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가자 공격·OPEC 감산 등에도 내림세 지속
[Focus] “글로벌 경기 언제 살아나나?” … 유가 ‘날개없는 추락’
유가가 심상치 않은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이 지상전으로 확대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가스 공급 중단 사태,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이라는 악재 속에도 국제유가는 내림세를 지속하고 있다.

대개 이런 악재들이 겹치면 유가는 급등하는 모습을 보여왔으나 반짝 상승 뒤 다시 내림세로 반전한 양상이다.

이런 내림세는 무엇보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인한 수요 감소의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제유가는 단기적으로 반등세를 보이다가 다시 약세로 돌아섰다.

지난 7일에는 미 에너지 재고가 예상보다 늘어난 여파로 국제 유가가 7년 만의 최대 낙폭을 기록하며 배럴당 42달러 선으로 내려섰다.

이날 뉴욕상품거래소(NYMEX)에서 거래된 2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은 전날에 비해 배럴당 5.95달러(12.2%) 떨어진 42.63달러로 마감했다.

하루 낙폭으로는 9 · 11테러 직후인 2001년 9월24일 이후 최대이다.

국제유가는 전날 배럴당 50달러까지 도달하는 등 최근 반등세를 보여왔지만 연이틀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단기적인 하락의 원인은 미국의 원유 재고 증가다.

미 에너지부는 이날 지난 주말 기준 원유 재고가 전주 대비 670만배럴 늘어난 3억2540만배럴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에너지 정보 제공업체 플래츠가 집계한 월가 애널리스트들의 증가 예상치 150만배럴을 훨씬 상회하는 수치다.

휘발유 재고는 330만배럴,난방유 등 정제유 재고도 180만배럴 늘어났다.

또 이날 발표된 고용지표가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고,인텔 알코아 타임워너 등 미 주요 기업들이 잇따라 어두운 실적 전망을 내놓은 점도 수요 감소 전망을 확산시켰기 때문이다.

중동지역 긴장이 다소 완화된 점도 유가 하락에 기여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국제유가는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국제유가는 7월에 배럴당 145달러를 넘어서며 최고점을 찍었다.

이후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세계로 확산, 불황의 그늘이 미국 유럽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성장세를 구가하던 아시아에도 확산됐다.

이런 글로벌 경기침체의 여파로 원유에 대한 수요 감소가 예상되면서 유가는 지속적으로 하락, 지난해 12월19일에는 배럴당 33.87달러까지 떨어졌다.

7월 고점 대비 무려 76.7%가 폭락했다.

유가가 4년 전 가격으로 되돌아가는 사상 유례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국제유가 하락의 가장 큰 원인은 실물경기 침체다.

극심한 경기침체로 생산활동이 줄고, 자동차를 덜 타는 등 유제품에 대한 수요가 급감하고 있는 것이다.

원유도 세계 곳곳의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다.

국제유가의 기준이 되는 WTI는 미국 뉴욕상품거래소(NYMEX)에서, 북해산 브렌트유는 런던의 국제석유거래소(ICE)에서, 한국이 주로 수입하는 두바이유는 싱가포르에서 주로 거래되며 이 시장에서 거래 가격이 국제유가의 기준이 된다.

원유 거래에서도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적용되는데 현재 유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것은 전세계의 원유 수요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급 측면에서는 지속적인 감산이 이뤄지고 있다.

국제유가가 사상 최저인 배럴당 30달러대까지 떨어지자 석유생산국들은 생산을 줄이기로 합의했다.

OPEC은 지난해 11월부터 감산에 들어간 데 이어 12월17일 알제리 오란에서 열린 임시총회에서 다시 하루 246만배럴을 감산하기로 해 지난해 9월에 비해 생산량을 하루 420만배럴 줄이기로 한 상태다.

아랍에미리트는 1월부터 산유량을 15% 줄였으며 세계 최대 석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도 산유량을 상당 부분 감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OPEC 회원국은 아니지만 에너지 강국 러시아도 더 이상 유가하락을 두고볼 수 없다며 감산에 동참하기로 하는 등 석유 생산국들의 감산 노력은 눈물겹다.

하지만 감산은 곧 매출액 감소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회원국들이 합의를 얼마나 잘 이행할지 의문도 제기된다.

문제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고 평가받는 현재의 글로벌 경기침체로 석유에 대한 수요가 좀처럼 살아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연합(EU) 등 주요 선진국들의 경제는 이미 마이너스 성장에 돌입했고 세계의 성장 엔진으로 평가받던 중국과 인도 등 신흥시장의 성장세도 주춤하다.

세계 주요 기관들이 내놓고 있는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은 시간이 지날수록 떨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초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 경제가 올해 2.2%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으나 11월 말 세계은행은 0.9% 성장에 그칠 것이라고 발표했다.

지난달에 국제금융연구소는 세계 경제가 0.4% 마이너스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는 등 경기가 좀처럼 살아날 것으로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경기가 살아나야 소비도 늘고 석유에 대한 수요도 증가할텐데 이런 암울한 경제 전망 속에서 올해 석유 수요도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해 10월에 2009년의 세계 석유수요가 하루 70만배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으나 12월엔 하루 44만배럴 증가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OPEC은 지난해 10월엔 하루 76만배럴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가 12월엔 15만배럴 감소할 것이라고 대폭 수정했다.

결국 유가는 세계 경기가 언제쯤 회복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 및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가스 분쟁 등 유가 상승 요인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한국의 에너지경제연구원은 만일 올 상반기까지 극심한 경기불황이 이어져 석유 소비가 감소하는 추세가 지속되다가 하반기에 실물경제가 완만한 회복세를 보인다면 국제유가는 올해 평균 배럴당 50달러 선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또 세계 각국이 내놓은 경기부양책이 효과를 발휘해 올 3분기부터 세계경제가 빠른 회복세로 전환되면 유가는 배럴당 60달러 후반대를 유지할 것이며, 회복이 더뎌 올 연말까지 경기침체가 지속되면 유가는 40달러 초반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서기열 한국경제신문 기자 philos@hankyung.com