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수준별 수업 통해 평준화 문제 해결할 것"

반 "우열반 부활·사교육 열풍 등 부작용 우려"


서울시교육청이 2012년까지 모든 초 · 중학교에 1개 이상의 영재학급을 운영키로 한 것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시교육청 쪽에서는 "영재학급이 단위 학교에 개설되면 학급당 최대 20명의 학생들이 혜택을 받게 돼 선진국 수준의 영재교육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학생 개인의 재능과 창의성 등을 엄격히 검증해 선발한다는 점에서 성적만을 기준으로 하는 과거 우열반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강조한다.

이에 대해 전교조와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쪽에서는 "지금도 영재학급이나 영재교육원 등 영재교육기관에 들어가기 위한 사교육이 성행하는 상황에서 영재학급이 늘면 명문학교 진학을 위한 또 하나의 '엘리트 코스'로 변질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반발한다.

영재교육원 대비반을 운영하는 학교도 적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이번 조치가 자칫 합법적인 우열반 편성을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지능과 재능이 뛰어나고 창의성을 갖춘 학생들을 발굴해 국가의 인재로 육성하자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영재성은 유전적 영향도 크지만 교육에 의해 더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각 분야의 영재들에게 일반적이고도 보편적인 교육을 시켜 그들의 재능을 사장시킨다면 국가 ·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영재교육의 당위성이 아니라 우리 교육 현장이 과연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느냐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와 서울시교육청이 밀어붙이고 있는 엘리트 위주의 '영재교육'을 둘러싼 논란을 분석해본다.

⊙ 반대 측, "선행학습 확산과 우열반 부활, 사교육 열풍 몰고 올 것"

영재학급 확대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국제중,자율형사립고,고교선택제 등 시행으로 교육 현장의 서열구조가 고착화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영재학급도 결국 선행학습 확산과 사교육 열풍을 불러오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가뜩이나 일부 사립고등학교 등에서 입시실적을 높이기 위해 우수반을 꾸리는 일이 예사로 이뤄지고 있는 마당에 영재교육진흥법을 고쳐 특별 · 재량 활동으로 한정돼 있는 영재교육 운영 범위를 교과활동으로 까지 넓힐 경우 우열반 부활사태를 몰고올 게 불을 보듯 뻔하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또 "1%를 위한 학급 편성은 나머지 99%의 보통 학생들에겐 자칫 열등감을 심어줄 수도 있다"며 다수 학생을 인재로 키우는 것도 소수 영재를 제대로 키우는 일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영재학급이 명문교 진학을 위한 엘리트 코스로 변질돼 또 다른 소외를 낳는다면 그 책임은 과연 누가 질 것이냐고 반문한다.

정부의 수월성교육 방침을 좇아 교육 대상자 비율 늘리기에 급급한 시교육청의 행보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 찬성 측, "학력수준별 수업 통해 평준화 문제 해결에 기여할 것"

이에 대해 찬성하는 쪽에서는 "학력수준별 수업은 우수 학생과 상대적으로 뒤처지는 학생 모두에게 교육 효과를 높이게 마련이며, 특히 영재교육 시책의 수립 · 실시는 교육기본법 제19조가 명문화한 국가 · 지방자치단체의 의무사항"이라고 강조한다.

서울시교육청의 영재학급 확대는 1974년 이래의 평준화문제를 시정하려는 조치라고 평가한다.

'1교 1영재학급' 방안은 자율형사립고 등과 더불어 '평둔화(平鈍化) 35년'의 그늘을 지워나가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방과후 수업이나 방학 기간 등에 거점 학교에서 공동 수업을 하는 현행 방식으로는 무늬만의 수월성 교육에 그치기 십상"이라며 영재교육의 내실화를 위해 교과활동으로 까지 영재학급 운영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울의 학교별 영재학급 운영이 전국 일원으로 확대 실시되고 그 수월성 교육을 실질화하기 위해서는 교육기본법 취지를 구체화한 영재교육진흥법의 시행령 일부를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 영재학급 입시 우열반 되지 않도록 관련 대책마련에 힘써야

특별한 재능을 가진 학생들을 집중 발굴해 국가의 인재로 육성하는 일은 당면 현안임에 틀림없다.

그런 점에서 서울시교육청이 2010년까지 영재교육 대상자를 전체 학생의 1% 수준으로 확대하고,2012년까지 단위학교 별로 최소 1개의 영재학급을 운영하는 등 영재교육을 강화하기로 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제대로 된 영재교육을 위한 여건을 조성하면서 차분히 계획을 추진하기보다는 정부의 수월성교육 방침을 좇아 교육대상자 비율 늘리기에 급급한 시교육청의 행보는 미덥지 못하다.

게다가 과학고,외국어고,자립형사립고 등에 우수 학생을 빼앗기고 고교선택제 시행까지 눈앞에 둔 일반계 고교가 영재학급을 상위권 학생반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시교육청 복안대로 영재학급에서 정규교육 과정까지 소화한다면 그럴 가능성은 더 농후해지고,영재학급을 겨냥한 사교육 바람도 덩달아 거세질 게 뻔하다.

어학 영재 육성이라는 본래 목적을 상실한 외국어고 사례에서도 드러났듯, 영재교육조차 상급학교 진학의 지렛대로 삼으려한다면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전문성과 실력을 갖춘 영재교육 전담교사 육성 · 확보,영재교육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영재교육 시설확충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 초 · 중 · 고교와 대학에서 길러낸 영재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큰 그림부터 그리는 일이 급선무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용어풀이>

◆ 영재교육진흥법
= 재능이 우수한 학생을 조기 발굴해 능력과 소질에 맞는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2000년에 제정됐다. 국가는 영재교육에 관한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영재교육 경비를 지원하는 등 대책을 강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 자율형사립고 = 교육과정 교원인사 학사관리 등에서 학교가 광범위한 자율성을 갖도록 한 새로운 형태의 사립고로, 기존의 자립형 사립고를 발전시킨 것이다. 내년 3월25일 시 · 도교육청별로 심의 지정절차를 진행해 39곳을 지정한 뒤 2010년에 30곳, 2011년에 40곳을 추가 지정해 총 100곳을 설립할 계획이다.

------------------------------------------------------------

<연합뉴스 1월6일자 보도 기사>

서울시교육청은 각급 학교에서 영재교육을 담당하는 영재학급이 지난해 232개에서 올해 287개로 늘어났다고 6일 밝혔다.

특별활동,재량활동 등 정규교육 과정을 통해 지난해 110개교에서 232개 영재학급을 운영하던 것에서 올해는 131개교에서 287개 영재학급을 운영하게 됐다.

시교육청은 오는 2012년까지는 950여개 전체 초ㆍ중학교에 1개 이상의 영재학급을 설치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 영재학급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지난해 3월 발표했던 '제2차 영재교육 종합 발전 계획'에 따라 영재학급을 점진적으로 늘려나갈 생각"이라며 "오는 2012년까지 초 · 중학교에 영재학급을 1곳씩 운영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시교육청은 영재학급 관련 시범학교도 운영,2006~2007년 고교 1곳에서 영재학급 시범학교를 운영한 데 이어 2008~2009년 초등학교 1곳을 시범학교로 운영하고 2010년에는 중학교 1곳을 선정키로 했다.

시교육청은 영재교육 대상자도 확대,2010년까지 전체 학생 대비 1% 수준으로 늘려 지난해 5624명(0.40%) 수준에서 올해 8500명(0.61%)으로 끌어올리고 2010년 1만3900명(1%)으로 늘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