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디 前대통령 딸 캐롤라인, 상원의원 승계 자질 시비
[Global Issue] “부모 잘 만나면 출세는 떼논 당상?”… 미 政街 ‘네포티즘’ 논란
'네포티즘(nepotism)'이란 말이 있다.

'조카(Nephew)'와 '편애(Favoritism)'가 합쳐서 생긴 말로 흔히 우리말로 '족벌주의' 또는 '정실주의'로 번역돼 쓰이는 정치용어다.

10~11세기부터 로마 교황들이 권력 강화를 위해 자신의 사생아를 공식 석상에서 조카라고 속이고 요직에 앉혔던 데서 비롯됐으며 14~15세기 르네상스 시기에 절정에 달했다.

지금도 정계나 재계 유력 인사가 가족 또는 친척들에게 자기 자리를 물려주거나 주변의 핵심 자리를 내주는 행위를 뜻하는 말로 널리 사용된다.

이 네포티즘이 요즘 미국 워싱턴 정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논란의 중심엔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유일한 생존 자녀이자 최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내정자의 뉴욕주 상원의원 후임 승계를 위해 뛰고 있는 캐롤라인 케네디가 있다.

캐롤라인이 만약 주지사에 의해 의원직 승계자로 지명되면 케네디 집안의 7번째 의원이 된다.

고조할아버지는 하원의원,할아버지는 대사,아버지는 대통령,삼촌 2명은 상원의원,사촌 2명은 하원의원을 지낸(현직 포함) 정치가문의 바통을 이어받는 것이다.

캐롤라인을 둘러싸고 네포티즘 논란이 거세진 이유는 그녀가 공직 경험이 거의 없는 데다 최근 인터뷰를 통해 부족한 언변을 드러내며 자질 시비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캐롤라인은 지난해 12월 말 뉴욕타임스(NYT)와 뉴욕데일리뉴스,AP통신 등 주요 언론들과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신고식을 가졌지만 언론의 평가는 혹독하기 그지없었다.

'과연 상원의원 자격이 있느냐'는 비판론과 함께 질문 내용과 동떨어진 동문서답은 물론이고 '아시다시피(you know)'를 연발하면서 케네디 가문의 명성을 의심케 할 정도였다.

AP통신은 캐롤라인의 인터뷰 발췌록을 분석한 결과 147초 동안 'you know'를 30차례 사용했다고 보도했다.

또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는 130번 이상 등장했고,뉴욕데일리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는 무려 200여차례 반복적으로 'you know'를 읊조렸다.

인터넷 동영상 커뮤니티 유튜브에는 캐롤라인의 'you know'와 오바마 당선인의 'um'을 빗댄 'Um You Know Remix'까지 등장했다.

매트 에번토프 프린스턴대 교수는 "언어적 틱은 말하는 사람의 신뢰도를 크게 저하시킨다"면서 "상원의원을 꿈꾸는 캐롤라인에게 이 같은 언어습관은 명백한 손해이자 결점"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캐롤라인은 왜 상원의원이 되고 싶은지에 대한 기본적 질문에도 설득력 있는 답변을 하지 못했고,4억달러 이상으로 알려진 자신의 재산문제 등에 대해서도 답변을 거부했다.

심지어 상원의원 도전에 대한 남편의 반응을 묻는 뉴욕타임스 기자의 질문에는 "여성잡지 기자나 해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올해 대선에서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발탁됐지만 자질 논란을 빚었던 새라 페일린 알래스카 주지사와 비슷한 경우라고 꼬집고 나섰다.

캐롤라인의 강력한 경쟁자인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 검찰총장도 마리오 쿠오모 전 뉴욕주지사의 아들이다.

앤드루는 캐롤라인의 사촌인 케리 케네디와 결혼했다가 이혼한 악연도 있다.

상원 승계자 지명권을 가진 데이비드 패터슨 뉴욕주 지사는 뉴욕시 부시장을 지낸 유명 흑인 정치인 바실 패터슨의 아들이다.

힐러리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부인인 점을 감안하면 등장 인물 모두가 족벌정치인인 셈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동생인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가 상원의원 선거 출마를 준비 중인 것도 네포티즘 논쟁에 기름을 부었다.

형 부시 대통령의 낮은 인기가 부담이긴 하지만 출마하면 무난히 당선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부시 가문은 3대에 걸쳐 상원의원과 2명의 대통령을 배출했다.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 당선인이 내놓은 상원의원직 잔여 임기를 그의 보좌관이 승계하는 것도 세습정치에 비판적인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다.

현재 이라크에서 장교로 군복무 중인 바이든 당선인의 아들인 보 바이든 델라웨어주 법무장관이 돌아오면 상원의원에 나설 수 있도록 보좌관에게 잠시 자리를 맡겨 놓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차기 정부 내무장관에 내정된 켄 살라사르 상원의원이 내놓을 자리는 그의 형인 존 살라사르 하원의원이 물려받을 가능성이 크다.

헌법에 '어떤 작위도 금지한다'는 내용을 넣을 정도로 유럽의 귀족제 잔재를 크게 비판하는 미국 사회지만 명문가 세습정치는 의외로 뿌리가 깊다.

최근 브라운대 연구팀 조사에 따르면 미 초대 의회(1789~1791년) 의원 가운데 45%의 후손이 의원이 됐다.

특히 켄터키주의 브레킨리지 가문은 총 17명의 의원을 배출했다.

현직 상원의원 가운데는 11명이 전직 의원이나 주지사를 아버지로 뒀다.

쳇 컬버 아이오와 주지사도 전직 상원의원의 아들이다.

알래스카의 리사 무르코브스키 상원의원은 2002년 상원의원이던 아버지가 주지사가 되면서 딸을 상원의원 임기 승계자로 지명한 사례다.

최근 로드 블라고예비치 일리노이 주지사를 기소하면서 인기 스타가 된 리사 매디건 일리노이주 법무장관의 아버지는 근 25년째 주 하원의장으로 재임 중이다.

42세의 여성인 매디건 장관은 36세 때 법무장관 선거에 도전했다.

또 블라고예비치와 오바마 당선인의 후임 상원의원 자리를 놓고 돈거래 의혹을 받은 제시 잭슨 주니어 하원의원은 유력 흑인 정치인인 제시 잭슨 목사의 아들이다.

미국 정계 명문가의 권력 세습에 대한 비판은 곳곳에서 거세게 일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유명 과학자나 음악가의 자녀가 부모처럼 천재일 가능성은 없다는 걸 모두 알고 있지만, 정치에서는 권력의 세습을 비판하면서도 명문가의 자녀를 선호하는 풍토가 있다"고 지적했다.

미 방송사 MSNBC도 이 같은 명문가의 세습 정치가 현대판 귀족을 만들어 헌법 정신을 퇴색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밥 에드거 전 펜실베이니아주 연방 하원의원은 미 정치전문지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현상이 생기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도 돈,둘째도 돈,셋째도 돈"이라며 돈이 없으면 선거판에 끼어들 수가 없고,선거에 이긴 집안이 엄청난 특권을 이용해 의원직을 갖게 되는 미국 정치판 현실을 꼬집었다.

이미아 한국경제신문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