어야 한다.
일곱째,논술은 사교육 시장 확대의 중심에 있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서는 학교교육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정말 할 말이 없다.
오히려 현장 교사들까지 논술은 사교육에서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거기에는 언론까지 가세한다.
교사든,학부모든,학생이든 명심해야 할 진리가 있다.
분명 논술교육은 절대로 사교육이 학교교육을 넘어설 수 없다.
통합교과논술은 시대적 흐름이다.
단순하게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과정의 하나라는 생각을 넘어서 제대로만 시행된다면 지금까지 부정적으로 인식된 학교교육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도 될 수 있다.
어쩌면 학교교육이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사교육보다 경쟁력을 지닐 수 있는 현재로서는 유일한 제도가 바로 논술일지도 모른다.
이제 대한민국 학교교육은 기로에 서 있다.
날마다 학교교육의 문제점과 발전 방향이 제시되고 있다.
문제는 본질적이고 제도적인 측면의 생산적인 논쟁보다는 단지 소모적인 논쟁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그 논쟁의 중심에 통합교과논술을 두고 싶은 것이 내 생각이다.
그 논쟁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힘은 교육을 담당한 고등학교 교사로부터 통합교과논술을 출제하고 채점할 대학 관계자들에게 달려 있다.
결국 통합교과논술은 지금 존재하는 실제가 아니라 여전히 앞으로 이루어야 할 당위일지도 모른다.
대구 경명여고 교사 tgnonsul@naver.com
칼럼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어느 다큐 채널에서 내레이터가 하버드 대학 우등생에게 물었다.
'여러분의 소원은 무엇인가?'
가볍게 던진 질문이었지만 학생들의 대답들은 의외였다.
"글 잘 쓰는 거요."
"글을 좀 잘 썼으면 좋겠어요."
"굿 라이팅요."
지구촌의 갈등을 최초로 해결할 수 있는 경제이론을 정립하는 인물이 된다든가,아니면 백악관 주인 가운데 가장 존경 받는 이름으로 남아보고 싶다든가,아니면 물리학 · 수학의 난제(難題)를 가장 먼저 해결하는 천재가 되고 싶다든가,그것도 아니라면,3시간만 자도 안 졸리기,'소프트웨어 황제'에 '게임 도사' 되기,졸업 전 고액 스카우트 되기,여름방학 때 '얼짱' 친구와 단둘이 떠나기….
정말 의외로 우등생들의 한결같은 대답은 '글을 잘 쓰는 것'이었다.
자신이 어떤 상상력과 어떤 아이디어를 갖고 있느냐에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그 생각을 어떻게 잘 표현할 수 있느냐라는 점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대학의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절절하게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한국 교육의 문제점과 함께 출발점이 위치한다.
몇 년 동안 대한민국을 달구었던 통합교과논술에 대한 열기가 많이 사그라진 느낌이다.
웃기는 상황이지만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 한국 교육의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난다.
대학 입시에서의 변화가 교육의 방향을 결정한다.
그 변화에 교육적인 판단은 그리 중요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사실 학교교육에서의 통합교과논술의 열기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단지 사교육과 언론에서 사그라진 것일 뿐이다.
그래도 꾸준하게 학교교육과 통합교과논술 교육의 미래를 위해 지면을 아끼지 않는 몇몇 언론과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통합교과논술의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학교 현장이 고마울 따름이다.
사실 통합교과논술은 제대로 된 교육과정도 없이 소규모로 운영되는 사교육 현장에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통합교과논술 수업은 교육과정에 가장 충실한 수업이기 때문이다.
요즘 학교마다 다양한 방식의 통합교과논술 수업이 실시되고 있으며 그 성과도 점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통합교과논술에 대한 몇 가지 오해와 함께 그 미래에 대한 회의를 지닌 교사와 학생,학부모가 존재한다.
그들이 지닌 오해와 회의를 이해와 확신으로 바꾸기는 쉽지 않겠지만 쉽지 않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들이 지닌 오해와 회의는 대체로 이렇다.
첫째,논술은 궁극적으로 글쓰기이고 당연히 국어 선생님의 몫이다?
통합교과논술이란 개별 교과 지식을 통합하여 비판적 심층적 사고를 바탕으로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이를 논리적으로 서술하는 능력을 측정하는 시험이다.
즉 지식의 양을 측정하는 시험이 아니라 제시문에 주어진 지식의 내용을 바탕으로 어떻게 다양한 현상들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를 물어보는 시험이다.
암기로 얻은 지식보다는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력을 중시하는 교육,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교육,한 교과의 칸막이에 갇힌 교육이 아니라 서로 다른 교과 간에 소통하는 교육,주입식 교육에서 자기주도적 교육으로 교육의 방향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
결국 통합교과논술은 단순한 글쓰기 교육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통합교과논술고사를 위한 논술수업은 모든 교과의 교사가 참여해야 한다.
오히려 국어과는 도구 과목에 불과하다.
실상 대학별 논술고사의 채점 기준표에 나타난 표현력의 비중은 10% 정도다.
둘째,논술은 정답이 없는 글쓰기이다?
논술문은 선택의 방향이 정해지지 않은 문제,즉 논제를 놓고 각자의 입장에서 주장을 하는 글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정답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 주장이나 다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의 요구에 부합해야 한다.
논술문 작성에 반드시 필요한 여러 가지 전제가 논제와 제시문 속에 들어 있다.
답안의 내용은 반드시 논제에서 제기한 내용과 관련되는 것이어야 하며,일정한 근거를 바탕으로 하는 논리적인 것이어야 하며,글의 모든 구성 요소가 논제의 요구에 부합하여야 한다.
답변이 과연 일정한 조건에 부합하는가를 보는 것,이것은 입시논술의 본질이다.
따라서 입시논술에는 하나의 정답은 없으나 복수의 정답은 있으며,흔히 말하는 모범답안은 없으나 답안으로서의 갖추어야 할 필수요소는 반드시 존재한다.
이러한 우리나라 논술의 특징은 학생을 선발하기 위한 하나의 제도라는 현실과 결합한 결과다.
셋째,정규수업,보충수업하기에도 바쁜데 논술 수업할 여유가 없다?
이러한 주장에는 정말 할 말이 없다.
논술 수업에 임하는 선생님들은 정말 바쁘다.
정규수업과 보충수업을 모두 준비하고 소화한 다음 논술 수업이 이루어진다.
논술 1차 시의 수업을 위해서 2주일이 넘는 수업 준비가 필요하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정규수업이나 보충수업 준비에도 철저한 선생님들이 오히려 논술 수업 준비에도 더욱 열의를 보인다는 점이다.
그런 분들을 위해서라도 논술 수업은 모든 교과의 선생님들이 참여해야 하며 나아가 정규수업을 통해 이루어져야 마땅하다.
넷째,논술은 창의적인 사고를 요구한다?
논술은 논제와 제시문에 대한 보다 새로운 해석과 주장을 요구한다.
그러나 논제에 대한 해석과 주장은 어디까지나 일정한 논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어야 한다.
새롭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다.
새로우면서도 논리적이어서 설득력을 갖춘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창의성을 유별난 것,내지는 튀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어떤 대상에 대한 개개인의 생각은 모두 다르다.
다른 것을 다르게 인식하는 것이 바로 창의성이다.
창의성은 유별난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거기에서 출발한다.
다섯째,논술문은 기본적으로 '서론,본론,결론'이 필요하다?
모든 글은 기본적으로 저마다의 형식을 지니고 있으며 그 대표적인 방식이 처음과 중간,끝이다.
하지만 규격화된 틀이 반드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고착화된 틀에 얽매여 쓰다 보면 상투적인 글이 되거나 군더더기가 들어갈 수 있다.
최근 통합교과논술의 개별화된 질문은 400~800자 정도의 핵심적인 대답만을 요구한다.
1200~1600자 정도의 제법 긴 글도 논제가 요구하는 사항에 대한 답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나가면 자연스럽게 나름대로의 형식을 갖출 수가 있다.
여섯째,그래봤자 논술 열풍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통합교과논술고사가 2년 이상 가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교육 제도가 지금까지 그래왔지 않느냐는 것이다.
지금 그러한 예상이 맞아 들어가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통합교과논술이 부상하게 된 이유는 시대적 변화 때문이다.
학문 간의 소통과 통합이 중시되면서 학교교육에서도 다양한 교과간의 소통을 통해 상황이나 사물의 진정한 본질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먼저 서로 다른 과목의 교사들이 정보를 교류하는 방법부터 하나씩 정립해 간다면 오히려 지금까지의 일방적이고 독선적이었던 교육방식보다는 훨씬 효율적인 교육방법을 도출할 수도 있다.
결국 적절한 방향성의 정립과 노력여하에 따라 통합교과논술은 침체된 학교교육 현장을 되살릴 긍정적인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대학입학을 위한 통합교과논술고사가 폐지되는 상황이 되더라도 학교에서의 논술교육은 당연히 지속되어야 한다.
일곱째,논술은 사교육 시장 확대의 중심에 있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서는 학교교육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정말 할 말이 없다.
오히려 현장 교사들까지 논술은 사교육에서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거기에는 언론까지 가세한다.
교사든,학부모든,학생이든 명심해야 할 진리가 있다.
분명 논술교육은 절대로 사교육이 학교교육을 넘어설 수 없다.
통합교과논술은 시대적 흐름이다.
단순하게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과정의 하나라는 생각을 넘어서 제대로만 시행된다면 지금까지 부정적으로 인식된 학교교육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도 될 수 있다.
어쩌면 학교교육이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사교육보다 경쟁력을 지닐 수 있는 현재로서는 유일한 제도가 바로 논술일지도 모른다.
이제 대한민국 학교교육은 기로에 서 있다.
날마다 학교교육의 문제점과 발전 방향이 제시되고 있다.
문제는 본질적이고 제도적인 측면의 생산적인 논쟁보다는 단지 소모적인 논쟁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그 논쟁의 중심에 통합교과논술을 두고 싶은 것이 내 생각이다.
그 논쟁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힘은 교육을 담당한 고등학교 교사로부터 통합교과논술을 출제하고 채점할 대학 관계자들에게 달려 있다.
결국 통합교과논술은 지금 존재하는 실제가 아니라 여전히 앞으로 이루어야 할 당위일지도 모른다.
대구 경명여고 교사 tgnonsu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